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직업을 삼다 - 85세 번역가 김욱의 생존분투기
김욱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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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06] 취미로 직업을 삼다

 

저자 : 김욱

출판사 : 책읽는고양이

발행일 : 초판12019925

 

나이 일흔에 쫄딱 망하고 번역가로 새 삶을 출발한 85세 할아버지 이야기.

늦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

나보다 더 망한 사람 같아서 묘하게 힘을 얻을 수 있는 책.

 

 

(책 외모)

출판사가 책읽는고양이라서 그런지 책이 고양이처럼 앙증맞다. 너무 작아서 조금 큰 주머니에 쏙 들어갈 것만 같다. 얼마 전 소개한 전쟁터로 간 책들에 소개된 진중문고처럼 군복 야상 주머니라면 틀림없이 들어갈 수 있을 그런 크기의 책이다. 할아버지 책을 아주 귀엽게 만들었다.

 

 

(읽게 된 동기)

어떻게 하다 내 독서 레이다 망에 걸려들었다. 내 나이도 곧 은퇴를 바라보는, 아니 이미 또래들 가운데 은퇴한 사람들도 많고, (좋은 말로 은퇴고, 직설적으로는 해고된) 나이다보니 그 이후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다. 그래서 그런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끔 번역가로 살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영어든 일어든 지금부터 좀 공부해놓으면 나중에 뭐라도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참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정말 철없다.

 

그런데 이 책 주인공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70에 쫄딱 망하고 번역가로 변신해 15년 동안 쌩쌩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료 200권을 번역해 냈다니. 그가 했다면 내가 못할 건 또 무언가, 하는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덥석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 미래 먹거리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끙끙거리다 발견한 책인데, 85세 할아버지가 적자생존 정글 속에서 현역으로 살아남아 95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책이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부모님과 비교해본다면 살아계신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 중간쯤 연세에 해당하는 분이다. 그렇게 비교해야 보다 실감이 난다. 지금 집에서 요양보호사 돌봄을받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식도암으로 12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김욱, 이분을 응원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마찬가지로, 나도 용기를 얻는다. 내가 벌써 주저앉으면 안 되지. 패배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안 되지. 어쩌면 김욱 할아버지를 내 노년의 롤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다.

 

(읽으면서)

이런 할아버지를 봤나. 참으로 유쾌발랄했다. 85세 할아버지가 쓴 글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책 전체에 건강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여유있는 유머가 충만했다. 물론 그가 얼마나 심하게 망했는지를 읽을 때는 가슴이 아렸다. 마치 나를 얼마 전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실패를 읽는 사람이 전혀 아프지 않게 유머로 승화시켰다.

 

1장의 제목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사람들은 나의 실패담을 좋아했다.”

그가 책도 내고 해서 좀 유명해졌는지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 방송에도 나갔단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실패를 이겨내고 지금의 성공신화를 이룩해냈는지를 거창하게 말하려고 벼르고 나갔는데. 웬걸, 라디오 아나운서는 그가 어떻게 쫄딱 망했는지, 그 부분을 실감나게 들려달라고 했단다. 사람들은 타인의 실패담을 들으며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나보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성공한 이야기보다 쫄딱 망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지금 그가 성공한 상태라 하더라도 배가 덜 아프다. 그는 바닥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나이부터가 벌써 바닥이 아닌가.

 

(가장 슬펐던 장면)

첫 장부터 그는 어떻게 망하게 되었는지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망한 사람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남은 생은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 그간 누려보지 못한 호강을 맛보게 될 줄 알았으나 IMF가 터졌고, 평생토록 겪었던 돈 걱정 말년에는 기필코 벗어나보겠다고 겁도 없이 집까지 담보로 잡혀 투자했던 것이 파투가 나면서 일흔을 앞둔 나이에 경매로 집을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고 말았다. (21)

 

