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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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설, 최악의 편집. 본문 폰트 크기도 촌스럽지만 창비는 무슨 생각으로 이 소설에 이 표지를 썼나. 주변에 선물하려고 구입하려다 절판 뜨길래 그래 민음사한테서만은 제발 벗어나라 했더니 여기는 이 고요한 소설에 현란한 표지를 쓰네…… 리커버 소식 간절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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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22-02-07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자인 좋은데요

일립 2022-02-08 12:31   좋아요 0 | URL
안목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읽어주세요. 내용은 더 좋은 귀한 책이랍니다. ^^

eve 2022-05-1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민음사한테서 벗어나라고 생각하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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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4년은 아무 방해도 없이 한국 소설만 읽었다. 특히나 희곡을 읽는 재주는 셰익스피어를 지나고도 도무지 늘지가 않아, 책장에는 펼치지도 못한 체호프 희곡집만 세 권이 꽂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이 펼친 것이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최근에 영화「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기도 했고, 또 한 번 흥미를 붙이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탐구하고 싶어지는 기질 덕분이기도 했다. 


 워낙 번역 문제로 시끄럽기도 하고, 또 지난번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 논란 때 공식 계정에 올라온 말이 참 가관이라 민음사 책은 꺼리고 있으나, 이번에는 선택지가 크게 없어 민음사판으로 구매했다. 정가는 7,000원이며 인터넷 서점에서 10%를 할인받으면 6,300원이다. 아무리 얇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어디에서도 이 가격에 책 한 권 사기가 참 어려워 다시 한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큰 경쟁력 중 하나는 가격임을 실감했다. 출판사에 대한 사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난 민음사가 택한 도전들을 좋아한다. 어느 출판사건 회사의 얼굴이 될 수 있는 세계문학전집만은 늘 가장 안전한 선택인 ‘책다운 책 만들기’에만 집중하는 듯한데, 민음사는 판형부터가 색다르다. 지금에야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 시리즈나 시간의흐름 출판사의 말들의 흐름 시리즈, 1984BOOKS 출판사의 크리스티앙 보뱅 시리즈 등 세로가 긴 책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지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첫 권이었던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1998년 발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이 커다란 여성’으로서 책 시장의 주 소비자인 ‘여성’ 그리고 ‘여성의 작은 손’을 메인 타깃으로 한 2000년대의 책 시장의 전략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전히 소설책보다는 시집을 떠올리게 하는 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독특한 판형은 ‘고유하다’라는 말 이외에는 대체할 수식어가 없는 것 같다. 특히나 ‘한 손으로 잡고 읽기 쉬운 사이즈’라는 이점은 얇은 책인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정말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해 단테의 『신곡』을 읽었을 때와는 달리 읽는 내내 편안했고 종종 감탄했다. 


 위의 판형에 대한 고집이 이번에는 약이 됐다면, 표지에 대한 고집은 독이 됐다. 사뮈엘 베케트의 생전 사진을 앞표지에 그대로 실었는데, 저화질의 사진을 억지로 늘려 사용한 탓인지 인쇄 품질이 지나치게 낮다. 특히나 베케트의 귀와 눈썹, 턱과 머리카락 부분은 모자이크처럼 자잘하게 깨진 픽셀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80쇄, 2021년 9월 발행 기준) 요즘에는 포토샵으로도 손쉽게 화질을 높이는 작업을 할 수 있기에 이런 디테일은 다소 아쉬웠다. 


