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보드웰, 홍상수를 만나다

최근에 미국의 저명한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의 내레이션1>(시각과언어, 2007)이 번역돼 나왔다. 원저는 'Narration in the Fiction Film'(1985)이고, 380여쪽 분량이다. 국역본은 분량상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된다고 하며 그 첫권이 얼마전 서점에 깔린 듯하다.

나는 주중에 교보에서 발견하고 바로 계산대로 갔다(러시아 영화이론서를 번역하고 있는 중이라 영화학 서적들을 챙겨두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짐작에 2009년에 나올 듯하다). '전문서'로 분류된 탓인지 이 책에 대해서는 관련리뷰들이 뜨지 않는다. '보드웰'을 검색해보다가 몇 년전 방한시에 홍상수 감독과 나눈 대담을 다시 읽게 되었다('씨네21'의 지면에서 당시에 읽었던 것 같다). 눈에 띈 김에 스크랩해놓는다(이창동, 허진호 감독들의 신작을 올해는 기대하게 되지만 내게 홍상수의 영화들은 언제나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씨네21(02. 12.14) 보드웰, 홍상수를 만나다

<영화예술> <세계 영화사> <영화스타일의 역사> 등 영화 연구 입문서를 비롯한 다양한 저서를 내놓은 미국의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 교수가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씨네21>은 모종의 ‘공작’에 착수했다. 그것은 보드웰 교수와 홍상수 감독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영화의 언어구조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온 ‘구조주의자’ 보드웰 교수가 남달리 눈여겨본 영화인 목록에 홍상수 감독이 자리해 있다는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는 홍상수 감독의 내러티브와 비주얼이 보여주는 미학적 특성이 허우샤오시엔과 차이밍량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미니멀리즘 유파에 속해 있는 동시에 그 이상의 개성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계 영화사>의 개정판과 그의 새로운 저서에 이러한 연구내용을 담아낸 바 있다. 지난 9월 공항 검색 강화로 비행기를 놓쳐 USC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불참한 보드웰 교수가 발표하려던 주제 또한 “홍상수: 아시아의 미니멀리즘을 넘어서”였다. 세밀한 분석가로 이름난 세계적인 영화학자, 그로부터 ‘사랑의 메스’를 받은 감독은, 따라서 늦게나마 서로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부산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11월17일, 서울에 이어 부산에서도 강연이 예정돼 있던 보드웰 교수, 그리고 뉴커런츠 부문의 심사위원을 맡은 홍상수 감독을 어렵사리 한자리에 모셨다. 마침 이들은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고, 이 사실을 먼저 알았던 보드웰 교수가 자신의 새 저서 <세계 영화사> 개정판을 홍 감독 방에 선물로 남긴 뒤였다. 이에 홍상수 감독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긴 두권짜리 <화인열전>을 답례 선물로 준비해 들고 나타났다. 그는 보드웰 교수에게 자신이 특별히 좋아한다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펼쳐 보여주며, 영화의 영감, 그 원천에 대한 힌트를 흘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 시간 남짓 얼굴을 마주한 이들은 엄청난 속도와 밀도로, 영화 만들기와 영화 분석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보드웰 | 어제 강연에서 나는 ‘아시안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했다. 롱테이크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이뤄진 어떤 미학적 경향은 아시아영화에서 매우 보편화돼 있다.당신 영화의 미니멀리즘적인 특성으로 <오! 수정>의 무대화 방식을 예로 들어보면,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함께 앉아 술 마시는 장면이 있다.재훈이 자리를 뜬 다음 수정이 그 자리로 옮겨 앉고 나서, 옆에 있던 두 남녀가 화면의 전면에 자리잡게 되는 상황부터가 흥미롭다. 그 남자와 여자는 메인 캐릭터들의 메아리처럼 그들의 행동을 모방해 보이고 있다.영수가 수정에게 술 마시기를 강권하고 있을 때 앞에 앉은 여자가 코냑병을 기울인다.난 늘 궁금했다.이런 장면을 구상할 때 사전에 얼마나 계획하고 또 얼마나 우연에 의존하는지.

홍상수 | 신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몇개는 촬영 전에 이미 결정되고 나머지는 촬영 중에 현장에서 만들어진다.그리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선택된 요소와는 다른 종류의 요소들이 촬영 중에 만들어져 영화 속에서 어떤 일관성을 갖고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촬영 직후에 모니터링과 편집 중에 발견하게 되고,그때 그곳에 놔두느냐 아니면 버리느냐, 하는 선택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무의식적으로 컨트롤되는 요소들이 신 안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내게 약간은 신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보다 훨씬 많은 우연의 중첩과 깊은 저층에서 어떤 목적을 가진 힘이 요소들간의 연결을 의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현상이다. 어쩌면 이런 요소들이 의식적으로 집어넣는 요소들보다 내가 더 비밀스럽게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특히 배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런 종류의 요소들은 가장 가치있게 받아들여진다.

보드웰 | 숏을 어떤 순서로 구성하는지도 궁금하다.배우들의 위치를 정한 뒤에 카메라 포지션을 정하는 것인가, 아님 카메라 포지션을 정한 다음에 배우들의 위치를 정하는 것인가.

홍상수 | 카메라 포지션을 먼저 정하는 편이다.그런 다음에 연출부들이나 스탭들을 대역으로 해서 정확한 움직임을 결정한다.배우들은 다른 곳에서 리허설을 거의 마치고 마지막 순간에 카메라 앞으로 데리고 나온다.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이 테이크가 단 한번의 테이크라는 느낌을 갖도록 최대한 배려하려고 한다.

보드웰 | 그러려면 테이크를 많이 가진 않겠다.두세 테이크 정도.

홍상수 | 일반적으로 서너번 정도의 테이크를 가고, 어떤 경우는 열번 넘게도 가는 것 같다.연기의 선도는 테이크가 갈수록 당연히 떨어진다.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다른 요소들, 꼭 타이밍이 맞아야만 맛이 나는 요소들, 연기의 신선도와 상관없는 이런 요소들 때문에 테이크가 많아지는 경우가 꽤 많다.

보드웰 | 차이밍량이나 허우샤오시엔처럼 당신과 비슷한 감독들의 경우, 모두가 작은 디테일에 충실한 것 같다.이런 방식의 장점은 신을 리얼타임으로 전개해 나간다는 것인데, 그러고는 배우의 작은 제스처와 사물의 작은 디테일을 통해 이야기를 채워나간다.<강원도의 힘>의 금붕어 장면이나 서로 술을 따라주는 장면이 그렇다.당신은 캐릭터들의 상호관계를 통해 디테일을 풍부하게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런 부분들은 아까 말한 리허설의 연장과도 같은 촬영 방식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인가.

홍상수 | 영화 만들기의 전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작은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계속 전체라는 구조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보드웰 | 당신은 배우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세밀히 관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미국영화, 심지어 유럽영화를 둘러봐도, 그렇게 배우들이 자신을 드러내도록 기다려줄 만큼의 인내심이 엿보이는 예는 없다.

홍상수 | 한신에 10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그중 적어도 3∼4가지는 모든 관객이 관람 중에 꼭 알아차려야 하는 요소일 것이다. 나머지는 관객이 누구냐, 그 한 관객의 그 순간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그러나 이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도 그런 관객의 의식의 필터를 피해서 스며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은 3∼4가지보다 많은 요소들이 다수의 관객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드웰 | 맞는 얘기다.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감독들은 모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중요한 포인트는 명시하는 동시에 일부는 이해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렇지 못할 작은 디테일들을 함께 배치한다.내가 당신의 영화나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를 서너번씩 반복해 보길 즐기는 이유는 처음 볼 때 모르던 것들이 다시 볼 때는 보이기 때문이다.나는 이것이 시야를 넓게 잡은 화면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숏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내 단번에 볼 수 없는 요소들도 다시 보면 보이게 하는 그런 장치 말이다.

보드웰 | 당신의 영화는 많은 요소들로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매우 생략적이기도 하다.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부 보여주지 않으면서, 드라마틱 포인트를 넌지시 알려주는 식이다.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이런 갭을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최근의 아시아영화를 보면 미니멀리즘적 스타일로 접근하면서도 기본적인 것들을 채우지 않는다.당신 영화에서 보이는 것 같은 조밀함은 없다.

홍상수 | 언뜻 보면 단순한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단순한 상황 속에 다른 종류의 요소들이 중첩되고, 그런 요소들이 시간상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서 발견한 영화의 형태였던 것 같다. 맨 처음 영화를 만들 때 첫 촬영날부터 이런 식의 형태가 마치 내 속에 오래 존재했던 것처럼 나의 모든 영화적 결정들을 지배해왔다.

보드웰 | 영화학교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 학교에서 콘티 그리는 법이나 스토리보드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나.그리고 학교에서 만든 습작들은 어떤가. 장편영화와 유사한가.

홍상수 | 학교에서 실험영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스토리보드 같은 건 만들어본 적이 없다. (웃음) 2편인가 장편을 만들고 나서, 학교 때 만든 습작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장편에서 시도했던 거의 모든 것이 이미 그 단편들 속에 존재했다는 걸 알고 무척 놀랐다.

보드웰 | 그 작품들을 DVD에 넣을 생각은 없는지.

홍상수 |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다.(웃음)

보드웰 | 한국에 돌아와서 장편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홍상수 | 돌아왔을 때 나는 일단 생활을 위한 돈을 벌고 여유가 생기면 16mm 카메라를 사고, 그래서 최소한의 경비를 쓰는 단출한 독립적 형태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그때 갑자기 충무로 안이건 밖이건 힘들 테니 일단 충무로쪽부터 시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영화사를 찾아갔다.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터랙티브’하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관객은 스토리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주어진 요소들을 통해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게이머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 그런 효과는 다른 아시아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다.당신이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절한 모더니스트인 것 같다. 표면적인 장치들이 거대한 전체 구조와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 둘 사이의 밸런스가 기막히다. ”

보드웰 | 매우 인상적인 데뷔였다.내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것이 96년 홍콩영화제에서였을 거다.그러니까 그뒤로 2년에 한편씩 작품을 만들어온 셈인데, 최근 <생활의 발견>을 보고 좀 놀랐다. 놀림당한 기분이랄까. (웃음) 이전 세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어떤 트릭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그런데 이 영화는 뭐랄까, 소설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홍상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 교차 시점이 동원된 지점은 호수에서 오리배 타면서 라이터 빌리던 남자와 골목길에서 다시 마주치는 장면 정도인 것 같다.나머지 부분에선 다중 시점을 동원하진 않았다.이전 세 작품에서 당신은 다중 시점을 동원했고 시점의 변화 형태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했다.늘 궁금했는데, 당신은 왜 그런 방식에 관심을 갖는가.

홍상수 | 내게는 어떤 상황이나 아주 구체적인 대사나 신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영화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의 과정이 뒤따랐다. 그건 보통의 형태나 논리로는 끼워넣어지지 않는 것들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형태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형태가 먼저 내 속에 존재해 있었고, 그런 형태가 그런 상황이나 대사나 신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의 발견>에서는 그전의 영화 속에서 구조가 하던 기능을 인물 행위 속의 작은 디테일을 통해서, 그러니까 반복과 모방의 모티브를 통해서 나타내려고 했다.

보드웰 | 요즘 아시아영화들은 지나치게 생략적이라 때론 그 스토리가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다. 드라마의 단계를 무시하고, 캐릭터의 백그라운드에 침묵하며, 개개의 에피소드가 자기충족적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내러티브의 역할이 적다는 것이다.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터랙티브’하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웃음) 관객은 스토리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주어진 요소들을 통해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게이머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 그런 효과는 다른 아시아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다.당신이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절한 모더니스트인 것 같다. 표면적인 장치들이 거대한 전체 구조와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 둘 사이의 밸런스가 기막히다. 개개의 신에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찾아내게 할 뿐 아니라, 신과 신 사이의 연결점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매우 신선하다. 그런데 혹시 <생활의 발견>을 만들 때 관객이 당신의 전작들을 다 봤을 거라는 가정을 했나.

홍상수 |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는다. 매번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내게는 다른 종류의 동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주 막연한 영화에 대한 느낌과 구체적인 형식에 대한 실험 욕구 같은 것이다. 인물 전반에 대한 느낌도 나이가 들수록 천천히 변해가는 것 같다. 전작보다 가벼운 느낌을 생각했던 것 같고, 좀전에 말한 구성의 기능을 모티브화한다는 것 정도가 처음에 있었던 것 같다.

보드웰 | 당신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캐릭터들이 미디어와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생활의 발견>의 남자 주인공은 영화배우이고, <오! 수정>의 인물들은 TV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나는 이것이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 영화 만들기의 자기 반영적 작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홍상수 | 지금까지는,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공간이건 상황이건 직업이건 간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선택한 것 같다. 그것은 영화를 만들면서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들이 어떻게 잘못돼 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익숙함이 판단에 어떤 직감적 레퍼런스로 존재하길 바랐기 때문인 것 같다.

보드웰 | 혹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나.옛날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역사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나.아님 다른 장르영화라도.

홍상수 | 많은 다른 가능성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지금까지 내 안의 영화적 욕망은 두 가지로 나뉜다.한쪽 욕망은 지금까지 해온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어떤 정수에 도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머티리얼(material)이나 틀 속에 나를 집어넣고 어떤 것이 나올까를 보고 싶은 욕망이다.이 두 욕망은 계속해서 공존해왔다.

보드웰 | 당신 세대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 다른 영화를 참조하거나 언급하는 경향들이 있다. 그런데 당신 영화는 그렇지 않다.시네필적인 요소나 분위기가 없다고 할까.

홍상수 |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 중 그대로 따라하고 싶은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다.내가 대가들로부터 따라하고 싶고 실제로 배웠으면 하는 것은 그들의 밸런스 감각이고, 어떤 최선의 의미의 진정성이고, 자신의 삶과 영화, 그리고 영화 작업의 현실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었던 것 같다.대가의 영화에서 어느 부분을 선호하게 되는 건, 거기서 바로 그런 능력을 확인했거나 아니면 내 속에 이미 있는 어떤 경향을 표현해내는 훌륭한 예가 되었기 때문인데, 그런 선호가 나를 틀로서 기억으로서 억압하게 하지는 않았다.

