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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3) 애러비(Araby)

 

<범례> * 이 글 시리즈의 처음인 더블린 사람들 (序) - 꼼꼼한 텍스트 읽기 참조.

김병철: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3판 1쇄, 1999. 2

김종건: 더블린 사람들 비평문, 범우사, 2판 4쇄, 2005. 8

김정환: 김정환 성은애, 더블린 사람들, 창작과 비평사, 2쇄 1995. 9

민태운: 조이스의 더블린: 더블린 사람들 읽기, 태학사, 2005. 4

전은경: 전은경 홍덕선 민태운, 조이스 문학의 길잡이: 더블린 사람들, 동인, 2005. 6

Gifford: Don Gifford, Joyce Annotated: Notes for ‘Dubliners’ and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Brown: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에 있는 테렌스 브라운 교수의 서문(introduction) 및 주석(notes).

(대조검토용으로 표시하고 있는 원문의 페이지도 이 책의 것이다.)

Companion: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Gifford, Brown 외국 저자의 책이나 영문 웹사이트의 한글 번역은 모두 필자가 )

 

 

1. 맨 처음 문장을 보자.

 

North Richmond Street, being blind, was a quiet street except at the hour when the Christian Brothers' School set the boys free. (p.21)

 

노스 리치먼드 가()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카톨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파해 나오는 시간 외에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병철)

노드 리치먼드 가()는 막다른 골목으로, 기독형제수도회에서 학생들이 파해 나오는 시간 외에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종건)

노쓰 리치먼드 가()는 막다른 길이라서, 기독형제학교에서 학생들을 풀어놓은 시간말고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정환)

카톨릭 학교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나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민태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파할 시간이면 (전은경)

 

the Congregation of Christian Brothers 쉽게 Christian Brothers 1802년 아일랜드에서 평신도(layman)들에 의해 빈민층 아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결성된 카톨릭단체로서, 이들이 세운 Christian Brothers School은 아일랜드 전국에 걸쳐 여러 곳에서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초등학교였지만 점점 고아원, 농아학교, 중등, 기술 교육 과정 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했, 이 소설의 시기에는 더블린에만도 여러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조이스 본인도 1893년 이 학교(노스 리치몬드 카톨릭형제수도회 초등학교)에 잠시 적을 둔 적이 있지만 스스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던지 그의 자전적 소설 어디에서도 이 부분을 다룬 곳은 없다. (Gifford, pp.42-43, Brown. p.251, WikipediaCongregation of Christian Brothers 항목). Portrait에 보면, 스티븐( = 조이스)의 부모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I never liked the idea of sending him to the christian brothers myself, said Mrs Dedalus.

Christian brothers be damned! Said Mr Dedalus. Is it with Paddy Stink and Micky Mud?

(James Joyce,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edited with and Introduction and Notes by Seamus Deans, Penguin Classic, 1993, p.74)

애를 크리스천 브라더즈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더덜러스 부인이 말했다.

크리스천 브라더즈라니, 말도 말아요. 더덜러스씨가 말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거나 진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이나 다니는 학교지.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상옥 역, 민음사, 1 21, 2007. 2, pp.112-113)

 

또 여기서 set the boys free라는 조이스가 선택한 단어를 보라. set free해방시키다라는 뜻이라서, 이는 속박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무료의 교육기관인지라 이 학교 과정은 힘들고 종종 비인간적(strenuous if not always humane)(Brown, p.251)이었다고 한다. 김정환 역본이 제일 낫다.

 

 

2. (房) 이야기를 해보자.

 

and the waste room behind the kitchen was littered with old useless papers. (p.21)

 

부엌 뒤에 있는 다락방에는 헌 휴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김병철)

부엌 뒤에 있는 창고에는 날고 쓸모 없는 휴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김종건)

부엌 뒤쪽의 다용도실은 낡고 쓸모 없는 종이로 가득 차 있었다. (김정환)

부엌 뒤쪽의 창고방 (전은경)

 

여기서 waste는 human waste( = excrement)이다. 다시 말해 waste room은 화장실이다. 왜 헌 종이들이 늘려져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화장실을 이렇게 부르지는 않고, 산업 폐기물 처리에 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여, 공장이나, 병원 등의 폐기물 보관소라는 용어로 쓰인다.

 

하나 더 보자. 몇 줄 뒤의 drawing room과 한 페이지 뒤의 front parlo(u)r이다.

 

The former tenant of our house, a priest, had died in the back drawing-room. (p.21)

Every morning I lay on the floor in the front parlour watching her door. (p.22)

 

우리 집에 전에 세들었던 사람은 신부였는데, 그는 뒤 응접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침마다 나는 정면 응접실 마루에 누워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김병철)

 

우리 집에 전에 세들었던 사람은 신부였는데, 그는 뒤 응접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매일 아침 나는 응접실 마루에 누워서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김종건)

 

우리 집에 전에 세들어살던 사람은 사제였는데, 뒤편 거실에서 죽었다.

매일 아침 나는 길 쪽의 응접실 마루에 누워서 그녀의 집 문을 살폈다. (김정환)

 

질문은 첫째, 응접실거실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둘째, 그럼 front parlour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보통 drawing room응접실로 번역하고, 거실living room을 번역해서 쓰는 말이므로 처음 질문은 drawing roomliving room은 같은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전을 찾다 보면, parlor, sitting room, lounge, salon 등 관련된 온갖 단어가 나오는 데다가 사전들끼리 설명도 달라서 혼란이 심하다. 필자가 여러 가지 영어, 영한사전, 백과사전을 뒤져봐도 속 시원한 설명은 찾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drawing roomwithdrawing room이 줄어서 된 것인데, 16세기 궁중이나 귀족가에서 공식적인 접견(reception) 또는 식사 후에 잠시 물러가서 쉬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응접실, 객실이 가장 가깝다(프랑스의 salon). 요즘 이 말은 영국에서는 한 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방으로 손님을 접대할만한 방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미국에서는 쓰이는 일이 별로 없다. 한편 이 시대에도 가족들이 모여서 담소를 하든지, 방문한 허물없는 이웃 또는 친구 몇 명과 차를 든다든지 하여, 주로 낮에 식구들이 같이 쓰는 공간이 별도로 있었으니, 이를 parlor, sitting room(이 용어는 영국에서 현재도 거실로 쓰인다), lounge, front room, front parlor, morning room이라고 한다.

 

한편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된 living room은 근대사회 이후에나 맞는 개념으로, 소형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 무슨 drawing room 따로, living room 따로 할 수도 없는 데다가, 무슨 거창하게 격식을 따지는 손님접대를 할 리도 없고, 가족들이 모여서 TV를 시청하거나, 독서와 담소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간단한 다과도 나누는 공간이 바로 living room이니 거실이 가장 적합하며, 사회, 가족, 가옥구조의 변화에 따라 옛날의 drawing roomsitting room, parlor, front parlor 둘이 합쳐진 개념으로 봐야 한다. 영국에서는 주로 sitting room이라 한다.

 

일부 영영사전*에서 drawing room = (formal) living room이라 설명한 것은 바로 위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현대의 거실(living room)을 격식을 갖춘 옛날 문구로 표현하면 바로 drawing room 비슷한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위에서도 봤듯이 예전 소설에서 drawing room을 바로 거실로 생각하면(김정환 역본) 곤란하다.

* 예를 들어, Longman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 and Culture, MacMillan English Dictionary for Advanced Learners.

