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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33) 코로나 시대, 감염병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기
글 쓴 이 : 박한선, 구형찬
펴낸 곳 : 창비
펴낸 날 : 2021년 4월5일
다 읽은 날 : 2021년 4월17일
한줄평 : 감염병 대응에 관한 인류의 원시성을 지적한 책.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 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녀석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입니다. 인류 스스로 끊임없이 감염병을 만들고, 그로고는 만들어낸 감염병을 두려워하고, 그 원인을 애꿎은 곳에 전가하면서 증오와 혐오,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면서 효과가 미심쩍은 규율과 규칙, 교리와 의례를 만들어,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고 추방하고 죽였습니다. 이러한 증오는 집단 수준에서 거대하게 증폭됩니다. (8쪽, 프롤로그 중에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마지막)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 23쪽)
<감염병 인류>의 두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는 감염병에 관한 다양한 진화의학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병원체의 진화가 아닙니다. 그에 대한 ‘우리의 적응 혹은 부적응’입니다. 바로 기나긴 감염병과의 전쟁을 통해 빚어진 인간의 신체 그리고 정신에 관한 진화병리학적 설명입니다. (47쪽)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을 통해 어떻게 악인화되고 파멸해가는지, 우리의 신체적 현상과 정신에 대한 진화적 병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전체적으로 약간 어둡고 우울하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신을 닮지 않고 동물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저자 중 한 명은 인지종교학을 전공했는데, 이 전공이 어떤 학문을 다루는지는 몰라도, 종교를 바라보는 입장에 있어서 매우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했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나쁘게 보는 시선에 단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신의 창조물로서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인가, 아니면 우연히 오랜 시간 행운이 겹쳐진 만들어진 산물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인가. 저자는 인간에게 종교적 본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표한다. 아니, 그는 아니라고 단정을 짓고 책을 서술해 나간다. 그러기에 이 책은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결국 저자의 한방향 시선이 독자들을 그런 시선으로 인도하는 셈이다. 감염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더 넓히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부정과 긍정의 개념을 다 포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게 이 책을 쓴 목적 같아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조상의 삶, 우리 조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인류가 역병에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우리 안의 원시인’입니다. (69쪽)
저자가 원시의 인류가 역병에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을 직접 관찰했는지, 다양한 증거로 확인했는지는 이 책에서 제시하지 않지만, 그는 단정했다. 뉴스에 나오는 어리석은 처방책에 대한 이야기를 든다. 인도에서는 소의 우줌이나 똥을 바르고, 이란에서는 공업용 알코올을 마시고 700명이 넘게 죽고, 한국은 마늘과 김치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아지고,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고. 게다가 우리가 지금 보여주는 차별과 혐오가 그와 같다고. 하지만 독자인 나는, 서양 일부 국가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더 심해졌다는 뉴스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일부 사람들이 잘못된 처방을 급한 마음에 따라했다고, 모든 사람이 다 원시인 상태로(원시인이 원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라고 생각하지만) 변한다는, 내재된 원시인의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주장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은 뉴스나 일상이 더 많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마스크를 쓰고, 5인 이상 모임을 하지 않고, 명절에 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주변에는 더 훈훈하고 아름다운 헌신과 섬김과 봉사와 배려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난 해 설날, 추석 그리고 이번 설날까지 고향 어른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배려, 사랑으로 그것을 이겨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관점 차이에 의한 전체적인 편향적인 서술 부분을 빼고 나면, 이 책은 인지심리학과 인지종교학의 두 저자가 만나 만들어 낸 독특하면서도 훌륭한 책이다. 특히 감염병의 시작에 대해 우리가 수렵 활동에서 농업 활동으로 사람이 정착하고, 모이고, 거대 집단을 형성하고, 동물을 가두어 키우고 하는 생활로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사실 신석기 초기에 일어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농업 관련 사건은 인류의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실수」라는 글에서 “그동안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끈 결정적 단계로 믿었던 농업의 도입이 사실은 여러 면에서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재앙적 선택이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76쪽)
“집 주변에 가축과 곡물을 키우기 시작했고, 음식쓰레기도 쌓였습니다. 분변과 오물이 넘쳐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더부살이를 시작했죠.” (77쪽)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 하고, 한번 앓고 나면 평생 면역이 지속되기 때문에 계속 감염이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수천년 전부터 조상이 몸소 면역체계를 형성하며 고생해주었다면 우리 후손은 그저 가볍게 앓고 지나가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인간이 면역체계를 만들고 그들에게 적응해가는 동안, 그들도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감염병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 전달까지 꽤 깊은 정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업무 때문에 항원, 항체 관련 그림도 보았고 경체인, 중체인 구조 등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생물이나 의학의 기초이지만 매우 생소하게 여겨지는 그림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매우 어렵게 여겨지는 내용들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럴 때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고, 그냥 아 이런 내용도 있구나 하고 휘리릭 넘기는 것도 책을 잘 읽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감염병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역사적인 발전도, 인류의 다양한 적응 사례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진화적 고찰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배제하였다. 우리나라도 세종대왕 때 나병으로 불린 이 병이 제주도에서 크게 유행하자 나환자를 격리시켰다. 현대에 와서 치료약이 개발된 뒤에도 우리나라는 한센병 격리를 계속했다. 1978년에는 어이없는 법이 만들어져 격리는 물론 강제 정관수술과 강제 임신중절수술이 진행되었다. 다행히 2017년에 와서 강제 불임수술과 낙태수술을 당했던 한센병 환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고 한다.