보드웰 |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팜므파탈>을 보면, 자신의 영화를 비롯한 다른 영화에 대한 인용으로 가득하다.흥미롭긴 하지만, 섞어놓기 게임 같다고나 할까. 다른 영화를 인용하지만 정작 자기 이야기가 없는 영화들이, 이젠 지겹다.당신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홍상수식 영화구조와 보드웰식 영화 분석 ‥‥‥‥‥‥‥‥‥‥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 중 그대로 따라하고 싶은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다.내가 대가들로부터 따라하고 싶고 실제로 배웠으면 하는 것은 그들의 밸런스 감각이고, 어떤 최선의 의미의 진정성이고, 자신의 삶과 영화, 그리고 영화 작업의 현실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었던 것 같다.”

홍상수 | 내 영화 속의 여러 요소 중 특히 집중하는 요소들이 있고, 다른 요소들은 따라오게만 하는 식인데, 그런 다른 요소들이 어떤 때는 집중해온 요소들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나는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 같고, 호기심만이 진정한 진정성의 근거라고 생각한다.나는 영화작업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모른 채 시작하고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보드웰 | 사람들은 일정 부분은 의식적으로, 또 일정 부분은 직관을 통해 영화를 만든다.계획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섞여 있게 마련이고, 이들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런 것들이 결국엔 영화‘구조’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무엇이 계획된 바고 무엇이 우연한 결과인지 정확히 가를 순 없겠지만, 내가 영화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의 패턴으로서 관객에게 매우 강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홍상수 |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일어나건 그건 결국 나의 선택인 것이다.그것이 계획을 통해서 일어났건 발견을 통해서 일어났건.그리고 그런 두 종류의 선택이 내 영화의 두 동력을 이루는 것 같다.

보드웰 | 영화를 컨트롤하는 일은 꽤 다층적이다.이거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그 선택의 결과가 풍부한 구조로 형상화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된다.그 모든 걸 계획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연히 얻은 효과라고 해도, 어쨌든 자의에 의해 선택됐고 영화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홍상수 | 어떤 영화감독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지 않을 것 같다.

보드웰 | 흥미로운 생각이다. 히치콕은 스크립트와 스토리보드를 준비하는 것이 한편의 영화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멍청한 배우들이 대사를 버벅거리고 카메라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촬영 현장이 지겨워진다고 말하곤 했다.그는 완벽한 통제를 원했고 그런 욕망을 과장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당신 생각에 동의한다.많은 영화감독들이 영화 만드는 과정을 ‘계획’은 물론 ‘발견’에도 비유한다.

홍상수 | 그 두 단어를 좋아한다.나는 영화 만들기의 모든 단계에서 ‘과정’을 믿고, ‘발견’을 믿는다.

보드웰 | <오! 수정>을 흑백으로 찍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홍상수 | 무엇보다 내가 흑백 시절의 고전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꼭 한번은 흑백을 찍고 싶었고, 촬영 시간대인 겨울과 흑백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또 다른 이유는 흑백이라는, 컬러보다 조금 더 단순한 자극체 속에서 영화 속에서 필요로 하는 작은 디테일간의 비교가 좀더 쉽게 이루어졌으면 했다.

보드웰 | 당신의 영화를 보면 매번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네 사람의 시점을 서로 다르게 교차시키고 있고, <강원도의 힘>에서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는 점에서 좀더 복잡한 시도를 하고 있다.<오! 수정>은 또 다르다. 두 사람이 겪은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표현해낸 것이다.한 버전은 마일드하게 또 다른 버전은 터프하게 담아냈는데, 관객은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진다.양립 불가능한 신을 통해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 저의는 무엇이었나.

홍상수 | 그런 혼란을 통해서 관객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그 혼란이 바로 영화가 중심으로 삼은 질문을 관객에게 체험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드웰 | 경이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혹시 릴을 잘못 끼운 건 아닌지, 아까 제대로 못 본 것인지, 못 볼 걸 본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둘 중 어느 것이 맞는 버전이라고 단정하지 않은 것 또한 신선한 시도였다.40년대 미국영화를 보면 이른바 착각을 유도하는 플래시백이 유행했었다.플래시백을 두어번 동원하는데, 대개 나중 버전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장치였다.유명한 예로 <크로스 파이어>를 들 수 있다.살인 용의자의 증언에 따라 상황이 재연되고 나서 같은 상황을 다른 시점으로 다시 보여주는데, 이전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라쇼몽>도 마찬가지다.플래시백이 동원될 때마다 이전 버전을 수정하는 경향이 있고, 결국엔 마지막 버전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곤 하는 것이다.당신의 영화에선 플래시백이 아니라 시점의 교차라고 해야 맞겠지만 말이다.

홍상수 |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 상황에 따라그 사람의 욕망에 따라 변질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따라서 의문을 남기는 것이어야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정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드웰 | <롤라 런>의 경우는 서로 다른 미래 상황들을 나열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SF적이라고 볼 수 있다.그 작품에선 앞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간의 상관관계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반면 당신의 영화는 두 상황이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모호한 느낌을 준다.그런 의미에서 매우 소설적이라고 느껴지는데, 혹시 문학 작품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홍상수 | 영화만큼이나 문학과 미술 작품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문학이나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많이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보드웰 | 최근에 롱테이크를 즐겨 쓰고 화면의 심도를 중요시하는 감독들에 대한 연구서를 집필했다.루이 푀이야드, 미조구치 겐지, 테오 앙겔로풀로스, 허우샤오시엔 등이 주된 연구 대상이다.당신도 해당되는데, 첫 번째 챕터에서 <오! 수정>의 화면 구성을 분석했고, 마지막 챕터에서 <생활의 발견>에 대해 썼다.다른 유럽 감독들과 비교해 보이기도 했다. 오타르 요셀리아니(<월요일 아침>) 같은 감독.요셀리아니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건 유감이다.그 역시 롱테이크를 좋아하고 독특한 코미디를 구사한다.캐릭터도 당신 맘에 들 거다.만날 술 마시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웃음)사회의 낙오자들이랄까.그를 비롯한 몇몇 유럽 감독들을 당신과 비교해봤는데, 모두 느리고 사려 깊고 심미적인 영화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이 저서는 말하자면, 최근의 영화들이 무작정 컷 수를 늘려가고 있는 데 대한 저항인 셈이다. 당신도 당분간은 갑자기 컷 수를 엄청나게 늘린다든지 하는 변화는 시도하지 않길 바란다. (웃음) 당신의 영화를 언급할 수 있어서 기뻤다.특히 나는 <오! 수정>의 먹는 신을 언급했는데, 당신 영화엔 특히 먹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그것은 다른 아시아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허우샤오시엔도 그렇고, 홍콩영화를 봐도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감독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재미난 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예다.그의 영화엔 먹고 마시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그건 그가 그런 장면들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란다.<하나비>에서 사내의 눈에 젓가락을 꽂는 장면은, 먹고 마시는 장면에 대한 혐오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웃음)세상엔 두 종류의 감독이 있는 것 같다.오즈나 브레송처럼 비슷한 걸 시도하면서 그 안에서 정련의 과정을 거치는 쪽과 오시마 나기사처럼 매번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는 쪽.당신은 어느 쪽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나.

홍상수 | 막연하게 느끼는 것은 한시적으로는 당신이 말한 오즈 식의 파고듦과 정련을 해나갈 것 같다.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만든 틀이라고 생각드는 것이 억압적으로 작용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그런 경우를 사실 많이 상상하곤 한다.서서히, 그렇지만 같은 강도를 가진 움직임으로 변해나가고 싶다.

보드웰 | 오즈는 닫힌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영화를 다듬었지만, 서서히 벗어나는 것 역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아주 좋은 생각이다.

07. 04. 21.

P.S. 번역돼 나온 보드웰의 책을 나는 모두 갖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영화의 내레이션> 외에도 몇 권의 책이 더 번역/소개됨 직하다.

그 중에서도 현대 영화에서의 이야기와 스타일을 다룬 <헐리우드가 말하는 방법(The Way Hollywood Tells It)>(2006)이 가장 최신작이면서 가장 흥미를 끄는 책이다(<제리 맥과이어>의 한 장면이 표지로 쓰였군). 번역을 기다리느니 그냥 원서를 읽는 게 더 빠른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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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퍼온글] '인정투쟁'과 민주화 시대: 호네트와 강준만

'인정투쟁'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 주제의 원천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개인적으론 지젝 이전에, 읽히지 않는 헤겔을 그래도 읽어보려고 애쓰면서 자료들을 모으고 했던 건 순전히 이 테마에 관해서 뭔가 글을 써보기 위해서였다. '주인과 하녀의 변증법'이란 제목으로(조만간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유효한 프로젝트이다). 이 주제에 관한 가장 간명한 소개서는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동녘, 1996)이고, 이와 관련한 연구서 서너 권을 나는 갖고 있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1949년생이고, 하버마스의 수제자로서 현재는 프랑크푸르트 소재 사회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소위 3세대 프랑크프루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이다(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방한한 적이 있다). 물론 예전의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아니지만. '사회와 철학연구회'의 사회와 철학 시리즈 중 <한국사회와 모더니티>(이학사, 2001)에 그의 대담이 실려 있다. 내용 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종합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론적 기획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을 발췌하여 잠시 옮겨본다.

질문: 당신은 <인정투쟁>에서 인정투쟁 개념이 푸코의 이론적 성과를 의사소통 이론 속에 통합시키는 개념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인정투쟁 개념으로 하버마스와 푸코를 통합시킬 수 있는가?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론적 결함은 무엇인가?



 

 

 

답변: 나는 인정투쟁 이념을 통해서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론적 관심을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푸코의 관심사는 근본적으로 모든 형태의 공동체, 모든 형태의 사회를 항구적 투쟁의 일시적 휴전상태로 보려는 데 있다. 즉 푸코의 근본이념에 따르면 사회적인 것은 투쟁이며, 기존의 질서는 단기적인, 일시적인 휴전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푸코에게는 투쟁의 동기에 대한 납득할 만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 홉스와 니체의 유산을 이어받은 푸코는 사회에서 투쟁하는 이유를 자기본존을 위해서나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서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간학적으로나 사회이론적으로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아마도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의사소통적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는 하버마스의 이념에 헤겔적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분명한 투쟁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인간은 개별자로서든 집단으로서든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한 사회 속에서 투쟁한다. 이 점이 바로 하버마스와 푸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즉, 인정투쟁 모델은 의사소통이념과 투쟁이념을 결합시킨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모델을 갈등이론과 충분히 결합시키지 못했다. 하버마스는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나 상호작용 속에 존재하는 갈등이나 투쟁의 요소가 자주 사라지곤 한다. 하버마스는 부명 의사소통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빈번히 인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때문에 요구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푸코의 최대의 결함은 그가 투쟁의 동기를 너무나 홉스적으로 본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사회를 자기보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니까 호네트의 이론적 기획을 요약하면 푸코(투쟁이념)과 하버마스(의사소통이념)를 접속시키는 것이겠다. 덧붙여서, 그의 학문적 '아버지' 하버마스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하버마스에게서 성장한, 이제 어른이 된 제자이다. 그러나 배신자이거나 살부를 감행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성장한, 그러나 자립적 사고를 감행한 그의 아들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생각은 계승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보완은 아니다. 결코 보완이나 단절은 아니다. 나는 하버마스가 기초한 프로젝트를 자립적으로 계속해서 사고한 것뿐이다..."

호네트가 푸코나 하버마스보다 더 멀리 가기를 기대해보지만, 아직 '후속타'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아쉽다(우리 '통신원들'이 직무를 게을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주제에 관하여 내가 당장에 보탤 말은 없고, 대신에 작년에 여름 <한겨레21>(05. 08. 11)에 실렸던 '우리시대의 마당발' 강준만 교수의 기고문 "인정투쟁’ 민주화시대의 명암"을 옮겨놓으면서 몇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추려보겠다. 부제로 붙어 있는 건 "왜 간호조무사는 신생아를 학대했을까, 왜 사이버 삐끼들은 횡행하는가. 인정욕구가 매우 강한 한국의 네티즌들, 티티테인먼트로 흐를까 염려된다."였다(인용문에서의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한편 그의 책들이 예외없이 올해도 '행진'을 시작했는데, 첫타자로 나선 책은 <대중문화의 겉과 속3>(인물과사상사, 2006)이다. '사람들은 왜 인정투쟁에 빠져드는가"란 꼭지가 들어 있는데, 아마도 이 글과 관련된 것일 성싶다. 나머지 책들은 관련서들과 '인정'을 모티브로 한 처세서들.

