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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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50) 부럽다 부러워! 한국인의 미국 자연인이다’ - 숲속의 자본주의자

 

한줄평 :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솔직히, 이렇게 살 수도 있나? 싶었다.

책을 덮으며, , 이들이라면,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국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하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미국판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국인이 미국 숲에서, 100년 넘은 집에서 온 가족이 자연과 함께 사는 삶.

부러웠다.

부러웠지만 내가, 우리 가족이 박혜윤 김선우 가족을 따라할 수 없는 이유는 백 가지도 넘었다.

 

기자로 만나 결혼한 김선우 박혜윤 부부.

이 책의 저자 박혜윤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고 교수를 눈앞에 둔 바로 그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시골로 향했다. 책을 읽어보니, 저자는 월든에서 자연인 생활을 한 소로를 1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책 곳곳에는 소로의 글을 배치하고 있다.

 

소로가 월든에 간 이유는 어떤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인생을 남김없이 맛보고 싶었다. 그 어떤 경험도, 감정도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이 삶이기에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삶의 골수를 빼먹는 그만의 방식이었고, 그의 삶에 의미를 만들어 주었다.

 

나도 내 삶의 골수를 맛보고 싶었다. 나만의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었다. (프롤로그, 6)

 

소로는 철저한 계산과 시민불복종이라는 거시적 가치관을 가지고 월든으로 향했지만, 우리의 용감한 한국인 가족은 충동적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명언, 무계획의 계획성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들이 계산한 건, 자신의 재산으로 어느 수준까지 땅과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110년 된 시골집이었다.

 

그래서 나도 오래 버티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우리가 가진 돈에 맞추다 보니 지은 지 110년 된 시골집이었다. (17)

 

인터넷으로 두 부부를 검색해보니,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앞 전경 사진이 나온다. . 탄성이 절로 나온다. 110년 된 집이라 다 허물어가는 집일까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사진. 신동아 20216월호. 김선우 박혜윤 제공)

 

게다가 그들은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유명인사였다. 이 책을 내기 전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내고 있었다. 부부싸움 책도 내고, 자녀 교육 책도 내고, 회사 그만둔 책도 내고 자유를 선택하고나서 살아남기 위해 마치 글을 쓰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 출간된, 비슷한 성질로 보이는 책이 또 있었다. 그리고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어섰으니 그들은 먹고 살 걱정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들 가족은 숲속에 살지만 결코 자본주의를 버리지 않았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 , 자본은 결코 따분한 노동이 아니었다. 창조의 행위였고,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빵도 만들어 파는데, 즉석 호밀빵을 딱 이틀간만 만들어 이웃에게 판다. 딱 먹고 살만큼이라 한다. 하지만 요즘엔 코로나도 이마저도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동물적인 생존을 해결한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산과정에서 부품이 되거나 소모되는 게 아니라, 생산 과정을 놀이로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21)

 

나는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서 빵집을 연다. (15, 첫문장)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 이들은 그것을 완벽히 실천하고 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즐길 수준까지만 한다. 하루종일 멍 때릴 때도 많지만, 암것도 안 하다 보면 무언가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계획의 계획)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무언가 하게 된다. 그냥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빵도 굽고 콩만 넣은 된장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애들이랑 시시한 장난도 치고 농담을 하고, 식물 공부도 한다. 봄에는 땅에 나가 쐐기풀도 따고, 블래베리의 새순도 따먹으며 너무나도 풀답고 새순다운 그 맛에 감탄한다. 여름에는 대충 심어둔 호박이나 깻잎, 방울토마토도 먹고, 가을이 되면 라벤더, 로즈메리 같은 허브를 따서 말리거나 얼려 둔다.

 

대신 계획도 없고, 목적도 없고, 잘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다가 싫증나면 대번에 그만둔다. 그러니 어떤 날은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기도 한다. 대신 깨어 있는 시간에는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 (57)

 

이런 정신.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정신을 온 가족이 공유했기에,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멋진 명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가령, 그들이 처음 농부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땐, 그래도 두려움이 컸던지라, 농사법도 배우고, 유기농 농장에서 일도 하고, 다양한 체험을 했단다. 하지만 그들이 계획에 넣지 못한 한 가지. 바로 자신의 변화. 이런 통찰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 슬쩍 끼워둔 문장 하나가 내 심장을 두드린다.