 

특히 이 단편에서처럼 한 집에 이 두 개의 방이 따로 있으면 그 때는 각각 drawing room = 응접실, 객실, front parlor = (전면) 거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첫째 문장은 뒤쪽 응접실/객실, 둘째 문장은 (앞쪽, 전면) 거실이 되어야 하지만, 맞게 번역한 책은 없으며, 전은경의 해설서(뒤쪽 거실, 현관 = hall)도 틀렸지만, 민태운의 해설서(뒤쪽 응접실, 거실)만 맞게 되어 있다.

 

 

3. When we returned to the street, light from the kitchen windows had filled the areas. (p.22)

 

우리들이 다시 큰 거리로 돌아왔을 때는 부엌 창문에서 새어 나온 불빛은 벌써 그 일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김병철)

우리들이 큰 거리로 되돌아오자 부엌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그 근방 일대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김종건)

우리가 거리로 돌아올 때면, 부엌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이 그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정환)

 

이런 area같이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가 가장 틀리기 쉬운 단어이다. 엣센스영한사전을 보자. area 6번 항목은 (英) 지하실(부엌) 출입구(채광 통풍을 위한 지하층 주위의 빈터. (美) areaway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사용된 뜻이다. 거리 일대가 환한 것이 아니라 부엌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 출입구부분 주위만 동그랗게 환한 광경을 떠올리면 된다. 이 단어는 뒤에 나올 단편 두 건달(Two Gallants)에서 다시 사용된다. 이는 조이스의 에피파니를 생각할 때 기본개념이다.

 

 

4. Or if Mangan's sister came out on the doorstep to call her brother in to his tea (p.22)

 

혹은 맹건의 누나가 남자 동생에게 다과를 먹으라고 부르러 문간으로 나온다면 (김병철)

또는 맨건의 누이가 문간에 나와 차를 마시라고 동생을 불러들인다면 (김종건)

아니면 맹간의 누나가 현관 층층대로 나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남동생을 부를 때면 (김정환)

망간의 누이가 문가에 서서 간식을 먹으라고 남동생을 부르곤 한다. [여기서 본문의 tea란 영국에서는 오후 5시경쯤에 차와 과자를 먹는 간식을 말한다.] (전은경)

 

tea 오후 4시경 먹는 다과(plain tea, low tea, afternoon tea. 차와 과자로 된 간식)일 수도 있고, high tea( = meat tea)라는 늦은 오후 또는 이른 저녁(오후 5시-6시 사이)에 먹는 차를 곁들인 식사(meal)로 보통 고기도 곁들여지며, 위의 afternoon tea와 저녁식사를 합친 개념일 수도 있어, 저녁식사를 말할 때도 있다. (On farms or other working class environments, high tea would be the traditional, substantial meal eaten by the workers immediately after nightfall, and would combine afternoon tea with the main evening meal.). 이는 이 단락 맨 앞의 When the short days of winter came, dusk fell before we had well eaten our dinners.”라는 문장에서 확인된다. 겨울이 오자 해가 짧아지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놀던 아이들은 저녁 먹으라고 불려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요즘 영국의 high tea’는 고급으로 잘 차려진 ‘afternoon tea’에 쓰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high’의 여기서 뜻은 ‘low round table’에 앉아 먹던 ‘low tea’와는 달리 ‘high table’이라는 높이가 높은 저녁식탁용 테이블에 앉아먹는 본격적인 식사라는 뜻인데, ‘high’고급이란 뜻으로 속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해진 뒤의 다과란 이 시대 더블린 하류층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확인을 위해 이 글의 뒤쪽 대목을 보자. ‘애러비바자회(5월에 열렸으므로 위에서 말한 겨울과는 달리 꽤 해가 길어졌을 것이다)에 가기로 한 토요일 저녁 아저씨가 돌아오지 않고 이웃 부인이 와서 수다를 떠는 장면이다.

The meal was prolonged beyond an hour and still my uncle did not come. Mrs Mercer stood up to go: she was sorry she couldn't wait any longer, but it was after eight o'clock and she did not like to be out late, as the night air was bad for her.

저녁식사가 한 시간 이상 지연되고 있는 시간이 저녁 8시경이니까 대략 오후 6시반~7시 사이에 저녁을 먹는다고 보인다. 계절을 감안하면 이 시간이 겨울에는 오후 5~ 5시반 사이였을 것이고 벌써 어두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여러 해석대로 간식인 다과를 먹고 금방 (또는 연달아)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tea’ 이야기는 나중에 작은 구름(A Little Cloud)”에서 한번 더 하겠다.

 

17, 8세기 영국의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고, 다음 날 정오쯤 일어났으며. 이 때 먹는 것이 원래 아침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dinner’였고, 이때부터 오후 해질 때까지를 ‘morning’으로 불렀다고 하니, ‘dinner’ 역시 사용시기, 사회계층, 국가 등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 ‘정찬(正餐)’ 4가지 의미로 다 사용될 수 있다. 이 식사 명칭의 역사적 변화는 사회계층, 노동, 직업의 변화, 조명기구의 발달과 맞물려 생각보다는 복잡하니까, 정확한 의미가 필요한 사람은 백과사전(브리태니커나 위키피디아 같은 것)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 의견으로는 김정환 역본만이 제대로 번역했다.

 

 

5. the shrill litanies of shop-boys who stood on guard by the barrels of pigs' cheeks (p.23)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통 옆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점원들이 되풀이해서 물건 사라고 째지는 듯이 외치는 아우성소리 (김병철)

돼지의 볼살을 넣은 통 옆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점원들이 되풀이하는 날카로운 외침 소리 (김종건)

즐비한 돼지 엉덩잇살을 지키며 서 있는 상점 사환아이의 새된 장광설과 (김정환)

 

한 사람(김병철)은 소위 회피전략을 썼다. 즉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것이다. 한편 김종건은 문자 그대로 번역을 했고, 김정환은 필자가 보기에 조금 더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꼴이 되었다. cheek, 볼이지만 도대체 돼지 볼살이 뭘까 생각하다가, cheek에는 buttock(속어로 엉덩이. 엉덩이 두 쪽이 뺨 두 쪽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의 뜻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cheeks = buttocks. 특히 후자가 복수로 잘 쓰인다), 돼지의 엉덩이 부위 살이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pigs cheeks돼지머리도 아닌데, 돼지머리를 통째 갖다 놓고 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돼지머리 고기도 아닌 것이 돼지머리를 삶아 누른 편육은 우리나라 음식이지 서양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상 돼지고기 볼살(그 계통 전문가들은 모두 뽈살이라 그럴 것이다)이라 할 수 밖에. 필자가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외국의 웹 사이트를 찾아본 결과는 다음과 같으며, 돼지 엉덩이라는 부위는 따로 없고 모두 뒷다리에 포함된다는 것도 알았다. 이래서 영어가 어렵다는 거다.

As suggested by the name, pork cheek is a rich, highly flavorful cut that originates in the hog’s cheek. Because the cheek muscles do considerable chewing, the cut is typically rich in fat.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 돼지의 볼은 식용 돼지의 볼에서 나오는 풍부한 풍미를 가진 부위다. 볼 근육은 씹는 동작을 많이 하므로 전형적으로 지방질이 많다.)

