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술라르는 사유, 뇌의 이성적 활동이 전개하는 합리적(?) 생각말고, 상상, 몽상, 바슐라르의 언어로 풀자면 시적 몽상을 경험하고자 한다. 그의 가장 만년작인 이 촛불은 촛불이라는, 혹은 촛불이 타오른다는 객관적 현상이나 사실 말고, 촛불이 인간에게 어떤 몽상의 가능성을 여는지, 또 이 가능성을 따라 추적한 느낌들은 어떤 것인지 열거한다.


바슐라르는 정신의 키아로스쿠로(명암 배분, 대비)가 몽상이라 뜻매김한다. 회화에서 때로 빛과 어둠움의 대조가 극대화되듯, 몽상가는 몽상이라는 빛과 어두움의 경계를 지긋이 바라보고 빠진다. 


주베르의 "불꽃은 축축한 불이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어떤 몽상의 장을 마련해준다. 그것이 사유라면 하나의 역설에 불과할 것이고, 이미자라면 덧없이 금새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35)


불꽃은 위로 흐르는 모래시계다.(36)


비주네르의 불빛과 흰빛 그리고 불의 도덕성, 더럽고 불순한 다른 색의 불들 사이로 수직상승하는 흰빛은 정화된 인간의 어떤 정신을 말한다. (41-43)


불꽃은 미미한 소리를 낸다. 불꽃은 괴로워하는 존재다. 모든 작은 고통은 세계의 고통을 나타내는 기호다.(55)


제3장과 제4장은 수직 상승하는 불과 식물의 생장 사이의 유비적 관계를 문학작품들 속에서 더듬는다. 활짝 피는 꽃이 불이라는 문학적 상상들은 단순히 몇 명의 작가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고 비교적 보편적 유비이해인 것 같은데 이를 종교적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이해하는 앙리 코르뱅Henry Corbin의 관점이 독특하다.


제5장에서 바슐라르는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램프와 각각의 램프들이 개인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재밌는 점은 램프와 달리 전구가 가진 모종의 삭막함,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 속에서 기술이 몽상을 억압하는 양상을 잘 캐치한 대목에서 보인다. 장의 마지막에 앙리 보스코의 <히아신스>라는 작품을 예로 들며, 타인의 램프에 대해 말하는데 이를 빌려 작가는 상상의 연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좁혀지지 않는 어떤 고독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이가림 시인이 75년도에 초판 번역한 것을 재판한 책, 

김병욱씨의 번역본과 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