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thirsty > 더블린 사람들 (3) 애러비(Araby)
더블린 사람들 (3) 애러비(Araby)
<범례> * 이 글 시리즈의 처음인 “더블린 사람들 (序) - 꼼꼼한 텍스트 읽기” 참조. |
김병철: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3판 1쇄, 1999. 2
김종건: 더블린 사람들 • 비평문, 범우사, 2판 4쇄, 2005. 8
김정환: 김정환 • 성은애, 더블린 사람들, 창작과 비평사, 2쇄 1995. 9
민태운: 조이스의 더블린: 더블린 사람들 읽기, 태학사, 2005. 4
전은경: 전은경 • 홍덕선 • 민태운, 조이스 문학의 길잡이: 더블린 사람들, 동인, 2005. 6
Gifford: Don Gifford, Joyce Annotated: Notes for ‘Dubliners’ and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Brown: “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에 있는 테렌스 브라운 교수의 서문(introduction) 및 주석(notes).
(대조검토용으로 표시하고 있는 원문의 페이지도 이 책의 것이다.)
Companion: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Gifford, Brown 등 외국 저자의 책이나 영문 웹사이트의 한글 번역은 모두 필자가 한 것) |
1. 맨 처음 문장을 보자.
North Richmond Street, being blind, was a quiet street except at the hour when the Christian Brothers' School set the boys free. (p.21)
노스 리치먼드 가(街)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카톨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파해 나오는 시간 외에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병철)
노드 리치먼드 가(街)는 막다른 골목으로, 기독형제수도회에서 학생들이 파해 나오는 시간 외에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종건)
노쓰 리치먼드 가(가)는 막다른 길이라서, 기독형제학교에서 학생들을 풀어놓은 시간말고는 고요한 거리였다. (김정환)
카톨릭 학교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나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민태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파할 시간이면 (전은경)
‘the Congregation of Christian Brothers’ 쉽게 ‘Christian Brothers’는 1802년 아일랜드에서 ‘평신도(layman)’들에 의해 빈민층 아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결성된 카톨릭단체로서, 이들이 세운 Christian Brothers’ School은 아일랜드 전국에 걸쳐 여러 곳에서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초등학교였지만 점점 고아원, 농아학교, 중등, 기술 교육 과정 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했고, 이 소설의 시기에는 더블린에만도 여러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조이스 본인도 1893년 이 학교(노스 리치몬드 카톨릭형제수도회 초등학교)에 잠시 적을 둔 적이 있지만 스스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던지 그의 자전적 소설 어디에서도 이 부분을 다룬 곳은 없다. (Gifford, pp.42-43, Brown. p.251, Wikipedia의 ‘Congregation of Christian Brothers’ 항목). Portrait에 보면, 스티븐( = 조이스)의 부모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 I never liked the idea of sending him to the christian brothers myself, said Mrs Dedalus.
— Christian brothers be damned! Said Mr Dedalus. Is it with Paddy Stink and Micky Mud?
(James Joyce,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edited with and Introduction and Notes by Seamus Deans, Penguin Classic, 1993, p.74)
— 애를 크리스천 브라더즈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더덜러스 부인이 말했다.
— 크리스천 브라더즈라니, 말도 말아요. 더덜러스씨가 말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거나 진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이나 다니는 학교지.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상옥 역, 민음사, 1판 21쇄, 2007. 2, pp.112-113)
또 여기서 ‘set the boys free’라는 조이스가 선택한 단어를 보라. ‘set free’는 ‘해방시키다’라는 뜻이라서, 이는 ‘속박’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무료의 교육기관인지라 이 학교 과정은 ‘힘들고 종종 비인간적(strenuous if not always humane)’(Brown, p.251)이었다고 한다. 김정환 역본이 제일 낫다.
2. ‘방(房)’ 이야기를 해보자.
…and the waste room behind the kitchen was littered with old useless papers. (p.21)
부엌 뒤에 있는 다락방에는 헌 휴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김병철)
부엌 뒤에 있는 창고에는 날고 쓸모 없는 휴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김종건)
부엌 뒤쪽의 다용도실은 낡고 쓸모 없는 종이로 가득 차 있었다. (김정환)
부엌 뒤쪽의 창고방 (전은경)
여기서 waste는 human waste( = excrement)이다. 다시 말해 waste room은 화장실이다. 왜 헌 종이들이 늘려져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화장실을 이렇게 부르지는 않고, 산업 폐기물 처리에 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여, 공장이나, 병원 등의 ‘폐기물 보관소’라는 용어로 쓰인다.