 

 

6. But my body was like a harp and her words and gestures were like fingers running upon the wires. (p.23)

 

그러나 내 몸은 거문고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거문고의 줄을 튕기는 손가락과도 같았다. (김병철)

 

하프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악기로 이 단편집 여러 군데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두 건달(Two Gallants)룰 보라. 그런데 왜 여기서만 갑자기 아일랜드의 상징 하프가 우리나라의 거문고로 되었을까? 이렇게 책 내용을 해당국 사정에 맞게 고쳐서 번역하는 것을 번안(飜案. adaptation)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이 책의 다른 부분도 다 바꿔야 할 것이다.

 

 

7. One evening I went into the back drawing-room in which the priest had died (p.23)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저녁 나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김병철)

 

원문의 밑줄 친 관계사절의 선행사는 응접실이다. 따라서 어느 날 저녁 나는 신부가 임종했던 바로 그 응접실로 들어갔다라고 해야 맞다. 다른 두 역본은 모두 맞게 되어 있다.

 

 

8. One evening I went into the back drawing-room in which the priest had died. It was a dark rainy evening and there was no sound in the house. Through one of the broken panes I heard the rain impinge upon the earth, the fine incessant needles of water playing in the sodden beds. Some distant lamp or lighted window gleamed below me. I was thankful that I could see so little. All my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murmuring: `O love! O love!' many times. (p.23)

 

밑줄 친 부분은 영미문학, 좋은 번역을 찾아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창비, 2005. 5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부분이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나의 모든 감각은 감춰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으며, 나는 내가 이런 감각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느끼고, 손바닥을 마주대고 누르며, 「오 사랑! 오 사랑!」하고 수없이 속삭이며 몸을 떨었다. (박시인* 220면)

 

나의 모든 감각 너울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감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아서 나는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두 손을 맞대고 「오오 사랑이여, 오오 사랑이여」하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여석기∙나영균* 236면)  (*박시인, 여석기∙나영균, 이 두 번역본에 관해서는 이 글 바로 앞의 “더블린 사람들 (2) 우연한 만남”에서 언급해 두었다)

 

나의 오감(五感)은 그 오감을 감춰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고, 또 그런 감각에서 막 빠져나와야겠다고 느낀 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오 사랑! 오 사랑!” 하고 몇번씩 중얼거리면서 두 손을 꽉 쥐었다. (김병철 38면)

 

나의 모든 감각은 그 자체를 감추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듯 느껴졌고, 나 스스로 그 감각으로부터 막 빠져 나와야겠다고 느낌이 들자, 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두 손을 꽉 쥐며 오 사랑! 오 사랑!” 하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김종건 45면)

 

나의 모든 감각들은 스스로 베일에 가려지기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제 막 그 감각들로부터 빠져나오려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내 양 손바닥을 부르르 떨 정도로 서로 꽉 맞잡았다. 몇번씩이고 이렇게 중얼대면서. 오 사랑! 오 사랑이여!” (김종건 45면)

 

원문의 강조 부분은 예컨대 The Dead 마지막 부분의 swooned slowly처럼 감각에서 일탈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웅얼거린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감각이 사라지려는 느낌을 원하다가(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그때가 오자 일종의 오르가슴을 느낀 셈이다. 김종건 역본은 나 스스로 그 감각으로부터 빠져나와야겠다는 느낌이 들자라는 식으로 원문과는 반대로 읽히도록 옮겨놓았다. 김병철 역본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이며 여석기∙나영균 역본 역시 떨어져 나가려는 느낌이 들자 이것을 막으려고 한다는 의미로 읽히기 쉽게 번역되었다. 이에 비하면 김정환∙성은애 역본은 “feeling that I was” 분사구문을 “느끼면서 …했다”로 처리했는데, 이와 같은 단순한 처리가 오히려 원문의 뜻에 가장 근접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박시인 역본도 “느끼고, …했다”로 단순하게 처리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느끼면서’와 달리 ‘느끼고’로 처리하여 그 전후연관과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전달되지 않으며 앞의 다른 번역들과 같은 뜻으로 읽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앞의 책, pp.417-419)

 

 

번역을 보고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며, 또 그 아래의 비평을 읽고 이해가 높아졌는지? 필자가 보기엔 모두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아래에 조금 얼굴 붉힐 표현은 있지만 제대로 해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한 Wallace 교수(이 글 시리즈의 맨 앞 참고)의 주석을 보자. (굳이 옮기지는 않는다.)

 

This paragraph presents the classic masturbatory situation for a young boy: he is left alone in the house on a rainy evening. But his religious training has so suppressed his sexual feelings that his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note the religious term -- veil -- associated with nuns taking orders)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slip, obviously, into sexual activity)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this apparently is a substitute for pressing his palms around his penis) and, "murmuring" (again, an association with murmuring prayers in church) "'O love! O love!' many times." The ejaculation here is a confused mixture of the religious and the sexual, with the religious totally hiding the sexual in the mind/body of this Dublin Irish Catholic boy.

(http://www.mendele.com/WWD/WWDaraby.notes.html#one)

 

 

그러나 필자는 위 월러스 교수의 주석과도 다른 해석을 해보겠다.

 

All my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믿으면서, 특히 사랑하는 순결한 성모마리아 같은 소녀가 있으면서 또는 그녀를 대상으로 자위행위를 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모든 감각은 스스로 베일로 감추고 싶어했다.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여기서 them은 앞의 senses, 즉 쾌감을 실제로 느끼는 온 몸의 감각이다. 오감(五感) 중 촉각이 위주겠지만 머리 속으로는 5감이 다 동원될 수 있다. 내가 쾌감의 감각들에서 막 미끄러져 나오려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오르가슴이 막 지나간다는 걸 느끼면서. 위 월러스 교수의 해설과는 정반대인데, 교수는 감각에서 빠져 나와 성적 행동으로 빠져든다고 해석했다.

(2) 오르가슴이 막 오려는 걸 느끼면서 하던 짓을 멈추고(중도에 행위를 그만 둠)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murmuring: `O love! O love!' many times. :

(어쨌든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오 사랑, 오 사랑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양손을 맞잡고 속죄의 기도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위 월러스 교수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작으로 해석했지만, 위의 한국어 번역본들을 포함해서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다는 정답은 없다. 각자, 어느 것이 가장 상황에 맞는구나 하고 나름대로 짐작을 하면 그뿐이다.

 

 

9. `It's well for you,' she said. (p.24)

드디어 맹간의 누나가 애러비라는 바자회에 갈 거냐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고, 자기는 수녀원(아마 수녀원 부속학교에 다닐 것이다) ‘피정(retreat)’ 때문에 못 간다며, 소년에게 하는 말이다. “It’s well for you”“You’re lucky”의 아일랜드식 영어(Irish English)이며, 질투와 씁쓸함을 암시한다. (Gifford, p.46).

 

넌 가보는 게 좋을 거야하고 그녀는 말했다. (김병철)

넌 참 좋겠다.” 그녀가 말했다. (김종건)

넌 좋겠다.” 그녀가 말했다.

 

김병철 역본처럼 You should go, Why dont you go?는 너무 밋밋하고 계략이 없는 번역이다. 김병철, 김종건(바로 앞 소년의 말 그런데 왜 못 가지?)은 둘 사이를 친구처럼 서로 반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했는데, 김정환(그런데 왜 못 가요?) (소년이 연하로) 소녀에게 경대(敬待)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친구 맹간의 누나(물론 이 것이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맹간이 소년보다 어릴 수도 있기 때문에)라는 점, 이 시기 사춘기 소년들의 연상을 향한 연모(친구 누나 한번쯤 사랑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등을 감안하면 김정환 쪽이 훨씬 자연스럽다.