 양장 제본 대신 무선 제본을, 무거운 하드커버 대신 휴대가 용이한 소프트 커버를, 가름끈 대신 넓은 날개를, 오로지 역자의 해설과 연보만을 남기고 모든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를 없애는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개인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중에 모든 밸런스를 가장 잘 캐치한 건 이번에도 문학동네라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민음사는 민음사만의 고유한 특색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연히 구한 53쇄 (2013년 1월 발행)와 비교해봤을 때 많은 점들이 바뀐 것 (표지의 네모 모형을 삭제, 쪽번호를 본문 하단으로 옮긴 것, 내지로 사용된 종이 재질의 변경 (한 손으로 잡고 읽었을 때도 잘 넘어가는 얇고 가벼운 종이), 대사를 말하는 인물들의 폰트 및 굵기, 간격 변경 (희곡이므로 무척 중요하다), 줄 간격 늘림 등) 을 보면 아직까지도 지속적으로 편집을 수정하며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힘쓰고 있는 것 같아, 책에 담긴 편집자들의 노력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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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작가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한 일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화제는 순식간에 변하며 인물들은 순식간에 잊는다. 의미도 없는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고, 마땅한 대사 한 줄 없이 노예로만 부려지던 캐릭터는 돌연 두 장에 걸쳐 장황한 생각을 늘어놓는다. 다음날이 되자 누구는 눈이 멀고 누구는 말을 잃는다. 분명 어제 본 것 같은 소년이 자신은 모른다 말한다. 신발을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장난을 치다가 욕을 하다 춤을 추기도 하고 자살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 모든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가운데에도 단 하나, 관객과 독자가 잊지 않는 유일한 생각은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고도는 누구인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생각해봤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옮긴이의 해설에서 찾았다. 누군가에게는 구원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자유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빵이고 또 희망이라고 한 고도는 나에게 있어 기다림이라는 행위의 관념그 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해 나의 고도는 그저 어떤 한 점이 되어줄 뿐, 누군가의 안에서 무엇으로 표현되더라도 결단코 이상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느꼈으며, 오래 생각하고 집중했던 것은 그 기다림을 이행하고 있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가진 인식이었다.

 

 작품 뒤에 실린 오증자 역자의 해설 중 168쪽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뮈엘 베케트가 비점령 지역인 남프랑스 보클뤼즈 농가에 피신 생활을 하던 중, 당시의 경험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밑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피신 생활 중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매일 같이 수십만 명이 죽어나가는 소식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2022년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누군가에 대해 생각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혼자서, 때로는 둘이서 계속해내 가는 누군가를. 강렬했던 처음의 감정은 점차로 희미해지고, 더는 목적이 아닌 습관처럼 기다림을 이어나가는 어느 나이 든 누군가를. 이 소설의 두 주인공처럼 이제는 기다림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져 언젠가는 내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조차 망각하고, 어느 때는 이 맹목적인 행위에 화가 나기도 했다가 결국에는 그를 포기하고 나면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도 기다려야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어느 사람을 생각했다. 오지 않는 그것이 원망스럽지만, 그것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자신들의 기다림에 가치와 정당성을 부여받고 다시 말해 위로를 얻고, 그렇게 매일의 불안함을 조금씩 녹이는 어느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곳에 고도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오로지 고도만이 가득 존재하는 그곳의 풍경을. ‘기다려야 한다.’라는 인식은 있으나, 기다려야 하는 이유도, 그의 모습도, 모든 것들이 희부옇게 흐려진 정신을. 자살을 입에 올리는 것이 너무나도 가벼울 정도로 의미도 미련도 없는 생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어느 삶의 형태를. 1939, 남프랑스의 피신처에서 그들이 그토록 하염없이 기다리던 건 무엇이었을까. 고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알리는 소식, 종전 선언, 당장 먹을 내일의 식량, 그 무엇이든. 1957년 어느 교도소에서 고도는 사회이자 바깥세상이자 자유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20221,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누구인지도, 이유도 모르는 채 디디와 고고와 함께, 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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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1. 읽는 동안 불현듯, 내가 가장 사랑했던 2000년대의 황정은 작가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파씨의 입문에 담긴 단편들이. 그저 블라디미르의 애칭이 디디의 우산에 등장하는 디디와 같아서일지도, 말이 없던 럭키가 쏟아내는 생각들이 야행에서 책으로 시작되는 곰의 생각과 닮아서일지도 (구조 자체는 대머리 여가수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목적은 흐려진 채 점점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이유도 모르고 무조건적인 기다림을 이어가는 그 애처로움이 대니 드비토의 유라를 떠올리게 해서일지도 모른다. 황정은은 한 번 한국 문학을 외면했던 나를 붙잡아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어준 작가이므로 따로 전집 리뷰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저 파씨의 입문에서 파도를 기다리던 파씨가 참 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여담 2. 이 책의 늙은 두 부랑자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부랑아들을 생각했다. 1975, 형제복지원 사건을 떠올리며 적어도 이 부랑아들은 거리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씁쓸하고 웃음이 샜다.

