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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평점 :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08]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글쓴이 : 손혜진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발행일 : 2020년 1월21일
쪽수 : 279쪽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위대한 삶의 기록.
아픔을 견디며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
내 삶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책.
(읽게 된 동기)
세 번 죽었다는 제목을 읽고, 눈시울을 적시며 책을 선택했습니다. 나 자신도 과거에 그렇게 세 번 죽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처럼 세 번의 암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네 번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나를 발견한 것처럼, 기쁘지만 슬프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보다 병원을 더 편하게 느껴야했던 저자의 삶은 가혹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병원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으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는 아픈 아이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 아이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누구 하나 나를 특별히 모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보다는 병원에서 마음이 더 편했다.” (84)
(책을 읽으며)
간혹 이런 책을 만나면 양가감정 때문에 책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저자의 고통이 읽는 내내 그대로 내게 전이되기 때문에 책을 쉽게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책은 읽어 무얼 하나. 이런 책은 왜 읽어야 하나, 하는 독서의 목적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저자에게 동정을 느끼려는 것일까. 저자와 다르게 건강하게 사는 나를 비교해서,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하고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서인가. 당연히 그런 목적으로 책을 읽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고, 자연스레 동정과 감사가 같이 나오고 맙니다. 불쌍한 저자. 그리고 감사한 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에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디딘 저자인 경우, 부모가 읽고 자녀에게 던져주며, 너는 왜 이렇게 극복하지 못하니, 라고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라며 비교강압, 비교극복을 강요하게 됩니다. 또는 스스로를 자책하곤 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도 더 못한 사람이야. 장애인 극복기나 투병 극복기 책은 읽는 대상에 따라 다가가는 감정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지만, 선의의 독서 목적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아무리 선의의 뜻으로 책을 펼쳐든다 해도 투병기나 극복기는 독자를 힘들게 합니다. 자기 합리화에 의한 감정의 표출은 자신을 기만하기 쉽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그런 시선을 가지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하며 책을 읽습니다. 이런 투병기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런 책을 펴낸 저자를 응원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읽는 내내 그녀의 어설픈 행동들에 피식 웃기도 했고, 세 번의 암 발병과 수술 그리고 투병 이야기에 같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녀가 이 세상을 더 따뜻하게 보고, 더 건강하게 받아들이며, 긍정적이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책은)
이 책은 암 투병기입니다. 저자가 아이였던 여덟 살, 아니 태어나서부터 병치레로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던 유아기부터 여덟 살 때 소아암, 열여덟 살 때 GIST라는 듣도 보다 못한 희귀암, 그리고 스물두 살 때 다시 재발한 GIST.
어떻게 이 많은 감정들과 이 많은 과거를 기억하고 책으로 엮을 수 있었을까. 읽는 내내 저자의 꼼꼼함에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자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이고 상처였습니다. 오롯이 가슴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세밀한 대화 하나, 손짓 하나,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 그녀의 학생 체험담은 웃음이 나면서도 많이 애처로웠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지만, 4학년이 되어서 1학년처럼 학교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워하며 따라가야 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 ‘충분’은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겪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처음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건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 그건 공부와는 다른 문제였다. … 그래서 학교에서는 가끔 내 존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85)
체육시간마다 특별히 열외되는 그 일은 또래에게 왕따의 충분한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특혜는 사실 소외며 고립인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무얼 이해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는 그 외로움은 경험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도록 단짝 친구 없이 지낸다는 건 지옥보다 더한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처음으로 단짝이 생기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렇게 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았으니까요.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하고 싶어 안달을 했던 저자에게 다시 강펀치가 날아듭니다.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펀치입니다. 소아암 치료를 위해 다녔던 병원에 10년이 지나 다시 암 치료를 위해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낯이 익은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할까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셨다. 엄마에게 “맞죠? 어릴 때 여기 소아과 병동에서 치료했던 얘?” 나는 그냥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엄마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10년 전에도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병실의 엄마들과 친했다. 엄마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ㄴㄴ지 눈물이 맺혔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힘내라면서 엄마의 손을 잡아주셨다. 유제품 5개를 통에서 꺼내주셨고, 엄마가 돈을 주려 하자 괜찮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아주머니가 병실을 나가기 전 내게 “한 번 이겨냈으니까, 또 이겨낼 수 있을 거야.”하고 위로하셨는데, 그 말이 지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142)
그래, 그래.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정녕 야쿠르트 아주머니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을 일으켜 세워준 그 말을 나도 함께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견뎌내고 이겨냈습니다. 미래의 독자들에게서 응원을 받으며 과거의 저자는 암을 이겨냈습니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때문에 모든 삶을 저당 잡힌 부모님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이제 곧 졸업하면 곧 취직하여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 때 GIST가 다시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랬기에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에 병이 재발했을 때 쌓아왔던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았다. … 암세포가 많이 퍼졌대. 정기검진을 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래! 비명처럼 터져나온 진심이었다. 그동안 어떤 일에도 그럭저럭 잘 버텨왔는데, 그날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57)
(책을 덮으며)
그녀는 이제 서른이 넘었습니다. 세 번의 암 수술을 했고 이제 네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녀는 투병 중입니다. 그 와중에 무리를 해서(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책을 냈습니다. 졸업식 전 암이 재발한 것처럼 이 책을 출판하고 혹시 암이 재발한 건 아닌지 하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 채널예스 월간지와 인터뷰를 한 것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행복해 보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 번의 항암치료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 깊어졌습니다. 저는 아직 얕고 짧은 데 말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삶과 죽음을 잘 모르지만, 살아온 만큼 행복이 무엇인지, 하루를 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랬다. 암 병동에 머무는 사람들은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기에 어쩌면 좀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있자니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나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삶에 대해서는 더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 뿐이었다. 미래에 관한 불안감에 시달릴 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258)
여전히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녀는 견딜 수 있는, 바라볼 수 있는, 창 너머를 그윽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음을 압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입니다. 진주는 조개 안에 있을 때 고독하고 소외를 당하고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나올 때 진주는 참 보석이 됩니다.
[선한 리뷰]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한 번, 두 번, 아니 세 번, 네 번 죽을 수 있습니다. 죽었던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죽었고 다시 태어났다 생각하며 네 번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세월이 가면 빛이 바랩니다. 다시 태어났다고, 네 번째 삶을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다짐했던 결연한 숙명은 곧 희미해집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게 있습니다. 그녀의 가슴에 수술자국이 십자가로 선명하게 남겨진 것처럼, 내가 죽었다는 사실, 그것은 선명하게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죽음의 고비 앞에서, 죽음의 고통 앞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준 생명의 말. 희망의 말.
“한 번 이겨냈으니, 또 이겨낼 거야.”
우리 모두는 이겨 낸 흔적을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존재의 이유만으로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