하나 더 보자. 몇 줄 뒤의 ‘drawing room’과 한 페이지 뒤의 ‘front parlo(u)r’이다.
The former tenant of our house, a priest, had died in the back drawing-room. (p.21)
Every morning I lay on the floor in the front parlour watching her door. (p.22)
우리 집에 전에 세들었던 사람은 신부였는데, 그는 뒤 응접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침마다 나는 정면 응접실 마루에 누워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김병철)
우리 집에 전에 세들었던 사람은 신부였는데, 그는 뒤 응접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매일 아침 나는 응접실 마루에 누워서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김종건)
우리 집에 전에 세들어살던 사람은 사제였는데, 뒤편 거실에서 죽었다.
매일 아침 나는 길 쪽의 응접실 마루에 누워서 그녀의 집 문을 살폈다. (김정환)
질문은 첫째, ‘응접실’과 ‘거실’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둘째, 그럼 ‘front parlour’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보통 ‘drawing room’은 ‘응접실’로 번역하고, ‘거실’은 ‘living room’을 번역해서 쓰는 말이므로 처음 질문은 ‘drawing room’과 ‘living room’은 같은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전을 찾다 보면, ‘parlor’, ‘sitting room’, ‘lounge’, ‘salon’ 등 관련된 온갖 단어가 나오는 데다가 사전들끼리 설명도 달라서 혼란이 심하다. 필자가 여러 가지 영어, 영한사전, 백과사전을 뒤져봐도 속 시원한 설명은 찾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drawing room’은 ‘withdrawing room’이 줄어서 된 것인데, 16세기 궁중이나 귀족가에서 ‘공식적인 접견(reception) 또는 식사 후에 잠시 물러가서 쉬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응접실, 객실’이 가장 가깝다(프랑스의 salon). 요즘 이 말은 영국에서는 ‘한 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방으로 손님을 접대할만한 방’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미국에서는 쓰이는 일이 별로 없다. 한편 이 시대에도 가족들이 모여서 담소를 하든지, 방문한 허물없는 이웃 또는 친구 몇 명과 차를 든다든지 하여, 주로 낮에 식구들이 같이 쓰는 공간이 별도로 있었으니, 이를 ‘parlor’, ‘sitting room(이 용어는 영국에서 현재도 ‘거실’로 쓰인다)’, ‘lounge’, ‘front room’, ‘front parlor’, ‘morning room’이라고 한다.
한편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된 ‘living room’은 근대사회 이후에나 맞는 개념으로, 소형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 무슨 ‘drawing room’ 따로, ‘living room’ 따로 할 수도 없는 데다가, 무슨 거창하게 격식을 따지는 손님접대를 할 리도 없고, 가족들이 모여서 TV를 시청하거나, 독서와 담소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간단한 다과도 나누는 공간이 바로 ‘living room’이니 ‘거실’이 가장 적합하며, 사회, 가족, 가옥구조의 변화에 따라 옛날의 ‘drawing room’과 ‘sitting room, parlor, front parlor’ 둘이 합쳐진 개념으로 봐야 한다. 영국에서는 주로 ‘sitting room’이라 한다.
일부 영영사전*에서 ‘drawing room = (formal) living room’이라 설명한 것은 바로 위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현대의 거실(living room)’을 격식을 갖춘 옛날 문구로 표현하면 바로 ‘drawing room’ 비슷한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위에서도 봤듯이 예전 소설에서 ‘drawing room’을 바로 ‘거실’로 생각하면(김정환 역본) 곤란하다.
* 예를 들어, Longman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 and Culture, MacMillan English Dictionary for Advanced Learners.
특히 이 단편에서처럼 한 집에 이 두 개의 방이 따로 있으면 그 때는 각각 ‘drawing room = 응접실, 객실’, ‘front parlor = (전면) 거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첫째 문장은 ‘뒤쪽 응접실/객실’, 둘째 문장은 ‘(앞쪽, 전면) 거실’이 되어야 하지만, 맞게 번역한 책은 없으며, 전은경의 해설서(뒤쪽 거실, 현관 = hall)도 틀렸지만, 민태운의 해설서(뒤쪽 응접실, 거실)만 맞게 되어 있다.
