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퍼온글] *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정보사회(1)
* 자율평론 제 2호
이글은 닉 위데포드의 'Autonomist Marxism and the Information Society'를 번역한 글이다. 닉 위데포드는 현재 미국에서 자율주의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인물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글에서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하에서 자율주의가 등장하게되는 배경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네그리를 중심으로한 이러한 자율주의가 탈근대 사회이론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전문이 번역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다음호에 후반부가 완역되어 실릴 예정이다. 미숙한 번역이라, 영어본을 링크시켜야 했으나 불행히도 인터넷 상에서는 이 글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 역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정보 사회(1)
닉 위데포드
이 논문은 컴퓨터화된 자본과 탈근대적 문화의 시대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적절성을 주장한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자기-활동성을 그것의 중심에 놓는 맑스주의의 전통(깊은 역사적 뿌리와 폭넓은 국제적 확산의 전통1))을 나타낸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의 가장 발전된 동시대적 표현은 1960년대와 70년대 동안 이탈리아 노동자들, 학생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의 발생이며, 내가 여기서 초점을 맞출 점은 라니에로 판찌에리, 마리오 뜨론띠, 세르지오 볼로냐, 마리오로사 달라 꼬스따, 프랑코 베다디,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혁명적 지식인들의 저작 내에서 공식화 되었다는 점이다.2)1979년 이탈리아 신좌파의 소요가 붉은 여단에 반대하는 반-폭동이라는 구실 하에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을 때, 이 혁신적 이론체의 발전은 돌연 중단되었고, 그 후에 그 신좌파의 입장이 갖고 있는 이교도적인 방향(신자유주의자, 소비에트형식의 노멘클라투라, 사회민주주의자들같은 것에 대한 증오)은 심지어 좌파 내에서 조차 그 이론을 위해서 은밀한 실존을 확보했다.3)그러나 그 이론이 원래 기초하고 있던 운동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끈은 새로운 변이를 겪으면서,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계속 발전하였다.4)
사실상, 이탈리아 자율주의적 전통을 파헤치는 나의 목표는 고고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는 이 이론들이 만일에 혁명적인 좌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들의 전망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에 중심적인 쟁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특별히, 그것들은 우리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변별적인 새로운 시대(‘후기-산업주의’,‘포스트 포디즘’,‘탈근대 자본주의’와 같은 문구로 폭넓고 다양하게 논의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에 직면한다. 이 국면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장 자동화, 지구적 이동성 그리고 사회감시의 전례없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정보기술(컴퓨터와 통신) 자본이 방대하게 배치되고 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지난 20년간에 걸쳐, 일부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의 작업, 특히 네그리의 작업은 이 거대한 정보적 기구의 의미에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들의 분석을 특히 중요하게 만드는 점은 단지 자본주의적 지배의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잠재적 자원으로서 지식과 소통의 새로운 형태에 관하여 열어놓은 전망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네그리와 그의 동료들이 논의되는 것은 >정보사회>에 대해 전복적인 반-해석자로서이다. 이러한 독해는 하이테크놀러지에 대한 여타의 매우 다른 맑스주의적 반응들 간의 쟁점을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과 탈근대적 문화에 대한 일부 유행적인 분석들간의 쟁점을 필연적으로 다룬다(그리고 실로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의 작업에 대한 독해가 맑스에 대한 하나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해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것의(비유행적인) 논지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네그리 1984)까지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지속적인 연구가 공동체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으로 대안적인 시각으로 정보화시대 자본과 직면할 수 있는 21세기 코뮤니즘의 재구축을 향한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와 자본의 승리
자본의 지구적 승리에 대해 최근의 유행하는 찬사 내에서, 두가지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상호옹호하고 있다. 그것은 정보사회의 부흥과 맑스주의의 붕괴이다. 우리는 하이테크놀러지가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편재(遍在)에 의해, 과학기술의 전례 없는 속도에 의해, 지식기반의 경제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문명화의 새로운 단계를 향하여 지구를 끌고 가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사회주의권의 불명예스런 붕괴는 지금 출현하고 있는 현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맑스주의 세계관내의 의고주의의 탓(고성능 기계의 시대에, 상징적 데이터의 물질적 중요성을 가려버린 ‘토대/상부구조’의 시대에, 늘-확산되고 있는 전자 매체의 억압에 예속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시대에 ‘노동가치론’을 고수한 대가)으로 돌린다(예를 들어, Brzezinski 1988; Toffler 1990; Ohmae 1991). 반대로, 북아메리카, 일본,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는 그것의 기업체, 개방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덕택으로, 정보화 시대의 풍요한 이득을 뿌리고 거둬들이기에 적합한 독특한 사회의 형태로 간주된다.