 

 여담 3. 이 책을 지금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십 대에 읽었던 데미안은 내 이십 대 후반에서야 제대로 닿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데미안을 읽은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나와 제대로 마주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여담 4. 작중에서 럭키는 벙어리가 되고 포조는 장님이 된다. 블라디미르는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라고 말한다. 세 원숭이를 떠올렸다.


그럼 우리에겐 아무 권리도 없게 됐단 말이냐? - P28

그게 인생이죠. - P80

넌 네가 불행한지 아닌지도 모른단 말이냐? (…) 꼭 나 같구나. - P89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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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아이들 - 소년, 사회, 죄에 대한 아홉 가지 이야기
이근아.김정화.진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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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예전에는 굳이, 애써서, 찾아가며 노력해야만 시선이 갔던 것들이 이제는 내 생활 위로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기분이 든다. 그중에서도 스무살부터 꾸준하게 공부해왔던 논제가 있는데, 바로 장애인과 청소년 인권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리가 만난 아이들은 서울신문의 이근아, 김정화, 진선민 기자가 2020년에 총 5회에 걸쳐 발행한 소년범에 대한 기획 기사를 바탕으로 적힌 책이다. 처음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처럼 온라인 서점을 통해 주문할까 고민하다 결국 오프라인 서점을 향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도 구매한 당일에 받아볼 수 있다지만,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평대나 서고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직접 책을 찾고 가끔은 딴 책에 시선이 이끌려 잠시 한눈을 팔기도 하다가, 예정보다 몇 권 더 사 버리는 바람에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돌아오는 그 설렘은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들른 사회 문화 평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어두운 초록색을 바탕색으로, 황토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한 표지 덕분에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내 책장만 그러는 건지 유독 인문, 사회 쪽에서 이런 초록-노랑의 컬러 조합과 이지스킨 코팅을 사용한 표지 디자인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2019년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라든지, 가깝게는 작년 12월에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출간한 유언을 만난 세계가 그렇다. 마치 벨벳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의 이 코팅 방식은 손에 닿는 고유한 촉감과 무광 코팅이 주는 차분함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나, 내구성이 좋지 않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외출을 할 때마다 북 파우치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데도, 이 이지스킨 코팅으로 가공한 책들은 꼭 비닐이 벗겨질 것처럼 모서리 쪽이 금세 들쳐지고 만다. 표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신경을 기울이는 건 늘 책등인데, 이런 코팅은 자주 펼치는 책일수록 기포가 찬 것처럼 책등에도 흔적이 남아 그 점이 늘 아쉽다. 뿐만 아니라 짙은 색의 표지와 만나면 책을 읽고 날 때마다 희부옇게 손자국이 남아 있어 책장에 꽂아둘 때는 꽤 공을 들여 닦아주기도 해야 한다.