 

 

 

 

-인간이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너무나도 깊고 근원적이어서 인류의 역사 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그러니까 인정욕구는 생물학적 본성은 아니더라도 이차적 본성쯤은 되는 듯하다). 옛날에는 전쟁터에서 이러한 욕구가 발휘되었지만, 오늘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군사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옮겨졌다. 우리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동기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경제생활이 물질적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명백해진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체제인바, 오늘날 사실상 모든 선진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 사회의 폭넓은 진화라는 마르크스주의적·헤겔주의적 의미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리플’의 본질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해준 덕에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론을 요약해본 것이다. 후쿠야마는 좀 독특한 유형의 본질주의 함정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들 밥은 먹고 살잖아?” 사람 사는 걸 ‘밥’이라는 본질로 환원해버리면, 그 밥의 값이 천차만별이라는 건 사소해진다. 극심한 빈부 양극화 체제에서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도 그 세계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겠지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는데 부유층이 추구하는 ‘인정’과의 엄청난 괴리에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인정의 빈부격차’가 다시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정의 빈부격차’는 아직 심각한 화두로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아주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에 의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티티테인먼트’(tittytainment)라는 개념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세계화’로 인해 ‘20 대 80’(부유층 20%, 빈곤층 80%)이 이루어진 세상에선 티티테인먼트가 판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entertainment’와 엄마 젖을 뜻하는 속어인 ‘titty’를 합한 말인데,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을거리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서 이 세상의 좌절한 사람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면서 흥분한 나머지 괴성까지 질러대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게 괜한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그렇게 말했다간 시대착오적인 인간으로 몰매 맞기 십상이다. 게임은 ‘국민산업’이 아닌가.(*내가 이 글을 치고 있는 PC방 옆자리들에도 초등학생들이 죽 늘어앉아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나 같은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나 백수들 외에 PC방에 죽치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저소득층 자녀들인 듯싶다. 집에서 오락을 할 만한 처지가 못되는 수준일 테니까. 해서 이들의 안쓰러운 유해환경은 '오락'이 아니라 오락실의 '탁한 공기'이다. 한번이라도 동네 PC방에 들러본 부모라면 담배 연기 자욱한 이런 곳에 아이들을 내돌리지 않으리라. 요즘 떠오르는 화두대로, 건강의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반복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인정투쟁’의 민주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아니 언제는 그런 시대에 살지 않았단 말인가? 이렇게 정색을 하고 전투적으로 묻는다면, 인류 역사 이래로 그랬다고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하겠지만, 겸손한 자세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간호 조무사가 신생아를 학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건으로 경찰서에 출두한 어느 간호 조무사는 “싸이월드에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영아들의 인상을 특색 있게 해 주변 다른 간호 조무사 또는 간호 관련 종사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이거 아주 중요한 ‘인정투쟁’이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연예인 누드 사진을 보고 싶으면 내 홈피로 오세요”라는 글을 올려 작은 소동을 빚었던 주인공도 자신의 홈피 방문자 수를 늘려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초등학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리플’의 본질도 인정투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의 ‘성기 노출’ 사건도 그랬지만,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삐끼’들이 나타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놀러 오세요. 보러 오세요. 화끈해요. 죽여준다니까요.” 아니다. 삐끼는 아니다. 삐끼는 돈을 벌기 위해 그런다지만, 우리 시대의 사이버 삐끼는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 조회 수를 올리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러는 것뿐이다. 보여줄 것도 없으면서 거짓말로 유혹하는 삐끼들도 있다지만, 행여 화를 내선 안 될 일이다. 조회 수 올리는 걸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그 소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몸부림에 감히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인터넷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 달라졌다. 과거 보통 사람들의 인정투쟁은 수단이 미비했다. 인정투쟁의 주요 수단이라 할 미디어는 엘리트의 독무대였다. 학생들의 경우 공부를 빼놓곤 기껏해야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이렇다 할 수단이 없었다. 운동을 잘하거나 주먹을 쓰거나 연애박사가 되는 길로 빠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돈질도 부유층 자제에 국한되었다.

유희주의에서 공동체주의까지

-인터넷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인터넷이 ‘규범 테크놀로지’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파급 효과가 인터넷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더 달라질 것이란 말인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보자면 ① 유희주의 ② 다문화주의 ③ 극단주의 ④ 공동체주의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첫째, 유희주의다. ‘유희주의’란 말은 없다고 시비를 걸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유희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찜쪄 먹을 수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상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좋겠다. 인터넷의 본질은 유희다. 사람에 따라 ‘오락’이라고도 하고 ‘엔터테인먼트’라고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경제’는 이미 주류로 등극한 지 오래다. 인포테인먼트, 에듀테인먼트, 폴리테인먼트, 도큐테인먼트, 마켓테인먼트, 이터테인먼트, 처치테인먼트, 워크테인먼트, 쇼퍼테인먼트, 볼런테인먼트, 티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를 물고 들어가는 수많은 합성어들이 양산되는 게 그 위력을 잘 말해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미래연구소 소장 폴 사포는 “디지털 기술은 너무나 흡인력이 강해서 ‘모든 것’을 유희의 도구로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크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읽을 수 있듯이, 위대한 문명의 몰락은 모든 것을 유희화한 데서 비롯됐다”고 경고했다.

-그대로 믿을 말은 아니지만, 유희 아닌 것들이 이젠 유희와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지 않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해졌다. 유희는 인정투쟁의 주요 수단으로 등극하면서 전투성을 획득했기에 더욱 그렇다. 예컨대 정치가 무슨 수로 유희와 경쟁할 것인가. 하긴 그래서 정치가 자꾸 유희화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사주간지마저 유희와 타협하지 않고 이렇게 골치 아픈 이야기 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건가? 생각해볼 점이다.

-둘째, 다문화주의다. 최근 인터넷엔 “님의 노예로 부려주시옵소서” “어린 ‘주인님’을 찾습니다” “내 속옷도 팔아요” 등을 외치는 카페가 많아졌나 보다. 가령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발’이란 단어를 치면 발을 탐닉하는 카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한 포털 사이트에는 이런 카페가 600개 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카페를 ‘변태 카페’라고 이름 붙였지만, ‘변태’의 경계 설정은 이제 날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그간 다문화주의는 소수자의 권익 옹호라는 점에서 좋은 의미로만 여겨져왔다. 인터넷 이전엔 당당하게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소수자들 중심으로 소수자를 이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소수자’의 폭발을 몰고 왔다. 인터넷 이전엔 뭉치기 어려웠던 소수자들까지 대거 인정투쟁을 위해 독자적인 동아리 또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늘 보수파의 공격 대상이었지만 이젠 일부 진보파도 다문화주의 공격에 합세했다. ‘성향의 소수자’건 ‘취향의 소수자’건 이들의 특성은 자신의 열악한 위치를 타개하기 위해 ‘단일 이슈 정치’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슈 한 가지만을 보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진보파는 이런 정치 행태가 소수 집단간 ‘연대’를 파괴해 진보 정치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게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점점 한국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이즈’와 ‘주목’의 문제

-셋째, 극단주의다. 인터넷은 대중의 전폭적인 참여와 그들의 인정투쟁 욕구로 인해 전반적으로 보아 반지성주의로 흐르게 돼 있다. 지성주의는 좋고 반지성주의는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한겨레> 문화생활부장 이인우는 “반지성주의·반지식인 정서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 문화의 특징적 흐름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고 본다”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인터넷을 지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는데, 이게 중립적인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쇄술이 지식의 생산과 소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과 같이 지식과 정보가 급속하게 전파되고 공유되고 가공되는 인터넷 문화가 지식과 정보의 평균화, 지성의 평등화가 가능한 것 같은 착각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는 것 같다.”

-화끈한 해결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반지성주의와 사이버 폭력이라는 극단주의가 상호 무관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정부는 사이버 폭력을 일소하겠다며 ‘인터넷 실명제’를 들고 나왔는데, 흥미로운 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반대하는 의견보다 최대 4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야후 조사에서는 찬성 79%, 반대 20%로 나타났으며, 20~30대 이용자가 많은 네이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5%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한 반면 반대 입장은 32%에 그쳤다. 이게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심층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

-넷째, 공동체주의다. 지금은 무분별한 사용으로 오염된 단어가 되었지만 초기의 ‘해커’를 떠올리면 되겠다. 해커는 원래 ‘인정’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도덕성 수준도 높았다. 남들이 자신의 기술 수준을 인정해주는 기쁨 하나로 돈도 받지 않고 폐인이 될 정도로 자신을 혹사해가며 프로그램 개발에 헌신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사이즈’와 ‘주목’의 문제다. 누군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할 때에 남들이 얼마나 주목해주느냐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다. 내가 무슨 희생을 하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희생하고 싶은 마음도 약해질 것이다. 반면 나의 희생이 영웅적 행위로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애초 마음먹었던 희생의 정도보다 ‘오버’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 ‘사이즈’와 ‘주목’의 경계를 깬 열린 공간으로 이타성과 협동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주의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인터넷 강국론’은 정말 허구가 아닐까

-이렇듯 인터넷을 주요 무대로 삼은 인정투쟁엔 명암이 있다. 세계 각국의 인터넷을 두루 살펴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한국 인터넷 문화의 독특한 특성 중 하나는 네티즌들의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간 한국은 보통 사람들의 인정 욕구 충족에 무심한, 아니 억압적인 사회였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게 좋겠다. 대중의 인정 욕구 충족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한다. 인정 욕구 충족의 방식이 획일적이라면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많은 사람들의 인정 욕구가 충족되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사회는 인정 욕구 충족에서 일렬 종대로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유별난 문화를 갖고 있다. 돈,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명품, 골프 등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데에 익숙한 문화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무지막지한 위계가 “한국에선 인간답게 살려면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수많은 속설들을 낳았고, 또 이것들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일하게 만든 동력이 된 게 아닌가 싶어, 과거의 민주화 투사들조차 자랑스럽게 뻐겨대는 ‘세계 10대 경제강국론’에 흔쾌히 박수를 치기가 어려워진다.

-인터넷이라는 축복이 인정 욕구 충족의 다른 출구를 열어준 것은 그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야 마땅하겠건만, 다문화주의의 일부와 공동체주의를 제외하곤 이것마저도 혹 ‘티티테인먼트’가 아닌가 싶어 주저하게 된다. 인터넷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는 많은 인터넷 기업가·전문가들이 한국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유희 중심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른바 ‘인터넷 강국론’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그런 주저가 시대착오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인정투쟁 민주화의 내실화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끝)

 

 

 

 

전반적으로 시의적절하고 발빠른 진단이다. 더불어 또다른 숙제까지 떠맡게 하는. 내가 임의로 골라본 참고서들이 숙제 해결에 도움을 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티티테인먼트와 더불어 자라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염려하고 공부해야 할 주제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06. 01. 24.

P.S. 이렇듯 자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나대로의 '티티테인먼트'가 아닌가 문득 반성하면서, 이성복의 '서시(序詩)'를 떠올려본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류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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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박노자가 본 한미FTA

레디앙에 실린 박노자와의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한미FTA에 관한 것인데, 그밖에 다양한 관심사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나로선 북한 체제와 민노당에 대한 그의 견해에 공감한다). 이미 우리시대의 논객이자 국외자적 지식인으로 자리잡았지만, 박노자는 가라타니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바로 그 ‘non-Jewish Jew’(비유대적 유대인)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혹은 ‘non-Korean Korean’(한국인이 아닌 한국인). 그런 입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요긴하며 필수적이다. 그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미FTA 관련인지라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다. 

레디앙(07. 04. 09) 한미FTA 정치사회적 겨울 온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박노자 교수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배층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한미FTA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사회는 미국식 모델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이라면서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한미FTA의 효과로 소비자 잉여가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 "소비자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라며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노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신랄했다. 그는 "(노 대통령같은)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분별하면서 자신과 노 대통령을 진보로 규정한 데 대해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수는 정규직 교수에 비해 능력 좋고 업적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고 꼬집었다(*이러한 '맡바닥' 사정은 조교수보나 박교수가 훨씬 잘 아는 듯 보인다). 

박 교수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것이 뻔해 보인다"면서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당이 젊은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은)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면서 "20대 여학생이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 후보 선출시 비정규직에 쿼터를 부여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심상정 의원이 제안한 비정규직 대상의 당원 가입 특례안에 대해서도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호응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레이스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미FTA 문제가 주제였지만, 한미FTA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른 이슈들로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한 박 교수의 분석은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박 교수는 북미관계와 관련,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분석에서 보듯 북한의 현 지배층에 대해 박 교수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니 북한의 지배층을 추종하는 운동권 내의 일부 경향에 대해 박 교수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지는 능히 짐작되는 바다. 그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주사파를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라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7일 낮 12시부터 성균관대학교 야외 휴게실에서 약 90분에 걸쳐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혜화역으로 가는 길에 보니 대학로에선 한미FTA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한미FTA 협상이 타결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 자세한 평가는 세부 내용을 봐야 가능할 것 같다.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앞으로 대중국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 한미FTA 특위 열린우리당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 건을 놓고 "동북아에서 경쟁력 있는 통일경제의 꿈"을 말했다.

= 송영길 의원이 말하는 경쟁력이라는 건 60~70년대 한국식 성장모델의 재판이다. 한국 노동자 대신 북한 노동자를 저임금 착취 모델로 몰아내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섬유제품 등을 미국에 팔아 60~7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기적을 재현해 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북한 정권이 한국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북한 지배집단의 동향을 보면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이렇게 되면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 자본과 북한 지배집단이라는 대리인에 의해 이중착취 상태에 놓일 것이다. 북한 민중이 절대적 기아사태를 면하면 다행이지만 이중착취 구조에서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지금과 같은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송영길 의원의 기대대로 된다고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송 의원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이 이란 침략 계획을 실행하지 않고 보류한다면 다시 한 번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 잠재적 경쟁 상대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집중적인 포위 프로젝트에 착수할 확률이 높고, 그 한 부분이 북한 때리기다. 북한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종속변수다. 중국의 대국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미국의 북한 때리기는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

- 미국에겐 대중국 정책이 상수라는 얘긴데.

= 그렇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전처럼 약탈할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미국에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교두보다. 이는 열강정치에서 확인된 지 오래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1901년부터 협상을 했는데, 당시 러시아측 요구가 뭐였느냐면 39선 이북 지역의 중립화였다. 한반도 북부지역을 일본 영향권과 대륙 영향권 사이의 완충지대로 파악한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북한을 보는 것도 당시 러시아의 시각과 같다. 당시 일본, 그리고 현 미국 세력의 영향권과 대륙 세력의 영향권의 충돌의 문제이지 북한 자체를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고 북한을 공격해서 얻을 것도 없다.

- 송영길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고 햇볕정책의 신봉자다.

=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북한의 지배집단을 잘 포섭하자는 얘기 아닌가. 싸우자는 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지 몰라도 한국 지배계급의 자기 위주 발상이다.