그러한 생각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60년 후반, Daniel Bell(1973), Zbigniew Brzezinski(1973) 그리고 Peter Drucker(1968)와 같은 이론가들이 처음 ‘탈산업’사회, ‘전자기술시대’ 사회,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고했을 때, 그들의 연구는 자본주의가 격렬하게 그것의 내부적 모순에 압도되고 말 것 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에 대한 반박으로 명백하게 짜여졌다. 기술적 성장에 대한 무한한 지평을 선언하면서, 그들은 산업주의의 변천을 넘어 풍요함과 안정성의 화려한 새로운 세계로의 평화로운 진화를 예견했다. 반면, 신좌파와 학생운동이 연합된 탈산업사회이론의 좀더 비판적인 흐름이 있는데(알랭 투랭의(1971) ‘프래그램된 사회’에 대한 반-과학기술 중심주의적 생각과 같은), 두 판본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쇠퇴하고 있는 중공업의 시대의 더러운 유물로 간주하면서, 근본적으로 맑시즘과 결별하였다.
70년대 경제적 위기의 예기치 않은 회귀는 맑스주의를 단순한 유행으로 취급하려한 그러한 미래학이나 격앙된 맑스주의자들을 간단히 고사시켜 버렸다. 그러나 수년 내에 탈산업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들은 배가된 힘으로 소생하였고, 현재 그것은 ‘정보 사회’라는 일본식의 상표를 달고 다시 출현하고 있으며, 정신적 삶과 생물학적 삶의 기본적 요소들을 재구성하기 위해 극소 전자학과 유전공학의 놀라운 능력에 집중되었다. (Bell 1979; Beniger 1986; Dizard 1982; Masuda 1980; Nora and Minc 1981; Oettinger 1980; Porat 1977,1978). 국가와 기업 후원자들에 의해 길러지면서, 초소형 컴퓨터의 대중판매에 끌려가고, 토플러(1970; 1980; 1990)나 내스벳(1982)과 같은 인기인들에 의해 넓게 확산되면서 정보기술 비트의 매력은 1980년의 문화 속으로 스며든다.
‘사회주의로부터 사회적 변화의 언어를 빼앗기 위한’(Webster and Robins 1981, 250) 손쉬운 방법으로 제공된 ‘정보 혁명’의 개념과 상승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즉각적인 절합이 있다. 국내적으로, ‘피할 수 없는’ 과학 발전의 요구가 기술적 변화에 대한 노조의 저항을 호되게 꾸짖기 위해 전개된 반면, 국제적으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한 주장은 시장의 지구적 재조직화에 사활적인 요인이 되었다. 1990년대, 냉전 승리에 격앙되어 실리콘선동가들은 테크놀로지가 마침내 계급 갈등의 유령을 몰아내 새로운 행성의 질서의 비젼을 창조하기 위한 『역사의 종말』(후쿠야마 1992)의 기대와 융합하였다.
