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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가족 트라우마의 슬픈 늪 이야기
한 줄 평 : 가족의 비밀 트라우마가 내 삶을 늪에 빠지게 했다.
소설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특이한 것은 저자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자전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독자로서 이 책을 접한 느낌은 결코 자전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실제로 자기가 리포 기자로서 취재를 담당한 사건을 풀어나간다.
르포 대상자는 러시아 깊은 산골 오지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무려 50년이나 생활한 헝가리인이다. 그는 헝가리인의 영웅이 되어 헝가리로 이미 돌아왔고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인계되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헝거리인을 담당했던 러시아 병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러시아에서 긴 기차를 타고 오지의 병원을 찾아가 그의 과거를 탐색해가는 르포르타주이다. 이를 위해 카메라맨을 동행하고 팀이 되어 같이 움직인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헝가리인을 찾아가는 여정과 탐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중간 축 또는 배경으로 두고 자신의 가족에 관한 트라우마를 주된 전경으로 초점을 바꾸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거기에 자신과 여자친구와의 심리적인 묘사, 책 속의 또 다른 액자소설격인 르몽드지에 실은 성인물 이야기, 엮여 있는 가족들 또는 가정부 등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가 실제인 듯, 상상인 듯, 자기 이야기인 듯, 소설 속 허구인 듯 뒤섞여 돌아다닌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주변 인물로 나오는 사람은 주인공의 외조부로 그는 나치 점령 때 독일군 통역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레지스탕스에 의해 끌려갔으나 생사를 알 수 없다. 나치에 협력한 한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 가족과 직접 연결된 또 다른 가족에게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저주와 같은 천형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로는 가족들이 그 사실을 모른 체 그냥 덮어두는 것이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금기어로 두고 아무도 그 사람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다. 외조부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유령이 된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러한 민족적 트라우마, 사상적 트라우마. 좌와 우의 트라우마는 사실 육이오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 더 많다. 특히 전쟁통에 서울이 북한군 점령지가 되었다가 유엔군과 남한의 점령지가 되었다가 하며 땅의 주인이 계속 바뀌게 되는 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어쩔 수 없이 북한군을 맞아 밥을 해 주었던 가족들은 다음번 국군이 올라오면 반역죄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고 북한군이 점령하면, 국군에 찬동했던 사람들 역시 반역자가 된다. 사상도 모르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왔다갔다 한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그러나 세상은 간단하지가 않고, 그러한 역사적 선택은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빠져 나올 수 없는 덫과 같고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그 덫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반경을 결정한다. 자유를 억압하고 생각을 억누른다.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자기반성으로 인생을 허비하게 한다.
가족을 배신자 트라우마에 갇히게 하고 실종된 외조부,
그런 사람이 우리 가족에는 없었던가.
혹시 내 비밀 속에 그런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건 아닌가.
모를 일이다. 아직 밝히지 않았으니까.
작가는 자신도 외조부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헝가리인을 취재한다. 이 책을 통해 그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애인 소피와의 관계도 여전히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이다. 이야기는 스스로 자기가 실제 주인공이라고 밝히면서 독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소설도 아닌 듯, 르포도 아닌 듯, 자기 일기도 아닌 듯, 이야기는 어둡게, 어렵게, 복잡하게 흘러간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반드시 독자를 염두에 두고, 팔릴만한 상업적인 책을 적어야만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반드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독자를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작가라면 그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와 가까이 하는 면에서는 다소 서툰 시도지만,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 책으로는 최고의 책이다. 소설 같지만 백 퍼센트 자기의 이야기 같은 소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문을 닫지 않는다. 독서후기는 창문이다. 창문을 통해 이야기를 훔쳐본 예비독자는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 용감하게 문을 열고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어쨌든 모든 소설은, 타인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묘하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