- 구여권에 있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 가운데는 한미FTA와 남북관계 개선을 같은 궤에 놓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 지금 정부와 구여권이 팔아 먹을 수 있는 건 북한 문제밖에 없다. 복지정책은 내세울 게 없고, 부동산 값도 잡히지 않고 있다. 민생파괴와 농업파괴는 한미FTA로 이미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도시의 30~40대 화이트칼라, 농민, 노동자들에게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유일한 게 북한 문제다. 이들은 진보적 지지층에 먹힐 수 있는 북한문제와 전혀 먹히지 않을 것 같은 한미FTA를 묶어서 강매하려는 것이다. 북한과 잘 되기를 원하면 한미FTA를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넘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 그런 단기적 속셈 말고 통일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상의 일단을 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만의 하나 미국이 앞으로 10~15년간 중국을 대상으로 침략과 포위 전략을 쓰지 않을 경우 북한은 동북아에서 일본 이상의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다. 제일 약자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투자도 받고 원조도 받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고, 이는 북한 지배층으로선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다.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장기적으로는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 한반도 남쪽 진보진영은 어떤 각도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하나.

= 한반도 진보진영에겐 나쁜 전통이 하나 있다. 외부에서 이상향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다. 처음에는 소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러시아 혁명의 파급 효과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러시아는 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성격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30년대 이후로는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그런데 한국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스탈린주의 및 러시아 혁명의 왜곡과 반동화를 비판한 사람이 없다.

중국만 해도 진독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 트로츠기(*트로츠키) 전통이 생건 건 90년대 초반이다. 소련이 한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숭배 대상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엄청난 재앙을 낳았다. 그리고 수십년 후인 80년대 남한에서 그 비극이 재연됐다.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로 착각했고, 소련이나 동독을 희망으로 여겼다. 이것이 운동권 문화를 왜곡시켰고 운동권 붕괴의 원인이 됐다.

동구권이 붕괴된 후 이런 환상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해서는 지난 20년대부터 있어왔던 이상향 찾기의 욕망이 계속 투사되고 있다. 이른바 주사파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강하게 존재한다. 운동권은 이를 완벽하게 버리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고 대중화될 수 없다. 남한 대중은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운동권에서는 계속 비현실적인 환상들을 붙들고 있다. 이것이 운동권 전체가 대중화될 수 없는 이유다.

- 소위 좌파 진영도 이렇다 할만한 대북 접근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 최적의 방향은 북한 민중이 혁명적인 노선으로 가는 것이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적 혁명이 한반도 정치를 급진화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최선의 방향을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 민중 진영의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대가 일정한 현실성이 있는 이유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전국 조직이 없어 그렇지 적어도 지역적으로는 노동자의 저항이 강해지고 있다. 민중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만 해도 지난해 300만명이 넘었고, 저항의 방법도 급진화되고 있다.

중국 민중들이 중산계급과 지배계급의 개발연대에 대한 정치적 반대노선으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저항의 분위기가 맨 바닥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 민중이 그간 얼마나 속았으며 지배계급의 전략에 어떻게 놀아났는가 각성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각성에는 위험성도 따르는데, 남한 사회에 대한 미화로 빠져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천국이라는 인식이다. 탈북자들이 대개 극우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반항심이 남한 지배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잘못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한 민중세력이, 남한 지배체제와 북한 지배체제를 동시에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혹은 그런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도움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는 남한 운동 진영이 탈북자를 철저히 외면한다. 탈북자를 매개로 북한 민중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렇다.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대단한 손실이다. 인간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주사파들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다.

- 어느 강연에선가 한미FTA를 '제2의 을사늑약', 이런 식으로 비유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청와대가 반대진영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는 논거 중 하나가 '어떻게 한미FTA를 을사늑약과 비교하느냐' 하는 것이다.

= 나는 물론 한미FTA가 을사늑약과 같다고 보지 않는다. 하나의 비유였을 뿐이다. 그 비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에 반대했다. 주요 각료는 찬성했지만 황제가 반대했다. 지배층 중에서도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데 대한 반대가 있었던 셈이다. 자기 사유물처럼 국가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니까 고종으로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미FTA는 좀 다르다. 한국의 지배계급 전체가 한미FTA를 찬성할 뿐더러 끌고 가고 있다. 대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도 환영하고, 고소득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환영한다. 이들 엘리트들이 한미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공고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미FTA 협정을 체결하면 부유세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에 없는 정책을 한국에서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료보험도 자기 부담 위주로 가는 완성되지 못한 제도로 남거나 미국처럼 민간보험 위주로 퇴보할 수 있다.

미국이 하나의 모델이 되면 교육의 공공성도 흔들리기 쉽다. 아직까지 3불정책이 유지되고 있고, 평준화 정책을 탈피하고 싶어도 국민 불만을 생각해서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모든 학교가 귀족학교와 빈민학교로 나뉘는 시스템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지배층의 새로운 유토피아다.

- 한미FTA를 찬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역진불능성에 대한 기대에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은 굳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많다. 일본 모델도 있고 서유럽 모델도 있다. 서유럽 모델 중에선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모델 등이 있는데, 국가를 통한 재분배가 위주가 된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북구식 복지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여론조사 해보면 상당히 높게 나온다. 그런데 한미FTA로 인해 이런 모델에 대한 모색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정부는 한미FTA 찬반 논쟁을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는 허구적이다. 조선 말기의 경우 강화조약 이전 조선의 무역의존도는 1%가 안됐다. 지금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한미FTA를 하지 않더라도 80%에 달한다. 한미FTA는 쇄국의 반대어로서의 개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을 높은 수준으로 통합하는 문제이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국가사회 발전모델을 미국식 모델에 종속시키는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

- 한미FTA로 피해를 입게 될 70~80%의 민중층 가운데 상당수가 이 협정을 찬성하고 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다. 한국은 국가와 보수적 재벌과 미디어가 영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나라다. 보수신문의 한미FTA 보도를 보면 가히 대국민 선전선동, 대국민 홍보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개발주의 신화가 강하다. 70년대 개발주의가 특정 시기에 일정 부분 성공한 면이 있고, 박정희 시대의 이런 성공 신화를 미디어들이 재생산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찬성 여론은 '박정희 신화처럼 해보자'는 분위기에 도움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개발은 외자와 차관, 무역 위주의 개발이었고 지금과 같은 시장통합적 개발은 아니었다. 박정희 개발주의가 일정 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장통합을 하지 않고 미국 재벌로부터 한국시장을 보호한 데 있다. 이게 성공비결이라면 비결인데, 한미FTA는 이 부분을 무시하고 시장통합으로 가는 것이다.

- 불리한 여론지형을 극복하고 반대론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 아직 협상은 체결된 것이 아니다. 미국쪽 사정 때문에라도 협정 체결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협정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을 계층과 지역이 존재한다. 반대 여론을 커지게 하자면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얘기해야 한다. 농민들이야 너무 분명하니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도시근로자들도 일부의 고소득 전문가층을 빼고는 장기적으로 혜택보다 피해가 많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식 모델이 강하게 도입되면 우선 직장의 안정성부터 흔들릴 것이다. 한미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자잉여를 자주 얘기하는데, 소비자가 누군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그 효시로 보이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로 봐야 할 것이다. 장차 공공부문 시장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다.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다. 서울시의 공무원 '퇴출 쇼'를 보면서 궁금한 건 왜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나 하는 것이다. 인권침해 요소가 대단히 큰 일 아닌가. 근무태만 같은 분명치도 않은 근거로 한 개인의 직장 안정성을 파괴하는 것이 법적으로 유효한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수 많은 다른 직장에서도 태만과 무능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퇴출될 것이다.

무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언제나 보스일 것이고 보스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 해고사항은 노조와 경영자측의 협의사항이다. 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것은 유럽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반면 한국은 공무원노조를 국가가 인정도 않고 있다. 해고할 때 노조 동의는 커녕 아무 고려 없이 경영자의 판단으로 노동자를 무능력자로 규정해 왕따시켜 밀어내는 것은, 일본 영화 '배틀로얄'에 그려진 대로 약육강식이란 사회진화론적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잔인한 쇼다. 



- 피해당사들이 협정 체결 후 어떤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실감을 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각도에서 지금까지의 한미FTA 반대 투쟁을 평가한다면.

= 민족경제론적 발상으로 협정을 반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종의 애국주의적 기조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가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 적용될 때 민중의 생활을 파탄시킬 것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가 미국 농민이나 중국 농민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 예컨데 중국 농민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그 자체로 해악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구조에서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 농민층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기댈수 있는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를 맞을 경우 농민들의 삶은 파탄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이다.

- 찬성측과 반대측이 공히 자신들의 논거로 드는 것이 있다. '국익'이다.

= 국익이라는 건 실체 없는 얘기다. 나라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만약 협정이 체결되면 일부 대기업은 득을 볼 것 같고, 거기에 하청화되어 있는 일부 중소기업들도 득을 볼 것이고, 귀족학교와 귀족병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부 고소득층도 득을 볼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실체를 이 기업들과 이 고소득층으로 본다면 한미FTA는 국익에 부합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부자들만 사는 게 아니지 않나.

-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익을 말한다.

= 한국에는 아직 국가의 신화가 강하다. 민중의 이득을 말하면 되고, 그게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텐데, 우리는 민중이라는 얘기를 고상하게 하려면 국가 얘기를 꺼내야 한다. 국가 없이는 고상하고 고매한 당위론적 담론이 서질 않는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아직 국가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 

-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반대론자들에게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한 국가 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궁극적인 대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당장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은 국제적인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재분배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재분배 장치라는 건 농민들의 소득보전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부유세, 교육무상화, 의료무상화의 3대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국은 그나마 민중들이 살만한 사회가 될텐데, 지금 전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 방금 말한 3대 조건이 충족되면 FTA도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 이런 것들이 개선된 이후에도 굳이 FTA를 모색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와 서로 민감한 부분을 100% 감안한 후에 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경우 잘 하면 노동시장까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어 배우기도 쉽고,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스템이나 문화가 비슷하고. 한국 노동자들에게 선진국인 일본 노동시장 유입을 보장하는 그런 FTA라면 민중들에게 덜 해롭지 않을까 싶다.

- 진보진영 일각에선 대안적 FTA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 자본보다 민중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FTA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노동시장 진입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라나라에도 불법 체류자가 많지만, 일본에서 불법으로 노동하는 한국 노동자들도 많다. 고생도 많이 하고 잡혀서 송환도 당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일본에 가서 노동하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 협정을 맺더라도 우선적인 고려는 이런 것이 돼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협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몇 가지 물으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자칭 '유연한 진보'라고 한다.

= 그 사람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다(웃음).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노무현 열풍 같은 것을 다시 재현하지 않으려면 지배계급이 어떻게 민중을 기만할 수 있는지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2002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당시 주관적으로는 스스로를 진보라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속 빈 이미지에 얼마나 놀아났는가. 이런 것이 재현되면 안 된다.

- 역시 유쾌한 질문도 아니고 유쾌한 답변도 나올 것 같지 않은데, 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이라는 정치학자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그런 분류법에 따를 때 자신과 노 대통령은 진보다.

=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조기숙 교수와 같은 정규직 교수가 5만명 있고 시간강사가 6만명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 6만명 중 정규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한국 대학의 재정상황이나 운영 방향으로 볼 때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 수는 정규 교수에 비해 능력이 좋고 업적이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 한국 교수들 참 이상하다. 시간강사 한 달 벌이는 100만원 될까 말까 하고 조기숙 선생같은 정규직의 급여는 잘은 몰라도 300~400만원은 될 것 같은데(*확실히 잘 모르는 것 같다), 전혀 그런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없다. 희귀한 사람들이다. 시간강사들이 주당 시수도 훨씬 높고, 시간강사들이 많은 수업을 해가면서 적은 돈을 받으니까 정규 교수들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건데, 말하자면 자신들이 하급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건데, 이런 데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한다. 희귀한 사람들이다(*박노자의 '진지함'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노무현 정부를 파시즘에 가까운 정부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 (노 대통령은) 그냥 '쇼맨'이다. 쇼맨인데, 이 쇼맨의 특기가 뭐냐하면 민중진영의 일부를 포섭해서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FTA 계기가 돼서 더 이상 이런 쇼맨들이 특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파시즘은.... 원래 한국 우파의 기본 심성이 파시즘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그의 동반자, 정적들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하면 더하겠지. 파시즘은 한국 우파의 기본 정서다. 국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법안들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극우적이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법안 같은 것이 그렇다. 유럽 극우들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게 뻔해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를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 당은 정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당 사업의 중심에 정파갈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이 서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결국 이 갈등에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20~30대층, 학생이라는 미래의 노동자를 흡수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젊은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당의 문화 자체가 20-30대 위주가 아니지 않나.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 예컨데, 20대 여학생이 민주노동당을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다.

- 학생들은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보나.

= 40대 운동권 아저씨들이 거드름 피우는 곳으로 보는 것 같다(웃음). 80년대 운동권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얻어 작은 수령님 노릇하는 아저씨들의 놀이터, 이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이래서는 성공 못한다. 당은 더 민주적이어야 하고, 미시적 문화도 젊은층과 여성 위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사회당이나 좌파를 보면 20대 국회의원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도층이 40대 후반 아닌가.

- 다른 문제는.

= 당은 비정규직을 포획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당의 중심에 비정규직이 없다.

-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얼마 전 심상정 의원은 비정규직 지분을 높이기 위한 당원 가입 특례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본다. 또 당 지도부를 뽑을 때 비정규직에 일정한 쿼터를 할당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뽑을 때도 여성 쿼터처럼 비정규직 쿼터를 주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이 당 사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비정규직의 투쟁이 있는 곳마다 민주노동당이 달려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기본일테고. 