3. When we returned to the street, light from the kitchen windows had filled the areas. (p.22)
우리들이 다시 큰 거리로 돌아왔을 때는 부엌 창문에서 새어 나온 불빛은 벌써 그 일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김병철)
우리들이 큰 거리로 되돌아오자 부엌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그 근방 일대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김종건)
우리가 거리로 돌아올 때면, 부엌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이 그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정환)
이런 ‘area’같이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가 가장 틀리기 쉬운 단어이다. 엣센스영한사전을 보자. ‘area’의 6번 항목은 “(英) 지하실(부엌) 출입구(채광 통풍을 위한 지하층 주위의 빈터. (美) areaway”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사용된 뜻이다. 거리 일대가 환한 것이 아니라 부엌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 출입구부분 주위만 동그랗게 환한 광경을 떠올리면 된다. 이 단어는 뒤에 나올 단편 “두 건달(Two Gallants)”에서 다시 사용된다. 이는 조이스의 에피파니를 생각할 때 기본개념이다.
4. Or if Mangan's sister came out on the doorstep to call her brother in to his tea (p.22)
혹은 맹건의 누나가 남자 동생에게 다과를 먹으라고 부르러 문간으로 나온다면 (김병철)
또는 맨건의 누이가 문간에 나와 차를 마시라고 동생을 불러들인다면 (김종건)
아니면 맹간의 누나가 현관 층층대로 나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남동생을 부를 때면 (김정환)
망간의 누이가 문가에 서서 간식을 먹으라고 남동생을 부르곤 한다. [여기서 본문의 ‘tea’란 영국에서는 오후 5시경쯤에 차와 과자를 먹는 간식을 말한다.] (전은경)
‘tea’는 ‘오후 4시경 먹는 다과(plain tea, low tea, afternoon tea. 차와 과자로 된 간식)’일 수도 있고, ‘high tea( = meat tea)’라는 ‘늦은 오후 또는 이른 저녁(오후 5시-6시 사이)에 먹는 차를 곁들인 식사(meal)’로 보통 고기도 곁들여지며, 위의 afternoon tea와 저녁식사를 합친 개념’일 수도 있어, ‘저녁식사’를 말할 때도 있다. (On farms or other working class environments, high tea would be the traditional, substantial meal eaten by the workers immediately after nightfall, and would combine afternoon tea with the main evening meal.). 이는 이 단락 맨 앞의 “When the short days of winter came, dusk fell before we had well eaten our dinners.”라는 문장에서 확인된다. 겨울이 오자 해가 짧아지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놀던 아이들은 저녁 먹으라고 불려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요즘 영국의 ‘high tea’는 고급으로 잘 차려진 ‘afternoon tea’에 쓰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high’의 여기서 뜻은 ‘low round table’에 앉아 먹던 ‘low tea’와는 달리 ‘high table’이라는 높이가 높은 저녁식탁용 테이블에 앉아먹는 본격적인 식사라는 뜻인데, ‘high’가 ‘고급’이란 뜻으로 속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해진 뒤의 ‘다과’란 이 시대 더블린 하류층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확인을 위해 이 글의 뒤쪽 대목을 보자. ‘애러비’바자회(5월에 열렸으므로 위에서 말한 겨울과는 달리 꽤 해가 길어졌을 것이다)에 가기로 한 토요일 저녁 아저씨가 돌아오지 않고 이웃 부인이 와서 수다를 떠는 장면이다.
The meal was prolonged beyond an hour and still my uncle did not come. Mrs Mercer stood up to go: she was sorry she couldn't wait any longer, but it was after eight o'clock and she did not like to be out late, as the night air was bad for her.
저녁식사가 한 시간 이상 지연되고 있는 시간이 저녁 8시경이니까 대략 오후 6시반~7시 사이에 저녁을 먹는다고 보인다. 계절을 감안하면 이 시간이 겨울에는 오후 5시~ 5시반 사이였을 것이고 벌써 어두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여러 해석대로 ‘간식인 다과’를 먹고 금방 (또는 연달아)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이 ‘tea’ 이야기는 나중에 “작은 구름(A Little Cloud)”에서 한번 더 하겠다.
