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절망독서>
한 줄 평 : 절망할 땐 더욱 절망하라.

‘절망’은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매우 자기주도적인 상황이다. 물론 주도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방이 꽉 막힌 상황, 설상가상으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희망이 끊어져 버린 상황.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그건 절망적인 상황,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모든 희망을 포기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고 하는데,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게 인생의 참 맛은 물론 아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눈물 젖은 빵맛을 모를 뿐이다.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절망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절망에 처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해서, 이 책은 세 부류의 독자를 가지게 된다. 첫째는 현재 절망에 처한 상태에 있어서 사실상 모든 희망의 문이 닫힌 상태지만, 책으로라도 무슨 위안을 받을까 하여 이 책을 집어든 독자. 둘째는 과거에 절망 속에 빠져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 책 속 저자의 말에 공감을 크게 할 수 있는 사람, 셋째는 아직 한 번도 절망다운 절망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기도 했고, 어쩌면 남은 삶 동안 절망을 크게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독자.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절망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다만 독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절망의 횟수와 강도에 따라 책을 받아들이는 깊이와 반응이 다를 뿐이다.

이 책의 독자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위의 세 부류 가운데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하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을 순 없으나 욥과 같이 엄청난 수준의 불행이 몰아닥쳤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의 파도가 나를 덮어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절망적인 때가 있었다. 그 죽음의 늪을 빠져나와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의 글들은 더욱 깊이있게 내 속으로 들어와 체화되었다.

저자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길고 긴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더 중요하다며, 이때 더욱 절망적인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그는 13년간 절망의 나락에서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병원에서 보낸 사람이므로 그의 말은 일단 신뢰감이 있다. 물론 반평생을 힘들게 어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13년의 절망 세월 역시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절망의 순간이 아니라, 절망 시기에 대한 고뇌를 한다.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이 책은 만들어졌다.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힘을 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그건 결코 위로의 말이 아님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 잘 될 거야” 역시 허무맹랑한 위로라는 사실도.

이 책은, 절망에 빠졌을 때 당장 이런 책을 읽으시오, 하고 처방을 내려주는 책이 아니다. 물론 2부에 저자가 읽은 책들이 소개되긴 하지만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 많고 지극히 개인 취향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약 처방처럼 동일하게 접근하는 것이 꼭 맞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 책은 크게 1부, “절망의 시기, 어떻게 보내야 할까?”와 2부, “다양한 절망과 마주하기”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절망에 따른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번외편으로 절망할 때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는 재미있는 소제목도 있다.

200쪽 가까운 분량의 작은 책인데, 그 중에서 절망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로 1부를 몽땅 써 버렸다. 그래서, 당장 어떤 책을 읽으라고, 하며 분노를 터트리는 다혈질 절망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1부를 읽으면서, 도대체 진짜 책 얘기는 언제 나오는 거야? 하며 꿍시렁댔으니까. 게다가 2부에 들어가서도 책 처방보다 드라마, 영화 처방이 더 많다. 결국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책 처방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건지는 책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이 책을 읽고, 더 절망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장점을 꼽는다면, 이 책 자체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읽을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가식적인 위로나 가식적인 희망의 끈을 던지지 않는다. 저자가 경험한 13년의 절망 내공은 그런 가짜를 몽땅 없애 버렸다. 그래서 진짜 절망자만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절망 내공으로, 절망 초짜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절망에 빠졌을 땐 더 절망스러운 책을 읽어라.

이 이론은,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다가가, 같이 울어주는 것으로 치유를 경험케 하는 것과 같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1%의 가능성도 없는 ‘희망’ 공수표를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께 앉아 같이 울어주는 것처럼, 더 절망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가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놀랍게도 희망 하나가 민들레 홀씨처럼 가슴에서 피어나 살며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절망에 빠진 독자여. 이제 진짜 절망하자. 긴긴 절망의 겨울, 견디는 삶을 살자. 서둘러 절망을 극복하려 하지 말자. 무릎을 질질 끌며 그 시간을 견뎌내자. 끝내 역경을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은 절망에서 빠져나온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세상에 역경과 절망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여전히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주홍글씨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스티그마가 낙인으로 찍힐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10년, 20년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다만, 한 가지 기억할 것은

행복도
절망도
그대로 멈춰 있는 일은 없습니다. (216쪽)
라는 말이다.

영원한 불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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