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 아킬레스건 완파 이후 4,300㎞의 PCT 횡단기
정성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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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38)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4,300킬로미터 6개월 걷기. 한국인의 워킹

 

한줄평 : 걷기는 아름답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일지라도.

 

한국 젊은이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그 험난한 4,300킬로미터 PCT 트레일을 완주한 책이 나왔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주저없이 책을 찾아 카트에 담았다. 지금 읽고 있는 걷는 자의 꿈, 존뮤어 트레일”(이 책도 걷기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다.)을 다 읽으면 다음 걷기 관련 책으로 구매할 생각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둘레길도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으면서 고작 하루 1만보 걷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한다는 핑계로 걷기 관련 책만 줄창 읽어 댔다. 그러다보니 충격을 받았던 와일드독서 이후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 PCT, AT, CDT를 책으로 섭렵했고, 일 년 중 3개월만 길이 열린다는 숨겨진 트레일, 358킬로미터의 존뮤어 트레일도 알게 되어 지금 두 번째 존뮤어 트레일 관련 책을 읽고 있고, 영국을 가로지르는 CTC 트레일까지 책으로 독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킬레스 건을 다치고도 6개월에 걸쳐 미국 PCT 트레일을 완주한 한국 청년의 책이 나왔다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서평단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그렇게 계획보다 빨리 이 책은 내게 왔고, 먼저 읽고 있던 존뮤어 트레일책을 제치고 먼저 완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트레일 관련 책 중에서 가장 IT 기기의 활용도가 높았다. 스마트폰 Guthook 앱에는 PCT 트레일 정보가 상세히 나와 있어 길 찾기, 물 포인트 찾기, 다른 마을로의 연결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 시도하는 초보 하이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처음에는 저자인 정성호 혼자 트레킹을 하는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의 여자친구 은진(실명일까)이와 동반 트레일을 하는 것이었다. 책에는 저자와 여자친구와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어쩌면 그런 시시콜콜한 감정의 노출이 건조하고 습한 걷기의 이야기를 오히려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심각한 관계의 부딪침이었겠지만)

 

오빠, 이제 나 PCT 그만 하고 싶다.” 멕시코 국경을 떠나온 지 2주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34)

 

오빠라 불리는 저자를 따라 원치 않는 트레일을 따라 나선 여친.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스포를 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낀다. 은진은 수시로 트레일을 그만 두고 싶어 하는데, 저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은 결혼을 했을까? 이렇게 온 사방에 책으로 여친 광고를 다 했는데, 궁금하기도 하다.)

 

은진이가 언제 싸웠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진짜가? 진아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니다. 나도 기분 좋게 찍어줄 수 있는 건데 짜증스럽게 이야기해서 미안.” (41)

 

내가 부산에서 자라서인지 저자와 여친과의 갱상도 사투리가 리얼 그대로 팍팍 적혀 있는 이런 대화도 책 읽는 재미를 구수하게 더해준다.

 

외국인이 쓴 걷기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어쩌다 한국인이 쓴 책을 읽으면 비교가 많이 된다. 외국인 저자들은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도 책 내용은 사람과의 만남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책이 건조하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읽었던 한국인 저자의 책은 지나치게 걷기에만 몰두해 있거나 해외 지역의 정보 나열식이어서 책으로서의 재미가 작은 것이 사실이었다.

 

이미 다른 PCT 트레일 책 와일드와 독일인으로서 미국 3대 트레일 13,000킬로미터를 완주한 이야기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읽었던 터여서, 그 책에 나왔을 물 포인트며, 비오는 날 걷기, 곰과의 조우, 산길 곳곳에 아이스박스에 물과 음식을 가득 채워주고 자신들의 집에서 잠까지 재워주는 트레일 엔젤들과의 만남 등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소개될지 매우 기대되었다. (놀랍게도 두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이고 혼자 완주에 성공한다.)

 

사막에서의 물은 금만큼이나 귀했다. 금 한 덩이와 물 한 통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여지없이 물통을 선택할 만큼 물은 귀했다. 물 포인트는 없을 때는 20~30km에 하나 정도 나타났다. 보통 물은 10km1.5L 정도 마셔, 물 포인트에 맞춰 한 번에 3~5L의 물을 지고 다녀야 했다.” (26)

 

그랬다. PCT 트레일은 사막도 지나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강철군대의 산악행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의 길이다. 게다가 물 포인트에 가도 물이 없을 때가 많다. 앞선 하이커들이 다 먹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발 전 지도를 확인해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물 포인트가 있어 여유 있게 물을 마셨는데 막상 도착하니 고인 물에 벌레와 녹조가 가득했다. 비위가 좋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정수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27)

 

이런 글은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영화처럼 필름을 전개시키며 읽는다. 주인공은 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내어 물 포인트로 다가간다. 그런데 주저 앉고 만다. 물은 고여 있고 벌레가 가득하다. 정수 알약도 챙겨오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걷기 책 읽기에 불을 지펴준 책은 26세의 나이에 이혼까지 하고,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빈털터리가 된, 여자 홀로 4285킬로미터 PCT를 완주한 이야기 와일드였다. 와일드에서는 초반에 주인공이 트레킹화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아찔했다. 어떻게 했을까? 충격과 궁금함을 동시에 안은 채 책을 읽어나갔고 PCT 트레일이 어떤 것인지 책으로만 그 재미를 알아버렸었다.