17, 8세기 영국의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고, 다음 날 정오쯤 일어났으며. 이 때 먹는 것이 원래 ‘아침’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dinner’였고, 이때부터 오후 해질 때까지를 ‘morning’으로 불렀다고 하니, ‘dinner’ 역시 사용시기, 사회계층, 국가 등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 ‘정찬(正餐)’ 이 4가지 의미로 다 사용될 수 있다. 이 식사 명칭의 역사적 변화는 사회계층, 노동, 직업의 변화, 조명기구의 발달과 맞물려 생각보다는 복잡하니까, 정확한 의미가 필요한 사람은 백과사전(브리태니커나 위키피디아 같은 것)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 의견으로는 김정환 역본만이 제대로 번역했다.
5. the shrill litanies of shop-boys who stood on guard by the barrels of pigs' cheeks (p.23)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통 옆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점원들이 되풀이해서 물건 사라고 째지는 듯이 외치는 아우성소리 (김병철)
돼지의 볼살을 넣은 통 옆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점원들이 되풀이하는 날카로운 외침 소리 (김종건)
즐비한 돼지 엉덩잇살을 지키며 서 있는 상점 사환아이의 새된 장광설과 (김정환)
한 사람(김병철)은 소위 ‘회피전략’을 썼다. 즉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것이다. 한편 김종건은 문자 그대로 번역을 했고, 김정환은 필자가 보기에 조금 더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꼴이 되었다. ‘cheek’은 ‘뺨, 볼’이지만 도대체 ‘돼지 볼살’이 뭘까 생각하다가, ‘cheek’에는 ‘buttock(속어로 엉덩이. 엉덩이 두 쪽이 뺨 두 쪽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의 뜻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cheeks = buttocks. 특히 후자가 복수로 잘 쓰인다), ‘돼지의 엉덩이 부위 살’이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pigs’ cheeks’은 ‘돼지머리’도 아닌데, 돼지머리를 통째 갖다 놓고 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돼지머리 고기’도 아닌 것이 돼지머리를 삶아 누른 ‘편육’은 우리나라 음식이지 서양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상 ‘돼지고기 볼살(그 계통 전문가들은 모두 ‘뽈살’이라 그럴 것이다)’이라 할 수 밖에. 필자가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외국의 웹 사이트를 찾아본 결과는 다음과 같으며, 돼지 ‘엉덩이’라는 부위는 따로 없고 모두 ‘뒷다리’에 포함된다는 것도 알았다. 이래서 영어가 어렵다는 거다.
“ As suggested by the name, pork cheek is a rich, highly flavorful cut that originates in the hog’s cheek. Because the cheek muscles do considerable chewing, the cut is typically rich in fat.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 돼지의 볼은 식용 돼지의 볼에서 나오는 풍부한 풍미를 가진 부위다. 볼 근육은 씹는 동작을 많이 하므로 전형적으로 지방질이 많다.)”
6. But my body was like a harp and her words and gestures were like fingers running upon the wires. (p.23)
그러나 내 몸은 거문고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거문고의 줄을 튕기는 손가락과도 같았다. (김병철)
하프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악기로 이 단편집 여러 군데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두 건달(Two Gallants)”룰 보라. 그런데 왜 여기서만 갑자기 아일랜드의 상징 하프가 우리나라의 거문고로 되었을까? 이렇게 책 내용을 해당국 사정에 맞게 고쳐서 번역하는 것을 ‘번안(飜案. adaptation)’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이 책의 다른 부분도 다 바꿔야 할 것이다.
7. One evening I went into the back drawing-room in which the priest had died (p.23)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저녁 나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김병철)
원문의 밑줄 친 관계사절의 선행사는 응접실이다. 따라서 “어느 날 저녁 나는 신부가 임종했던 바로 그 응접실로 들어갔다”라고 해야 맞다. 다른 두 역본은 모두 맞게 되어 있다.