 

한편 이 근방부터 나오는 bazzar라는 단어를 김종건처럼 시장, ()으로 번역하는 건 좀 이상하다. 물론 이 단어가 중동의 시장에서 온 말이지만(페르시아어로 바로 시장(marketplace)이라는 뜻이다), 이게 다른 나라에서도 똑 같이 사용되지는 않아 일반적인 시장보다는, 풍물시장, 자선시장, 자선판매, 바자회, 바자 이렇게 사용되는 것이 보통 아닌가? 바로 앞에 소년이 숙모를 도와 장 보러 가는 것이 나오는데, 이 시장과 바자회는 스토리 상으로나 상징하는 의미상으로도 구분이 필요한데, 둘 다 시장으로 하면 구분이 안된다.

 

 

10. My aunt was surprised, and hoped it was not some Freemason affair. (p.24)

소년이 토요일 밤 애러비 바자회에 간다니까 숙모가 놀라는 장면이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무슨 비밀결사에라도 들어간 게 아니냐고 했다. (김병철)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무슨 비밀결사에라도 참가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건)

아줌마는 깜짝 놀랐고, 무슨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결사가 아니었다면 좋겠다고 했다. (김정환)

 

얼마 전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라는 책 때문에 프리메이슨이 주목을 받았는지라 이 단체가 뭔지는 굳이 설명할 것은 없지만, 이 단체는 신교(Protestant) 또는 무신론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아일랜드의 카톨릭 사이에서는 상당히 수상한 단체로 의심받고 있었으며, 특히 이 단체는 지금 이야기보다 2년 전인 1892년 5월 실제로 바자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금년 애러비 바자회를 이것과 착각한 카톨릭교도 아주머니가(애러비라니까 이름만 비슷했지 아무 관계도 시를 읊으려는 아저씨나 부창부수夫唱婦隨인 꼴) 혹시 그 바자회가 프리메이슨 행사(Freemason affair)가 아니냐고 놀라며 반문하는 것이지, 바자회에 간다는 사람더러 생판 무슨 비밀결사에 들었느냐고 의심하는 장면은 아니다.

 

 

11. As he was in the hall I could not go into the front parlour and lie at the window. I left the house in bad humour and walked slowly towards the school. (p.24)

아저씨가 현관(보통 전면 거실과 붙어 있다. 그래서 전면이란 말을 쓰는 것)을 점거하는 바람에 소년이 아침마다 하는 성스런 의식인 전면 거실에 누워 맹간 누나 학교 가러 나오나 보다가 쫓아가기를 못하게 되어 기분이 나빠서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와 천천히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김병철)

나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김종건)

나는 집안이 저기압인 것을 느끼며 느릿느릿 걸어서 학교로 갔다. (김정환)

 

아래의 두 역본이 왜 이런 엉뚱한 번역을? 하는 기분이 들겠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위의 영어 원문은 필자가 가진, Scholes 교수의 교정본을 근거로 한 펭귄 클래식(1993)에서 나온 반면, 김정환 역본은 펭귄판(1956년)을 근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해설, p.305). 스콜즈 교수의 교정본은 1967년 처음 나왔다. 여러분도 이 글 앞에 필자가 올려둔 Araby Text를 보라.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I felt the house in bad humour and walked slowly towards the school.

 

자신들이 가진 원문 텍스트에 ‘left’‘felt’로 되어 있으니 위와 같은 번역이 나올 수 밖에.

(그런데 이상한 건 김정환 역본 역시 필자가 지금 참고하고 있는 Gifford Companion을 참고하였다고 하는 점이다(해설, p.305). 지금까지나 앞으로 계속 나올 필자의 지적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참고했는지 궁금하다.)

 

 

12. I mounted the staircase and gained the upper part of the house. (p.25)

 

층계를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김병철)

층계를 올라 2층에 다다랐다. (김종건)

계단을 올라가 집 윗부분차지했다. (김정환)

 

김정환‘gain’은 쉬운 단어인지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gain’에는 ‘obtain(얻다, 획득하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reach(도달하다)’의 뜻이 있는 것. ‘집의 윗부분도 거슬리는 직역이다.

 

 

13. At nine o'clock I heard my uncle's latchkey in the hall door. I heard him talking to himself and heard the hallstand rocking when it had received the weight of his overcoat. I could interpret these signs. (p.25)

 

나는 이러한 징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김병철)

 

9시에 늦게 와서, 열쇠로 문 연다고 달그락거리고, 혼자 중얼거리며, 외투를 거니까 홀스탠드가 흔들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말은 아저씨가 (소년과의 아침 약속도 잊어버리고) 토요일 밤 한잔 했다는 징조이기에 이를 알 수 있었다는 말을 다른 두 책과는 달리 거꾸로 번역해놓았다. 오식이라고 해도 교정 책임은 있다.

 

 

14. I found myself in a big hall girded at half its height by a gallery. (p.26)

소년이 드디어 바자회장에 입장해서 사방을 둘러보는 장면이다.

 

(들어와보니) 큰 홀이 있고 그 절반 높이에 죽 휘장이 둘러처져 있었다. (김병철)

절반 높이까지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홀에 들어가 있었다. (김종건)

나는 높이의 반쯤 되는 부분에 빙 둘러 회랑(회랑)이 설치된 거대한 홀 안으로 들어섰다. (김정환)

 

회랑은 쉽게 말하면 복도. 건물 중간에 회랑(건물 안에서 봤을 때 높이의 중간쯤 되는 2층 부분에 튀어나온 복도)이 있다는 건 2층에도 상점이나 사무실이 있다는 말이리라. 갑자기 휘장(curtain)은 왜 나왔을까?

 

 

15. 소년은 집을 나설 때 아저씨로부터 2실링(24펜스) 은화(florin)을 받았다. 마지막에 I allowed the two pennies to fall against the sixpence in my pocket.문장과 관련하여 소년의 지출 내역 및 계획, 특히 맹간의 누이에게 줄 선물 가격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여기서 특히 two pennies가 왜 6펜스 위로 떨어지는지 해석을 잘해야 할 것이다. 금액의 복수는 펜스(pence)’, 동전 개수의 복수는 ‘pennies(1페니 동전의 복수개)’로 쓰기 때문에, ‘two pennies’‘1페니 동전 두 개’, ‘sixpence’‘6펜스짜리 은화 한 개라는 뜻이다

 

 

실제로 소년은 삼촌에게서 2실링(24펜스)에 해당하는 플로린 백동화 한 개를 받았지만, 그 중에서 당시 열차 왕복 차비가 4펜스, 바자 입장료로 1실링(12펜스), 2펜스를 바자 회랑에서 떨어뜨렸으니, 이제 그의 주머니에는 6펜스만이 남는다. 설사 바자에서 선물을 산다고 하더라도 6펜스 내지 8펜스의 돈으로는 현실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전은경)

 

 

(1) 백동화(白銅貨): 우리말로 백통돈이며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 영국 화폐 플로린은 1849-1971까지 사용된 돈으로 초기엔 은화(銀貨), 1920년부터 백동화(cupro-nickel)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당연히 여기선 은화가 맞다.