내지의 구성과 편집은 무척 우수했다. 동화 못지않게 사회 서적 역시 지나치게 힘을 실은 탓에 오히려 독서에 방해를 하는 편집을 적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데, 여태 읽었던 책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읽기 쉬운, 단정하고 직관적인 방식의 레이아웃을 사용했다. 한 장()을 길게 적기보다는 적게는 네 개, 많게는 열두 개의 꼭지로 나눠 내용을 최대한 짧고 세분화하였고, 그 덕에 집중이 흐트러질 일이 없이 쉽게 마지막 장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게다가 목차가 여러 페이지로 나누어져 있으면 책장을 넘겨가며 확인을 해야 해 종종 불편할 때가 있으나, 이 책은 맞쪽을 사용해 줄로 나누지 않고 일렬로 기재해 두어 모든 꼭지의 제목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점에서도 편집자의 센스와 섬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아낌없이 삽입된 통계표나 도표는 본문과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으며, 주요 자료들을 본문과는 반대되는 어두운 색의 용지와 흰색 글자를 사용해 실은 점이 좋았다. 또한 중간중간 인터뷰를 인용할 때 고딕체의 폰트를 사용해 본문과 차별을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짧은 줄표를 넣어 확실하게 분리해둔 점, 또 인터뷰를 게재할 때는 질문별로 한 줄을 비워 되짚어가며 읽는 독자들이 헤매지 않게 배려한 점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논하자면, 회색조의 사용이 훌륭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본문은 평범한 하얀 내지를, 도비라는 그와 극명하게 반대되는 검은 용지를, 위에서도 언급한 주요 자료들은 도비라보다는 밝으나 잿빛에 가까운 용지를, 책 마지막에 실린 감수와 추천사는 그보다도 밝은 연한 회색의 용지를 사용함으로 목적에 맞게 세심하게 나누었고, 회색조의 용지가 표와 도표에 사용한 색과 같아 디자인적으로도 무척 안정감이 들고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같은 맥락으로 색지를 그레이 그린 컬러로 사용한 점마저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역시 사회 계열 서적의 고질적인 장벽, 가격이다. 이 책의 가격은 16,500원이다. 다른 사회문제 관련 책과 비교해봤을 때 오히려 저렴한 편에 속하기도 하고, 본문에 실린 방대한 자료까지 감안하면 결코 낮은 가격은 아니나 과연 이 책을 정말로 읽어야 하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정도의 가격을 주고 책을 구입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



나는 소년법 폐지론자는 아니나, 처벌 강화와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는 동의하는 입장으로서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줄줄 적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평소에는 두 쪽을 넘기지 않는 메모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만 여섯 쪽 가득 적혔다. 간략하게 속기한 것의 분량만 이 정도라 과연 짧게 정리해 게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년범 문제에,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는 추천할 수 없다. 저자들의 감정적인 태도와 적지 않게 등장하는 경솔한 표현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대중이 소년범에 분노하는 이유조차 정확하게 통찰하지 못해 논점이 어긋난 주장이 반복하여 등장하며, 가해자들을 다루는 문제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과 객관성을 잃은 채 논쟁에서 불리한 점들은 일단 제쳐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회피성 때문이다.

 

가장 아쉬웠던 첫 번째 문제부터 다루어보자면, 저자들은 이 책의 서문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줄곧 시혜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소년범들을 함부로 동정하고 있다. 특히나 1장을 집필한 이근아 기자는 공감 능력이 자신의 장점이며 취재원과의 인터뷰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이 책에 실린 인터뷰와 덧붙여진 사견을 읽으며 나는 그가 자랑하는 그 공감 능력이 조금도 장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책에서는 소년범에 대해 끼리끼리 논다’ (p.275) ‘찌들 대로 찌들었다’ (p.280)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동갑인 취재원을 보자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미안함을 느낀다. (p.276) 자신의 인터뷰에 솔직하게 응한 소년범이 소년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도 지원이 버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p.300)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 표현들이 내게 가장 유감스러웠던 이유는, 저자들은 취재한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소년범들이 꼭 자신들의 기사를 읽어주길 바랐다 (p.270)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절대 너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기 때문이고, 그 탓에 소년범 출신이지만 과거를 딛고 새로운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모범 사례를 취재했다고 밝히며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들은 이 책이 그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동시에 자신들을 믿고 솔직한 답변을 들려준 소년범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고스란히 적어두었다. 아이들을 보며 함부로 책임감을 느낀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그들의 인생과 비교하고 미안함을 품는 등 사회 문제, 특히나 소외 계층과 약자를 대하면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을 전부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십 대는 주체적 존재다 (p.36)라고 말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보며 교화를 시켜야한다고 말한다. (p.305) 나는 교화하도록 돕는것이 어른이 가져야 할 올바른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고작 오가며 몇 번 본 것이 다인 소년범들에게 함부로 책임감 (결은 곱지만, 사회봉사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일시적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을 느끼지도 동정하지도 않고, 하대하는 시선이 아닌 마주 보는 눈높이에서, 그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되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른에게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아주 작은 신호만으로도 그것을 감지한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이미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모든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경우 역시 빈번하다. 그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어른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를 스스로 보이고 있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글을 아이들에게 보일 생각을 하는가. ‘오만이나 위선일 수 있는 감정’ (p.276)이 아닌 오만과 위선이 맞다. 나는 기대와 함께 이 책을 펼칠 그 소년범들이 오히려 걱정되었다.