8. One evening I went into the back drawing-room in which the priest had died. It was a dark rainy evening and there was no sound in the house. Through one of the broken panes I heard the rain impinge upon the earth, the fine incessant needles of water playing in the sodden beds. Some distant lamp or lighted window gleamed below me. I was thankful that I could see so little. All my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murmuring: `O love! O love!' many times. (p.23)
밑줄 친 부분은 ‘영미문학, 좋은 번역을 찾아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창비, 2005. 5”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부분이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나의 모든 감각은 감춰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으며, 나는 내가 이런 감각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느끼고, 손바닥을 마주대고 누르며, 「오 사랑! 오 사랑!」하고 수없이 속삭이며 몸을 떨었다. (박시인* 220면)
나의 모든 감각 너울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감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아서 나는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두 손을 맞대고 「오오 사랑이여, 오오 사랑이여」하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여석기∙나영균* 236면) (*박시인, 여석기∙나영균, 이 두 번역본에 관해서는 이 글 바로 앞의 “더블린 사람들 (2) 우연한 만남”에서 언급해 두었다)
나의 오감(五感)은 그 오감을 감춰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고, 또 그런 감각에서 막 빠져나와야겠다고 느낀 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오 사랑! 오 사랑!” 하고 몇번씩 중얼거리면서 두 손을 꽉 쥐었다. (김병철 38면)
나의 모든 감각은 그 자체를 감추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듯 느껴졌고, 나 스스로 그 감각으로부터 막 빠져 나와야겠다고 느낌이 들자, 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두 손을 꽉 쥐며 “오 사랑! 오 사랑!” 하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김종건 45면)
나의 모든 감각들은 스스로 베일에 가려지기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제 막 그 감각들로부터 빠져나오려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내 양 손바닥을 부르르 떨 정도로 서로 꽉 맞잡았다. 몇번씩이고 이렇게 중얼대면서. “오 사랑! 오 사랑이여!” (김종건 45면)
원문의 강조 부분은 예컨대 ‘The Dead” 마지막 부분의 “swooned slowly”처럼 감각에서 일탈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웅얼거린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감각이 사라지려는 느낌을 원하다가(“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그때가 오자 일종의 오르가슴을 느낀 셈이다. 김종건 역본은 “나 스스로 그 감각으로부터 빠져나와야겠다는 느낌이 들자”라는 식으로 원문과는 반대로 읽히도록 옮겨놓았다. 김병철 역본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이며 여석기∙나영균 역본 역시 떨어져 나가려는 느낌이 들자 이것을 막으려고 한다는 의미로 읽히기 쉽게 번역되었다. 이에 비하면 김정환∙성은애 역본은 “feeling that I was” 분사구문을 “느끼면서 …했다”로 처리했는데, 이와 같은 단순한 처리가 오히려 원문의 뜻에 가장 근접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박시인 역본도 “느끼고, …했다”로 단순하게 처리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느끼면서’와 달리 ‘느끼고’로 처리하여 그 전후연관과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전달되지 않으며 앞의 다른 번역들과 같은 뜻으로 읽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앞의 책, pp.417-419)
번역을 보고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며, 또 그 아래의 비평을 읽고 이해가 높아졌는지? 필자가 보기엔 모두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아래에 조금 얼굴 붉힐 표현은 있지만 제대로 해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한 Wallace 교수(이 글 시리즈의 맨 앞 ‘서’ 참고)의 주석을 보자. (굳이 옮기지는 않는다.)
This paragraph presents the classic masturbatory situation for a young boy: he is left alone in the house on a rainy evening. But his religious training has so suppressed his sexual feelings that his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note the religious term -- veil -- associated with nuns taking orders)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slip, obviously, into sexual activity)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this apparently is a substitute for pressing his palms around his penis) and, "murmuring" (again, an association with murmuring prayers in church) "'O love! O love!' many times." The ejaculation here is a confused mixture of the religious and the sexual, with the religious totally hiding the sexual in the mind/body of this Dublin Irish Catholic boy.
(http://www.mendele.com/WWD/WWDaraby.notes.html#one)
그러나 필자는 위 월러스 교수의 주석과도 다른 해석을 해보겠다.
All my senses seemed to desire to veil themselves: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믿으면서, 특히 사랑하는 순결한 성모마리아 같은 소녀가 있으면서 또는 그녀를 대상으로 자위행위를 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모든 감각은 스스로 베일로 감추고 싶어했다.
and, feeling that I was about to slip from them: 여기서 them은 앞의 senses, 즉 쾌감을 실제로 느끼는 온 몸의 감각이다. 오감(五感) 중 촉각이 위주겠지만 머리 속으로는 5감이 다 동원될 수 있다. 내가 쾌감의 감각들에서 막 미끄러져 나오려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오르가슴이 막 지나간다는 걸 느끼면서. 위 월러스 교수의 해설과는 정반대인데, 교수는 감각에서 빠져 나와 성적 행동으로 빠져든다고 해석했다.
(2) 오르가슴이 막 오려는 걸 느끼면서 하던 짓을 멈추고(중도에 행위를 그만 둠)
I pressed the palms of my hands together until they trembled, murmuring: `O love! O love!' many times. :
(어쨌든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오 사랑, 오 사랑’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양손을 맞잡고 속죄의 기도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위 월러스 교수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작으로 해석했지만, 위의 한국어 번역본들을 포함해서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다는 정답은 없다. 각자, 어느 것이 가장 상황에 맞는구나 하고 나름대로 짐작을 하면 그뿐이다.
