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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구둣방 -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구두 한 켤레의 기적
아지오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36) 구두에도 생명이 있다면, 구둣방은 꿈을 꾼다
도서명 : 꿈꾸는 구둣방
글쓴이 : 아지오
출판사 : 다산북스
발행일 : 2021년 4월1일
표지질감 : 마치 가죽으로 만든 듯 보드랍다
한줄평 : 읽는 즉시 아지오 팬이 되고 마는, 가슴 따뜻해지는 구두 공방 이야기.
공장은 대량생산하는 곳이다. 물론 요즘 공장들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지만 똑같은 물건을 부품별로 조립해 만들어내는 건 똑같다. 그래서 나는 ‘아지오 구두를 만들어내는 곳’을 공장이 아니라 ‘공방’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모든 구두를 한땀한땀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곳이니 공장이라 부를 수 없다. 그곳은 예술가의 혼이 담긴, 모든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완전체로 완성되는 예술품이다.
아지오를 상상해본다. 청각장애인들이 구두를 만든다고 했으니 손으로 서로에게 말을 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 조용할까. 망치로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만 까앙까앙 공방에 가득할까.
아지오 창립자인 시각장애인 유석영은 앞을 보지 못하니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늘 고립되어 혼자 지내기 일쑤인 그에게 역시 동네에서 고독하고 떠돌던 한 아저씨가 말을 붙였다. ‘너는 앞을 보지 못해도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잘하니까 방송국에 가서 아나운서나 돼봐라.’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가능성이 1도 없던 그에게 이 말은 커다란 희망이 되었고 꿈이 되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뒤 유석영은 라디오를 끼고 살며 꿈을 키워나갔다. 얼마나 설레고 미래가 기대되었을까. 하지만 어느 날 끼고살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늦잠을 자서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원고를 읽지 못해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아, 그 절망감. 유석영의 그 절망감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리라.
‘아나운서도 원고를 읽는 거구나. 그냥 말하는 게 아니었어.’
시골에 살며 라디오가 거의 유일한 대중매체이자 꿈이었던 소년에게 그 이야기는 청천벽력의 충격이자 공포로 다가왔다. 아나운서도 누군가 써준 원고를 읽고 말하는 직업일 뿐임을 깨닫고 그는 절망에 빠졌다. 원고를 읽을 수 없으니 아나운서가 되기란 불가능한 게 아닌가. (22쪽)
그랬던 그가 하늘의 도움으로 CBS방송국에 들어가게 된다. 우연히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게 되고 그게 인연이 되어 잠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고, 그 뒤 12년 동안 방송국은 그의 안전하고 안락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 그는 장애인의 삶과 현실을 취재하면서 장애인 방송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복지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재활 프로그램을 열다가 왜 장애인들이 오지 않는지 고민하다 돈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보다는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체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아지오 장애인 구두 공방이 시작되었다. 청각장애인을 아버지로 두었던 구두 장인 안승문을 초빙해오면서 구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애인을 종업원으로 두고 아지오는 돛을 올리고 거친 바다로 나아갔다. 기존 직장보다 월급이 형편없이 작고, 작업장도 멀고 먼 파주까지. 그 모든 걸 감내하고 아지오로 둥지를 바꾼 안승문의 결심이 없었다면 아지오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승문은 결심을 굳혔다. 이 무슨 얄궃은 운명인지 몰라도 내 앞에 놓인 게 이 길이라면 한번 걸어가보자고. 나중에 가서 후회할지언정 한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살기 위해 구두를 만드는 거라면 지금까지 원 없이 해왔으니, 앞으로도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면 다른 이유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청각장애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아니면 어떤 구두 기술자가 일부러 나서서 이 일을 하겠는가. 그 사람들의 설움도 고통도 아는 내가 가야 할 자리다.’ (44쪽)
수녀원의 신발 300켤레 주문을 받아 수십 번을 오가며 구두를 만들어 내고, 유시민을 만나고, 국회 이벤트를 하면서 문재인 대선후보도 신발을 맞춰가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장애인이 만든다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나쁜 편견을 깨지 못했고, 온갖 오해로 진정성 있게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식당 일화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미어지게 한다.
끼니는 때워야겠는데 당시 유석영에게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때라 나오는 음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옆에 앉은 손님한테 “구두 한번 보시겠어요?” 하며 슬쩍 말을 걸고 아지오 구두를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저희는 청각장애인 직원들과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천연 가죽이라 가죽이 숨을…”
그때 유석영의 손에 종이가 한 장 쥐어졌다. 이게 갑자기 무엇인가 하고 만져보니 천 원짜리 지폐였다.
