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불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난롯가를 따뜻이 데워줄지,
아니면 집을 태워 버릴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죠.

-조앤 크로퍼드.


책 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쓰여져 있는 이 문구가 어쩌면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지도 모르겠다.

안나는 좋은 아내였다. 대체로. (11쪽)

주인공 안나에 대한 평이다.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무난하다는 뜻이다. 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내의 할 일은 다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국인으로서 스위스 남편을 만나 스위스에서 살아간다는 문화적, 지리적, 언어적, 역사적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첫 번째 장애였다.

그래서 그녀는 약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 매설리 박사와의 상담에서 독일어 수업을 들으라는 충고를 받고 적극적인 생활을 위해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곳에서 만난 아치라는 남자와 즉흥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렇지만 ‘부터’라는 이 말이 어폐가 있는 것은, 놀랍게도 결혼 후 아치가 첫 번째 남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그 전에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 스티븐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할 때마다 스티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세 번째 남자를 맞아 들인다. 이 놀라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현재와 과거, 그리고 매설리 박사와의 대화가 복잡하게 질서없이 끼어들고 이어진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만큼 책을 읽는 독자들도 혼란스러워진다.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
필요와 바람의 차이.
수동성과 중립성의 차이.
고통의 목적.
자아와 영혼의 차이.
운명과 숙명 차이.
사랑과 욕정 차이.
망상과 환각 차이.
집착과 강박 차이.


안나는 매설리 박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박사는 대답한다.
“환각은 감각적인 거죠. 어떤 사람들이 자기 경험 안에서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것이요. 반면에 망상은 잘못된 믿음이죠.” (209쪽)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랑이 필요하고 많은 관심 그리고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그 지지는 가족 아니면 배우자로부터 시작한다. 안나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며 계속해서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슬프다. 그녀가 처한 환경이 특수하고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 브루노는 이런 점을 알고 있어야 했다. 무뚝뚝한 시어머니에게서 그녀를 지킬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안나가 갈구했던 사랑은,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이국 땅에서 이룰 수 없는 망상적 환각에 빠져 있었다. 사랑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있었고, 감각적인 사랑으로 사랑을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까지 와서, 아니 스위스에 왔기 때문에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 성공했다면 그건 오직 불륜의 관계에서 잠시 이루었을 뿐이다.

하우스 프라우. 가정주부라는 뜻의 이 책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혼자만 알고 있는 장소, 혼자만 울 수 있었던 벤치가 표지 중앙 아래, 안나의 왼쪽 흰 손 위에 슬프게 놓여 있다. 그녀는 벤치에서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 시선이 바로 우리의 시선이 아닐까. 슬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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