 

(2) 소년이 2펜스를 떨어뜨린 곳은 위에서 보듯이 자기 주머니에 있던 6펜스 은화 위이지 바자 회랑이 아니다. 기억력은 한계가 있으니 이런 책을 쓸 때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3) 필자가 보기에 소년이 계획하였던 선물 구매금액은 2펜스이다. 즉, 선물을 사기 위해 페 니 두 개를 꺼내/또는 주머니 안에서 별도로 손 안에 꼭 쥐고 있다가 도자기들의 가격을 보고는 큰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턱도 없는 돈을 가지고 바자회에 왔다고 바보같이 보이는 건 싫었든지 어정어정 거리다가(이것도 소년의 마음뿐이고 그래 봤자 어차피 우습게 보인 건 마찬가지였으리라), 돌아서며 손아귀의 페니 동전 두 개를 남아 있던 6펜스 은화 위에 떨어뜨리는 것이며, 여기서 역산하여 올 때 기차표 값이 4펜스가 되는 것이다.

 

(4) 정리해보자. 소년은 2실링(24펜스)짜리 플로린 은화 한 개를 받아, 기차표(4펜스)를 사고 1실링짜리 은화 하나, 6펜스짜리 은화 하나, 1페니 동전 2개를 받았다. 6펜스 출입구를 찾지 못해 급한 마음에 1실링 출입구를 통해 들어왔으므로, 6펜스 은화 하나, 1페니 동전 2개가 남았는데, 돌아갈 차비(4펜스)를 감안하여 6펜스짜리 은화는 못 건드리고 남은 1페니 동전 2개를 손아귀에 꼭 쥐고 선물을 사려 어정거렸던 것이다. 6펜스짜리 은화 내고 2펜스 돌려받으면 4펜스는 쓸 수 있다는 계산을 못했을 만큼 유치하지만, 또 이것이 얼마나 소년다운가? Gifford는 2마일 조금 더 되는 거리를 걸어갈 생각을 했으면 8펜스 모두 쓸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원했던 선물은 살 수 있었을지 의심된다고 썼다(Gifford, p.48)

 

 

16. I heard a voice call from one end of the gallery that the light was out. (p.28)

마지막 장면이다. 위의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바꾸어 보자.

I heard a voice call from one end of the gallery , “the light is out.”

 

이제 따옴표 안의 부분을 해석해 보자. 동사를 단순현재형으로 쓰면 바로 눈 앞에서 잠깐 일어나는 동작을 나타낼 때(지금 불 꺼요!)가 있는데, 스포츠 중계에서 시제가 단순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 예이다. 반면 과거형을 쓰게 되면 이미 불이 꺼졌다는 뜻이 된다.

 

불이 꺼졌다고 외치는 소리 (김병철)

불이 나갔다고 외치는 한 가닥 목소리 (김종건)

불을 끈다는 소리 (김정환)  (Bingo!)

 

 

17. 글의 끝으로 멋있는 번역을 소개할 시간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말을 걸어온 순간 불빛 속에 현관의 난간 위에 서있는 맹간의 누나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The light from the lamp opposite our door caught the white curve of her neck, lit up her hair that rested there and, falling, lit up the hand upon the railing. At fell over one side of her dress and caught the white border of a petticoat, just visible as she stood at ease. (p.24)

 

우리집 문 반대편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이 그녀 목의 하이얀 곡선을 드러내고, 그 위에 얹힌 그녀의 머리칼을 밝히고는, 아래로 내려가 난간 위의 손을 밝혔다. 불빛은 그녀의 옷 한쪽 편으로 내려와, 그녀가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순간 보일락말락하는 속치마의 그 새하얀 가장자리를 비춰주었다. (김정환)

 

 

*          *          *

 

 

위의 문장 외에도 다음의 매우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문장들을 다시 한번 잘 새겨보자. 소년의 감정이 과연 순수하고 신성하기만 한 사랑이었을까?

 

 

But my body was like a harp and her words and gestures were like fingers running upon the wires.

 

While she spoke she turned a silver bracelet round and round her wrist.

 

 

카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은 조이스는 여성을 창녀(유혹하는 자)/성모 마리아(천사)로 이분화 혹은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또 둘을 같은 대상에다 겹쳐놓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주로 후자의 모습으로 나오지만 전자를 암시하는 부분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민태운)

 

 

(필자 사정으로 다음 글은 조금 늦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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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김훈과 홍세화의 대담

소설가 김훈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대담(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209332.html)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이미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지면으로 읽기 전에 온라인에서 대담을 훑어보았고 소설을 읽는 일도 더는 미루기가 어려웠다(그의 다른 장편들을 정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남한산성>은 기대보다 재미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칸이 조선 임금에게 보낸 국서는 명문(?)이다. 설마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인지?). 한겨레가 창간 기념호에 두 사람을 불러모은 건 한때 두 사람이 한 솥밥을 먹은 '입사 동기'라는 이유에서이다(이 또한 '한국인 코드'이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그냥 '자전거 레이서와 택시 운전사의 대담'이 더 어울릴 만한 타이틀이다('자전거 레이서가 택시운전사를 만날 때'라고 제목을 잡았다가 다시 돌려놓았다). 광고나 소제목들이 눈에 거슬려서 기사는 나대로 재편집했다.  

한겨레(07. 05. 15) 입사 동기 김훈-홍세화 6시간 대담

<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훈씨의 근작 소설 <남한산성>을 막 읽고 난 홍 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홍: “<남한산성>을 잘 읽었습니다. 그 소설 속 상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거기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쉬운 이야기부터 하죠. 김 선생의 경우에는 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김: “글이요? 글쎄요. 저는 사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아주 잔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글에서,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자유 같은 건 저에게 일체 없는 거예요. 이것이 저에겐 노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뭐, 저에게도 글쓰기가 비슷한 밥벌이의 수단인 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죠. 역시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김: 저도 홍 선생께서 쓰신 책을 많이 봤는데, 역시 지금 말씀하신 소통의 문제,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근데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가 어렵고 위태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인데, 무기는 세계를 개조하잖아요?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죠.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네들의 이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죠. 근데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참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홍:지금까지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이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 이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성찰적 이성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 것의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 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이들. 그러나 개인적인 글쓰기의 동기, 그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탐색전을 생략한 채 득달같이 일합을 겨룬 느낌이었다. 과열된(?) 분위기도 식힐 겸 두 사람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았다. 홍 위원이 1947년 12월생이고, 김훈씨는 1948년 5월생이어서 두 사람은 5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훈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두 사람은 같은 학번이 되었는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도록 한 번도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김: “제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억압뿐이었어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좀 자라서 왔어요. 거기서 미군이 철조망 너머로 던져주는 껌과 초콜렛을 얻어먹었죠. 대학 들어갈 무렵 나와 내 친구들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밥을 먹는 것. 밥. 밥을 좀 먹는 나라를 만들어서, 도대체 밥 세 끼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간절한 소망이었죠. 우리는 고조선때부터 그 시대까지 밥을 못 먹었어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해마다 굶어죽은 놈이 수만명씩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도 해마다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죽었어요. 우리 정부의 행정구호가 ‘기아퇴치’였다고, 기아퇴치.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려는 게 우리들의 비통한 소망이었지. 근데 우리는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어요. 마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짓밟히면서 일해가지고 밥 먹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홍:전후의 상황이라는 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저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빨리 출세를 하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영어보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바로 대학 들어간 해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내 가족이 6.25 당시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통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기아퇴치’라고 하셨는데 전 그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신 학교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반공방첩’이라는 구호가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구호를 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가치관이 붕괴되고, 그래서 공대고 뭐고 다 재미없어지고 방황하게 된 시기가 바로 20대 초반이었어요.”

