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다시금 책의 장르에 대해 생각해본다. 표지에 있는 제목 “레스토랑에서(맛, 공간, 사람)”이라는 표현은 정확했다. 저자는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며, 미국에서 미국 문학과 문화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주 관심사는 문화사로 역사와 문학을 합친 퓨전 영역이다. 저자의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책 <레시토랑에서>가 어떤 책인지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맛깔스럽고 향기롭고 은은한 어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책은 레스토랑의 역사를 사회학적으로 바라본 사회학 도서이다. 그래서 표지처럼 낭만적이고 우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레스토랑의 배경에 깔려 있는 웨이터, 웨이트리스, 주방장, 식기청소부, 주방요리부들의 노동과 노동환경(사회학적 환경과 직업 환경인 주방을 모두 아우르는)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서이며 비평서이고 시계열 축을 따라 레스토랑의 변화를 이여기는 역사서이다.
이 책의 첫 세 장은 개인적인 인간에 초점을 맞춘 듯 이야기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이것은 저자가 의도한 것으로,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본 것은 레스토랑에서 주방과 식당 홀을 구분하는 하나의 문이다. 이 문 하나로 인해 노동현장의 폐쇄된 공간과, 레스토랑이라는 개방된 공간이 분리된다. 문 하나에서 이편과 저편이 나뉘고 여유와 힘듦이 나뉜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지땀을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공간과 미식가임을 자처하며 시간을 음미하며 맛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열린공간이 나뉜다. 저자가 주장하듯 레스토랑은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의 전형적인 영역이다. 이제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함께 이야기한다. 레스토랑은 이제 일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열린 공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맥도널드가 레스토랑인가 아닌가는 별도의 이야기이다. 그건 사회가 규정하는 것이지 레스토랑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영국에서는 조선업과 제철업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인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레스토랑은 주된 산업의 영역이었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같이 수행하는 독톡한 곳이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끌고, 식품을 잘게 자르고, 접시와 냄비를 청소하며 쉴 틉 없이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그건 우리나라 식당에서 일을 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음식점이든 고급 레스토랑 주방이든 별반 다를 게 없다. 레스토랑은 한 마디로 말해 육체적인 영역의 공간이다. 홀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주방에서는 쥐꼬리만한 임금이 지급되고, 육체적 폭력이 가해지고, 불법 이주자들이 고용주의 기분에 무방비로 내맡겨진 곳이다. 결국 “레스토랑”이라는 육체적 공간은 소비 자본주의가 일으킨 사회적 불평등의 현장의 일부이다.
몇 년 전에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체험 문학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작가 조지 오웰이 직접 탄광에 들어가 함께 일하며 그들의 생활상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때가 1936년이었다. 놀랍게도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은 레스토랑 주방에서 직접 접시를 닦으면서 체험한 르포르타주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작품이다. 오웰의 관찰에 따르면 웨이터는 요리사나 접시닦이와 달리 자신을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오는 부자들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비굴함을 즐긴다고 하였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여과없이 펼쳐진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어떤 낭만이나 감정적 호소 없이 투명하지만 건조하게 레스토랑의 이야기를 시계열적으로 훑어낸다. 1917년 논문을 쓰기 위해 웨이트리스 면접을 보고 식당에 들어간 프랜시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2013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호위 인력 없이 단 두 사람만 대동한 채 <칭펑 만두>라는 소박한 가게에 들러 만두를 시켜 먹음으로써 가게가 단번에 유명세를 타게 돈 사건까지 다양하고 숨겨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다소 건조한 책이지만, 레스토랑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레스토랑을 주제로 역사, 문화, 인간에 대한 참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잘 엮어냈다. 작가의 놀라운 자료 수집과 그것들을 한 데 그러모아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펼쳐준 것에 감사한다. 총 351개의 주석이 299쪽부터 342쪽까지 빼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