9. `It's well for you,' she said. (p.24)
드디어 맹간의 누나가 애러비라는 바자회에 갈 거냐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고, 자기는 수녀원(아마 수녀원 부속학교에 다닐 것이다) ‘피정(retreat)’ 때문에 못 간다며, 소년에게 하는 말이다. “It’s well for you”는 “You’re lucky”의 아일랜드식 영어(Irish English)이며, 질투와 씁쓸함을 암시한다. (Gifford, p.46).
“넌 가보는 게 좋을 거야”하고 그녀는 말했다. (김병철)
“넌 참 좋겠다.” 그녀가 말했다. (김종건)
“넌 좋겠다.” 그녀가 말했다.
김병철 역본처럼 “You should go,” “Why don’t you go?”는 너무 밋밋하고 계략이 없는 번역이다. 또 김병철, 김종건(바로 앞 소년의 말 “그런데 왜 못 가지?”)은 둘 사이를 친구처럼 서로 반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했는데, 김정환(“그런데 왜 못 가요?”)은 (소년이 연하로) 소녀에게 경대(敬待)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친구 맹간의 누나(물론 이 것이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맹간이 소년보다 어릴 수도 있기 때문에)’라는 점, 이 시기 사춘기 소년들의 연상을 향한 연모(친구 누나 한번쯤 사랑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등을 감안하면 김정환 쪽이 훨씬 자연스럽다.
한편 이 근방부터 나오는 ‘bazzar’라는 단어를 김종건처럼 ‘시장, 장(場)’으로 번역하는 건 좀 이상하다. 물론 이 단어가 ‘중동의 시장’에서 온 말이지만(페르시아어로 바로 ‘시장(marketplace)’이라는 뜻이다), 이게 다른 나라에서도 똑 같이 사용되지는 않아 일반적인 시장보다는, “풍물시장, 자선시장, 자선판매, 바자회, 바자’ 이렇게 사용되는 것이 보통 아닌가? 바로 앞에 소년이 숙모를 도와 장 보러 가는 것이 나오는데, 이 시장과 바자회는 스토리 상으로나 상징하는 의미상으로도 구분이 필요한데, 둘 다 시장으로 하면 구분이 안된다.
10. My aunt was surprised, and hoped it was not some Freemason affair. (p.24)
소년이 토요일 밤 애러비 바자회에 간다니까 숙모가 놀라는 장면이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무슨 비밀결사에라도 들어간 게 아니냐고 했다. (김병철)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무슨 비밀결사에라도 참가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건)
아줌마는 깜짝 놀랐고, 무슨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결사가 아니었다면 좋겠다고 했다. (김정환)
얼마 전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라는 책 때문에 프리메이슨이 주목을 받았는지라 이 단체가 뭔지는 굳이 설명할 것은 없지만, 이 단체는 신교(Protestant) 또는 무신론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아일랜드의 카톨릭 사이에서는 상당히 수상한 단체로 의심받고 있었으며, 특히 이 단체는 지금 이야기보다 2년 전인 1892년 5월 실제로 바자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금년 애러비 바자회를 이것과 착각한 카톨릭교도 아주머니가(‘애러비’라니까 이름만 비슷했지 아무 관계도 시를 읊으려는 아저씨나 부창부수夫唱婦隨인 꼴) 혹시 그 바자회가 ‘프리메이슨 행사(Freemason affair)’가 아니냐고 놀라며 반문하는 것이지, 바자회에 간다는 사람더러 생판 무슨 ‘비밀결사’에 들었느냐고 의심하는 장면은 아니다.
11. As he was in the hall I could not go into the front parlour and lie at the window. I left the house in bad humour and walked slowly towards the school. (p.24)
아저씨가 현관(보통 전면 거실과 붙어 있다. 그래서 전면이란 말을 쓰는 것)을 점거하는 바람에 소년이 아침마다 하는 성스런 의식인 ‘전면 거실에 누워 맹간 누나 학교 가러 나오나 보다가 쫓아가기’를 못하게 되어 기분이 나빠서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와 천천히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김병철)
나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김종건)
나는 집안이 저기압인 것을 느끼며 느릿느릿 걸어서 학교로 갔다. (김정환)
아래의 두 역본이 왜 이런 엉뚱한 번역을? 하는 기분이 들겠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위의 영어 원문은 필자가 가진, Scholes 교수의 교정본을 근거로 한 펭귄 클래식(1993)에서 나온 반면, 김정환 역본은 펭귄판(1956년)을 근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해설, p.305). 스콜즈 교수의 교정본은 1967년 처음 나왔다. 여러분도 이 글 앞에 필자가 올려둔 “Araby” Text를 보라.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I felt the house in bad humour and walked slowly towards the school.
