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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죄와 벌”을 떠올리게 하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탁월한 심리묘사 소설.

오르부아르로 콩쿠르 상을 수상한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책은 뒷표지에서 ‘콩쿠르상과 영국 추리작가 협회상 동시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로 작품을 띄우려 했지만 그건 독자에게 다른 기대감을 품게 하는 지나친 광고성 멘트였다. 그리고 “거장 르메트르의 문학성 넘치는 스릴러”라는 광고는 독자를 완전히 이 책이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가디언은 ‘걸출한 문학적 추리 소설’이라고 평했고, 커커스 리뷰는 ‘독창적인 스릴러 작가’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책을 추리소설도 아니고, 스릴러 소설도 아니다. 이 책은 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너와 나 속에 숨겨져 있는, 아무에게도 꺼내기 싫은, 비밀의 샘과 같은 무의식과 의식의 판도라 상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앙투안은 부모의 반대로 개도 고양이도 기르지 못했다. (지금의 우리집과 비슷하다.) 그래서 소년 앙투안은 이웃집 데스메트 씨네에서 기리던 개 윌리스를 끔찍이 아끼게 된다. 윌리스는 주인집에서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앙투안에게 진한 사랑을 받으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주인공 앙투안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개 윌리스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주인집으로 보내졌는데 데스메트 씨는 윌리스를 그냥 총으로 쏘아 죽여버리고 만다. 아, 앙투안의 마음이 어떠할지, 커다란 상실감. 그리고 데스메트 씨에 대한 분노. 하지만 어린아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혼자만의 아지트인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데스메트 씨의 아들인 레미가 오는 것을 보고 홧김에 나무 작대기를 휘둘렀는데 레미는 그만 죽어버리고 만다.
책 제목에 나오는 “사흘”이 이제 책에서 긴 시간 동안 앙투안의 마음을 대변한다. 살인자가 되어 버린 어린 소년 앙투안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공포와 대면하고 감당할 수 없는 바윗덩이 같은 두려움에서 친구였던 레미의 장례식까지 참석한다.
이 책을 위대한 명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동등한 반열에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충분히 비교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어린 소년에서 성인이 된 뒤, 공소시효도 지나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던 그 사건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시체가 하나 발견되고, 다시 앙투안의 숨통을 조여오는 후반부에 이르면 우리는 과연 죄를 짓고 편안히 살아가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일어난 한 사건,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한 소년의 마음, 명망 좋은 의사가 되었지만 “한 인생”을 불안하게 살아온 죄인에 대해, 사회적으로는 죄인이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죄인으로 정죄당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임을,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치밀하고 정교하게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죄와 벌”에서는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구원자 “소냐”가 있었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에서는 살인자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앙투안에게 어떤 구원자가 있을까.
다른 분들이 작성한 서평을 보니, 밋밋하다, 추리소설이 아니어서 실망이다, 같은 글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살짝 생각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