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아쓰코>의 이야기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작가가 대부분 작품에서 즐겨 화두로 던지는 “인간 심리의 부조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편이 저지른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는 성희롱 사건과 군수물품 납품을 위해 받은 5백만엔이라는 뇌물에 대하여 아내 아쓰코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우리 사회가 그렇다.) 아내만 애가 탄다. 그래서 <여름-아스코>의 마지막 소제목은 “불감의 탕에 몸을 담그다”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인간의 신체 온도와 가장 비슷하다는 불감탕. 갑자기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성경은 사도 요한의 입을 빌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였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시다 슈이치가 묘사한 “불감의 탕”은 정확히 이 세대를 성경에서 지적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그러다 <가을-겐이치로>로 넘어가면서 하나의 큰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서 등을 올린 애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 버린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마지막 <그리고 겨울>은 제목에 어울리는 70년 후의 디스토피아 세계가 그려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바로 이 70년 후의 디스토피아 세계에 있다. 물론 그 원인은 70년 전 한 교수의 놀라운 연구 결과가 성공을 해서 얻게 된 것이지만, 이미 세상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렸다. 물론 작가는 그렇게 끝내버리기가 너무 아쉬워, 또 놀라운 반전 사건을 만들어,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사람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미래를 아는 단 한 사람의 귀환을 통해 사회는 바뀔 수 있을까. 그는 결국 손에 수갑을 찬 채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신세에 다시 갇히지만, 70년 뒤 줄기세포로 탄생한 사인이라는 독특한 존재들은 자유를 쟁취한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도 나오고, 총칼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브라질의 16세 소녀가 부르짖은 한 권의 펜,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 외침은 결국, 다리를 건너버린 이 세상이, 다시 다리를 건너 원시의 자유, 민주,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이 시대는 불감의 늪에 빠져 있고, 다리를 건넜지만, 그 다리가 끊어져 가고 있지만 그것도 모른 체 계속 앞으로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표지를 보라. 다리는 이어져 있지 않다.
이 책은, 결국 장르만 미스터리, SF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이 시대를 향한 철학적 외침을 외롭게 외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으로 포장해서 소설을 쓴 작가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봄부터 가을까지, 조금만 더 긴장감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좋다. 마지막 겨울에서 그 모든 것을 회복했으니까. 겨울의 여주인공 “린”처럼, 나는 당신 소유가 아니라고, 이제는 자유를 찾겠다고 선언하며 다리를 되돌아간 그 용기를 품을 수 있었으니까.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꿀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