- 당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게 있다. 그 이론을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다함께'라는 그룹의 활동 자체는 생산적인 것 같은데, 당내에서 그 분들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다함께'의 활동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은 탈북자에 대한 태도다. 민중진영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대상인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들은 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등은 다함께 이데올로기에 찬성하지 않아도 충분히 동의가 될만한 활동인데, 왜 당에서는 '다함께'를 왕따시키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이론에 찬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않는 것이고. 나만 해도 트로트키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아무튼 나름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인데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레디앙>에서 정성진 교수의 책을 놓고 오간 논쟁도 그렇다. 물론 정 교수의 논리에 몇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적대적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기사의 댓글들에서 확인되는 '다함께'에 대한 적대감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다함께'는 섹트적이지만 내부 문화가 비교적 민주주의적이고 학생을 확보하는 능력도 좋다. 당이 '다함께'의 활동방식에서 배울 것도 많다고 본다.

- 당내 대선 경쟁은 관심 갖고 보나.

= 유심히 보고 있다. 대중적인 호소력이 제일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은 대중성이 생명 아닌가. 나중에 그 사람의 정치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선은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07.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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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퍼온글]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

지젝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그간에 써놓은 페이퍼들과 관련자료들을 한 데 모아두기로 한다.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는 지난 2001년 'Radical Philosophy'(July/August )지에 실렸던 것은 필자는 숀 호머(Sean Homer) 교수이다. 우리에겐 <프레드릭 제임슨>(문화과학사, 2002)으로 소개된 바 있는데, 이념적 포지션상으로는 '제임슨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임슨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와 라캉이론의 접목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예단일 수도 있지만, 루틀리지에서 나온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자크 라캉>(2005)을 그가 쓰고 있는 걸 보면 근거 없는 예단은 아니다(이 시리즈는 도서출판 앨피에서 역간되고 있는데, <자크 라캉>은 아직 근간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다. 참고로, <데리다>와 <프레드릭 제임슨> 등이 근간예정이며, 기대해볼 만하다. 니콜라스 로일의 <데리다>는 모스크바에서 완독했던 책이기에 더더욱 기다려진다).

마르크스와 라캉을 접목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제임슨/호머의 이론적 기획은 지젝의 그것(헤겔+라캉)과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며 당연히 서로의 주장에 대해 민감할 것이다(좌파의 적은 보통 우파가 아니라 또다른 좌파이다. 서로가 '유사-좌파'로 간주하는). 이 논문에서 숀 호머 또한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해서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이진경주의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걸 떠올려보면 되겠다). 그런 걸 고려하면 일독해볼 만하다. 번역문 뒤에는 원문을 옮겨놓았는데, 아쉽게도 전문은 아니다. 'Radical Philosophy'지에서는 일부만을 원문 서비스로 제공하는 듯하다.

 

 

 

 

번역 텍스트의 출처는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제3권 제1호(2001년 여름)이며 원제는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이지만, 부제를 이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는다. 역자는 김서영씨이며,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숀 호머 교수의 지도 아래 자크 라캉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젝의 내한 강연문집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철학과현실사, 2005)에 실려 있는 강연문 '신체 없는 기관'이 그의 번역이다.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

-나는 신자유-민주주의 질서가 무한히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생태학적 위기나 그 밖의 다른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파열될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매우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인터뷰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버쏘 출판사에서 나오는 '그것이 있던 곳'(Wo es War)이라는 그의 총서의 성향에 대해 질문 받았다. 그는 그 총서들에 대한 전반적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두 정통이론의 재건을 총서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답했다. 지젝에 의하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과 결합된 엄격히 교조적인 라깡적 시각이다.”(*아래의 책들이 'Wo es War' 시리즈의 책들이다.)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앞의 주장은 1990년대 초기의 가장 유행적이고 재치 있는 이론가에서 현대 문화연구의 ‘미운 오리새끼’로 역전되는 그의 작업의 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행적을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에 반대하는 최근 논쟁은 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프와 같은 영국과 미국에 있는 그의 예전 동료들과 지젝 사이의 거리를 조명한다.(*라클라우는 지젝을 서구 지성계에 소개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 참조.) 

-얼마 전 피터 듀스가 지적했듯이, 지젝은 “국제무대에서는 ‘맑스주의’ 문화 비평가이고, 그의 고향에서는 민족적 성향을 띤 집권당인 신 자유당의 일원” 이라는 매우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지젝의 모호한 입장은 한 순간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에 관심이 있는 문화 비평가이며 다음 순간에는 정통 맑스주의자로 변모하는 지젝의 국제적 연혁 또한 설명한다.

-본 논문에서 나는 정통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지젝의 논의가 얼마나 '정통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이 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인 엄격히 '교조적' 라깡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이 입장이 얼마나 지속적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면서 동시에 맑스주의에 대한 지젝의 양가적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지젝에게 맑스주의는 그의 비평가들에 의해 언급된 이상으로 그의 글들에 구심점이 되어 온 듯 하며, 이 사실은 그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성향의 모호함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킨다.

-지젝이 말하는 맑스주의의 정확한 본질은 가늠하기가 어려운 반면, 지젝의 라깡에 대한 관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바로 이러한 그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의해 맑스주의의 정통적 이해의 가능성이나 명백히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과업의 실현이 배제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국제적 지성의 출현
-서유럽과 북미 학계에서 이룩한 슬라보예 지젝의 주목할만한 성공은 폄훼하기 어렵지만 한편 내게 그 성공의 당위성은 한번도 자명해 보인 적이 없다. 헤겔의 변증법,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그리고 라깡의 정신분석을 독특하게 혼합하는 지젝의 방법은 처음에는 포스트 모더니즘, 퀴어이론과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에 주력하는 영미 학자들의 풍토에는 그리 알맞지 않은 듯 하다.

 

 

 

 

-<정치적 무의식>의 제임슨이 아마도 유일하게 지젝과 비교될 수 있는 학자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매우 다른 학문체계를 함께 다루려는 제임슨의 시도는 포스트 맑스주의 좌파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 지젝에 대한 주목할 만한 긍정적 반응을 초래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는, 비록 같은 농담이 세 권의 책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지젝의 농담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짚고 넘어갈 점은 그의 글을 대중화시킨 가장 주된 요인인 그의 초기 두 권의 저작―<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자끄 라깡의 이해>(1991)와 <당신의 증상을 즐기세요! 헐리웃 안팎의 자끄 라깡>(1992)―은 지젝의 가장 비정치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맑스와 맑스주의는 이 두 권의 저서들 어느 곳에서도 주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며, 헐리웃의 주류 영화와 장르 소설들을 악명 높은 라깡의 불가해한 문장들을 설명하는데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명료히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일원으로 분류되었다. 어려운 이론과 대중문화를 접목시키는 능란한 솜씨와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명백한 관심은 그의 인기에 가장 주된 역할을 해 왔다. 로버트 미크리취가 말하듯 지젝은 “미국을 내부에서부터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외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지젝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을 우리에게 다시 투영해(reflects) 주며 이것이 우리가 그를 즐겨 읽는 이유이다 (이것을 라깡은 역투영(in reverse)이라 할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형식면에서 본다면 지젝은 명백한 포스트 모더니스트이며 때때로 지젝 자신이 그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해석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

 

 

 

 

-두 번째로, 지젝의 이론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관심에서 정치적으로 더욱 중요한 요인은 지젝의 글에 나타난 포스트 맑스주의를 이용한 이데올로기적 필터이다. 지젝의 글들 중 영어로 번역된 첫 저서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은 라클라우와 무프의 프로네시스 총서로 출판되었는데 그 총서의 발간사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듯이 프로네시스 총서는 반-본질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급진적 다원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좌파를 위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한다.

-어떤 면에서, 지젝의 글을 번역하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실재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연이어 일어났으며 서유럽에서는 서구 맑스주의의 최종적 소멸이 이미 완성되었거나 보증된 듯 했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학계의 경향은 최고조에 이르러 그 기세가 의기양양했다. 좋은 예로 라클라우와 무프의 글에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의 결론에서 보여주듯 그들의 주장이 본질적으로 맑스주의적 논쟁에 근거한다는 어떤 종류의 단서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국내에는 대표적인 포스트-맑시스트로 잘 알려진 라클라우와 무페(무프)의 책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터, 1992)로 번역돼 있다. 얼마전에 나온 무페의 신간이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이다. 두 사람은 '급진적 민주주의'의 주창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오히려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해박한, '사회주의'정부의 반대자인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삐딱하게 보기>까지 이 순간을 조명했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에서 라클라우가 말하듯,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의 구호가 명료한 동조를 끌어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클라우는 지젝의 이론과 슬로베니아 학파를 한편으로는 라깡주의에 연결시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 철학에 연결시키는 반면 (철학가로서의) 맑스나 '맑스주의적 구조주의' 이론가들과 '맑스주의 경향'의 영향에 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참조사항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라클라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포스트 맑스주의 시대에 민주사회주의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이론적 전망을 모색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적이다."

-이번에도 역시 지젝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견해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된 첫 독립 공화국임을 발표하는 전날 행해진 <급진주의 철학(Radical Philosophy)>을 위한 1990년 인터뷰에서 지젝은 그의 입장을 신흥 슬로베니아 자유당과 연관지어 명시하였다. 슬로베니아의 자유당은 유럽의 그 이외 지역에서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반대체제를 구축하고, 여성주의 운동과 생태학적 운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지젝에 의하면, 자유당의 특징은 재건된 공산당, 녹색당, 그리고 극우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그룹들을 연합시킨 정치적 경향인 인민 민족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있다. 다원주의, 생태학 그리고 소수의 권리 옹호를 이데올로기로 삼으며 자유당은 그들 자신들이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자유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포스트 맑스주의 경향을 식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이것은 샹탈 무프가 <정치적인 것의 회귀>에서 현대 정치학의 목표는 국가 체제의 전복보다는 민주주의의 실천과 그 제도들을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지젝은 신자유주의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데, 비록 지젝이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로 정의하고 자유당을 자유 시장 경제에 대립시키지만, 경제 개혁에 관해서 만은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 “만약 어떤 것이 효과가 있다면, 조금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맑스의 유령들
-지젝의 글 자체와 비교하더라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맑스나 맑스의 영향의 긍정적 가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인식도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제1장의 제목은 “맑스는 어떻게 증후를 발명하였나?”이며 여기서 지젝은 상품형태, 상품물신숭배,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잉여가치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제시한다. 즉, 지젝의 서론에서 더욱 분명해 지듯, 정신분석 용어를 빌면 일종의 억압의 순간이 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하버마스의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제외되어 있는 몇몇 고유명사들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하버마스의 앞의 책에는 라깡의 이름이 단지 다섯 번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나타난 맑스의 이름처럼, 매번 다른 사람과 함께만 말해짐을 지적하며 지젝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바타이유, 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푸코에 대해서는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이 어째서 라깡과의 직접 대면을 거부하는 것일까?” 지젝의 글에 익숙한 독자라면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라깡이라는 이름보다는 오히려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너무나 깊이 억압되어, 심지어 언급되지조차 않는 이름인 알튀세르에서 찾아진다.

-다시 말하면 하버마스-푸코 논쟁은 사실 이론적으로 더욱 광대한 영역을 포함하는 알튀세르와 라깡의 조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알튀세르 학파의 갑작스러운 쇠퇴에는 이론적 패배라고 결론 내리기엔 미흡한 뭔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알튀세르의 이론에 조급히 잊혀지고 '억압되어야 하는' 외상적 중핵이 존재하는 듯한데 이것은 이론적 망각증세(theoretical amnesia)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조차 알튀세르주의는 지젝과 포스트 맑스주의가 분리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라클라우와 무프 자신들의 이론 형성이 알튀세르적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주장은 다소 억지인 듯 느껴질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 맑스주의 그리고 지젝의 맑스주의는 모두 알튀세르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라고 한정지을 수 있다.

-라클라우는 라깡이 포스트 구조주의자라는 명제나 헤겔의 독법 등에 대해 항상 지젝과는 다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에 지젝이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실질적 비판을 공식화 할 때, 그는 라깡이나 헤겔이 아닌 알튀세르에 관한 이해하기 힘든 침묵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젝에 의하면, 1980년대의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는 주체라는 의미 있는 관점에서 그 전의 그들 각자의 작업들로부터의 이론적 후퇴를 보여주는데, 즉 <헤게모니와 사회전략> 이후에 발전되는 “주체의 위치들”(subject positions)이라는 개념은 라클라우의 초기 저작들에 “정교하게 설명되어 있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theory of interpellation)”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게 됨을 암시한다.

-이론적으로, “주체의 위치들”이라는 개념과 정체성의 논증적 구조는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의해 주체가 성립된다는 본질적으로 알튀세르적 논쟁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한 마디로, “주체-위치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입장으로서 채택하게 되는 사회 과정의 한 대리인으로서의 우리의 위치를 자각하게 하며, 그 특정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참여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서의 동일시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과 더불어 우리가 호명과정 이전에 항상-이미 주체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지젝에 의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개인들은 주체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항상-이미’ 주체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알튀세르가 인지했던 것처럼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주체가 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항상-이미 주체인 우리가 어떻게 특정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주체가 되는가에 있다.(*그러니까 알튀세르의 '주체'는 지젝에게서 '주체화'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쉬운 설명은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참조.) 

