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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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사랑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어휘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우리 몸 안에서도 다르게 느낀다. 사랑은 누군가를 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웃게 한다. 누군가를 화나게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슬프게도 한다. 누군가를 흥분시키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나른한 만족감에 잠들게도 한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발달한 아이들이라도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성인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나쁜 결정을 내리는 까닭은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단이 아직 없을 뿐이다.

그 누구도, 우리 중 그 누구도 한 사람에게 온전한 자아를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 자체 혹은 상대에게 느끼는 우리 감정을 보고 사랑을 한다. 보통 단점은 참고 넘기며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생각만 하고 말 때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들여다봤을 때 내가 바라는 내 모습, 반드시 봐야 기분이 좋아지는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면 사랑의 허리뼈는 뚝 부러져버린다.

상을 주겠다는 약속만큼 손님을 쉽게 끄는 장사가 또 있을까. 상장이나 표창은 다 광고물이고, 그런 걸 대놓고 진열하는 의사들은 인간 광고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다 다르다. 따라서 치료 과정도 다 달라야 한다. 나는 특정 치료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효과’란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돕는 것.

환자들은 나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내 배에 주먹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경험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채워 넣는다.

우리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다.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오직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우리의 자리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목표와 긍지와 자아 관념을 심어준다. 우리는 부모에게 조건도 논리도 없는, 이성을 뛰어넘은 사랑을 바란다. 부모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런 사랑으로 왜곡돼 있길 바라며, 우리가 걷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오른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말해주길 기대한다. 물론 언젠가 우리의 점토 기린이 대단한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 구석에서 그 기린을 꺼냈을 때 우리는 부모가 이 못생긴 점토 덩어리를 보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워하고 뼈가 으스러져라 꼭 껴안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깨우쳐주는 것보다 훨씬. 우리의 평범함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기시켜줄 사람은 평생 차고 넘칠 데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죄책감을 떠넘기고 비난하고 싶을 때, 또는 죄과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경우 최대한 상대를 나쁘게 보고 최악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세상에 모호하지 않은 사랑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디자인이 돼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꺼이 죽을 의지가 있는 것은 자식이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란 것을 뼛속 깊이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대신 죽어줄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자식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혼자이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어쩌면 이성이나 양심 혹은 공포보다도 강할 것이다.

이제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거짓말이란 세균으로 감염시키려는 참이었다. 순수한 진실을 그대로 돌려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대신 내 사악한 계획에 따라 이기적인 목적으로 진실을 타락시킬 작정이었다. 내 아들을,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별거 아니니까 이것만 빼고 나머지는 그대로, 나머지는 제대로 찾아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하나의 타락이 진실의 종말이 될 수도 있는데. 한번 감염되면 건강한 살점이 다 죽어 없어질 때까지 세균이 파먹는다. 진실은 죽어버린다. 절망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보란 듯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 아이러니.

우리는 동물과 그리 멀지 않다. 우리를 구분해주는 것은 아주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후회를 통제하기 위해, 후회로부터 행복을 빼앗기지 않으려 날마다 사투를 벌인다. 가끔은 그냥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일하고,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뼈저리게. 숙달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후회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잠이 들면 후회가 다시 왕좌로 복귀한다. 아침이 오고 눈을 뜨면 다시 이 무자비한 독재자의 노예가 돼 있다.

두려움은 사라졌다. 선반 위 상자는 텅 비었다. 어둠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얼룩을 씻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창조한 저 결함 많지만 멋진 생명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늘 속에서 더럽게 살아가도 좋다고 체념했다.

어떤 감정이든 무조건 다 계속 느껴야만 했다. 이게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알겠는가? 감정들이 하나의 기억을 찾아 유착됐다. 이제 우리는 그 감정들의 안내를 받아 다른 감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 감정들을 따라 기억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다. 그저 이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3년을 사귀었는데, 사랑한다고 그렇게 수없이 고백하고 다정하게 사랑을 나눈 순간들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동안 내내 애정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단 말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헤어지더라도 그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못 믿겠어요. 어떤 감정도, 어떤 고백도, 어떤 사랑도 말이에요. 전부 다 헛소리예요. 그냥 호르몬이고, 욕망이고, 욕구고, 영혼에 난 구멍을 때우는 것에 불과하다고요. 우리는 전부 서로 이용만 하고 있어요, 안 그래요? 겉과 속이 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요.

