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삶의 하루하루를 일요일로 바꿔주는 축복의 편지

 

정혜윤. 그녀를 처음 알았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그러나 사실은 나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일요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일요일 아침의 게으른 시간 속에서, ‘언제였더라! 그때 참 좋았었는데하고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 근심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8)

 

그러니까 그녀가 생각하는 일요일은 일주일 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근심이 갑자기 힘을 잃고 나를 떠나는 시간이다. 현실의 속박은 어느샌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까무룩 조는 가운데,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여행을 하는 날이다.

 

그녀가 숲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느 선생님에게, 그 보답으로 들려주기 시작한 편지는 서른아홉 개의 여행 이야기로 하얀 편지지에 채색되어 반짝거린다. 마치 그녀가 내게 커피 한 잔을 내려주고,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낙엽들을 자박자박 밟으며,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처럼 얘기해주는 듯하다.

 

일요일의 냄새. 그것으로 시작하는 첫 편지는 공평무사한 아름다움이 지상에 쏟아지는 시간을 별처럼 쏟아낸다. 일요일의 냄새는 일억광년을 날아 지구별에 공평무사한 아름다움으로 쏟아졌다. 그 아름다움은 빈둥거리며 회복되는 것만 남은 시간이고, 그리스를 구석구석 훑으며, 시간이 멈추는 곳에, 같이 멈추어 서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눈이 깊어지는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다.

 

그녀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을 닮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찾아가는 그리스의 풍경들은 그녀를 닮았다. 정열적인 기타 선율조차도 그녀의 시선이 머물면 일요일의 시간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절세 미녀 헬레네’, 스파르타 시대에 빛으로 살아간 그녀는 폐허 더미의 식당 주인으로 남아 있었다. 빛은 말한다. 왜 헬레네,라며 묻는 그녀에게. 헬레네가 나타나는 순간, 주위가 환해진다고, 별 볼 일 없던 것도 다 환해진다고, 하다못해 그녀가 앉은 의자조차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여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9일째 편지에서, 올리버색스라는 미국 신경학과 교수이면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등 뇌신경을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를 다수 집필한 작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자서전처럼 펴낸 고맙습니다라는 책을 문득 끄집어냈다. 그 곳에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친구들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면 좋겠다는 소원을 말했고, 친구들은 휠체어를 밀어 그를 밤하늘의 중앙으로 데려다주었다. 우연히도 얼마 전 고맙습니다라는 책을 사서 막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별을 보며 위로를 받은 올리버 색스처럼, 나는 죽음을 앞 둔 건 아니지만, 죽음 같은 하루하루를 앞에 두고, 별을 담은, 헬레네가 가득한 이 책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별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해답이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그것을 직면하게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다.

 

마침, 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었는데, 별을 본 올리버색스처럼, 일요일의 헬레네 앞에서 그것을 직면하게 됐다.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행위가 빈둥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목소리로 편지를 전해듣는 것처럼 뇌는 빈둥거리게 된다. 차분해지고, 고요해지고,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 땅끝마을 마니전 마을주민이 6명이 전부인 그곳에서, 그녀는 세월호로 죽은 아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다시 바람처럼 듣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곳 주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먼 지구 끝나라 마을 사람들도 잊지 않고 있는 그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별빛 이야기를, 우리는 어느새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오늘이 월요일이라면, 오늘이 화요일이라면, 오늘이 수요일이라면, 오늘이 목요일이라면, 즉시 이 책을 펼쳐보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 즉시 월요일이 일요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헬레네가 오는 순간, 모든 것이 반짝거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는 한, 날마다 일요일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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