가진 돈도 겨우 500만원에 불과했다. , 나도 파산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기에(사실 따지고보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회생전문 법무사 사무소에 인감도장까지 맡겨 논 상태였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가 말하는 길바닥에 나앉다라는 글이 주는 무게를 알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글로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말할 수 없다.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것은 진짜 살던 집에서 덩그러니 몸만 나와 갈 곳도 거처할 곳도 없어지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그가 그 뒤 다른 사람의 묘를 봐주며 집 관리를 하기로 하는 절묘한 연결이 이루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말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했을 것이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그가 초등학교 앞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중국산 볼펜을 파는 장면이다. 그 때 그는 70세 할아버지였다. 그의 아내 할머니는 맞은 편에서 붕어빵을 팔았다. 얼마나 짠한 장면인지. 괜히 콧물이 난다. 물론 우리 주변에도 종이박스를 줍고 힘겹게 리어카를 몰고 가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어쨌든 그렇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두 번째 장면은 평생 몇 번 입지도 않고 아껴 두었던 겨울코트를 고물상 주인에게 2만원에 팔아 넘기는 장면이다. 200만원짜리 코트를 2만원에 판 뒤 그 돈으로 소주와 소시지를 사들고 방에 드러누워 배가 고프면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소시지 하나 먹고, 그렇게 삶을 연명하던 장면은 눈물이 나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15만원을 벌기 위해 먼 지방으로 식당일을 하러 간 상태였다. 그는 걱정하는 아내에게 문제없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이틀 뒤에 돌아오기로 하고 떠난 아내가, 그쪽에서 붙잡는 바람에 일주일이나 있다 오게 되었고, 그 사이에 저자는 굶어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는 일주일을 누운 채 거동도 하지 못한 채 지냈고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눈도 뜨지 못할 정도의 쇠약한 상태로 15만원을 벌어 온 아내를 맞이했다.

 

 

(다 읽고 나서)

마음 한 켠이 짠하고 아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어쨌든 지금 기준으로 성공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어찌 70세부터 85세가 될 때까지 200권의 책을 번역해 낼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물론 그가 일제강점기를 지냈기에 민족적 아픔의 상처가 있겠지만 그 때문에 그는 일본어를 잘할 수 있었고, 그 희미한 연결고리를 버리지 않고 노년의 직업으로 승화시켰다.

 

내 부친도 저자와 비슷한데, 아버지는 일본어를 잘했다. 대학도 2년간 다녔고 글씨도 유려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행정 대행 업무를 부탁하였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마음씨 좋게 척척 많은 일들을 대신 해주었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해주면서 보증까지 서는 너무너무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본가가 망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보증 때문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늘 사업을 하면 사기를 당했고 그래서 가진 걸 계속 탕진해야 했다. 마지막에는 집마저도 그렇게 사기와 보증으로 날아갔다. 김욱 할아버지의 글을 읽으면서 아버지도 일본어 번역 일을 했으면 그래도 돈 못 벌어 온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아버지 노릇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허 일을 시작하면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관련 책이 있어서 책 한 권을 통째로 번역 부탁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부탁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책 한 권을 시원하게 번역해주셨다. 그때 출판사를 찾아 아버지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인데, 그랬다면 아버지 인생도 여기 저자처럼 달라졌을지도 모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내가 바보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늘 후회만 앞선다.

 

이제 나도 오십 중반을 넘었다. 김욱 할아버지처럼 노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번역이라. 김욱 할아버지처럼 엉덩이를 꽉 붙이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죽음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면 뭐라도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안다. 죽음으로 배수진을 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한국사회가 노년 빈곤율 1위를 다른 국가에 주지 않고 있는데, 그 한국사회에서 노년 세대로 진입하고 있다. 10년 뒷면 나도 국민연금을 탈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진 부러움과 안쓰러움의 두 마음 외에, 그를 계속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가 밝힌 대로 95세까지는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실현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어쩌면 그의 성공이 한국사회의 노년 패러다임을 바꾸는 소중한 마중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욱 할아버지. 95세까지 파이팅이다.

그가 번역한 200권의 책을 다 사서 읽고 싶다. 읽어주고 싶다. 그의 희노애락을 같이 느껴보고 싶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보다 먼저 그가 망하게 된 이야기,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이야기. 폭주노인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뭐라도 사면 그에게 인세가 가겠지.

 

[선한리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속담이 진짜 맞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70세에 시작해도 85세까지 15년 동안 일할 수 있구나.

요즘 보험은 100세까지 보장하는 상품이 일반적이다.

큰 사고나 질병만 없다면 100세까지는 기본으로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노년기의 삶이 결코 무력한 삶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삶의 개념과 프레임을 도입해야 한다.

 

70세에 시작해 85세까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삶.

건강하다면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70세가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취미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황혼계획을 설계해보자.

 

김욱 할아버지가 가능했다면,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세 번째 인생은 70부터다.

아직 많이 남았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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