 두 번째로, 여론에 대한 통찰력 부족이 아쉬웠다. 단언컨대 소년 범죄에 분노하는 국민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년범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혹은 태어나기를 처음부터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들은 이미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던 범죄자들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매우 익숙하다.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이 초등학교 시절 내내 우등상을 받았다는 것은 물론 조두순이나 유영철의 가정환경, 심지어는 강호순의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까지 알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국민들이다. 소년범들의 문제라고 할 것도 없이 조금이라도 불량스러운 청소년을 볼 때마다 너네 부모는 뭐 하냐거나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하며 혀를 차고 윽박을 지르는 게 우리 국민인데 어느 누가 소년범들을 단순히 악마라고만 치부하겠는가. 구태여 얼마나 형편이 어려운지, 부모는 어떤지 전부 늘어놓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중이 소년범의 문제에 유독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대중은 피해자들에 더 깊게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처지에 이입하게 된다. 윤리성이나 도덕성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도 자신이 가해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같은 범죄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서서 가해자의 시점에 입각해 사건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다. 작년,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서울 지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 100명 중 1명은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2021년 상반기 실태조사에서는 이보다 0.1%가 증가했다고 하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면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 현재 상황과 피해 학생들이 솔직하게 응답하지 못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 피해 학생들과 부모, 목격자와 주변인들이 모여 대중이 된다. 과거에 같은 상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대중이다. 사람은 겪은 적 없는 고통보다 아는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민심은 소년범에게 냉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검사보다 변호사를 싫어하는 나라다. 연쇄살인범의 재판이 있을 때마다 변호권을 행사하는 가해자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을 비난한다. 법은 백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사법 피해자도 만들지 않기 위한 원칙 아래에 세워졌으나, 민심은 언제나 한 명은 차치하고 일단 백 명의 범인에게 보다 확실하고 무거운 처형을 내릴 것을 원하고 있다. 소년법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결국 이것과 같다. 본문에도 언급한 소년법 덕분에 살아남았다며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지 않는 (p.242) 그 소수의 소년범들에게 대중은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책에서 지겨울 정도로 말하고 있는 악마라고 생각해서도, 8장에 실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발언처럼 단순히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도 아니다. 사람들이 단순히 그들을 악마라고 생각한다거나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우리 사회를 범죄의 온상이라고 생각’ (p.264)할 거라는 안일한 사상이 오히려 소년범의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 그 점이 의문스럽다. 귀를 틀어막고 무조건 사형, 사형 외치는 도를 넘은 폐지론자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화가 난 민심은 소년범들이 피해를 입힌 피해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지 그저 자극적인 언론 보도에 휩쓸린 대중이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상실해서가 아니다. 사회의 감수성, 여론 양상의 이유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으니 독자 역시 이 책이 주장하는 점에 대해 공감하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결국 같은 이야기로 귀결되므로 묶어서 논하자면, 가해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는 점, 즉 객관성과 중립성이 없는 점이 아쉬웠다.