김:전 대학 졸업을 못했어요.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를 해버렸는데, 그리고 다시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등록금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밥 얘기를 더 하자면,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과 억압과 비리를 저질러 가지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에요. 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무서운 대가가 바로 그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노 대통령 같은 낭만주의나 대중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그것은 부술 수가 없는 훨씬 더 뿌리깊고 강한 구조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어요. 이만큼 생각한 것도 나로서는 상당히 사고가 진보된 것이죠. 그 전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웃음)

: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배세력들이 민중이나 이런 걸 표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분과 실리를 같이 취하려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죠. 그것이 물론 지금까지 말슴하신 대로 축적된 모순과 60년 가까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적 토대, 각 부문별로 결합되어 있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세웠던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과반수의 국회의석도 주었고. 근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결국 자기를 뽑은 민중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죠.”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은 예상 가능한 차이와 뜻밖의(?) 공감대를 보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바탕에 <한겨레> 입사동기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쯤 해서 2002년,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것일까.

김: “당시 저는 혼자 구석방에 들어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유령 같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위기를 느꼈어요. 어디론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괴멸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종구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에게 찾아가서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신문사에 들어갔더니 월드컵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어서 대통령 선거까지 대중들의 힘의 폭발이 이어졌어요. 월드컵은 놀라웠죠. 난 그런 대중의 힘을 처음 봤어요.

대중의 힘은 매우 맹목적인 것 같기도 했는데,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이어 대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난 다시 집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 밀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한겨레>를 떠났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것은 범죄는 아니었죠. 사고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범죄로 몰아가고 결국 반미주의로까지 끌고 나가는 일련의 흐름에서 <한겨레>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죠.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나와 <한겨레>의 큰 갈등이었어요.”

홍: “저는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겨레> 입사였어요. <한겨레>에 입사하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죠.”

김: “심하다, 심해.” (웃음)

홍: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말씀하신 대로 사고인 게 분명하죠. 그런데 만약 미군쪽에서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점령군이 아닌 평등 차원에서의 선언이나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의 구조적인 문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한겨레>가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부분을 동원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미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김: “그것은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서 고통스러운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미국측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이성이 매우 교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죠. 우리처럼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이성은 벌써 오랫동안 마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거든요. 거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게 무척 어려운 지점이죠.”

김: “아까 소통에 관해 말씀하셨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말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많아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언어의 소통기능은 점점 마비되고 언어는 무장하게 되는 것이죠. 무장된 언어가 사회를 막 교란하고 뒤집어엎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시대 언어의 풍경인 것이죠.”

홍: “동의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마치 인터넷이 쌍방향간의 소통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토론이란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의 견해도 들으면서 자기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배설해버리는 식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집단의 외피를 쓴 이기적인 개인들의 뻔뻔한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의 뒤에 숨어 있는 개인들이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게 다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 때문인데,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토론과 교육,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요.”

김: “민주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 “그와 관련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조금 말해 보죠.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촌의 피폐화가 걱정이에요.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그야말로 무서운 변화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김:저는 한 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득을 추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이익을 이행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이나 부도덕을 말할 수가 없는,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참 따지기 어려운 것이죠. 나는 우리 정부가 그것이 결국 이득이 되게끔 앞으로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 이득이 제발 국민 각계각층에 골고루 미치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난 자유무역협정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한겨레>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의 일관성을 집요하게 시비한 적이 있었어요.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진보의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런 기사가 나올 때 <한겨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한 계층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이걸 추진한다는 것은 참 무리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측면이 조금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와서 다시 부딪쳤다. 얘기가 다시 격렬해지려는 참에 마침 찻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대신 적포도주가 곁들여지면서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두고 다시 배 고팠던 지난 시절을 회고한 다음,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한 청년기를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같다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김훈씨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김: “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말 약자의 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전 노 대통령 치하에서 세금 많이 냈습니다. 세금 낼 때 기분이 좋았어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어요. 저는 의료보험도 많이 냈어요. 우리 시대의 분배에 기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신문 보니깐 아니더라고.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소득세 50만원 올렸다고 시위하고 말이죠.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거기서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홍: “그렇게 당연히 사회에 내놔야 되는 사람들이 정작 내놓지 않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분노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저 분노하고 있어요.”

홍: “분노의 방식이 문제인데요.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김: “그건 권력이 해야죠. 정치권력이.”

홍: “한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그런 일을 순조롭게 하리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저는 <한겨레>가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는 악이고 빈이 선이다, 라는 이분법을 버려야죠. 노동은 선이고 자본은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 정서가 있는 거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금 한국 노동의 문제는 노동세력 타락의 문제예요. 노동귀족들의 타락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죠.”

홍: “그걸 과연 노동귀족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구요. 또 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타락할 권리가 있는 사람과 타락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자리에 서면 다 타락합니다.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김:홍 선생의 전공이 ‘똘레랑스’입니다만, 똘레랑스라는 건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이었어요. 우리가 빼앗긴 거죠. 보수주의의 관용 안에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걸 놓친 거예요. 보수주의자가 타락해서 자기 기득권만 방어하면 된다, 이런 식이 되면서 망하게 된 거죠.”

홍: “‘똘레랑스’의 어원 자체가 참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장 정확한 것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수구세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이었습니다.”

김: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똘레랑스’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깨자고 들면 곤란하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능력이나 경제적 처지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다만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홍:김 선생과 저는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데에서는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갈라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기본적으로 그 힘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법조차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부와 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한겨레> 논조가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그런 것은 아니죠.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죄악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사물이라고 봅니다.”

김:가난은 탈피할 대상이지 장려 대상은 아닙니다. 옹호할 가치는 아니죠. 가난에 선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에요.”

홍: “우리가 공화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이라 할 애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한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위함을 받았다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끝없이 관리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자발성이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무상교육 얘기를 해 보죠.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사회가 대준다는 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계층간 연대와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비용 대주는 것이 계층간의 횡적연대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가령 국민연금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것은 세대간의 종적연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윗세대가 은퇴할 때 그들에게 지금의 경제활동 인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식당 역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보는 세상과 <한겨레>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초반과 같은 팽팽한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주로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김훈씨가 대담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김: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여정이 매우 달랐잖아요. 그런 만큼 서로를 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 천진성이라는 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거잖아요?”(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김훈-홍세화 특별한 만남

김훈씨는 <한국일보> 기자와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일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최근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를 계기로 귀국했다.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의 시평집을 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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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도치구문(Inversion)

(이 글은 여기 필자 '나의 서재'- 마이 페이퍼 - '영어공부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 나오는 한 영어 사이트에 기초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목사로 계시는 구학관 박사님이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실 때 운영하였던 무료 영어교육 사이트 "영어 영문법 공개강의실(www.hongik.ac.kr/~hkuh)"이 그것인데, 더 이상 운영은 되지 않으므로 몇 년간 새로 올라오는 강의는 없어도, 이미 올려진 강의는 잘 볼 수 있었는데, 지난 7월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접근이 되지 않고 있다. 필자한테 가끔 문의하시는 분이 있어, 그 중 영어의 특수구문인 '도치(Inversion)'에 관해 필자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물론 많은 것은 구 박사님의 "도치 구문"이라는 글에 빚지고 있지만)을 올리기로 하였다. 다른 참고한 책은 글 말미에 적어 두었으며, 이 글의 의도가 원래 구 박사님의 강의실 개설 취지와 부합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도치(Inversion: 倒置)란?
 - '도치'란 무엇을 '뒤집어 놓았다'는 말이다. 영어 어순인 '주어 + (조)동사'가 뒤집어져
 '(조)동사 + 주어'형태가 되는 것을 도치, 그렇게 도치가 일어난 문장을 '도치문'이라 한다. 다른 문장성분이 자리가 바뀌는 것은 전치 또는 후치라 하며 이는 도치가 아니다.
 - 주어 조동사 도치(SAI: Subject-Auxilary Inversion)
 - 주어 동사 도치(SVI: Subject-Verb Inversion)의 두 종류가 있으며,
 - 도치가 일어나는 사유, 형태가 다르므로 하나로 묶어서 취급할 수는 없는 문법현상이다.