자신들이 가진 원문 텍스트에 ‘left’가 ‘felt’로 되어 있으니 위와 같은 번역이 나올 수 밖에.
(그런데 이상한 건 김정환 역본 역시 필자가 지금 참고하고 있는 Gifford 및 Companion을 참고하였다고 하는 점이다(해설, p.305). 지금까지나 앞으로 계속 나올 필자의 지적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참고했는지 궁금하다.)
12. I mounted the staircase and gained the upper part of the house. (p.25)
층계를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김병철)
층계를 올라 2층에 다다랐다. (김종건)
계단을 올라가 집 윗부분을 차지했다. (김정환)
김정환은 ‘gain’은 쉬운 단어인지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gain’에는 ‘obtain(얻다, 획득하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reach(도달하다)’의 뜻이 있는 것. ‘집의 윗부분’도 거슬리는 직역이다.
13. At nine o'clock I heard my uncle's latchkey in the hall door. I heard him talking to himself and heard the hallstand rocking when it had received the weight of his overcoat. I could interpret these signs. (p.25)
나는 이러한 징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김병철)
“밤 9시에 늦게 와서, 열쇠로 문 연다고 달그락거리고, 혼자 중얼거리며, 외투를 거니까 홀스탠드가 흔들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말은 “아저씨가 (소년과의 아침 약속도 잊어버리고) 토요일 밤 한잔 했다”는 징조이기에 이를 알 수 있었다는 말을 다른 두 책과는 달리 거꾸로 번역해놓았다. 오식이라고 해도 교정 책임은 있다.
14. I found myself in a big hall girded at half its height by a gallery. (p.26)
소년이 드디어 바자회장에 입장해서 사방을 둘러보는 장면이다.
(들어와보니) 큰 홀이 있고 그 절반 높이에 죽 휘장이 둘러처져 있었다. (김병철)
절반 높이까지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홀에 들어가 있었다. (김종건)
나는 높이의 반쯤 되는 부분에 빙 둘러 회랑(회랑)이 설치된 거대한 홀 안으로 들어섰다. (김정환)
‘회랑’은 쉽게 말하면 ‘복도’다. 건물 중간에 회랑(건물 안에서 봤을 때 높이의 중간쯤 되는 2층 부분에 튀어나온 복도)이 있다는 건 2층에도 상점이나 사무실이 있다는 말이리라. 갑자기 ‘휘장(curtain)’은 왜 나왔을까?
15. 소년은 집을 나설 때 아저씨로부터 2실링(24펜스) 은화(florin)을 받았다. 마지막에 “I allowed the two pennies to fall against the sixpence in my pocket.” 문장과 관련하여 소년의 지출 내역 및 계획, 특히 맹간의 누이에게 줄 선물 가격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여기서 특히 two pennies가 왜 6펜스 위로 떨어지는지 해석을 잘해야 할 것이다. 금액의 복수는 ‘펜스(pence)’로, 동전 개수의 복수는 ‘pennies(1페니 동전의 복수개)’로 쓰기 때문에, ‘two pennies’는 ‘1페니 동전 두 개’, ‘sixpence’는 ‘6펜스짜리 은화 한 개’라는 뜻이다
“실제로 소년은 삼촌에게서 2실링(24펜스)에 해당하는 플로린 백동화 한 개를 받았지만, 그 중에서 당시 열차 왕복 차비가 4펜스, 바자 입장료로 1실링(12펜스), 2펜스를 바자 회랑에서 떨어뜨렸으니, 이제 “그의 주머니에는 6펜스”만이 남는다. 설사 바자에서 선물을 산다고 하더라도 6펜스 내지 8펜스의 돈으로는 현실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전은경)”
(1) 백동화(白銅貨): 우리말로 백통돈이며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 영국 화폐 플로린은 1849-1971까지 사용된 돈으로 초기엔 은화(銀貨), 1920년부터 백동화(cupro-nickel)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당연히 여기선 ‘은화’가 맞다.