 

온갖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을 직접 만나 농사부터 판매 방법까지 배웠고, 남편은 그런 유기농 농장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나는 혹시 몰라 옷 만들기, 비누 만들기, 집 짓고 고치기까지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계획에 넣지 못한 것은 우리 자신의 변화였다. (25)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내가 늘 인생 책으로 강추하는 <닥터 노먼 베쑨>에서 의사였던 노먼 베쑨이 자신이 직접 환자가 되어보고서야 환자를 보는 입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 변화를 실천했던 것처럼, 저자는 친환경 농사를 지어보고자 아등바등하다, “증오심이라는 무시무시한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한낱 민달팽이, 귀여운 사슴에게로. 그리고 그녀는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고 자연농법으로 바꾸게 된다.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어보자고 뜻을 모으고, 그다음 가축 도살까지는 못해도 달걀이나 우유 정도는 직접 생산하자고 다짐했는데 농사 단계에서 깨달았다.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 농사는 원래 환경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사슴과 토끼와 두더지와 민달팽이 덕분이었다.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심어도 소용없었다. 귀신같이 새순만 뜯어 먹었기 때문에 어떤 작물도 충분히 자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담을 치고, 약을 뿌리고, 철사로 망을 두르는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을 포기한 건 환경오염 때문도, 돈 때문도 아니었다. 증오심 때문이었다. 이 동물들에 대한 증오심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감정이었다. (26)

 

농약을 치면서, 철사로 망을 두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동물에 대한 증오심을 발견하는 저자의 그때를 상상해본다. 아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그걸 발견하고 꺼내고 펼쳐보았다니. 자기의 가슴속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볼 줄 아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증오심을 증오해서 그녀는 자본주의를 포기한다.

 

어제 <농부의 인문학> 서평을 쓰면서 참 행복했었다. 오늘 <숲속의 자본주의자> 서평을 쓰려고 스티커 붙여 놓은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어제 <농부의 인문학>과 많은 면에서 닮아 있었다. 가령 음식에 대한 가치관, 흙에 대한 가치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사슴을 미워하기 싫어 시작한 야생 채집은 내 삶을 의외의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먼저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을 때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든다. 뭐든 먹으면 내가 살겠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마운 마음만 든다. (33)

 

간은 생물학적으로도 땅을 파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어 있나 보다. 자연 상태의 땅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묻어도 한두 달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보드랍고 향긋한 흙만 남는다. 살아 있는 흙은 그야말로 청정하다. (27)

 

이렇게 이따금 흙을 만지며 놀고, 또 때가 오면 사슴처럼 블랙베리를 딴다. 그렇게 7년째 해온 일이지만 블랙베리를 따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가시에 찔려 상처가 많이 나기도 하고, 따고 씻고 얼리는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따지면 경제적 가치로는 최저시급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블랙베리를 따는 순간이야말로 내가 이 지구와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 관계인지를 오감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반드시 내 손으로 내가 먹을 것을 채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이 아름답고 거대하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넘어, 내가 먹고 생존하는 터전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28)

 

오늘 음식을 먹고, 그것이 내가 아닌 무언가와 연결되는 일임을 가장 열심히 인식할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35)

 

그들 4인 가족은 두 대의 골동품 폴더폰으로 생활한다. 인터넷도 끊어 내고, 커피도 끊었단다. 물론 소로처럼 의도적인 차단은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충동적으로, 그렇게 되더란다. 커피를 끊을 때는, 일주일 동안 사경을 헤매고, 일주일째 되는 날에는 죽은 사람처럼 10시간을 잤단다. 카페인이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사진. 4인 가족이 쓰는 2대의 폴더폰)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커피며 술, 인터넷을 끊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해야만 자연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녀가 정작 자신의 변화는 미처 계획하지 못했다고 한 것처럼. 뭔가 시도를 함으로써, 변화를 주고, 변화를 겪고, 변화를 이겨내면서 이런 삶에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커피, , 인터넷으로 삶을 얼마든지 더 풍성히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변화의 과정을 겪고 나면 다른 변화도 불러올 자신감이 조금씩 생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57)

 

 

(선한리뷰)

 

산에서 사는 것,

세상과 단절하는 것.

커피를 끊고, 인터넷을 끊는 것.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지만,

조금씩 발을 담그다 보면,

언젠가는 숲 속에서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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