2. 주어 조동사 도치(SAI)
 - 문장 종류를 표시하든지 일부 요소의 강조가 있을 때 쓴다.
 - 이 때는 동사구 중 제일 앞의 운용소 조동사만 주어 앞으로 나간다. 'may have been doing'과 같이 4개의 동사형태가 합쳐서 하나의 동사구가 된 경우 제일 뒤쪽인 'doing'이 본동사로 '하다'는 의미를 주며, 앞에서부터 3개는 모두 조동사인데, 차례로 서법 조동사, 완료상 조동사, 진행상 조동사이다. 이 조동사 중 가장 앞에 있는 것을 '운용소 조동사(operator)'라고 하는데, 의문문, 부정문 만들기, 도치, 부사의 위치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be'동사는 문법적으로는 조동사처럼 쓰인다.
 - 조동사가 없으면 '가조동사(dummy auxiliary)'인 'do'를 쓴다.
(1) 의문문
     Do you know him?
     He's the new secretary, isn't he?
(2) 감탄의문(수사의문)
     Am I happy! ( = I am not happy at all.)
     Hasn't Mary grown! ( = Mary has grown a lot.)
(3) 기원문(Optatives)
     May God bless you! ( = God bless you!으로 may  생략도 가능)
     May the King live long! ( = Long live the King!)
(4) 부정의 명령문
     Don't you ever do that again.
     Don't anybody move.
(5) 가정법에서 if 생략시
     Were I rich, I could be happy. ( = If I were rich, ~ )
     Had I known her earlier, I could have loved her. ( = If I had known her, ~ )
(6) 부정 요소의 전치 구문
 - not, never, no, nothing, hardly, scarcely, rarely, seldom, in no way,
under no circumstances등 부정의 뜻을 가진 표현이 강조를 위해 문장 첫 머리에 나와
문장 전체를 수식할 때 반드시 도치. 또, 문두에 나오는 부정어가 목적어이면 도치해야 하지만, 주어일 경우에는 도치하지 않는다.
 - 위와 같은 부정 표현이라도 문두에 안 나오고 정상 어순이면 도치할 필요가 없는 것.
 - only의 경우는 optional이지만 도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Never has John been so miserable.    
     Nothing did I see that I liked. (여기서 nothing은 see의 목적어이므로 도치 가능)   
     Not all economists agree with you. (주어이므로 도치 불가)    
     Not a word passed his lips. (주어이므로 도치 불가)    
     I don't like gambling. Neithe do I.    
     Only after his father started to eat, did he go to work.    
     (여기서는 도치 없이 써도 되지만 통상 도치하는 경우가 많다.)    
(7) 비교의 도치 구문    
  - 문어체 격식적 표현인 비교의 as, than 구문에서 주어와 조동사의 도치가 가능(optional).    
  - 비교절의 주어가 대명사이면 도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She respects him far more than does her son. (or her son does.)    
     She traveled a great deal, as did most of her friends. (or most her friends did.)    
     John is as tall as I am. (NOT as am I)    
(8) so/neither/nor를 사용한 술어 생략 구문    
  - 주어가 대명사인 경우까지 포함해서 항상 도치함(mandatory)    
     I can't swim. Neither(Nor) can I.
     He is an honest man. So is his brother.
(맞장구를 의미하는 so-구문과는 다르다. 이 때는 정상어순)
     "It's raining," "So it is!"
(9) 강조 요소의 뒤에서
 - so, such, especially, well과 같은 강조 요소가 문두에 왔을 때 주어 조동사 도치
     So absurd did he look that everyone stared at him.
     ( = He looked so absurd that everyone stared at him.)
     Especially did we enjoy the life of the beaches.

3. 주어 동사 도치(SVI)
 - '주어 + 동사 + 보어(SVC)' 구문과 '주어 + 동사 + 부가어(SVA)' 구문에서 보어와 부가어는
의미상 필수 성분인데, 이들 구문에 쓰인 동사(연결동사: linking verb, copula - be, sit, stand, lie,
hang, go, come, become, seem, look 등)에 정보량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목적상 이 보어와
부가어를 문두에 놓을 때, '주어 + 동사'의 정상 어순을 유지하면 문미에 동사가 오게 되고,
문미에 최신 정보나 중요 정보를 놓은 영어의 특성상 동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우스꽝스러운       
뜻이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주어-동사 도치가 일어난다.       
 - 따라서 앞으로 나가는 정보(보어와 부가어)는 주로 구정보이고, 더 가까이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친숙한 정보이다.       
 - 대명사는 중요 정보, 최신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대명사가 주어일 때는 도치하지 않는다.       
 - 여기서도 그런 보어와 부가어가 문두로 나가지 않으면 도치할 필요가 없지만,   
문두로 나갈 경우에는 반드시 도치가 일어나야 한다.       
 - 주어 조동사 도치와는 달리 동사구 전체가 주어 앞으로 이동한다.       
(1) 장소 부사 뒤       
     On the bed was lying a young girl. (도치를 안하면 on the bed가 중요해진다.)       
(2) 방향 부사 뒤       
     Down came the rain.       
     Here she comes. (Here comes she가 틀리는 이유는 대명사는 중요정보가 아니기 때문)       
     The milkman is here. (여기 있다)       
     Here is/coms the milkman. (드디어 왔다)       
     Here comes the sun.  (Beatles 노래 제목)     
     Here~'s Johnny. (소개의 뜻. 예전의 Johnny Carlson Show 소개 멘트)
     There goes my baby. (화자의 실망을 나타내는 표현. 아! 내 사랑이 저기 떠났구나. Simon and Garfunkel의 노래 "Bye bye love" 가사에 보면 "There goes my baby with someone new. She sure looks happy, I sure am blue..."라고 나오는 것이 바로 이 것이다.)
     There my baby goes. (그냥 '내 사랑이 저기 간다'는 뜻)
(3) 분사 뒤
     Speaking at today's lunch will be our local congressman.
     (주어 조동사 도치로 착각하여 wii our local congressman be라고 하면 틀린다.)
(4) 비교 표현 뒤
     Still more remarkable has been the country's economic growth.
     More important to me was her safety in the accident.
     Equally inexplicable was his behavior toward his son.
(5) 허사 'there' 뒤
     There is a policeman at the door.
     (A police man is at the door.)
(6) 형용사 보어 뒤
     Happy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Particularly memorable was her protruded chin.
(7) 직접 화법의 피전달문 뒤(Optional)
     "It's such a long day," said Tom. (이 경우는 Tom said도 가능. said I는 틀림.)
(8) 긴 주어를 피할 때(Optional)
     The man who can say that he is content with his life is happy.
     Happy is the man who can say that he is content with his life.
(9) 준분열 구문(pseudo-cleft)  (*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To) France was where he went.
     (Where he went was (to) France.)

