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나는 항상 노년의 이미지에 매력을 느껴 왔다. 늙다리와 어린 소녀.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상기시키려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범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은 자연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무자비함과 폭력, 그리고 자연의 청정함과 결백성 말이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와, 가슴이 깊이 파인 검은색 파티 드레스를 입고 거의 무릎에 앉아 있는 그녀 중 누가 무죄하고 결백한지 모른다.

-p.11

 

 

처음 표지를 봤을 땐 '아담과 이브'가 생각났다. 태초의 자연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저 수풀 사이로 맨 다리를 드러내고 뛰쳐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제목이 '자연을 거슬러'라니...저 표지는 제목의 극적 효과를 가져다 주는 듯했다.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요즘 나도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여 몹시 지쳐있었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나'로 시작하는 1인칭 시점이었다가 '그와 그녀'가 나오는 3인칭 시점이었다가 현재였다가 과거였다가...혼란스러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의 '롤리타' 같은 이야기인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책의 6장이 서로 다른 단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 '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로웠다. 남자도 저런 생각을 할까? 이건 마치 여자들의 사랑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사랑에 관한 책.

​마치 삼중 액자를 보는 듯 하다.

​                  '토마스 에스페달'의 삶 속에 '주인공 나(토마스)'의 삶 속에 '책 속의 아벨라르'의 삶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인 듯 하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일 것이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

나이차가 배나 나는 아버지뻘인 남자와 딸같은 여자가 만나는 것...

실제 작가의 삶은 어떤지 모르지만...주인공 '나'와 딸같이 어린 '얀네'

그리고 과외 선생인 '아벨라르'와 딸같이 어린 '엘로이즈'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No se pued vivir sin amar.>라고 부르짖지만 사랑을 두려워하는 남자.

                   내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사랑입니다.     - p.88

밖으로 일을 하러 나가는 그리고 더 자유롭기 위해 결혼을 하는 여자와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와 살지 못하지만 태어난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월급을 더 받기위해 결혼을 한다는 것

그 여자는 자연스러운 삶을 위해 자연 속에서 살기 원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세상을 떠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겐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다른 이들과는 달리 부자연스럽고 가식적인 삶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p.103

​내 삶은 가식적이었고, 나도 가식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 p.119

행복에 관해 쓰고 싶지만 그를 위해 불행을 말하는 것.

 

 

불행은 행복의 필수 조건인가?

아니,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무엇과도 상관없는 독립적인 것이 바로 행복 아닐까. 행복은 마치 자연 현상처럼 지금 이 순간과 얽혀 있는 것이다. 마치 무지개와 별똥별, 번개처럼 장엄하고 무시무시하며 동시에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 행복이며,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 p.146    

 

얀네에게서 버림받은 주인공은 그 실연이 삶의 가장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그 아픔이 가신 뒤에 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     - p.221

이렇듯 이 책엔 자연을 거스르는 것 투성이다. 주인공에겐 부자연스러운 일이 다른이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둘은 항상 함께였다.

마지막 장인 <짧은 단상>은 마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연상시켰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고, 자신이 쓴 것은 모두 가식적이며 자신의 글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작가의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창작이란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가...

 

 

행복에 관한 책은 두껍지도 않을 것이며, 깊은 의미도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행복을 표현하는 언어는 소박하고 평범하기 마련이며, 행복 그 자체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가?

행복에 관한 책은 짧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장편소설처럼 지속적이고 서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속에서는 연계성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성과 논리를 찾을 수도 없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 p.150

나는 행복을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행복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알 듯 모를 듯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나는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든 후 그녀에게 식사하러 오라고 부르곤 했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나란히 함께 앉아 음식을 먹으며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아니, 나는 그 당시 행복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행복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 행복! 나는 정말 행복했다. 

p.158

 

요즘의 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모든 것이 힘들기만 했다. 일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남편과도 다투게 됐다.

아..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내가 행복을 저 하늘 위에 뜬 구름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옆에 있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고, 귀여운 아가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걸 잠시 잊고 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 할 수 있다고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던가...

정말 조그만 생각의 차이인데도 이런 행복한 것들을, 감사한 것들을 잊고 불행에 휩싸여 힘들어 하다니...

​힘들때마다 저 구절을 생각해야지....

사람은 이상하게도...정말 행복한 순간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한 때였구나...하고 후회를 한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바로 나의 곁에...내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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