-알튀세르의 이론에서 고려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은 영상과의 동일시 이전에 존재하는 호명의 순간이다. 주체화의 이전에 일종의 기괴한 주체가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라깡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주체의 중심에는 빈 공간, 틈이 있어 이것이 “주체 자신과 더불어 주체의 자아-정체성을 침식한다”. 지젝은 라클라우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데 실패함으로써 초래되는 직접적 결과로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에 나타나는 급진적 차원의 이론적 축소를 들고 있는데, 이는 즉 “사회의 적대구조”라는 개념에 나타나듯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일관되고 통합된 실체로서 구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

-지젝에 의하면, 주체 위치들이라는 개념은 이 근본적인 외상적 경험을 배제하는 데에만 주력하며 이 사실은 포스트 맑스주의의 급진적 성격을 약화시킨다. 다시 말해 파편화된 주체성과 다수의 주체위치들에 관한 반 본질주의 이론은 후기 자본주의의 중심을 벗어나 불안정하게 파동치는 지구 단위 경제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주체에 대한 학문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문화 다원주의와 정체성 지향 정치의 비판
-1990년대 초에 지젝이 제기한 포스트 맑스주의의 담론 개념과 '주체의 위치 정하기'(subject positioning)에 대한 비판은 라깡적 개념인 결핍과 적대관계(antagonism)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었다. 지젝에게 중요한 점은 적대관계라는 개념이 주체와 사회적인 것 안에 있는 내적 한계와 균열을 보여준다는 데 있는데, 즉 이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체계의 불가능성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또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주체들 사이에 나타나는 외적 적대관계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한계 내에서 일어나므로, 체계적인 차원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실질적인 정치적 위협도 야기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 최근의 저서에서 지젝은 다소 비이론적인 어투로 주체의 위치 정하기,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identity politics)의 정치적 결과를 지적한다:

-사회적 상상력의 범위가 이제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궁극적 몰락을 상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묵묵히 ‘자본주의는 영속적 체계’임을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비판적인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기본적 동질성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들의 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데에서 그 대체적 분출구를 찾았다. 그래서 우리는 좌파적 투쟁을 통해 소수민족들, 동성연애자들, 그리고 그 외 다른 삶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반면 자본주의는 그 승리의 전진을 감행하고, '문화 연구'의 가면을 쓴 오늘날의 비판 이론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존재를 감추는 데 주력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에 활발히 동참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발전에 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의 주도적인 형태인 포스트모던 '문화비평'의 자본주의가 세계체제라는 언급은 '본질주의', '근본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경제를 비정치화하면 정치의 영역 자체가 비정치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전의 정치적 투쟁은 소외된 정체성들에 대한 인정과 차이에 대한 관용을 위한 문화적 투쟁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최근 지젝의 글에는 그 자신의 이론을 프레드릭 제임슨의 작업에 동일시하는 흔적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그는 본래의 정치학을 윤리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결핍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문화 다원주의는 합병된 세계경제의 문화적 표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정체성 지향 정치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비정치화의 부자연스러운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보편성의 차원과 맑스주의의 메시아적 차원을 (재)강조하는 것이다.

-지젝은 요즘 세상에서는 공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즉 편들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자본의 국제적 논리를 찬성하는 것을 뜻하며 역설적으로 “'편들기'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효과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는 유일한 길임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로 후퇴한 급진적 민주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제 삼의 길 ― 즉 현실에 작용하는 사상들의 정치이다.

-지젝에 의하면 정치 고유의 행동은 “단지 현존질서의 체계 안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작용을 규정하는 체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의 지젝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1990년에 동유럽은 경제 재건에 효과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자유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자' 지젝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자유주의와 지젝의 양가감정
-지금까지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의 최근 정통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일련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지젝의 작업들을 정말 '정통' 맑스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포스트 맑스주의자들 전부가 정말로 그토록 엉터리 독자일 수가 있을까? 1990년에 지젝은 <신좌파 평론(New Left Review)>에 이전 동유럽의 국가들의 분열과 신 민족주의의 부흥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이년 후 그는 <신독일 비평>에 '동유럽의 자유주의와 그 불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는 지젝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한 강의록에 근거하고 있다.

-이 중 첫 번째 글에서 지젝은 서유럽에 이상화되고 매혹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동유럽을 라깡의 ‘물 자체’(das Ding)―즉 주체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한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사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동유럽 안에서 부활하는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과 신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체제라는 과거로부터의 급작스러운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연속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민족적인-것”(national-Thing)의 출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상징 체계가 해체될 때 사회적인 것의 중심으로 귀환하는 실재계, 즉 외상적 중핵의 회귀를 뜻한다.

-지젝은 동유럽의 사람들이 왜 그들이 앞서 전복시킨 바로 그 억압적이고 견디기 힘들며 인종차별적인 체계를 다시 부과하는지에 대해 물으며 이에 대한 대답은 서양의 해설자들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증오와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격세유전의 심리학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서 찾아 진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은 계속되는 위기와 현존하는 조건들의 끊임없는 혁신 사이에 나타나는 '그 고유의 구조적 불균형'과 그 심부에 자리잡은 적대적 성질에 있다.”

-지젝이 말하듯, 민족 우월주의의 고조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과잉과, 자본의 과잉이 사회에 초래하는 고유의 불안정성, 개방성 그리고 갈등의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발칸에서 보여지는 고삐 풀린 폭력과 증오는 공산주의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고대 종족의 증오가 다시 폭발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한 폭력으로 볼 수 있다.

-지젝이 같은 주제에 대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조금 다른 성격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신좌파 평론>에 발표된 글을 지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좌파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요구 자체에 대해 거울상 역할을 한다: 즉 우리는 이를 통해 그 동안의 의심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실망하였으며 서서히 그들이 얻게 된 것뿐만 아니라 (사회 안전처럼) 잃어버리게 된 것들까지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하도록 요구받는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이 덫에 걸려들어 좌파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가, 민주주의적 열광이 어떻게 해서 민족주의적 조합국가로 귀결되고 있는가 - 한 마디로 해서 이것은 우리에게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권리를 부여해줄 뿐이라는 원한에 가득 찬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여기서 명백히 해야할 점은 지젝이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원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전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제 삼의 길” 지지자들의―우리가 보기에는 지젝 스스로 자신을 이 그룹에 포함시키고 있는 듯도 하지만―순진함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지젝은 서구의 맑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그들의 전공인 듯하다고 혹평하기도 하는데 그에 의하면 이것은 “자신의 성적 무능과 성적 실패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과 섬뜩하다할 정도로 유사하다.”

-물론 우리는 모두 청중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며, 제임슨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약호를 사용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젝이 제시한 예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이면의 심층 논리에 있다. 최근에 정치적으로 문제되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1999년 봄, <신좌파 평론>은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여기에는 나토의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는 타리크 알리, 에드워드 사이드, 피터 고완의 글들과 '이중 블랙메일에 대항하여'라는 제목 하에 나토와 세르비아인들 모두를, 특히 밀로세비치의 정권을 비판하는 지젝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폭격에 대하여 반-나토, 반-밀로세비치의 입장을 취하는 지젝의 관점은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나토 모두에 각별한 동정심을 품고 있지 않은 서유럽 좌파에게 명백히 큰 매력으로 작용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 이중 블랙메일을 거부해야 한다면 (만약 나토의 공격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인종청소를 감행하는 밀로세비치의 프로토-파시스트 정권에 찬성하는 것이며, 만약 밀로세비치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지구 단위로 전개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인종적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개화된 국제적 개입과 새로운 세계 질서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립이 그릇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밀로세비치 정권과 같은 현상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증후’이며 그래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중 블랙 메일에 대항하여'의 결론에서 지젝은 “제삼의 길”이 블레어와 클린턴의 신-자유주의적 제삼의 길과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폐쇄된 민족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악순환을 타파”하는 진정한 제삼의 길이어야 함을 간명히 주장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글이 <신좌파 평론>에 발표되기 전에 이미 인터넷상에 유포되었다는 것인데, 거의 모든 내용이 동일한 이 두 글에 나타나는 유일한 차이점은 좀더 확신 있는 어투의 '좌파적' 결론 이외에 하나의 중요 문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지젝이 제안하는 밀로세비치 문제의 대안은 영어권의 주도적 맑스주의 잡지라는 테두리 밖에서는 그다지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분명한 좌파의 한 사람으로서 "폭탄공격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 폭탄의 양이 '충분치' 않으며 그나마 이것은 모두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단락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지젝은 라깡이 <햄릿>과 논리적 시간의 문제에 대해 다룬 글을 참고하고 있다. 여기서 지젝은 사회적인 것 자체에 내재하는 고유의 균열과 적대관계로 규정되는 실재계의 불가능함을 암시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실재계의 외상을 지우기에 '충분한' 폭탄은 있을 수 없으며, 충분한 폭탄이 있다 하더라도 폭탄공격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실재계와의 대면은 언제나 어긋나므로 우리는 항상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기묘하게 스스로의 논지를 취소시킨다. 어차피 너무 늦게 도착될 것이라면 더 많은 양의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폭탄 공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젝의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인 동시에 그렇지 않다”인 것이다!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저자가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증후적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즉, 아무리 많은 양의 폭탄도, 그리고 폭탄이 투하되는 시간이 언제이건 모두 절대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복잡한 라깡적 견해와, 순진하고 표면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토의 공격이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더욱 일찍 감행되어야했다는 주장 사이에는 현저한 마찰이 존재한다. 지구단위 자본과 전체주의를 극복한 제삼의 길을 향한 솜씨 있는 접근방법은 사라지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나토가 세르비아인들에 대항하여 더욱 ‘일찍’ 그리고 더욱 ‘군사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위의 문장은 지젝이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제시하며, 또한 동시에 이것은 지젝의 심부에 내재한 민족주의로 인해 불투명해 진 그의 정치학을 증후적으로 드러낸다. 위의 문장이 ‘유일하게’ 인터넷에 실린 글로부터 제거된 문장이라는 거북한 사실은 지젝이 위의 문장의 정치적 반향, 즉 그 문장의 라깡적 독법뿐 아니라 순진한 정치적 독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사실, 이 문장은 전체 글의 어조를 완전히 바꾸며, 이것은 이 논문뿐 아니라 발칸의 국가들에 대한 지젝의 최근 글들의 다수에 명백하게 나타난 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정체성 지향 정치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적 표현이라는 긴 인용문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인용문 직후에 지젝은 “문화 다원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허상”에 대해 좌파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찰하는데, 비록 그가 '한 쪽의 편을 들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젝에 의하면 이로부터 내려져야 하는 역설적 결론은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적 문화 다원주의와 대중적 근본주의 모두를 거부하는 좌파 '비판이론가들'이며 그들은 지구단위 자본주의와 인종적 근본주의의 공범관계를 명백히 인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쉽게 주디스 버틀러, 라클라우 그리고 포스트 맑스주의를 좌파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 우리가 묻게 되는 논리적 질문은 만약 우리가 이미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였다면 자유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여야 하는가이다. 벤 왓슨의 최근 논평을 바꾸어 말하자면 지젝에 관련된 문제는 그를 과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보다는 그의 어떤 주장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인가에 있다.

실재계의 귀환
-1990년의 인터뷰에 이어 1993년에 다시 <급진주의 철학> 지젝의 인터뷰를 다루었는데 이 두 번째 인터뷰의 어조가 첫 번째와 매우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는 자유 야당의 정치적 안건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항하여 개방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제안하는 반면, 종래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담론인 헤게모니, 접합(articulation), 담론 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

"나는 라클라우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데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단순히 표준적 자유 민주주의 게임의 수정본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그가 이상할 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이다. 즉 급진적 민주주의는 그의 허수아비인 것이다."

-이전의 지젝이 그의 반대 입장을 새로운 사회 운동들과 동일시했던 반면 최근 그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자본 자체의 모순들과 근본적 적대관계에 대한 투쟁이라는 더욱 시급한 관심으로부터의 이탈로 이해하고 있다. 더욱이 때때로 지젝은 여전히 정체성 지향 정치의 적법성을 받아들이는 한편―이것은 우리가 정체성 지향 정치가 근본적으로 사회변혁을 초래하리라는 바람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적용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성적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해방과업과 사회 변혁에 반대하는 작용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새로운 전략과 새로운 정체성들을 생성하는 푸코적 실천은 후기 자본주의의 주체성 게임을 즐기는 [매우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이전에 유고슬라비아였던 곳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 후, 세 번째로 벌어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의 더욱 잔인한 전쟁 끝에, 그리고 삼 년 간의 경제 개발이 수행된 후에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정체성, 철학 그리고 문화의 섬세한 짜임은 마침내 실재계라는 부동의 바위, 다시 말하면 자본의 경제 논리에 직면한 듯 하다.

-지젝의 글에서 실재계는 그 의미가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범주이다. 이는 또한 그의 입장과 고전적 맑스주의, 즉 정통 맑스주의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실재계는 명백히 ‘적대관계’라는 라클라우와 무프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실재계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의: 실재계는 존재하지 않는 원인이고 항상 왜곡되고 전치되는 방식으로 일련의 효과 속에서만 존재한다. 만약 실재계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바로 이 사실이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그들의 ‘적대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실제계의 논리를 발전시켜 처음으로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 적용하였다: 적대관계란 바로 그러한 불가능의 핵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종류의 한계를 뜻한다: 이것은 오직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소급적으로(retroactively) 구성된다. 적대관계는 모든 효과들에서 벗어난 외상의 지점으로서 그것은 사회 영역이 폐쇄되는 것을 저지한다.

-라클라우와 무프에 의해 주장되었듯이 우리는 여기서 적대관계란 변증법적 또는 결정론적 모순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명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젝 또한 그의 역사주의에 대항한 논쟁에서 실재계를 알튀세르의 부재 원인(absent cause)으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정의와 연결시켰다.

-상징계는 '소거'(barred) 되었으며 의미 사슬은 본질적으로 비일관적이고 '전체가 아니며' 빈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상징화에 저항하는 이 내재된 장애물이 바로 상징계와 실재계 간의 거리를 유지해 주며 상징계가 실재계 안으로 '침몰'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궁극적으로 실재계를 상징계와 관련짓는 주요 개념은 '원인'이다: 실재계는 상징계의 부재 원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실재계는 지구단위 자본에 내재된 논리와 연관되었다. <난제>의 서문에서 지젝은 근래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재난은 우리 시대의 실재계에 육신을 제공한다: 자본의 공격은 인간성의 존속을 위협하며 특히 세상의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그러나 지젝의 맑스주의를 이해하는 데 곤란한 점은 그의 실재계에 대한 라깡적 해석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젝에게 실재계라는 라깡의 개념은 그의 작업을 포스트 맑스주의와 고전적 맑스주의 ‘모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포스트 맑스주의가 정치적 갈등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특수성을 자본에 내재한 고유의 모순 같은 하나의 결정 층위로 환원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반면 라깡의 정신분석은 완전히 그 반대의 견해를 가진다.

