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로라 에이미 슐리츠, 그녀는 뉴베리상 작가이며 2015년 발표한 “어린 가정부 조앤”으로 2016년 최고의 역사소설에 수상하는 “스콧 오델상”을 받았으며, 전미 유대인 도서상과 시드니 테일러 상을 받았다.
그럼, 이 책은 정말 저런 상을 받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정말 그렇다,이다. 이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조앤, 아니 책 속에서는 재닛이라는 가명으로 살아가는 열네 살, 아니 책 속에서는 열여덟 살이라고 속이고 살아가는, 소녀의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해냈는지, 그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이다.
책은 조앤의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지만 일기가 너무 사실과 같아서 읽으면서 크게 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기는 1911년 6월4일, 챈들러 선생님에게 예쁜 일기장을 선물 받는 날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1912년 9월29일, 친구가 된, 유대인 로젠바흐 주인집 막내 딸 미미에게서 크림색 종이에 진홍색 가죽 커버로 만들어진 새 일기장을 받아 마지막 일기를 적으면서 끝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열네 살 조앤의 1년3개월 동안의 성장일기인 셈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죽도록 일만 하다가 결국 죽어버리고 만 엄마처럼 될까봐 무서웠다.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아내가 하던 일을 모두 열네 살 조앤에게 시켰다. 조앤은 학교도 그만 두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아버지와 오빠 두 명의 모든 치닥거리와 식사준비 그리고 농장일까지. 똑똑하고 지혜롭고 학습능력이 뛰어나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조앤. 마지막 담임이었던 챈들러 선생님은 꾸준히 조앤에게 책을 선물하고 읽으라고 했는데, 사건이 터진 그날도 특별히 조앤의 농장을 방문해 조앤에게 새 책을 선물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조앤의 아버지는 선생님을 무례하게 대하고 챈들러 선생님은 굴욕감에 울면서 집으로 가야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조앤의 심정을 알겠는가. 조앤은 다음 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세 권의 책이 모두 아궁이에서 불탄 채 사라진 걸 발견하고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며 처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후, 신문기사에서 읽은 태업과 파업 그리고 주급을 요구하다 변화없는 아버지와 농장에게서 탈출해 무작정 도시로 나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가정부의 삶이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열네 살 여자 아이가 혼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로 가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 용기는 실로 무모한 것이지만, 사실 집에서의 두려움이 더 컸기에 실천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로젠바흐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 때, 집으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소리친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어릴 때 방학만 되면 가출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변두리 기차역이 집 주변에 있었는데, 석탄을 운반하던 열차가 늘 정차해 있곤 했다. 관리인 몰래 숨어 들어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나도 조앤처럼 집이 싫었고 부모님을 떠나고 싶었다. 끝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는데, 내겐 조앤만큼 용기와 간절함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래서 그 마음을 이해하며,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집을 도망쳐 나온 조앤에게 더 이상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앤은 재닛이라고 속이고 한밤에 치한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솔리의 집으로 들어간다. 조앤은 카톨릭 신자였지만 솔리네 로젠바흐 집은 철저한 유대인 집안. 청손하고 순수하고 여려 보이지만, 강인하고 억척스러운(이 부분은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나온 성품이지 않을까) 소녀가 되었다. 둘째 아들 데이비드는 그녀의 그러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조앤은 사랑에 빠진다.
2015년에 어떻게 100년 전의 시대상을 재현해 낼 수 있었는지 작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21세기를 살면서 20세기를 소설 속에 복원해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자료가 풍부한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가정의 생활상을.
제인에어를 읽고 제인의 삶을 사랑했던 조앤의 완벽한 캐릭터까지.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빨강머리 앤, 작은 아씨들, 제인에어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는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5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책을 덮는 마지막 장에 이르자 이대로 책을 끝낸다는 게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조앤을 계속 더 만나고 싶었다.
작가는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책 읽기를 지독히 싫어했던 미미는 새 일기장을 조앤에게 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이라며, 꼭 작가로 성공할 거라고 말한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던 조앤은 선생님이 아니라 어쩌면 작가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만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거 같고,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찌든 때를 씻고 순수한 열정의 열네 살 소녀를 만나보기 원한다면, 당장, 조앤을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