저자들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해 응어리가 있다면서도 자신들의 기획에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한다. 워낙 소년 범죄에 대한 여론이 안 좋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들이 다루고자 하는,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범죄는 텔레그램 성착취 같은 심각한 사건들과 결코 그 무게가 같지 않다.’ 강력 범죄는 현재의 소년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p.124)를 이유로 특정 소년범들을 분리해 외면하는 모습에서 회피성을 느꼈다. 그들은 소년범이 성인범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사회에 교화할 수 있게 이 기획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기획 단계에서 이미 소외당한 소년범이 있다는 점이나 그들을 교화 가능성이 없다며 분리해 논하는 점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수치가 아닌 배경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 그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었다. 살인, 강간, 집단 폭행을 한 소년범에게는 없는 교화 가능성이 같은 학급 학생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고 강제로 성매매 알선을 한 소년범들에게는 있는지를. 차라리 애매하게 피하지 않고 이들까지 포괄해 용기 있게 다루었으면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소년범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피해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을 만큼 대략적으로라도) 누가 받았고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중간에 소년범죄 주요 사건 및 여론 흐름표를 수록해두었지만 이는 위에서 말한 교화 가능성이 없는 소년범들이 저지른 강력 범죄들로, 결국 저자들이 말하는 소년범들이 아니다. 독자들은 가해자가 어떤 환경,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유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상세히 알게 되나 실제적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으니 당연히 이 어린 범죄자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범죄자들의 서사를 강조해 미화하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몇 차례나 반복해 말하지만, 만약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었다면 인터뷰를 한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여섯 쪽에 달하는 짧은 글 형식으로 각색하기 전에 그들이 입힌 사회적 피해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거의 대다수의 소년범들이 범죄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부모나 선생을 지목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실려도 어색하지 않을 그들의 이야기 역시 이곳에는 없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객관적인 자료를 기관에 요청, 이가 불가능할 경우 기관 관계자에게 사실관계를 파악 (p.22)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직접 취재할 수 있는 인물들을 어째서 취재 과정에서 배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모든 소년범의 부모는 나쁘다. 자식을 방치하고 게으르고 자기 살기에 바빠 아이가 뭘 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힘없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 밖으로 나돌다가 결국 똑같이 외로운 또래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고 탈선의 길로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소년 범죄 사태의 원인이 되는 그들의 부모와는 만나보았는가. 그들을 맡았던 담당 교사는 만나보았는가. 단순히 기관에 기록된 자료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대한 충분하고 공정한 조사를 하였는가. 소년범이 피해 입힌 피해자들과 가족의 오늘이야기는 조명하였는가. 정말로 소년범에게 유리한 이야기만을 하고 싶지 않았는가. 조금도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이 없었는가. 취재를 하는 동안 오가며 알게 된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되어 잊은 것은 없는가.

이미 시작부터 객관적이고 이성적일 수 없는 어프로치였다.

 


*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아쉬웠던 점을 강조해 적었으나 분명 여러 좋은 점도 갖춘 책이다. 특히나 현직 기자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저자는 풍부한 사례와 다양한 데이터를, 신선한 접근 방식을 통해 제공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소년범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수집된 54956개의 단어를 빅데이터 분석 기업에게 의뢰하여 의미망 분석을 요청한 것 (p.147)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남자 소년범과 여자 소년범을 나눠 핵심 키워드를 정리, 각자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분석했다. 또한 부모를 위한 가이드라인’ (p.66)을 수록한 점 역시 현명하다고 생각했으며 사례 기사를 사용해 가해자가 성인범이었을 때와 소년범이었을 때 사람들의 인식 차이를 실험했던 것,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 형용사가 있는 자극적인 기사까지 함께 넣어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거론한 점 (p.99)이 훌륭했다. 이밖에도 한국 사회에서 극도로 신화화된 모성애에 대해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 점 (p.165)이나 여성의 정조에 관한 이야기, 낯설 수 있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과 나 역시 모르고 있었던 보호처분에 대한 기준을 상세히 적은 점들이 좋았다.

여러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시혜적 태도를 보이거나 동정하지 않는 겸손, 대중이 소년범에게 분노하는 이유를 정확히 아는 통찰력, 소년범의 말과 실제 상황에서 중심을 찾을 수 있는 이성, 이들이 가해자임을 항상 인지하고 그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역시 공정하게 조명할 수 있는 지혜. 모든 것이 부재된 글이다. 사람들의 단단한 편견에 흠집을 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단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정작 저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한 쟁점들만 다루면서 어린애들이 이렇게나 힘들었다, 어른들의 탓이다, 소년 범죄는 우리 사회의 죄다, 하고 감정적으로만 호소할 경우, 반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결속한다. 물론 사람이 적는 글인 이상 (그리고 기사에서는 적지 못한 감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 이상) 지극히 주관적인 책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정말로 저자들이 대중들의 편견에 흠집을 내고 싶었다면 책은 기사보다도 더 냉정하게 적었어야 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 책이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책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겠다. 이 시점에서 나왔어야 하는 책이며, 누군가는 소리 내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 것은 틀림이 없다. 나는 여전히 소년법 폐지에는 반대하며 처벌 강화와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는 동의하지만, 아직 어린 소년범들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 귀를 막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게임도, 영화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단막극에 지나지 않지만, 카인의 낙인이 찍힌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기엔 아직 그 등이 너무나도 어리다. 결코 감정적이어서는 안 되며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들을 비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서도, 도덕적 우월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 앞으로도 치열하게 논해야 할 문제다.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견해의 차이로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은 제자리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아닌 다음 소년범에 대한 책을 기대한다. 소년범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며 자주 토론되길 바란다.

