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의 기원”은 찰스 로버트 다윈이 155년 전에 쓴 과학서적이며, 인류학적인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은 거대한 책이다. 그런데 이제 네이버로, “종의 기원”을 입력하면 다윈의 책보다 정유정 작가의 책이 더 위에 놓인다. 절묘한 책 제목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제목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진화론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100퍼센트 수용 여부를 떠나, “모든 종은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다”라는 하나의 명제를 최종 목적지로 달려가는 그의 이론이, 숨겨졌던 한 사이코패스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정유정 작가의 이야기와 어떻게 서로 닿는가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정유정 작가가 악의 정점으로 불리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하는 “종의 기원”을 제목으로 삼은 저의는 무엇인가. 책을 읽기 전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질문은 계속 머리에 남았다. 우리는 여러 지식과 정보를 통해, 한 인간이 독특한 환경에 처해지면, 자신의 자라온 환경 또는 성품과 관계없이 악을 자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악은, 자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타의적인 문제가 되고, 그렇다면, 악은 과연 악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부딪치고 만다.

읽기 싫었던 책이었다. 피 튀기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영화도 호러물은 쳐다보지도 않고, 책도 잔인한 장면이 포함된 책일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은 읽기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스티븐 킹 같은 작가의 작품은 딱 하나를 빼고 손에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딱 하나의 책은 그가 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인데, 동화 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스티븐 킹은 그 책에서 몇 개의 사례를 들어 글쓰기 기법을 설명했는데, 자신의 책에서 추려낸 그 이야기들은, 잠깐 빌려온 것들인데도 끔찍했다. 창의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훌륭했지만, 이야기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절대로 읽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는데,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회사 독서동아리 7월도서로 정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근데 정작 그 책을 후보로 올린 친구는 무서워서 읽지 않았다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머리로 그 장면을 영상화하여 상상하며 읽곤 한다. 문자를 자신의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은 창의성 발달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감독이 연출한 이미지를 여과없이 주입하기 때문에 책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창의성적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절대로 머리로 장면을 상상하며 읽어서는 안 된다. 며칠을 자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매우 매우 끔찍한 장면은 초반에 잠시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심리묘사, 등장인물들간의 팽팽한 기싸움 같은 것들이 이어진다. 이미 우리는 많은 영화에서 그런 설정을 보아왔기에 어떻게 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끔찍함이 덜 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 생각보다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만큼 악에 무감각해졌다고 봐야 할까, 아니, 악이 아니라, 끔찍한 장면들에 대해서)

끔찍했던 살인이 일어난 뒤, 몇 번의 사건이 더 일어난다.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사이코패스의 1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이 책은 철저하게 사이코패스의 입장에서 사건과 사물을 이해하고 진단한다. 만약,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님에 의해 태어났는데, 자기가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악한 사람일까?

주인공은 자기가 사이코패스인지 몰랐다. 사건이 일어나고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신의 정체를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이전 행동들이 그런 것에 기인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명문대 학생이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토막내어 버린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사건은 살인자를 면담한 심리학자에 의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책으로 소개되었는데, 이후 친지 가족들의 고인의 명예훼손에 따른 판매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그 사건과 종의 기원에서 다루는 남자 주인공의 환경은 다르다. 종의 기원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들의 상태를 알고서 그를 살리기 위해 강박적으로 모질게 대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어머니와 계속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종의 기원”에 대해, 살인자의 성향이 사실은 부모로부터 기인하지 않았나 하는 유전적인 요소를 생각했으나, 뒤에는 범죄라는 것이, 점점 진화해간다는 것으로 적용점을 바꾸었다. 책 전반을 통해 주인공의 사이코패스 경향도 점점 더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의 기원의 이론을 수용한다면, 조기 발견과 사회적 네트웍을 통해 무언가 다른 결론을 사회적으로 이끌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이코패스가 옆집에 살고 있어요. 그러니 이웃을 조심하세요, 라는 관점보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편하고 읽기 힘든 책이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정유정의 다른 책들은 결코 읽고 싶지 않다. 진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