-라깡의 관점에서 보면 현존하는 갈등들의 다원성과 특수성은 하나의 심급(審級)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다. 즉, 그것들은 실재계와의 불가능하며 외상적인 대면에 대한 동일한 반응인 것이다. 그러나 실재계를 맑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모순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라깡의 실재계는 칸트의 '물자체'(Thing-in-itself)와는 달리 모든 상징화에 저항하므로 주체나 사회가 참아 내기에 너무나 외상적인 것이다. 실재계는 근본적으로 주체와 사회의 심부에 있는 틈 또는 공백이며 주체의 통일성과 사회의 연대성을 저지하는 불가능의 순간이다:

-그러므로 실제계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단단한 관통 불능의 핵인 ‘동시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론적 일관성을 가지지 않는 순수한 정체불명의 실체이다 ... 실재계는 어떠한 종류의 상징화를 위한 시도도 좌절되는 바위이며 우리의 모든 가능한 세계들(상징적 우주들)에 항상 일관되게 존속하는 견고한 중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태가 매우 변덕스러워서 실패한 상태에서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에만 흔적으로 지속되며 우리가 그것의 긍정적 특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로버트 미크리치에 의하면 실재계는 그 최종 분석에서 드러나는 헤겔의 순수한 “사유물”(Thing-of-thought)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역사적 현재의 구조를 가리키는 헤겔의 개념 속에서 <관념성>을 강조하는 것은 실재계에 고유한 역설을 망각하는 것이다. 실재계는 상징계를 유지시키는 동시에 그 기반을 약하게 하고 혼란시킨다. 이것은 부재하는 원인인 동시에 그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지젝은 무산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지젝에 의하면 맑스주의의 역사적 독창성은 그 이론이 계급과 계급투쟁의 체계적 역할을 자본의 논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데 있다. 라클라우는 계급갈등 자체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것을 단지 잠재적 정체성과 차별성의 연쇄 안에서 가능한 하나의 주체 위치로 간주하며, 게다가 그는 이 입장이 현대 사회에서는 점차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젝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단순히 동등하게 중요한 일련의 투쟁들 중 하나의 사회적 적대관계가 아니라 “이 특수한 적대관계는 '나머지에 대해 우월하므로 이것과의 관계에 따라 그 이외의 투쟁들에 서열과 영향력이 부과된다. 즉, 이것은 모든 나머지의 색채에 영향을 미치는 광선과 같아서 그들의 특성을 변형시킨다'.” 다시 말하면, 계급 대립은 오늘날의 정치적 주체들과 정치적 갈등의 분화와 증식 속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맡게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은 모두 지구단위 자본 안에서 전개되는 “계급 투쟁”의 직접적 결과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지젝의 계급 투쟁의 중요성에 대한 확인과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에 대한 다원적 평가는 환영받게 되어있다. '정치적' 쟁점들은 우리가 그의 '계급 투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찰할 때 제기된다. 즉 계급투쟁이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의 최종적 연대를 저지하는 “어떤 한계와 순수한 부정성 그리고 외상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논의하게 될 때 일어난다.

-라깡의 관점에서 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기호에 의해 지배되는 주체이다: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를 상징하며 주체는 상징의 사슬에 존재하는 ‘틈’(breach)이다. 주체는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주체는 “세상에 무 대신 유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실재계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무산계급에 대한 맑스의 이론은 이러한 “실체 없는 주체성”의 완벽한 예를 제시해 준다:

"'소외'라는 역사적 과정과, 상품 생산의 '유기적' 물질적 조건들의 지배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는 노동력의 정점으로서의 무산계급 (무산계급의 이중 자유: 그는 모든 물질적-유기적 속박에서 벗어난 추상적 주체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그는 가진 것을 박탈당하므로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그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맑스의 착오는 무산계급의 혁명을 통해 주체와 실체의 변증법적 화해―즉 반소외의 과정과 생산과정의 투명화―가 이루어 질 것임을 가정한 데 있다. <부정 안에 머물기>에서 지젝은 맑스의 “유물론적 역전”(materialist reversal)에 반대하여 헤겔의 변증법을 옹호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헤겔의 철학보다 맑스의 철학이 오히려 더 자폐적 체계이다. 그는 맑스의 무산계급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인 것이 전체성과 투명성을 획득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폐쇄의 순간이 구체화 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반해 헤겔의 이론에서 체계의 핵심에 위치하는 부정적인 것은 사회의 투명성이라는, 어떠한 종류의 소위 이데올로기적 시각도 부정한다.

-지젝은, “맑스주의에 의한 '헤겔철학의 유물론적 역전'이 일세기 이상 논쟁되어 온 후 이제 마침내 맑스에 대한 헤겔주의적 비판이라는 역전의 가능성이 필요한 시대가 된 듯 하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헤겔이 “절대적 관념론자”라는 맑스의 비판은 바로 그가 거부한 존재론의 전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이는 “맑스주의 과업에 내재된 불가능성”의 증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 긍정적이며 또한 동시에 부정적이다?
-지젝에게 라깡의 실재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계기이다. 그것은 통합되고 일관된 정체성을 위조해 내려는 어떠한 종류의 시도도 저지하므로 이에 의해 정통 맑스주의적 반응의 가능성이 배제된다. 실재계는 주체성의 핵심에 있는 결여이며 사회 구성의 기반을 이루는 빈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것으로든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듯 보인다. 버틀러와 라클라우에 대하여 벌인 지젝의 논쟁에서, (내가 버틀러와 라클라우의 특수한 프로젝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좌파가 어떻게 특정 무대와 정치적 의제를 구성하고 체계화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버틀러는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정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해야 하며 그것이 단순히 그러한 종류의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논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라클라우는 민주주의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람시적 “진지전”(war of position)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라클라우에 의하면 지젝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젝이 세계화의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개념에 대해 한번도 분명히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담론은 고도로 세밀한 라깡적 분석과 충분히 해체되지 않은 고전적 맑스주의 사이에서 분열증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라클라우와 버틀러 모두 지젝에게 필요한 것은 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고전적 맑스주의 개념들의 포기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문제가 지젝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가 어떠한 종류의 긍정적 내용도 내포하지 못하고 정치적 행위가 이의나 반대로 축소되는 것은 바로 라깡의 개념인 실재계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 때문이다. 드니스 기강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젝은 일종의 개념적 내용이나 비판적 진실을 가장한 어떤 종류의 입장을 채택하는 다른 문학이론가들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근본적으로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지젝은 반-자본주의적 선택을 취해 왔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는 자유주의와 새로운 사회 운동에 의해,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생태학적 위기의 가능성에 의해 표현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이러한 입장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 되었으며, 이제 그것은 <나약한 절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급진적” 정통성에서 발견된다. 이것을 정통 라깡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정통 맑스주의라고 하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It's The Political Economy, Stupid! On Zizek's Marxism

I have a very traditional Marxist belief that the new liberal-democratic order cannot go on indefinitely, that there will be a moment of explosion, probably caused by some kind of ecological crisis or whatever - and that we must prepare ourselves for that moment.1

In a 1997 interview Slavoj Zizek was asked about the orientation of his series of books for Verso, Wo es War. He responded that, while he had no overall plan for the series, its guiding principle was the rehabilitation of two orthodoxies. `The fact is', remarked Zizek, `that the strictly dogmatic Lacanian approach combined precisely with a not-post-Marxist approach is what is required today.'2 Notwithstanding the rather coy reference to a `not-post-Marxist' approach here, Zizek's programmatic statement underscored an increasingly evident theoretical and political trajectory in his work, a trajectory that has spectacularly reversed his status as the most fashionable and mercurial theorist of the early 1990s to the b?e noir of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Zizek's recent polemics against post-Marxism, multiculturalism and identity politics have only served to highlight the distance that now exists between him and his previous collaborators in the UK and USA, Ernesto Laclau and Chantal Mouffe.3 As Peter Dews pointed out some time ago, Zizek has always maintained a peculiarly ambiguous political profile, `marxisant cultural critic on the international stage, member of the neo-liberal and nationalistically inclined governing party back home'.4 It seems to me, however, that the ambiguity of Zizek's position also extends to his international profile - as a postmodern, post-Marxist, cultural critic one moment, orthodox Marxist the next. In this article I want to begin to untangle something of Zizek's ambivalent relationship to Marxism; for example, just how `orthodox' is Zizek's orthodoxy and, more importantly, how consistent is this position with a strictly `dogmatic' Lacanianism. Marxism, I suggest, has always been much more to the fore of Zizek's work than many of his commentators have cared to acknowledge, and his endorsement of post-Marxism has been equivocal at best. On the other hand, the precise nature of Zizek's Marxism has always been more difficult to fathom, while his thoroughgoing Lacanianism appears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any orthodox `understanding' of Marxism, or, indeed, the formulation of a clearly identifiable political project.

The formation of a global intellectual

It is difficult, I think, to underestimate the extraordinary success of Slavoj Zizek in Western European and North American academic circles, and yet it has never seemed self-evident to me as to why this should be so. Zizek's idiosyncratic hybrid of Hegelian dialectics, Althusserian Marxism and Lacanian psychoanalysis would not at first appear to be particularly congenial to an Anglo-American academic climate preoccupied with postmodernism, Queer theory and post-colonial studies. The Jameson of The Political Unconscious is perhaps the only comparable figure who has tried to yoke together such theoretically incommensurable intellectual systems, and he has been unremittingly criticized by the post-Marxist Left for the attempt.5 A significant part in Zizek's overwhelmingly positive reception lies, to be sure, in his ability to tell a joke - more often than not the same one in three different books. Significantly, the two early books that did more than anything else to popularize his work - especially 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1991) but also Enjoy Your Symptom! Jacques Lacan in Hollywood and Out (1992) - are Zizek's least political works.6 Marx and Marxism do not figure prominently in either of these two volumes, and Zizek's facility to elucidate the notoriously impenetrable prose of Lacan through mainstream Hollywood film and genre fiction located him squarely with the postmodernists. The effortless shift from high theory to low culture and his undoubted love affair with North American popular culture have been crucial to his popularity. Zizek, as Robert Miklitsch writes, `appears to know the United States from the inside (as it seems only foreigners can do). This Zizek - the one we love to read because he reflects our own popular-cultural vision of the United States back to us (in reverse, as Lacan would say).'7 At least in terms of form, if not content, Zizek can be read as a thoroughgoing postmodernist and at times it would appear that Zizek himself has encouraged this reading of his work.8

The second, and certainly politically more significant factor relating to Zizek's reception in the UK and the USA was the ideological filter of post-Marxism.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1989), the first of Zizek's works to be translated into English, was published in Laclau and Mouffe's series Phronesis, which, as its opening statement makes clear, is committed to anti-essentialism, poststructuralist theory and `a new vision for the Left conceived in terms of a radical and plural democracy'. In a sense, Zizek's work could not have been translated at a more opportune moment. In Eastern Europe, the historic collapse of `actually existing socialism' and the break-up of the Soviet Union was gathering pace, while in Western Europe the final demise of Western Marxism seemed assured if not already complete. The intellectual currents of postmodernism and post-Marxism were at their most vitriolic and triumphalist. Any sense, for example, that Laclau and Mouffe remained within an essentially Marxian problematic, as with the conclusion of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985), was expunged from their work.9 From The Sublime Object to Looking Awry, Zizek, the former dissident under `socialism' who also knew American popular culture better than most Americans, encapsulated the moment. It is hardly surprising, therefore, to see Zizek so unequivocally co-opted to the banner of post-Marxism as in Laclau's `Preface' to The Sublime Object. Laclau situates the work of Zizek and the Slovenian school in relation to Lacanianism on the one hand and classical philosophy on the other, but with only a passing reference to Marx (as a philosopher) and the influence of a certain `Marxist-structuralist' theorist and `Marxist currents'. Laclau concludes: `For all those interested in the elaboration of a theoretical perspective that seeks to address the problems of constructing a democratic socialist political project in a post-Marxist age, it is essential reading.'10

Again, Zizek did much to encourage this view in interviews. As in his 1990 interview for Radical Philosophy, which took place on the eve of Slovenia declaring itself the first independent republic from the federation of Yugoslavia, and in which Zizek discussed his position within the newly formed Slovenian Liberal Party. In contrast to the neo-liberalism dominant in the rest of Europe, the Liberal Party in Slovenia formed part of the opposition bloc and was closely aligned with new social movements, in particular the feminist and ecological movements. What was distinctive about the Liberals, remarked Zizek, was their opposition to populist nationalism, a political tendency that united all the other major political groups, from the reformed communists and Greens to the far Right. With their ideology of pluralism, ecology and the protection of minority rights, the Liberals saw themselves as drawing on a tradition of radical democratic liberalism. It is not difficult to discern here the post-Marxist agenda, in so far as it is articulated in Chantal Mouffe's The Return of the Political, and according to which the goal of contemporary politics is not so much to overturn the structures of the state but to deepen and extend the reach of democratic practices and institutions.11 There is, however, one key area in which Zizek is in tune with neo-liberalism; despite defining himself as a Marxist and locating the Liberal Party in opposition to free-market economics, he observes that with regard to economic restructuring he is a `pragmatist' - `If it works, why not try a dose of it?'12

06.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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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퍼온글]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변모

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1989)

2.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변모

2.1 도입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본법칙이 계속하여 역사적 지리적 발전을 이루는 변함 없는 동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157)