(2) 소년이 2펜스를 떨어뜨린 곳은 위에서 보듯이 자기 주머니에 있던 6펜스 은화 위이지 바자 회랑이 아니다. 기억력은 한계가 있으니 이런 책을 쓸 때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3) 필자가 보기에 소년이 계획하였던 선물 구매금액은 2펜스이다. 즉, 선물을 사기 위해 페 니 두 개를 꺼내/또는 주머니 안에서 별도로 손 안에 꼭 쥐고 있다가 도자기들의 가격을 보고는 큰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턱도 없는 돈을 가지고 바자회에 왔다고 바보같이 보이는 건 싫었든지 어정어정 거리다가(이것도 소년의 마음뿐이고 그래 봤자 어차피 우습게 보인 건 마찬가지였으리라), 돌아서며 손아귀의 페니 동전 두 개를 남아 있던 6펜스 은화 위에 떨어뜨리는 것이며, 여기서 역산하여 올 때 기차표 값이 4펜스가 되는 것이다.
(4) 정리해보자. 소년은 2실링(24펜스)짜리 플로린 은화 한 개를 받아, 기차표(4펜스)를 사고 1실링짜리 은화 하나, 6펜스짜리 은화 하나, 1페니 동전 2개를 받았다. 6펜스 출입구를 찾지 못해 급한 마음에 1실링 출입구를 통해 들어왔으므로, 6펜스 은화 하나, 1페니 동전 2개가 남았는데, 돌아갈 차비(4펜스)를 감안하여 6펜스짜리 은화는 못 건드리고 남은 1페니 동전 2개를 손아귀에 꼭 쥐고 선물을 사려 어정거렸던 것이다. 6펜스짜리 은화 내고 2펜스 돌려받으면 4펜스는 쓸 수 있다는 계산을 못했을 만큼 유치하지만, 또 이것이 얼마나 소년다운가? Gifford는 2마일 조금 더 되는 거리를 걸어갈 생각을 했으면 8펜스 모두 쓸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원했던 선물은 살 수 있었을지 의심된다고 썼다(Gifford, p.48)
16. I heard a voice call from one end of the gallery that the light was out. (p.28)
마지막 장면이다. 위의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바꾸어 보자.
I heard a voice call from one end of the gallery , “the light is out.”
이제 따옴표 안의 부분을 해석해 보자. 동사를 단순현재형으로 쓰면 바로 눈 앞에서 잠깐 일어나는 동작을 나타낼 때(“지금 불 꺼요!”)가 있는데, 스포츠 중계에서 시제가 단순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 예이다. 반면 과거형을 쓰게 되면 ‘이미 불이 꺼졌다’는 뜻이 된다.
불이 꺼졌다고 외치는 소리 (김병철)
불이 나갔다고 외치는 한 가닥 목소리 (김종건)
불을 끈다는 소리 (김정환) (Bingo!)
17. 글의 끝으로 멋있는 번역을 소개할 시간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말을 걸어온 순간 불빛 속에 현관의 난간 위에 서있는 맹간의 누나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The light from the lamp opposite our door caught the white curve of her neck, lit up her hair that rested there and, falling, lit up the hand upon the railing. At fell over one side of her dress and caught the white border of a petticoat, just visible as she stood at ease. (p.24)
우리집 문 반대편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이 그녀 목의 하이얀 곡선을 드러내고, 그 위에 얹힌 그녀의 머리칼을 밝히고는, 아래로 내려가 난간 위의 손을 밝혔다. 불빛은 그녀의 옷 한쪽 편으로 내려와, 그녀가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순간 보일락말락하는 속치마의 그 새하얀 가장자리를 비춰주었다. (김정환)
* * *
위의 문장 외에도 다음의 매우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문장들을 다시 한번 잘 새겨보자. 소년의 감정이 과연 순수하고 신성하기만 한 사랑이었을까?
But my body was like a harp and her words and gestures were like fingers running upon the wires.
While she spoke she turned a silver bracelet round and round her wrist.
카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은 조이스는 여성을 창녀(유혹하는 자)/성모 마리아(천사)로 이분화 혹은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또 둘을 같은 대상에다 겹쳐놓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주로 후자의 모습으로 나오지만 전자를 암시하는 부분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민태운)
(필자 사정으로 다음 글은 조금 늦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