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에 대하여 동문선 현대신서 177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 동문선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환대에서 우선 문제되는 것은 언어의 문제다. 그것은 비단 실제적 언어의 문제만을 다룰 뿐 아니라, 언어가 간섭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나 제도를 포괄한다. 예컨대 우리가 법에 대해 무지하다면 법정에서 쓰이는 법률용어들은 우리를 낯설게하는 따위다. 주인은 객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언어로의 번역을 강요한다. 주인은 외국인에게 우리의 주인 자신의 언어를 이해할 것을 강요한다. (64-65)


이방인과 절대적 타자 사이의 차이는 이름의 유무다. 절대적 환대는 주인이 자신을 개방하고 성과 이름을 가진 이방인 뿐 아니라 이름 없는 절대적 타자에게도 장소를 제공하려 한다. 이런 절대적 환대의 법은 권리의 환대(조건적 환대)와 결별할 것을 명령한다. (70-71)


<이방인의 문제>에서 절대적 환대와 권리적 환대는 다시 <환대의 발길>에서 환대의 법과 환대의 법들로 이해할 수 있다. 환대의 법은 환대의 법들 위에 있다. 그러나 환대의 무조건적인 법은 환대의 법들을 필요로하고, 법들을 요청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요한다. (103-105)


언어가, 모국어가 한 인간의 마지막 고향이고 보루라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데리다는 모국어라는 것이 일종의 소유물, 아니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판타즘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언어에 뿌리내리며 사고하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언어 자체는 나로부터 출발해서만 발생한다. 언어는 내가 출발하는 지점이면서 또 내가 떨어져 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111-113)


오이디푸스(이방인)가 테세우스에게 한 부탁 때문에, 오이디푸스의 딸들은 아버지의 장지를 찾지 못하고 또 장사지낼 수도 없게 된다. 그녀들은 적절하게 애도할 공간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애도할 공간과 (특정한) 시간의 상실로 말미암아 오이디푸스는 딸들에게 애도의 무한한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말하자면 그는 한 번도 애도받지 못했으면서도 영원히 애도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113-114)


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나 언어의 문제를 논하고 있는가? 먼저 안티고네의 애통과 눈물을 통해 데리다는 이방인 되기의 극치, 이방에서 완전히 이방인 되기의 한 문제를 건드린다. 오이디푸스 자신이 맹인이 되어 세계로부터 자신을 단절하고 이방인이 되었다면, 그의 죽음과 장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그의 딸 안티고네를 실명(失明)케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결국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어떤 눈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하간 보이는 장지가 이방인을 조국으로 귀한하게할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는 반면, 오이디푸스의 보이지 않는 장지, 토포스 없는 장지의 상실은 그를 애도하거나 이장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그를 완전한 이방인으로 남게 한다. 아울러 데리다는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주인과 이방인 사이의 확연한 선들을 모호하게 하고, 주인이 이방인에게 있어 온전히 주인되지 못하고 도리어 주인 자신이 낯선 이방인이 되는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데리다가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하며 말한대로, 주체는 주인이면서 동시에 인질이다. 주체는 그 자신의 주인이 되면서 동시에 그 자신에게 종속되어 기꺼이 인질로 남는다. 오이디푸스와 테세우스의 관계를 보더라고 오이디푸스는 분명 이방인으로 테세우스에게 장지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부탁함으로써 그를 인질 삼는다. 


데리다가 알제리인들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관해 잠깐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이 책의 주제인 환대가 데리다 자신이 바라보는 실제적 문제와 환경들을 염두에 두고서 고찰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환대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정작 어떤 환대를 베풀 것인지, 또는 어떤 환대가 진정한 환대인지에 대해 데리다는 확정을 유보한다. 말미에서 데리다는 칸트의 절대적 정언명령을 절대적 환대에 비하면서 과연 절대적 환대라는 것이 윤리적, 도덕적 가치 또는 인간의 실제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행해질 수 있는지 묻는다. 데리다는 창세기의 롯과 소돔성 비류들의 대화를 통해 절대적 환대가 때로는 파괴적이고 무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데리다가 정한 주제처럼, 우리에게 아직 절대적 환대는 요원하다. 환대는 없다. 나를 열고 너를 열어 우리 안팎의 이방인을 완전히 제거한 그런 환대는 아직까지 있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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