 

그런데 이 책 워킹에서는 저자가 PCT 트레일을 위해 회사까지 퇴사했는데 그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버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 우째 이런 일이. 보통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PCT 완주를 다음 기회로 미룰 것이다. 그러다 인생이 송두리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고.

 

“PCT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어떤 이유가 되든 걷지 못하는 것이었다. PCT는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기에 학생이 아니라면 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고서 와야 하는, 각자 안정된 삶이라는 큰 부분과 맞바꿔야 하는 일이었다.

 

매일 30km 이상을 걸어 하루 종일 몸을 쓰다 보니 몸이 아프면 나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52)

 

그런데 저자는 6개월간 열심히 치료를 받고 PCT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기했을 거라고, 그가 PCT를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트레일을 시작하고 몇 번의 신체적인 위기가 찾아오지만 다 이겨내고 끝내 성공의 기쁨을 맞이한다.

 

거지처럼 먹다 남은 음식을 구걸하기도 하고, 곰을 만나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비내리는 밤 축축하고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야 하고, 일주일 내내 라면만 먹기도 하고, 물 걱정이 없어진 시에라 구간에서는 강을 건너다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도 듣고 그랬다.

 

오빠, 앞에 곰이 있어.”

나지막이 속삭였다.

장난치는 거제?”

진짜라니까!”

 

얼마 되지 않아 은진이의 말대로 정말 곰이 있었다. PCT 길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미곰 한 마리와 새끼 곰 두 마리가 나무를 타며 놀고 있었다. 배고픈 곰을 만난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잡아먹을 때는 죽이고 나서 먹는 게 아니라 산 채로 먹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걸 지켜보며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느끼며 죽는다고 했다. (176)

 

그들은 와일드처럼 트레일로 돌아가는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신발 한짝을 놓고 내렸는데, 운전자가 40km를 다시 돌아와 신발을 전해주는 천사도 만나고. 걷는 일은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아 보이고, 엉망진창처럼 보이지만 군데군데, 신이 예비해놓은 천사들이 많이 있었다.

 

프랭크는 수잔빌에 산다고 했는데 왕복 40km를 낡아 빠진 신발 하나 가져다주려고 일부러 들른 것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프랭크처럼 해 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하하, 어서 타.”

프랭크를 처음에 만났을 때는 스쳐 지나가는 별 의미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아주 아주 오래도록 기억이 남은 사람이 되었다. (175)

 

그렇게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 중요한 포인트를 만난다. 사람들은 왜 그 험한 길을 걷는 걸까?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너무 힘들어 중간에 그만 두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일까? 실패감으로 가득 차서 나머지 인생도 망쳐 버리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도 위기가 많이 왔고 지금도 위기라고 생각해. 근데 사람마다 크건 작건 선택의 순간들은 항상 찾아오기 마련이잖아.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하는 선택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힘든 순간에 포기를 선택하기보다는 이겨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걸 선택하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 너는 어떤데?” (217)

 

나는 너무 힘들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겁도 많고 의지가 약하다. 끝까지 해내는 억척스러움이 없다. 그 생각이 의식 밑바닥에 늘 자리하고 있다. 나는 경쟁하는 걸 싫어한다. 이기는 걸 싫어한다. 내가 이긴다는 건, 누구를 패배자로 만드는 것인데, 그런 경쟁사회가 싫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를 조금 나약한 근육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저 부분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

 

저자는 잠깐 스쳐간 사람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러면서 또 하나씩 배워간다. 인생은 사람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자기라는 편협된 우물 안에 갇혀, 플라톤의 동굴처럼, 그림자만 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만난 또 한 명의 사람은 그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면서 인생명언을 하나 남기고 떠난다.

 

이상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어라라는 말을 참 좋아해. 사람은 말이야 타인에게는 그의 성공으로부터 배우는 게 많지만 자신에게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더라고.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면서 삶을 조금씩 배워가는 게 아닌가 싶어.” (225)

 

와일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아직 보질 못했다. 저자는 영화 와일드를 보고 PCT 트레일을 꿈꿨다고 한다. 저자가 트레킹할 당시인 2018년도에 한국인은 약 50명 정도가 도전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 정말 많이 도전하는구나.

 

참 재미있게 읽었고, 내 걷기에 대한 동기부여도 훨씬 크고 길게 확장되었다.

올 한 해 걷기 도전, 이 책으로 충전되었다.

 

(선한리뷰)

이상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어라.

타인에게서는 성공으로부터 배우고, 자신에게서는 실패로부터 배운다.

그러니 내게 실패의 흔적이 많다고 자책하지 말자.

나는 더 많이 배운 사람이니까.

올해 걷기 도전이 사실 조금 주춤해졌다.

회사도 옮기고, 퇴근길에 걷는 코스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양제천이 있기는 한데,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위로 양재역까지, 강남역까지 걸어보니 한 시간 가량 걸린다.

아래로 청계천역까지는 조금 더 멀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작심하고 걸어야겠다.

 

내일은 마침 쉬는 날이다.

아는 분과 함께 과천 둘레길. 6.2킬로미터를 걷기로 했다.

나에게는 모처럼 장거리 트레킹이다.

시작이 반이다.

이상주의자처럼 꿈만 꾸지 말고, 경험주의자, 실천하는 자가 되자.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원가가 좀 더 들더라고 사진을 컬러로 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은 걸로 보이는데, 흑백으로 나와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의 지원으로 책을 무상으로 받아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책 리뷰는 지원과 무관하게 평소 리뷰 습관대로 개인적인 취향과 개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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