미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이러한 상을 가로질러 하나의 붉은 선이 그어진다
자율적 테크놀러지와 자율적 노동자
정보화사회이론은 정보기술을 미래의 경제, 문화 그리고 정치를 추진하는 주요한 추동자로 제시하는 ‘자율적 테크놀러지’(Winner 1977)의 교의이다. 만일 어떤 맑스주의가 그러한 결정주의와 논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확실히 그 전제 안에 부분적으로 연루되어 기 때문이다. 생산력을 시대착오적인 사회관계를 가차 없이 분쇄하는 역사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그 자체를 진보의 행진을 만드는 기계에 대한 족쇄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논리를 전유하여 반발하는 대항이론에 답하는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몇몇 탈산업주의적 스승들이 >멧돌은 당신에게 봉건영주들의 사회를 제공하며, 증기동력은 당신에게 산업자본가들의 사회를 제공한다>는 맑스(1963, 109)의 아포리즘을 너무나 잘 배웠을 뿐인 과거 사적 유물론적 학생들이었음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그리고 그들은 초소형 컴퓨터와 통신위성에 기반한 새로운 시대를 외삽하듯이 추론해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5)
그러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관계가 있지 기계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력의 기술적 진보가 아닌 창조하는 자들과 전유하는 자들 사이의 갈등에 집중하는 맑스주의이다. 그것의 핵심에 노동과 자본의 관계, 즉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자본가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산노동력을 팔 것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의 착취관계에 대한 맑스의 정통한 분석이 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정교화하면서 대부분의 서구 맑스주의자들은 단지 지배적이고 냉혹한 자본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왔다.6)
자율주의자들이 재발견한 것은(물리에가 그것을 전후 맑스주의내 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칭할 만큼 놀라운 것은) 맑스의 분석이 자본의 힘이 아닌 노동의 힘을 긍정하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계획의 수동적 객체이기는 커녕, 노동자는 생산의 능동적 주체이며, 자본이 끌어내야만 하는 기술과 혁신 그리고 협동의 원천이다. 더욱이 노동하는 주체는 능동적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다. 자본은 >절대적>으로나(노동일을 늘임으로써), >상대적>으로나(노동의 강도나 생산성을 향상함으로써) 착취를 최대화 할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상의 실천과 조직된 투쟁 속에서 그들 자신의 매우 다른 계획들을 끊임없이 개시한다. 단지 노동력으로 환원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충분한, 충만한 삶을 추구하면서 그들은 임금 수준을 올리거나 노동일의 기간이나 속도를 줄임으로써 자본에 도전하는 대항논리를 전개시킨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생산한 가치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단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노동력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정치적 명령에 대한 타격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전망은 자본으로부터 노동의 분리이다. 궁극적으로 자본은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노동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산의 근원으로써의 노동은 임금 관계없이도 살 수 있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자율적이다.
이런 전제로부터 자율주의자들의 가장 독특한 교의 즉, 마리오 뜨론띠가 처음 공식화 했던(1979) >투쟁의 역전>에 대한 교의가 나왔다. 이는 실제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임을 제안한다. 자본은 그 자체의 원초적 본체로부터 새로운 기술들과 조직을 짜내면서 일방적이고, 비분할된 자기-함의적인 논리에 따라 전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은 불가결하고 적대적인 병합된 타자의 항상적인 압력에 반작용하면서 내적적대에 의해 추동된다. 자본이 그 스스로 발전하여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런 적들 내의 점점 커가는 힘들을 제압하고, 분쇄하여 좌절시키기 위해서 이다.
중심적 심급은 기술적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그것의 충동이다. 판찌에리는 훨씬 뒤의 테크놀러지 비판에 전조가 되는 선구적인 논문에서 객관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성으로서의 기술-과학적 발전에 대한 좌파적 관점들과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오히려『자본』에서 기계류에 관한 초기 도입부의 장으로 돌아가, 그는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기술적 혁신을 노동계급에 맞서는 ‘무기’로서 의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생산 과정내에 포함된 산 혹은 ‘가변’자본에 비교하여 죽은 혹은 ‘불변’자본의 비율을 증가시키려는 경향성이 전자가 잠재적으로 경영진이 전장에 휩슬려 있는 전복적인 요소이며, 그 전복적 요소는 각각의 지점에서 통제되고, 파편화되고,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로부터 정확하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7)
단순하게 기술적 합리화의 과정을 승인하는 것은 이 과정 내에서 강화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 변화가 노동계급을 위한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자율주의자들은 이런 장내에서의 용감한 실험가들이다). 그러나 이는 그러한 변화가 자동적으로 해방이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기술적 발전이 ‘기계의 사회주의적 이용’에 어떤 가능성을 끝까지 지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노동계급의 불복종이 ‘총체적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실현 한다(Panzieri 1980, 57; 1976, 12)는 정도만큼 만이 포착될 뿐이다.
