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한 줄 평 : 다리를 건넌다는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인생 철학에 관한 소설. 나 하나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연약한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



묘했다. 이런 소설일 줄은 미처 몰랐다. 결론 같은 4장을 위해 힘든 1장, 2장, 3장(각각 봄, 여름, 가을로 제목이 붙여져 있다)의 다리를 건넜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1장부터 3장까지의 이야기는 조금 지루했다. 작가가 도대체 무얼 얘기하려고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유일하게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어보았는데, 그때도 참 잔잔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읽었었다. 유명한 다른 작품들의 제목과 평을 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유독 내가 읽은 두 책이 좀 얌전했다. 그렇지만 이번 책은 3장까지가 그렇다는 얘기지 4장으로 들어서면 너무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당황하게 된다. 이 책은 4장만으로 본다면, SF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장르를 굳이 정한다면, 미스터리 SF소설이다. 하지만 이 역시 50퍼센트 정도만 맞다. 이 소설은 장르 자체가 미스터리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리를 건너다>는 “다리를 건넌다”는 뜻의 숨겨진 의미를 의식하고 책을 읽으면 그 재미가 훨씬 배가 된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책을 다 읽고 나서 깨달았다. ‘다리’는 현재와 미래의 다리가 될 수도 있고, 억압과 자유의 다리, 보수와 진보의 다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다리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너와 나의 다리까지. 물론 이때 “나와 너의 다리”라고 쓰지 않은 것에 유의해 보길. 이 책을 다 읽고서도 “나와 너의 다리”라고 말한다면 그건 책을 헛 읽은 것이다. 내 삶이지만, 이 삶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리를 건널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다리를 건너다”는 다리를 건널지 말지 고민하는 세 이야기가 1장부터 3장까지 큰 테마로 나뉘어져 독립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떤 결과론적인 끝을 제시하지 않고 2장으로 3장으로 그리고 마지막 4장으로 넘어간다.

책은 봄-아키라, 여름-아쓰코, 가을-겐이치로, 그리고 겨울의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봄-아키라는 다시 다리를 건너다, 변두리에 내리는 소나기, 여름을 밟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다. 봄-아키라는 아키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약간의 변주가 평화롭게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묘사된다. 어쨌든 일반 추리소설 같은 격정적인 긴장감 없이 책을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긴장을 놓고 읽으면 작가가 세밀하게 배치해 놓은 깨알 같은 장치들을 놓칠 수 있다. 가령, <봄-아키라> 마지막 “여름을 밟다”라는 소제목 이야기에서 <여름-아쓰코>의 국회의원 성희롱 사건이 스쳐 지나가는 뉴스처럼 슬쩍 비치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제목이 “여름을 밟다”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아쓰코>의 이야기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작가가 대부분 작품에서 즐겨 화두로 던지는 “인간 심리의 부조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편이 저지른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는 성희롱 사건과 군수물품 납품을 위해 받은 5백만엔이라는 뇌물에 대하여 아내 아쓰코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우리 사회가 그렇다.) 아내만 애가 탄다. 그래서 <여름-아스코>의 마지막 소제목은 “불감의 탕에 몸을 담그다”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인간의 신체 온도와 가장 비슷하다는 불감탕. 갑자기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성경은 사도 요한의 입을 빌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였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시다 슈이치가 묘사한 “불감의 탕”은 정확히 이 세대를 성경에서 지적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그러다 <가을-겐이치로>로 넘어가면서 하나의 큰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서 등을 올린 애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 버린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마지막 <그리고 겨울>은 제목에 어울리는 70년 후의 디스토피아 세계가 그려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바로 이 70년 후의 디스토피아 세계에 있다. 물론 그 원인은 70년 전 한 교수의 놀라운 연구 결과가 성공을 해서 얻게 된 것이지만, 이미 세상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렸다. 물론 작가는 그렇게 끝내버리기가 너무 아쉬워, 또 놀라운 반전 사건을 만들어,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사람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미래를 아는 단 한 사람의 귀환을 통해 사회는 바뀔 수 있을까. 그는 결국 손에 수갑을 찬 채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신세에 다시 갇히지만, 70년 뒤 줄기세포로 탄생한 사인이라는 독특한 존재들은 자유를 쟁취한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도 나오고, 총칼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브라질의 16세 소녀가 부르짖은 한 권의 펜,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 외침은 결국, 다리를 건너버린 이 세상이, 다시 다리를 건너 원시의 자유, 민주,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이 시대는 불감의 늪에 빠져 있고, 다리를 건넜지만, 그 다리가 끊어져 가고 있지만 그것도 모른 체 계속 앞으로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표지를 보라. 다리는 이어져 있지 않다.

이 책은, 결국 장르만 미스터리, SF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이 시대를 향한 철학적 외침을 외롭게 외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으로 포장해서 소설을 쓴 작가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봄부터 가을까지, 조금만 더 긴장감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좋다. 마지막 겨울에서 그 모든 것을 회복했으니까. 겨울의 여주인공 “린”처럼, 나는 당신 소유가 아니라고, 이제는 자유를 찾겠다고 선언하며 다리를 되돌아간 그 용기를 품을 수 있었으니까.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꿀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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