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이바구 - 이바구스트 손반장이 안내하는 색다른 부산 여행
손민수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손에 잡았을 때의 묵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느낌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사진들이 책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그랬을까. 책은 사진 무게만큼이나 묵직했다. 사진들은 또 수많은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를 숨기고 있었다. 묵직함 너머의 깊음이 있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붙인 것으로 보여지는 이바구스트라는 별칭이 신선했다. ‘이바구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인 줄 알았는데 부산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말이었다. 부산여행이라는 부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표지에 부산 산복도로 야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이 책을 여행책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일단 이바구라는 말을 몰랐고, 산복도로 경험이 없는 사람 역시 산복도로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산에서 초중고를 넘어 대학까지 다녔다. 그리고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산복도로를 많이 걸어 다녔다. 또 많은 친구들이 산복도로에 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살았던,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손반장이 산복도로로 이사 가기 전에 살았다는 범전동, 그러니까 지금도 본가가 있는 범전동도 일종의 산복도로에 속하는 집이었다. 경마장이라고 알려진 그 곳은 83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한참을 위로 걸어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던 친구네 집은 경마장 언덕빼기 삼거리 경일약국에서 다시 양정쪽으로 넘어가는 급경사 고개를 한참 동안 걸어 올라가야 했다. 부산에서 운전을 하려면 급경사 운전에 매우 능해야 한다. 택시 기사들의 필수 조건이다. 수동으로 운전하던 시절에는 초보자들이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경사진 도로들이 많았다.

 

부산의 집들은 그랬다. 대부분 산 중턱에 지어진 집이 많았다. 전쟁통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들어오면서 산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에서 살다가 윗지방으로 이사갔을 때에야 처음으로 산복도로가 일반명사가 아닌 특별명사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산 중턱에 집을 짓고, 대학을 짓고 살아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신기해했다.

 

손반장이 구수하게 풀어내는 산복도로 이바구는 그래서 특별한 여행 에세이다. 기존의 여행서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이바구스트라는 이름대로, 숨어있는 부산의 산복도로 명소들을 때론 아줌마처럼 때론 역사학자처럼, 때론 시골떼기처럼 맛깔나게 풀어낸다. 이 책을 읽으면 부산에 가지 않아도 산복도로 바로 그 현장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그의 입담은 놀랍다. 그리고 꼭 그 곳을 가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부산이 왜 부산이 되었는지부터 탐색해 들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산복도로와 원도심을 1부로 하고, 영도와 송도해수욕장을 2부로 나누어 부산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그냥 여행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에는 1인칭 주인공이 되어 국제시장, 먹자골목을 혼자 돌아다니며 일상을 담는 넋두리가 있다. 또 길가다 만난 여행객에게 168계단을 설명해주고는 결국 그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게 만드는, 참여하는 여행의 맛을 나누는 깨알같은 재미들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대부분 아는 지역이어서 어, 여기! 했지만, , 이런 곳이었군!!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부산에서 30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모르는 너무 많아 좀 부끄럽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 소개된 영도는 더욱 그렇다. 영도는 내게도 추억이 깃든 곳인데,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까지 영도다리를 지나 남양어망에서 해먹을 짜는 아르바이트를 1년 가까이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한 흰여울 문화마을과 영화 변호인 촬영지는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다음에 부산에 간다면 영선동 흰여울 마을에 꼭 가보고 싶다. 사실 영선동은 처가가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곳이었다. 부산은 그렇게 미로처럼 섞여 있었다.



 

내가 부산 출신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부산에 여행갈 때 어디 가면 좋겠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 나는 태종대를 1순위로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 책에 그 유명한 태종대는 없다. (흰여울마을 소개 때 살짝 곁다리로 추천되긴 했지만.) 그리고 이 책에는 세계명소 해운대도 없고 광안리도 없다. 그렇다. 그런 곳은 인터넷을 뒤지면 수많은 글과 사진들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산복도로 이바구는 부산 토박이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장소,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역사적인 기원, 근현대사적인 아픔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봐도 모르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세밀한 이야기들이 까만 김밥 위에 뿌려진 하얀 깨처럼 가득하다. 사진 하나하나 그냥 찍은 게 아니라, 간장 게장처럼 검은 간장물 같은 이야기를 담뿍 담고 있다. 밥을 넣어 슥삭 비벼 밥도둑이 따로 없네 하며 눈물을 훔치는, 부산 사람들의 삶의 궤적과 아픔이 사진과 글 곳곳에 모래처럼 흩뿌려져 있는 여행을 빙자한 인문서적이다. 한계령처럼 높디높은 거리를 가슴으로 보듬는 치유 심리서적이다. , 부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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