정보 기술 대 대중 노동자; 신-러다이트 운동
이런 전망으로부터, 정보 테크놀러지의 확산은 선형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적 진보로서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사이의 투쟁의 순환내에 하나의 계기로서 나타난다. 전투원들의 상대적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자율주의자들은 단지 노동에 대한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분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 환경, 조직 형태들 그리고 정치적 방침에 의해서 결정된 ‘계급 구성’의 개념(각각의 편의 내부적 통일성, 자원들, 의지의 척도)을 도입한다.8)
노동계급의 응집력이 성장함에 따라, 자본은 그것에 반대하는 조직화를 ‘해체시키기’위해 경제력, 기술력 그리고 국가권력을 배치하는 공격적인 재구조화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본은 잉여가치의 원천으로서의 집합적 노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적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 없다. 각각의 공격은, 아무리 성공적이라 할지라도, 노동력의 ‘재구성’을 그리고 새로운 능력들, 전략들, 조직형태들을 지닌 노동의 상이한 층위들에 의한 새로운 저항의 출현을 수반한다. 한번 형성되고 끝난 존재라기보다, 노동계급은 항상 증대하는 갈등의 ‘이중적 나선’ 속에서, 서로가 뒤쫓고 있는 노동 계급 재구성과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의 부단한 변형의 동학 내에서 계속적으로 개조된다(Negri 1980, 174).
‘정보 혁명’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나선내의 세 번의 연속적인 전환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전문 노동자’(20세기의 1사분기에 러시아 볼셰비즘과 평의회 운동의 핵심이 된 고도로 숙련된 공장 노동자들)의 시대이다(bologna 1976; Moulier 1986; Negri 1992). 이런 혁명적 운동의 위협에 직면하여 자본은 노동력의 탈숙련화와 전위적 행동주의의 제거를 목표로 생산의 급격한 재구성에 착수했다. 이 기획의 구성요소는 노동과정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테일러리즘, 노동일과 임금의 구성과 관련하여 포디즘, 경제 정책과 관련하여 케인즈 주의, 정부와 관련하여 자율주의자들이 “계획자 국가”(포괄적인 사회적 경영을 목표로 하는 정부적 복지 프로그램과 산업 전략들)라고 칭하는 것의 도래이다(Negri 1988, 205). 이런 조치들을 통하여, 자본은 서구에서 자국 내부의 반체제적 세력들을 봉쇄하고, 이차대전 뒤에 축적의 ‘황금시대’를 위한 조건들을 안정화 시킨다.
그러나 이런 재구조화는 새로운 노동계급 주체를 창출하였다. ‘대중 노동자’는 이탈리아 상황의 피아트의 피고용인들에 의해 그밖에 영국의 포드, 프랑스의 르노, 미국의 GM의 자동자 노동자들에 의해 전형화된 산업 생산의 핵심에 있는 거대한 공장들내에 집중된 반-숙련 조립라인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케인즈 주의의 제도화된 한계내에 임금 요구를 억제하는 것에 대한 혹은 기계화된 대중 생산의 비인간적 조건을 묵인하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는 계획자 국가의 안정성과 전후 안정의 의문을 제기케 하는 파업과 사보타지, 그리고 결근의 파고를 명백히 하였다.
이러한 호전성에 대응하여, 자본은 그 자신을 다시금 재구성하였다.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에 의해 전형화된 이런 대항 공격은 몇가지 요소들과 결합하였다. ‘계획자국가’는 복지조항이 긴축에 의한 훈육을 지지하여 폐지되었고, 화폐정책이 실질임금 하락을 유도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가혹한 조치들이 노조에 맞서 제도화됨에 따라 ‘위기 국가’에 길을 비켜 주었다. 동시에 기업들은 네그리가 ‘사회화, 제3영역화, 파편화’라고 명명했던 것을 달성하기 위해 재조직되었다(Negri, 1978, 254). 생산의 초점은 탈중심화되고 산업 공장으로부터 분산된다. 경제의 ‘연성’ 부문과 ‘서비스’부문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고, 자본은 노동계급 경직성의 완고함을 회피하기 위해 지리적 이동성과 시간적 유동성의 극대치를 추구한다.