사람들은 서로 이용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이상이 되기도 해요. 유약한 사랑, 욕망으로 치닫는 사랑, 구멍을 때우기 위한 임시변통의 행위들이 그 이상으로 변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 순간적 유대감, 건물 모퉁이를 지나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처럼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덮치는 이런 감정들이 머물러 더 항구적인 유대를 지탱하는 닻이 되기도 하고요. 대체로 사람들은 이런 걸 안정된 관계라고 하죠. 중요한 건 유대고, 유대감을 향한 욕구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다 그렇듯 거기서부터 시작해 친절과 배려로, 사랑의 행위로 소중히 가꿔나가는 거예요.

공감 능력은 우리 인간성의 핵심이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삶은 고통이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웬디 워커, 김선형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293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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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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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재밌게 읽어서 잔뜩 기대하고 읽었는데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해 안타깝다. 뭐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좀 다르겠지만 암튼 주관적인 평가이니까.

그나저나 표지 디자인은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ㅠ

한마디로 돈 주고 사서 보기는 정말 아까운 책이다. 과연 다른 작품을 손에 쥐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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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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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짜로 주어지는 책은 재미가 없다는 편견을 산산조각 내버린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솔직히 재미거리 내지는 흥미거리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추천한 나를 욕할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거나 자극적인 무엇을 담고 있지도 않다. 그냥 나카노네 고만물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곳에서 파는 물건과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히토미의 시선을 통해서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이 사는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마치 고만물상에 들어서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즐기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다케오와 히토미의 어설픈 사랑이야기나 고만물상 주인 나카노와 그의 누나 마사요의 특이한 성격 등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옆집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물론 일본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문화적인 차이는 배제하고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만큼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은 없어보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진짜로 나카노네 고만물상이 존재한다면 한번쯤 들려보고 싶고 마치 그곳에 가면 책을 통해 정든 나카노, 다케오, 히토미, 마사요 등을 만나게 될 거 같은 그런 친근함이 생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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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 이후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은 것 같다. 회사일이랑 영어공부에다가 운동까지 병행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을 내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하던 영어공부를 포기하게끔 만든 책이 있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면 장선거는 오쿠다 히데오의 최신작이고 공중그네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중그네에서는 야쿠자 중간보스, 공중곡예사, 의사, 야구선수, 작가들이 이라부의 환자였는데 면장선거에서도 그 대상이 이전만큼이나 독특하다. 구단주, 안퐁맨, 여배우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방법으로 치료(?)해낸다.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현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역시 그랬구나 하게 된다.

마지막 중편에 속하는 면장선거에서는 현실에는 정말 있을 수 없는 매우 과장된 면장선거를 하는 섬으로 이라부가 파견을 가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이라부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왔었는데 면장선거에서는 본인 스스로가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이라부 역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결국 세상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다.

암 튼 이라부가 너무 친근해져 버렸다. 마치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를 찾아가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고 그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오쿠다 히데오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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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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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프랑스 소설 구해줘(기욤 뮈소, 윤미연 옮김/밝은세상)를 구입할 때 이벤트 행사로 같이 따라왔던 책인데 읽으면서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던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주인공 타네 씨가 겪은 일들이 하도 농담같고 소설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과연 어떤 사람들이 등장할 것인지 궁금해서이기도 했고 결국 타네씨의 집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다. 특히 타네씨를 통해서 만나게된 사람들은 내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라면 절대 타네 씨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너그럽게 대해주지 못했을 것 같다. 당장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쓴다거나 아예 직접 모든 것을 다했을 것이다. 안되면 그냥 포기하고 살던지...
종종 우리의 인생이 건축물을 세우는 것에 비유되거나 공사중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만큼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타네 씨가 헌 집을 새롭게 꾸미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이 결코 혼자서만을 이뤄질 수 없으며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고쳐진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니 어떤 사람을 통해서 얻은 피해가 단순히 피해와 손해만이 아니라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것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누군가로 인해서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피해나 손해를 줌으로써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만드는 사람인가? 아니면 유익을 주는 사람인가? 후자로써 살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평생 고민해야할 질문일 것이다.
내가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짧은 소설 책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참 많다. 이렇게 책을 읽고나서 조금이나마 고민하게 만드는 그리고 고민하는 이 가을이 너무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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