여러 아쉬움을 안고, 개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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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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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6.10 민주항쟁에 대해 자신은 1987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정답은 다 대본에 있다고 말한 어느 88년생 배우의 인터뷰가 논란이 됐다. 언뜻 보기엔 무지몽매로 그칠 발언이 수많은 사람들의 질타와 비판으로 이어졌던 이유는 그가 말한 그 대본이 민주화운동 폄훼, 간첩 및 안기부 미화 등으로 국민청원에 오른 작이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 소설이 더욱 더 반가웠다. 단순히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글이라서가 아니다. 전작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통해 한강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결국에는 움직이게 하는 작가라는 것에 대한 강한 신뢰가, 나에게는 있었다.


 한강은 이번에도 치열했다.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조금의 왜곡도 없이 깨끗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활자보다는 영상에 가깝게 글이 재생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치밀하고 방대한 묘사들이 마치 눈 결정의 구조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워 도리어 압도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언제는 수천수만의 눈송이가 휘몰아치는 제주의 겨울 풍경으로, 또 언제는 막막한 어둠이 덧칠해진 눈밭 위에 홀로 떠밀린다. 살을 에는 극한의 추위를 느끼고, 모든 잔향과 소음이 눈송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시각과 촉각에 몰입하는 사이, 어느새 소설은 아주 깊은 곳에 내밀히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이 언급되었던 탓인지 도입에서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으로 보여 지나치게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도 했던 이 소설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몽환성을 띠기 시작한다. 마치 새의 시야를 빌린 것처럼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상으로 맺힌다. 저마다 생의 한계까지 내몰린 경하와 인선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 그 어드메에서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상태 (p.114) 로 이 작품의 마지막 주인공, 정심에게로 독자를 데려다준다.


 중간중간 제주 방언으로 적힌 이탤릭체의 문단들이 미처 삼키지 못한 덩어리들처럼 턱턱 걸렸다. 낯설게만 보이는 외딸은 섬의 언어. 신중을 기해 그 뜻을 유추하는 과정에서 귀로 듣기보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작가가 말했듯 이 소설의 짝과도 같은 『소년이 온다』를 숙명처럼 떠올린다. 전라도 방언으로만 쓰였던 먹먹한 6장을. 나는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한강이 작가로서 꾸준하게 추구해왔던 관념의 집대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검은 사슴』에서 보았던 눈 내린 연골의 적요한 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보았던 정희와 인주의 유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서 보았던 남겨진 이의 애도, 『소년이 온다』에서 보았던 어룽거리는 촛불과 새, 『흰』에서 보았던 수의가 되어버린 하얀 배내옷까지. 그녀가 이전부터 꾸준하게 해왔고, 또 해나갈 것들을 가득 담아 적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그 어떤 불같은 고통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는 꿋꿋한 사명감이 아닌, 서로의 몸에서 훼손된 채 침수되어 있던 자리들을 발견하고 느릿느릿 쓸어 만져보다 천천하게 기워가는 지극하고 다정한 사랑을 느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망설이고 고립되고 절망하고 포기하려고도 하지만, 결국에는 손을 잡을 것을 다짐하며 작품은 매듭지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잊지 않겠다는 애틋한 결의로 남긴 채로.


 물이 순환하는 것처럼 역사는 순환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모른다는 것은 방자한 태만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더욱 더 필사적이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알아야 하고, 찾아내야 한다. 작별하지 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들을 애도하기 위해. 그것이 피 흘리는 역사에서 살아서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1월에는 국립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이 소설이 내 안에서 오래도록 흐를 것이라는 반가운 예감이 들었다.



 一粒

잊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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