정보과학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이다. 네그리에 의하면, 1970년대에 컴퓨터화와 원거리 통신에 의해 전제된 두드러진 중요성은 ‘자본 요소들의 유통과 재생산을 통제하는 도구와 과정들의 혁신’을 위한 기업적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사회화된 노동자의 테크놀로지적 통제’내에 포함된 ‘확산된 기계화’와 관련이 있다(1978, 235, 254). 하이테크놀로지는 ‘소수-노동자 공장’의 전망을 가져옴으로써 대중 노동자의 보루를 침식한다. 즉 원거리 통신은 값싸고 유순한 노동의 유용성에 따라 조절의 국내적 분산과 국제적 분산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컴퓨터화는 산업 현장에서 감시와 분리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사무직 노동의 착취를 강화를 위해 필연적인 자동화와 감시의 새로운 수준들을 허용한다(Murray(1983)를 보라). 정보화 사회의 장밋빛 상 아래에는 ‘노동 비용의 통제와 축소’라는 뚜렷한 목표가 놓여 있다(Negri 1978, 254).
그러한 분석은 자율주의자들에게 결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노동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 속에서 정보과학의 역할에 대한 자각은 의사(擬似)맑스주의의 신-러다이즘이라는 영향력있는 노선을 발생시켰다. 대체로 ‘노동 과정’에 기초한 전망들은 ‘노동의 단순화’에 대한 브래이버만의 획기적 연구로부터 유래되었지만, 미디어 연구의 중요한 흐름들과 함께, 이런 연구는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탈숙련화와 ‘정신 관리’(Schiller 1976)를 위한 도구로서 나타나도록 하였으며 19세기 기계-파괴자들(e.g. Noble, 1983, 1984; Webster and Robins 1986)의 저항전통을 적어도 지적으로라도 되살리도록 하였다.
이런 전망은 정보화사회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활력있는 해독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심각한 한계들을 갖고 있다. 작업장 문제들에 관해서 테크놀로지적 혁신에 대한 비타협적 의심은 이미 명백하게 탈인간화하고 있는 산업 노동 형태의 옹호(그리고 아마도 낭만화)를 초래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실질적인 기쁨과 이용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혹은 좀더 전복적인 목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새로운 배열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신-러다이즘은 혁명적 가능성을 위한 맑스의 연구가 교화, 감시 그리고 자동화의 전능적인 테크놀러지에 의해 지배된 정보과학적 디스토피아의 악몽같은 비젼에 길을 열어준다는 급진적인 비관주의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율주의자들의 분석, 그리고 사보타지를 노동자들의 힘의 표현으로 보는 그들의 찬사는 신-러다이즘과 강력한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분석의 실질적인 변별점이 완전히 다른 방향에(자본의 정보적 재구성이 노동계급의 분열의 계기일 뿐만 아니라, 재구성의 계기이다는 일부 이론가들에 의한 대담한 주장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대중 노동자’의 죽음이 새로운 혁명적 주체(‘사회화된 노동자’)의 탄생과 중첩된다는 생각은 70년대말부터 가장 최근의 저작들에까지(1978; 1980; 1988; 1989) 그리고 이제 우리가 살펴볼 탐구에 이르기까지 네그리의 핵심적 이론이었다.9)
사회적 공장과 사회화된 노동자
초기 정보사회론의 공통된 주장은 후기산업적 생산으로의 전환이 그것과 더불어 테크놀로지적 변화의 부산물로서, 인공지능적 테크노크라시에서부터 전자적 목가주의에 이르기 까지 여러 가지 애매하고 모순적인 형태들이 예견되는 ‘후기-자본주의적’사회적 조직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보다 최근의 판본들은 시장에 대한 갱신된 이데올로기적 존경심의 찬사 속에서 이런 노선의 생각들을 약하게 한다. 그러나 흉악한 맷돌의 컴퓨터화된 체계로의 대체는 역사적으로 산업공장과 관련된 사유재산, 기업권력 그리고 임노동의 가혹한 성운내에서 최소한 일부 유의미한 완화를 허용할 것이다는 믿음이 남아있다.