인문학적 교양도서로서의 책임감 때문인지 지나치게 넓게 확장되어 나간 부분도 있다. 가령 인도의 소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 이야기로, 종교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런 인문학적 사유의 확장을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사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집중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주제인 감염병 자체가 지나치게 어둡고 부정적인 면이 있다 보니 살짝 벗어나 숨통을 트여주는 변주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저자가 심리학자이다보니 오염강박에 대한 이야기도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감염병이 크게 유행하는 상황이라면 오염강박이 심해집니다. 오염강박을 자극하는 단서와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감염병의 위험과 현황을 보도하는 각종 매체에서 온통 더러운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오염강박 환자에게는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56쪽)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생기는 차별과 혐오는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저자의 의견과 같이 진짜 동물과 같은 마음을 가졌더라도 (사실 저는 동물들이 동료를 보살피고 챙겨주는 영상을 더 많이 본 듯합니다만) 그래선 안 되지 않은가.
모두가 모두를 혐오합니다. ‘나’ 말고는 다 더럽답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감염병 상황에 부닥치면 모두 불안합니다.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약간의 부정적 단서만 있어도, 금세 역겨워집니다. 서로를 의심하기 쉽습니다. 감염병 유행에 원인 제공자라고 지목되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삿대질을 하고 눈을 흘깁니다. (261쪽)
저자는 말한다. 인류는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애초에 전쟁을 시작한 쪽은 인간인데, 이건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독자인 나는 의학이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는 아래의 인용글이 마음에 든다.
그(피르호)는 이른바 공중보건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공공보건제도를 만들고 식품위생법, 상하수도 개선 등 거대한 사회개혁에 나섰습니다. … 피르호 본인도 위대한 병리학자였습니다. 독일 국민의 건강은 좁은 의미의 의학이 아니라,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의학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었습니다. 피로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의학은 이론적 해결책을, 정치와 인류학은 실제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297쪽)
저자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허준이 와도, 히포크라테스가 환생해도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대규모의 의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까지, 종교가 없었으면 전염병 예방에 더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시선은 참으로 안타깝다. 설령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간단하게 적으면 될 이야기를 너무 많은 곳에 그리고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까지 이 주장을 가지고 오니, 앞선 모든 내용들이 여기에 다 파묻히는 것만 같다. 펜데믹 상황에 도를 넘는 종교인들의 행태가 있긴 하지만 모든 종교인이 다 그렇지는 않다. 게다가 숨어서 헌신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봉사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많은 분량을 할애한 글들은 감염병이 퍼지는 데 종교인들이 매우 나쁜 역할을 했으며 자기밖에 모르고 무자비하고 감염병의 원흉이라는 강제적 강요되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 역시 저자가 우리가 동물과 같다고 우려하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과 다를 바 없다. 저자가 인지종교학을 전공했으니 기독교의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해했더라면 오히려 더 풍성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전염병을 이길 수 없다. 피르호가 공공보건제도를 만들고 거대 규모의 의학을 주창했지만, 21세기 미국에서도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지 못했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 마지막 글로 넣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글이 결국 이 책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 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를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음사 『페스트』 2011, 401~402면, 감염병 인류, 322쪽, 책 마지막 문장)
(선한 리뷰)
빅터 프랭클이 참혹한 유대인 수용소에서 작은 의미 하나로 생존에 성공한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험악한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작은 의미를 찾아야겠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한 사랑과 헌신과 생존의 의미가 필요합니다.
(선한 실천)
저자가 기독교에 대하여 그렇게 큰 반감을 가지고 책을 서술함에 대하여 기독교인으로서 깊은 참회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사회적으로 배제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사실 앞에서 겸허하게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더 낮아지는 삶을 다짐해봅니다.
부족한 기독교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게 일컬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개인적인 의견으로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