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쓰다 걷다, 어느새 - 세가지 재산
시우안미정 지음 / 선한비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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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20] 안미정의 읽다 쓰다 걷다, 어느새

 

한줄평 : 인생의 세 가지 보석을 가지게 된 이야기.

 

내 인생에서 세 가지 보석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그것은 유형의 어떤 재산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무형의 기억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질로 한정하면 무엇이 내 보물이 될 수 있을까. 자기 집에 불이 났다고 할 때 단 한 가지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무얼 들고 나오겠는가. 이런 질문으로 간단하게 알아보는 게임도 있다. 자신의 삶을 바꿔 준 단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고,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고, 결혼반지가 될 수도 있고, 편지나 엽서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은 값을 매길 수 없고, 나에게 소중한 것이 너에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수 있다. 가장 소중한 보석은 그렇게 상대적이다.

 

<읽다 쓰다 걷다, 어느새>의 저자 안미정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세 가지 보물로 읽기” “쓰기” “걷기를 선택했다. 날마다 수행하는 습관과 같은 그 일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낙점한 것이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읽기를, 쓰기를, 걷기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로 둘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그녀에게 읽기는 무엇이고 쓰기는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읽다는 피신처 같았다. 2.8킬로그램의 바들거리는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버둥거리다 아이가 잠든 시간, 책 속 문장은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을 눌러앉게 해주었다. ‘읽다가 준 작은 위로들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때 깎여 내려갔던 생채기 또한 읽다가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고, 등을 토닥거려주며 괜찮아, 속삭여주었다. (16~17쪽 중에서)

 

그녀를 위로해 준 책들을 만난다. 작가를 작가되게 한, 읽기를 쓰기로 이끈 그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다. 내가 읽었던 책이 나오면 더 반갑고, 아직 읽지 않은 생소한 책이 나오면 책을 찾아보고 카트에 담아둔다.

 

나도 읽고 감동을 받았던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그녀를 책 중독에 빠지게 한 첫 책이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저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며, 생에 대하여 치열한 통찰을 얻는다.

 

생은, 한 치도 질서정연하지 않다. (23)

 

어린왕자와 박완서에 이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만난다. 내가 김훈의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글 한 줄 한 줄 허투루 읽어내릴 수 없었던 단단한 문장들에 대한 놀라운 기억. 저자 역시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모든 문장을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탐났다. 묘사가 어떤 것인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잘 보여주었다. 묘사란, 기술이 아닌 진심이란 걸, 온 마음을 다해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36)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묘사하는 목련에 대한 글을 보자. 안미정 작가가 따온 글이다.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37)

 

사람마다 선호하는 문장의 틀이 있다. 김훈은 짧게 툭 쳐내는 맛이 있는데 이런 투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으려면 <자전거 여행>을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훈의 <자전거 여행>과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최고의 책으로 꼽는다.

 

작가가 소개한 <카바레>는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는데 굉장히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들에 대한 소개는 차곡차곡 카트에 담겼다.

 

그녀의 쓰기에서는 모 수필 대상을 받으며 세상에 나오는 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책을 읽다 좋은 문장에 대한 필사를 하게 되고, 필사를 하다 일기를 쓰게 되고, 일기를 쓰다, 글앓이를 하며 긴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걷기에 대한 그녀의 시작은 나와 매우 비슷했는데, 나는 아직 평지 만보 걷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저자는 많은 산을 탔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독자는 또다른 도전을 받는다.

 

얇은 책이었다. 다른 출판사는 겨우 200쪽 수준의 책도 꽤 두껍게 보이는 책으로 펴냈는데, 너무 얇은 종이를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속도 얇을까.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은 가볍게 펼칠 수 있으나 가볍게 닫을 수가 없다. 저자의 삶과 땀과 피와 눈물이 종이 한 장 한 장 가득 배여 있어 묵직했기 때문이다. 쉬이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었다. 저자의 생각따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같이 사고하고 흐름의 결을 따라간다.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독자는 저자의 흐름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책 속에는 저자의 사상과 가치와 삶이 날 것으로 진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와 친구가 되고 만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꽤 오랜 시간 함께 한 동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책에는 저자의 삶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내려놓을 땐 190쪽 책이 300, 400쪽 책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쉬이 닫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만다.

 

시작은 읽기였으나 끝은 알 수 없다. 그녀는 책을 펴내고 출판사를 만들고 또 책을 펴내고,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녀의 계속되는 행진을 보고 싶은 마음은 또 하나의 욕심이다. 이제 시작했으니까.




(선한리뷰)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날 것으로 가공되지 않아 오히려 더 친숙해보인다. 그런 사진과 글 속에서 고무나무에 대한 글을 읽는다. 오늘 교회에서 목사님이 직접 나무를 구해다 심었다며 작은 고목나무 화분을 보여주셨다. 고목나무를 보자 봄이 바로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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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면서 글을 <쓰고> 하면서 그녀의 보물을 공동으로 채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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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딱 알맞은 계절이 오고 있다.

두꺼운 옷을 걷어내고, 땀을 조금 흘리며,

봄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내일을 기대해본다.

 

이 책은 봄을 기다리는 책이다.

나도 봄을 기다리는 중이다.



 

고무나무가 새순을 밀어 올리기 위해 몸을 부풀리면서 자신의 과거를 뚫는 중입니다. 이 과정은 아주 더디게 멈춘 것처럼 진행됩니다. 팽팽한 저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해를 향하게 화분을 돌려주고 물을 주었습니다. 물론 저렇게 고통을 통과하고 나면 연둣빛 새순이 봉긋 자신을 드러낼 것을 압니다. 고무나무는 그렇게 자신의 외피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생사고락. 생과 락만 있어도 좋을 텐데, 우리는 사와 고도 기꺼이 마주해야 합니다. 이렇게 고와 락은 함께 존재하고, 그 어떤 것도 아름다운 봄입니다.

 

저는 지극히 봄으로 올해의 봄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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