 

(참고 문헌)

1. Sidney Greenbaum & Randolph Quirk, A Student's Grammar of the English Language, Pearson Education

2. Martin Hewings, Advanced Grammar in U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I.S. Yang, Grammatical Rules of English, Hankook Publishing Co.

4. English Special Constructions(영어특수구문), 정인식, 시스템영어사

5. 조용남, 실용 영문법 100문 100답, 삼영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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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just (now)와 시제

“ just now는 과거의 문장, just는 현재완료의 문장에 쓴다.
I finished it just now.
I have just finished it. ”
(성문종합영어, 2003.1, p.35)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위의 책 이름이 아직도 “정통종합영어”였을 때, 외운 구절이다. “영어의 성전(Bible)”으로 통하던 책이었기에(지금도 대개 그럴 것이다), 그냥 이유 없이 외웠다. 그래서 지금도 just나 just now란 단어만 보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이 문장들이 떠오른다. 또 이런 설명을 한 책도 있다.

“He has started just now. (X)
He started just now. (O)
just now는 a moment ago의 뜻이므로 현재완료에 쓸 수 없다. He has just started.는 가능하다.”
(엣센스 고교 영어•단어•숙어 문법 총정리, 민중서림, 2003.1, p.970)

필자가 미국에 이사 갔을 때(필자는 국내 금융기관의 미국 주재원으로 꽤 오래 전에 LA에서 3년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 옆집 중국계 미국인(Chinese-American)과 울타리 담장 너머로 나눈 첫 인사는 이랬다.
“Hi, I just moved in.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왔어요.)”
그 친구 대꾸.
“So, you just moved in. (그래요, 막 이사 왔네요.)”

아니, 왜 나도 그도 현재완료를 쓰지 않고도 대화가 이루어졌지? 이 글은 그에 대한 답변이다. 필자처럼 영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럴진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생이든 학생이든, 지금도 성문영어 설명을 그대로 믿고 있을까? 또 위의 책을 흉내 낸 수많은 아류들이 이를 그대로 베끼고 있을까? 영국식 영어를 흉내 낸 일본 참고서류를 비판 없이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이런 허위를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해 낸 우리 영어교육계의 현실은 또 얼마나 암담한 것인가?

진짜 용법(usage)을 알아 보자.

Michael Swan, Practical English Usage, Oxford University Press, 2판 16쇄, 2003, pp.297~298

1. just는 보통 ‘지금, 현재(at the present)’ 또는 ‘현재와 가까운 시점(close to the present) ( = a moment ago)’에 쓴다.
I’ll be down in a minute – I’m just changing my shirt. ( = right now)
Alice has just phoned. ( = a short time ago)

2. just now는 문장의 시제에 따라 ‘바로 지금(at this moment)’ 또는 ‘조금 전(a few moments ago) ( = a moment ago)’ 양쪽으로 쓸 수 있다.
She’s not in just now. Can I take a message?
I saw Phil just now. He wanted to talk to you.
We’re just now beginning to understand how much work this project will be.


3. just나 just now가 둘 다 두 번째 뜻일 때, 즉 과거를 나타내는 ‘a moment ago(조금 전, 막)’이라는 뜻일 때는 영국식 영어(British English)와 미국식 영어(American English)가 다르다. 영국식에서는 just = 현재완료, 미국식에서는 just = 과거가 보통이며 따라서 위 1의 두 번째 예문은 Alice just phoned라고 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just라는 부사의 성격 때문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영국에서 현재완료로 쓰는 것을 미국에서는 과거형으로 쓴다. 예를 들어,“열쇠를 잃어 버렸어”라는 문장을 영국에서는 “I’ve lost my key.”, 미국에서는 “I lost my key.”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just now의 경우는 영국에서는 과거 시제에 쓰이지만 미국에서는 현재 시제와 주로 쓰인다 (주: Michael Swan의 책에서‘just now가 미국에서도 과거와 주로 같이 쓰인다'는 설명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영국에서 같으면 “Hi, I’ve just moved in.”했어야 할 때 미국에서는 “Hi, I just moved in."라고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just, just now라는 부사(구)와 시제는 일률적으로 고정되어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든, 현재완료든, 과거든 같이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식 영어에서 현재완료로 쓰는 문장이 미국식 영어에서 과거가 되는 것일 뿐이다.


just - 현재 및 (미국식 영어 과거  = 영국식 영어 현재 완료)에 사용


just now - 미국식 영어 현재, 영국식 영어 과거에 사용

(주: just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시간과 관계된 뜻에 대해서만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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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I gotta go?

have, got, have got, have gotten;

have to, have got to, got to, gotta

 

 

1. have, got, have got , have gotten

 

  (1) 원래 get 과거분사는 영국식이 got, 미국식이 gotten이다.

  (2) have(소유권, 관계, 등을 가지다) 뜻으로는 미국이든 영국이든 have have got 같은 뜻이지만, 영국식 영어가 현재완료형을 즐겨 쓰기 때문에

have got 많이 쓰는데 비해, 미국식 영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have got 많이 쓴다.

    - Have you got a question? (BrE)

    - Do you have a question? (AmE)

    - They’ve got a new car. (BrE)

    - They got/have a new car. (AmE)

    - Got milk? (미국 캘리포니아 우유생산업자단체의 언론 광고 copy로 유명)

  (2) 미국식 영어에서 have gotten 소유(상태)’보다는 취득(동작의 완료)’ 뜻으로 많이 쓴다. 영국식 영어에서는 have gotten 들을 없다. 영국식 영어에서 gotten ill-gotten같은 복합어에서나 있다.

    - I have gotten a new driver’s license! (AmE)

 

2. have to, have got to, got to ( = gotta)

 

  (1) must 비슷하게, 필연(necessity: 강한 가능성) 또는 의무(obligation: 명령, 경고) 나타내지만, 필연에 있어서 강도는 must보다 강하고, 의무를 나타낼 must 도덕적 권위에 의거하는 반면, have to 등은 계약이나 조건에 근거한 화자의 권위(: 상사가 부하에게 내리는 업무상 지시) 나타낸다.

    - There must be some mistakes

    - There has/has got to be some mistakes.

    - You must come home early.

    - You have to come to work early.

  (2) have to may, be, have 동사와 합쳐서 동사구를 이룰   있다.

    - I may have to go. (O)

    - I may have got to go. (X)

    - I may must go. (X)

    - I must may go. (X)

    - You are having to do a lot more work these days. (O - have to의 진행형)

    - You are having got to do a lot more work these days. (X)

    - The town has had to repave its main road. (O - have to의 완료형)

    - The town has had got to repave its main road. (X)

  (3) 구어체에서는 종종 have 떨어져 have got to = got to = gotta 쓰이지만 formal writing에서는 틀린 것으로 본다.

    - I have to go. = I have got to go. = I’ve got to go. = I got to go. = I gotta go.

    (gotta에는 “(have) got a” 뜻도 있다. Gotta cigar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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