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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28) 삶이 곧 시가 되는 인문학에 관한 글, 도정일의 "만인의 인문학“
"문학이 포착하는 인간의 진실은 더 많은 경우 진위 판단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진솔한 경험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약함과 강함, 그의 허영과 꿈과 욕망, 패배와 고통, 사랑과 배반 - 이 모든 것들이 엮어내는 삶의 복잡성은 진위 판단의 인식론적 요구나 선악에 대한 좁은 윤리적 재단의 요구를 넘어서서 이해되어야 할 때가 많다.
관용(똘레랑스, tolerance)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나 허용이 아닌 '차이에 대한 존중'이다." (도정일, 만인의 시학, 제1부 도입글 중에서)
문학가인 도정일은 문학의 개념에 대해서 인간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진솔한 경험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문학이 윤리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요구보다 인간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기본적인 개념에서 그의 시학, 문학론은 출발한다.
이 책은 이런 도정일식 시학론, 문학론의 확장된 텍스트이며 이야기이다. 작은 제목에 따라 3~4쪽의 짧은 글들이 에세이처럼 적혀 있어 깊이 있는 인문학 책이 아닌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도대체 인문학이 뭔지) 그러나 이 책은 정확하게 1부, 2부, 3부의 큰 카테고리를 가지고 그 안에 각각의 텍스트들이 배열되어 있다.
1부는 만인의 시학,이다. 그가 시를 읽는 방법, 작가의 정의, 은유와 비유의 시학, 신화에 대한 고찰 등이 깊이 있게 이어진다.
그가 생각하는 시학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네 삶이 그 자체로, 이야기 자체로 시학이 된다고 말한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이다.
"삶은 이야기처럼 짜여지고,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삶이 이야기처럼 짜여지는 것은 인생살이가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학은 문학에 대한 담론이지만, 삶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야기의 구조로 짜여지고 진행되는 한 그 삶은 동시에 시학의 대상이다. 삶을 대상으로 하는 시학을 우리는 '삶의 시학'이라 부를 수 있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에 주목한다. (30쪽)
삶의 시학이라는 그의 관점은 정확히 나의 관점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무장해제한 채 읽었다. 가벼운 듯 잔잔하게 서술되는 그의 글들은 내 눈을 통해 가슴에 전달되면서 나만의 언어로 저장된다. 내 삶이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니, 내 삶은 결코 허투루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은 바로 문학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선언인가.
"왕이었던 자가 졸지에 포로 신세로 영략하는 것은 크로이소스 이야기를 요약하는 핵심적 반전이다. 운명의 이 급작스러운 변화는 후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공식화했던 '운명의 반전' 그대로이다. 아시다시피 '반전 reversal'이란 운명 또는 사건의 단순한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운명이 한 상태에서 그 '정반대 상태'로 바뀌기이다. 주인이 종 되고 종이 주인 되는 혁명적 변화는 반대 상황으로의 상태 변화라는 점에서 모두 반전에 속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비극적 반전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굴러 떨어지는 반전을 의미한다. (56~57쪽)
인생에서 한번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져 본 사람이라면, 우리 인생이, 기가 막힌 삶의 웅덩이가 어떻게 한 편의 시가 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운명적 반전'이라. 죽음의 끝 골짜기까지 가 봤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 운명적 삶이 있기에 이 책은 내게 한 줄기 소망이 된다. 내 삶은 다시 혁명적 반전을 이루어냈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오늘까지는 그렇다. 감사하다.
그의 '먹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마음먹기가 의지에 더 많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밥먹다'와 '마음먹다'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밥과 마음은 모두 '먹다' 동사의 문법적 목적어 자리에 있지만, 먹는 행위의 성질은 두 경우가 아주 다르다. 밥을 먹는 것은 오줌 누는 행위처럼 인체의 생물학적 기능이다. 그것은 특정의 의지를 전제하는 목적적 행위가 아니다. … 배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고프기도 하고 고프지 않을 수도 있는 통제 대상이 아니다. …
사람은 굶어 오랫동안 밥통을 비우면 죽지만,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꼭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죽는 일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죽는 수는 있다. … 밥을 먹으면 최소한 죽지는 않는데, 마음은 먹으면 죽는 수가 있다니 기이하지 않은가." (80~81쪽)
아,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깜짝 놀랐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의지를 다지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요인으로만 생각했는데, 무언가에 저항하기 위해 마음을 먹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마음을 먹으면, 그는 죽을 수 있다. 그때의 마음먹기는, 죽기를 각오하는 것은 비우는 것이며 동시에 채우는 것이다. 혁명적 운명의 반전으로, 우리 개인의 인생은 때로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먹기가 필요할 수 있다. 내게도 그런 삶의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가 생각나 참으로 아득해졌다.
그의 글 제2부는 책 제목과 같은 '만인의 인문학'인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전체적으로 조금 방만한 느낌은 들지만 그의 박학다식하며 전 영역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제3부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제목으로 문명, 생물학적 인간, 인간과 문화의 도전, 과학기술, 문화와 욕망 등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는가'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가 각종 신문과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엮어 모아 만든 책이고, 연도가 다르지만 이렇게 통일된 주제에 엮으니 그가 한 평생 어떤 인문학적 고찰을 하며 살아왔는지가 보다 투명해진다.
(선한리뷰)
광활한 우주에 태어나 인간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연히 태어나 아무 목적 없이 삶을 살아가는 진화론적 존재인가.
그럴 순 없다.
우리는 우리가 곧 우주이며, 우리의 하찮게 보이는 삶이 곧 예술이며 시가 되는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이다.
좋은 마음을 먹자.
세상을 살리는 마음을 먹고,
이웃을 살리는 마음을 먹고,
나를 살리는 마음을 먹자.
(이 리뷰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