“그냥 이거 들고 가세요.”
천 원짜리를 쥐여준 사람은 식당 주인이었다. 유석영과 직원이 구걸을 하러 온 줄로 알았던 것이다. (90쪽)
고급 소재를 쓰고 솜씨 좋은 장인을 동원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선용 물건으로 보았다. 편견을 뚫으려면 경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슴없이 영업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편견을 자극하는 셈이었다. (95쪽)
갖은 애를 썼는데도 빚은 쌓여만 갔다고 한다. 장애인이 만든 구두라는 것은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고 지인들의 선의로 한두 번 구매 이상의 발전은 어려웠다.... 그는 절망했다. 이슈만으로는 지속적인 판매를 끌어낼 수 없었고, 사명만으로는 기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결국 3년 만에 직원들에게 폐업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동안 안주머니에 품고 다니며 수없이 망설이던 말을.
“공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렇게 책임도 못 지고 가게 되어 미안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잘해 봅시다.”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말을 결국 뱉어버렸다.
‘다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앞을 보지 못하는 유석영은 직원들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15쪽)
망했다는 말을 하고도 직원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회사 대표. 통역사를 통해 그 사실을 전해듣지만 서로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아. 아무리 좋은 구두를 만들어도 세상의 벽은 높았다. 추천사를 써준 유시민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사는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는 냉정합니다. 상품은 가성비가 좋아야 하고 노동자는 생산성을 올려야 하며 기업은 수익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상품도 노동자도 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지오는 모든 게 거꾸로입니다.
구두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품질이 좋아도 가성비는 낮을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도 수어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지만 비장애인 사업장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유리할 리는 없죠. (6쪽)
그렇게 망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파주 공장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고, 안승문 공장장도 다른 곳에 직장을 잡았다. 다시 아지오는 세상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2017년 유석영에게 청와대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대통령님이 신발을 다시 사고 싶어하시는데 발을 재러 청와대에 들어와 주시겠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유석영은 얼어붙은 듯 멈췄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분도 우리 구두를 사주었지’라며 기억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구두를 신고 있다거나 다시 찾으리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취임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5월14일에 그런 전화가 온 것이다. 그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저희가 지금은 문을 닫았습니다.” (112쪽)
청와대에서 전화 한 통 왔다고 사업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다. 당연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하면 똑같이 망할 것이다. 그때 같이 일했던 장애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지오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합 형태로 태어났다. 외부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합을 만들고 조합장, 이사 같은 조직이 만들어졌다. 아지오 때 큰 도움을 줬던 유시민도 조합원으로 많은 힘을 보탰다. 아지오의 뜻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협찬에 참여했다. 광고를 찍어도 광고비는 구두 한 켤레였다. 그때 공장장이었던 안승문 씨도 다시 합류했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아지오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지오는 직원들이 일일이 주문자에게 가서 발을 측정하고 구두를 만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발이 맞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측정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편안한 구두로 제공한다.
“아지오의 구두는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하는 수제화다. 이곳의 특별함은 고객의 발을 직접 재고 어루만져서 맞춤 구두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디자인은 같아도 각양각색의 형태와 크기의 구두가 존재한다. 아지오의 맞춤화가 더욱 특별한 것은 누가 뭐래도 정직하게 구두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지오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망치질을 하고 손으로 다듬어서 구두를 만들고 있다. 최상급의 가죽을 사용하고, 대면해서 실측하고, 가끔은 완성된 신발을 가지고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기도 한다.” (193쪽)
책장을 덮으니, 마치 따뜻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힐링이 된다.
아지오를 무한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지오, 이제는 무너지지 말고 꼭 자리를 지키고 있길 기도해본다.
(선한리뷰)
홈페이지도 찾아 들어가보았다.
구두를 꼭 사보고 싶지만, 가격이 비싸다.
나도 신발을 인터넷으로 함부로 주문해 신지 못한다.
은근히 내 발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오래 신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정말 편한한 신발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번 선한 리뷰는 단 하나다.
꼭 아지오 신발을 주문하리라.
유시민 조합원의 이런 사심 가득한 청이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온다.
독자들께 사심 가득한 청을 하나 드립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독한 판매 부진을 겪은 구두만드는풍경 조합원으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꿈꾸는 구둣방』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친구처럼 편안한 수제화 아지오’ 홈페이지(agio.kr)에 접속해 구두 한 켤레 주문해주시길! (7쪽, 추천의 글, 조합원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