즉 이윤 추구. 그럼 이윤율의 하락이나 대공황 같은 맑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필연성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아님 ‘땜질’ 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정치 경제학적 맑스주의가 ‘땜질’되고 있듯이? 이를 현실과 이론의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이러한 ‘땜질’ 중 하나가 ‘조절학파’(regulation school)의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이다. 조절이론은 Regimes of Accumulation(축적체제: ROA) 과 Modes of Regulation (사회 정치적 조절양식: MOR)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한다. ROA는 특정 기간 동안 자본이 조직되고 팽창되는 특정한 형태로 일정한 형태의 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ROA의 핵심 예는 “포디즘”이라 조절이론가들이 지칭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MOR는 법, 관습, 국가 등, ROA의 작동의 맥락을 제공하는 제도적 실행이다. MOR은 ROA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조한다. 그러나 가끔은 둘 사이에 긴장이 있게 되고, 이 둘 중 하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양방향성이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토대-상부구조와 다른 점일까? 그 외의 차이는? 자본주의 내에서 일정기간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 패러다임 교체처럼 세련화된 형태?) 포디즘으로의, 포디즘에서의 변화가 조절 학파에서 이러한 개념으로 설명된바 있다. (이하 http://en.wikipedia.org/wiki/Regulation_school 에서 내 맘대로 편역. 여기서 조절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데이비드 하비를 꼽고 있다. *은 내 생각)

하비가 조절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을 살펴보면

축적체제란 ‘총생산량을 소비와 축적 사이에서 장기간에 걸쳐 할당하는 안정된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생산조건과 임금수입자들의 재생산조건 양자의 변모 사이에 어떤 일치점이 생겨남을 뜻한다.’ ‘그 재생산 표식이 상응하기 때문에(? 국역에는 응집력을 갖추고 있기에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는 coherent.. schema를 ’표식‘이라는 알 수없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도식정도로 번역하면 되는 것 아닐까?)’ 특정 축적체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러 유형의 개인들-자본가, 노동자, 국가관료, 금융업자, 그리고 다른 정치 경제의 담당자들-의 행태를 결합하여 축적체제의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시킬 구도로 만들어내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규범이나 습관, 법률, 조절 네트워크 따위의 형태를 띠는 구체적인 축적체제가 작동하여 그러한 과정의 통일성, 즉 개인적 행태들을 재생산 표식에 적절하게 일치시키는 것을 보증해주어야만 한다. 이같이 내재화된 규칙과 사회적 과정을 조절양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유형의 언어는 우선 발견적 장치로서 쓸모가 있다. 이 이론틀에 따르자면 우리는 복잡한 상관관계와 관습, 정치행위, 문화형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역동적인 (따라서 불안정한) 자본주의 체제는 적어도 특정기간 동안이나마 적절하게 기능할 만큼의 충분한 질서를 지니게 된다. (157-158)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려면 성공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광범위한 영역의 체제 내적 어려움이 두 가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시장가격기구의 무정부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력의 배치방식을 충분히 통제하여 생산에서의 가치 증가를 보장해줄, 즉 가능한 한 많은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줄 필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다. (158)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포디즘이고, 이후 ‘유연적 축적체제’ (flexible accumulation)인 것.

나는 노동통제 관행이나 기술상태, 소비행태, 정치 경제적 권력구도들의 특정한 조합 위에서 전후의 장기호황(1945~1973년)이 일어났으며, 이런 양상이 ‘포디즘-케인즈주의’라고 불릴 법하다는 주장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1973년 이후 이런 체제가 붕괴되면서 급속한 변화와 변동,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기가 닥치게 되었다. 새로운 생산 및 마케팅 체제는 더욱 유연한 노동과정과 시장들을 그 특징으로 하며, 지리적 이동성이 드높아지고, 소비관행이 급격하게 뒤바뀌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체제가 ‘새로운 축적체제’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지 어떤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러일으킨 문화적 전환과 짝을 이루는 기업가주의 및 신보수주의의 부흥이 ‘새로운 조절양식’인지 어떤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장기적인 정치 경제의 전개양상을 두고 볼 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혼동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경제적 실태와 2차대전 후 과거 활황기 사이의 대조점들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체제라 불릴 만한 것으로 넘어갔다는 가설은 최근의 역사를 특징짓는 이야기 방식으로 채택될 만하다. (160)

2.2 포디즘

포드가 특별히 기여한 점은, (그리고 궁극적으로 포디즘을 테일러주의와 구별짓는 것은), 대량생산이 대량소비, 새로운 노동력 재생산 체계, 새로운 노동통제와 관리의 정치학, 새로운 미학과 심리학, 요컨대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한 그의 안목이었다. (161-162)

결국 조절이론이 ‘포디즘’을 하나의 시기로서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의미하기 때문.

전후 포디즘은 단순한 대량생산 체계라기보다는 총체적 생활방식으로 여겨져야 한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뿐만 아니라 제품의 표준화를 뜻했다. 이는 또한 다니엘 벨과 같은 많은 신보수주의자들이 훗날 노동윤리 및 기타 자본주의적 덕목들의 보존에 해로운 것으로 여겼던 완전히 새로운 미학과 문화의 상품화를 의미했다. 포디즘은 또한 매우 뚜렷하게 모더니즘 미학에 -특히 모더니즘의 기능성이나 효율성 선호에-바탕하여 세워졌으며 그것에 기여하였다. 국가 개입의 형태들(관료적 기술적 합리성 원칙에 따라 운영됨)과 그 시세틈에 결속력을 부여하는 정치세력들의 판도는 특수 이익 집단들의 균형을 통해 서로 묶여진 대규모 경제 민주주의 개념에 바탕하고 있었다. (173)

결국 조절이론이 고전 맑시즘적 정치경제학 (자본론)에 가한 변형은 토대-상부구조가 아니라 ROA, MOR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특정 기간의 ‘regulation'을 밝혀, 그것이 어떻게 특정 기간 안정감 있게 지속되는 가를 설명하는데에 있는 것 같다. (해당 관련서를 몇권 챙겨서 읽어두어야 하겠다. 조금 읽어보니 권현정, <미셀 아글리에타의 자본주의 조절이론에 대한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93이 시작으로 유용할 듯.)

포디즘의 성과를 모두에게 널리 베푸는 능력, 그리고 적당한 보건 주택 교육 서비스들을 대규모로 또한 인간적이고도 세심하게 제공할 능력, 이 두 가지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76)

국가는 분명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만, 어느 정도의 ‘조절’이 필수고 때문에 종종 부르주아 계급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맑스의 <자본론>에서도 공장법에 대해서 설명할 때,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과 부르주아들의 이익 사이를 구분하는 대목이 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안 망하게 하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임으로, 국가의 ‘조절’이 필수적이다. 이 국가 조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도화된다면, 결국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필연성 내지는 과학적 원리는 국가라는 ‘주체’를 과소평가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포디즘이라는 일종의 패러다임이 선진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과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모든 사람’이 포디즘의 덕을 본 것은 아니었다. 노동시장은 독점부문과 더욱 다양한 경쟁부문으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았고, 포디즘은 전자에만 해당되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에 따라 버림받게 된 쪽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강력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민족이나 성, 인종에 따라서 누가 고용에 있어서 특혜를 받는가, 못받는가’가 결정되기도 하는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권운동은 도심불량주거지역을 뒤흔든 혁명적 분노로 발전하고, 저임금 직종에 여성이 몰려듦에 따라 그만큼 격렬한 여성운동도 함께 일어났다. 늘어가는 부유함 속에서도 처절한 가난이 존재함을 깨달으며 포디즘에 기대했던 혜택에 대한 불만이 강력한 저항운동으로 솟구치게 되었다. (175 정리)

여기서 하비는 맑스의 논법을 빌어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디즘의 절정에서, 포디즘을 붕괴시킬 것이 나타났다고.

1973년의 경기 퇴조가 포디즘의 틀을 급작스럽게 뒤흔들게 되자, 비로소 축적체제의 급속한(하지만 아직 명확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변화과정이 시작되었다. (177)

 

2.3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

유연적 축적(flexible accumulation)은 포디즘의 경직성에 정면 대응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노동과정이나 노동시장, 제품, 소비패턴의 유연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혀 새로운 생산부문의 출현, 금융서비스 공급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업적 기술적 조직적 혁신의 엄청난 강화 등이 그 특징을 이룬다. (...)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의 새로운 ‘시공간 압축’국면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시공간 압축’이란 개인적 의사결정 및 공공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 지평이 축소되는 한편, 위성통신과 운송비용의 하락을 말미암아 그러한 의사결정이 훨씬 멀리 있는 여러 지역으로 즉시 전파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186)

하비의 ‘유연적 축적’은 바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신자유주의’이며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한 자본형식의 변화를 통틀어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절체제’의 변화와 포스트모던 문화 사이는 어떠한 관련성이 있을까?

새로운 생산 기술(자동화, 로봇)이 도입되고 새로운 조직형태-생산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고를 크게 감소시키는 적시 배달체계 같은-가 전개됨에 따라 회전시간(자본주의적 수익성의 핵심을 이루는 한 요소)은 엄청나게 짧아졌다. 그러나 소비의 회전시간이 짧아지지 않는다면 생산의 회전시간이 아무리 빨라져도 소용 없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포디스트 제품의 반감기는 5년에서 7년 정도였지만 유연적 축적에서는 섬유나 의류산업 같은 부문에서 이것을 절반 이상 단축시킨 한편 다른 부문-소위 ‘두뇌’ 산업(예를 들면 비디오 게임 및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에선 그 반감기가 18개월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재빠른 패션 변화, 필요 유발 기술의 동원 및 문화적 변화에 큰 관심을 둠으로써 유연적 축적은 소비 측면에서도 보조를 맞추게 되었다. 포디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학은 흥분과 불안, 그리고 유동적인 성질을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에 자리를 빼앗겼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문화적 형태들에 있어 차별성이나 순간성, 스펙터클과 패션, 그리고 문화의 상품화를 예찬한다. (193)

소비에 있어서의 회전시간 단축을 위해 상품(그 대부분은 나이프나 포크처럼 긴 주기를 가진 것들)의 생산으로부터 이벤트(거의 순간적인 회전시간을 갖는 스펙터클 따위)의 생산쪽으로 강조점이 옮겨진다. (195)

1970년 이래 규범과 습관, 정치적 문화적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동이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과 어느 정도까지 결합되는 것인가(...) 보다 유연한 자본운동은 포디즘 아래에서 길러진 한층 경직된 가치들이 아닌 것들, 즉 모던한 생활의 새로운 것, 유동적인 것, 순간적인 것, 일시적인 것, 그리고 우연적인 것들을 강조한다. 그에 따라 집단적 행동이 더더욱 어렵게 되며(사실상 이것이 노동 통제 강화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엄청난 개인주의가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에 있어 필요조건으로(비록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기능한다. 결국 새로운 기업형태 및 혁신, 기업가주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생산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 이제부터 해야 할 당면 임무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축적체제 속에서 그와 같은 주요한 이행들의 뿌리에 대한 해석을 개관하는 일이다.

ps.

국민국가와 초국적자본 사이의 갈등은 포디즘 시대의 전형이었던 대규모 자본과 대규모 정부 사이의 편안한 조화를 깨뜨리면서 활짝 펼쳐졌다. 이제 국가는 훨씬 더 확실치 않은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가적 이해를 따져 기업자본의 활동을 규제해야 하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똑같은 명목 아래 초국적자본 및 세계 금융자본에 대한 미끼로 작용하는 ‘양호한 경영 여건’을 만들어 내야 하고, 더욱 좋은 환경 조건으로 그리고 보다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역으로의 자본 도피를 저지해야 한다(환관리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208)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국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반자본적인, 적어도 비자본적인 움직임이 ‘국가’라는 형태 또는 매개로 자신을 표출 할 수 있을까?

2.4 이행의 이론화

이 장의 내용은 결국 이행을 이론화 해야 한다는 것; 세 사람의 이론가가 포디즘과 유연적 축적 사이의 비교한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식적인 수준.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에서의 필연적인 과잉축적의 흡수는 시공간적 이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우주로 나가는 것이나, 효용성이 없다고 되풀이 주장되는 MD체제! 우주로만 나가면, 역시 자본주의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적당한 조절체계만 갖추면.

2.5 유연적 축적: 견고한 전환인가 아니면 일시적 해결인가?

생산이나 노동시장, 소비의 유연성이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 위기 경향에 대해 금융적 해결책들을 모색한 결과라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로서, 금융체계가 실제 생산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였음을 뜻한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는 유례 없는 금융위기의 시대를 맞게 된다. (232)

첫째 현재의 상황 속에서 (‘통상적 자본주의’와는 반대되는) 뚜렷한 그 어떤 것을 찾고자 할 때,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 조직의 금융적 측면과 신용의 역할이다. 둘째로 만약 현재의 축적체제에 어떤 매개적인 안정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해결의 새로운 국면과 형태들로 나타날 것이다. 간단히 말해 3세계를 비롯한 기타 부채의 상환을 예컨대 21세기까지 유예시킴으로써 “위기를 미루는 것「시간적인 위기 땜질」”이 가능하며,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노동통제 체계들이 국제적 분업체계 안에서 새로운 생산물이나 생산양상과 더불어 확산되는 “공간적 판도의 철저한 재구성”「공간적인 위기 땜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전체적인 자본축적 논리 속에서 주로 낡은 요소들을 끌어 모아 특수하고도 새로운 조합으로 자리잡게 한 것이 바로 유연적 축적이란 점은 강조되어 마땅하다. (...) 이러한 시공간적 위기의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실천과 철학적 담론으로의 충동적인 전환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와 같은 시공간 경험의 변화에 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34~235)

이로서 2부의 역할이 끝났다. 어찌보면 ‘유연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지, 예전에도 자본의 움직임은 이 ‘유연성’을 추구한 것이 아닌지가 의문이 드는데 이에 대해 하비는 ‘탈산업화나 공장 이전, 보다 유연한 인사행위와 노동시장, 자동화와 제품 혁신과 같은 사실들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스럽다’라고 주장하며 결국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기라는 것이다. 20년 전에 이랬으니 지금은?

어찌됬든 이러한 변화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현상을 토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설정하기 때문에, 하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을 설명하겠는가? 물론 이의 전제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이 ‘포스트’모던하다는 것. 자본의 작동방식도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스트모던’ 현상도 ‘모던’현상에서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해야하는, 또 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그룹이 내가 알기로는 예전 IS그룹, 현재 트로츠키주의자 아닌가? 일방적 단순화겠지만... ) 잘 모르겠다....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그러니 공부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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