자율주의자들의 관점은 정반대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자본의 ‘정보적’ 재구축화는 맑스가 ‘자본하에서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서부터 그것의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을 이야기 한 『자본』의 ‘미출간된 여섯 번째 장’에 암시된 상황을 나타낸다. ‘포섭’은 노동이 자본의 가치 추출과정에 통합되는 정도를 나타낸다. ‘형식적 포섭’에서(대략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자본은 장인적 생산이라는 이미 존재했던 양식에 대해 임노동의 형태를 부과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 국면, 즉 ‘실질적 포섭’에서, 노동의 대대적인 재조직화로 잉여가치를 발생시키려는 충동은 규모의 경제와 협력으로부터 수확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산업에 활용된다. 테크놀러지적 혁신은 영구한 것이 되고, 착취는 시간의 ‘절대적인’ 확장보다는 생산성의 ‘상대적인’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소비는 ‘생산을 위한 생산’의 탐닉으로 새로운 산업을 부추기는 새로운 욕구의 양성에 의해 조직된다.
네그리에 의하면, 산업공장의 쇠퇴는, 자본 너머로의 도약을 의미하기는 커녕, 맑스의 예언적인 설명이 암시하는 것보다도 더 깊고 광범위한 ‘실질적 포섭’의 국면을 나타낸다. 탈산업화와 대중노동자의 소멸은 그것의 다른 얼굴이 새로운 지대 속으로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인 그러한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 과학적-테크놀로지적 하부구조내의 간접노동은 작업장에서의 직접노동만큼 중요하게 된다. 유통(마케팅, 소매업, 금융 그리고 은행업)은 정확하게 생산과 맞물리며 그 자체가 이익 추출을 위한 주요한 장소가 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그것의 교육, 여가 활동, 훈련, 그리고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그것의 수정과 착상까지) 완전히 상품화된다. 이런 모든 발전들은 초기에 출현한다. 그러나 이제 정보테크놀러지의 통합력과 계산력이 트랙킹에 의해 조성되면, 그것들은 강렬함과 상호연결의 새로운 정점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생산의 집중처(공장)를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특권화된 장소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에 자본의 거대한 신진대사내의 마디들이 확장되어간다. 우리는 배아기 단계의 현상과 마주친다. 1960년대에 뜨론띠(1973)가 ‘사회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식별하였고, 그것의 좀더 진전된 형태로 자율주의자들은 ‘광범위한 공장’, ‘벽이 없는 공장’(Negri 1989, 204) 혹은 ‘정보 공장’(Collectif a Traverso 1977, 107)으로 명명한다.
‘사회화된 노동자’라는 테제는 단순한 ‘공장주의’가 적절치 않다는 점과 생산에서 이전에는 주변적으로 이해되었던 모든 기능들이 완전히 자본의 유통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맥락 속에서 노동력의 본성을 재규정하려는 시도이다.10)
네그리의 관찰에 따르면, 대체로 페미니스트운동, 청년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에 의해 드러난 이런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부터의 이행을 표현하는 계급 개념 어휘들의 혁신을 요구하였다.
공장의 직접생산으로 대량화된 노동계급으로부터 이제 생산과 재생산의 전(全)주기에 걸쳐 확장된 새로운 노동계급의 잠재성을 재현하면서 사회적 노동력으로의 이행을 표현하는 계급 개념(사회 및 전체로서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통제의 더욱더 폭넓고, 더욱더 탐색적인 차원들에 좀더 적합한 개념)(Negri 1988, 209).
그런 언어는 테크놀로지적으로 선진 산업내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노동계급’이라는 말레의 초기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네그리의 이론은 기술적 노동자중에서 선별된 지식인계급의 출현을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모든 분야에서 기술-과학으로 뒤덮인 체계에 의해 요구된 노동력의 일반화된 형태의 출현을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대중 노동자’가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한다면, ‘사회화된 노동자’는 은행 사무원, 건강관리 노동자, 보조 교사(그러나 자동차 공장, 펄프공장, 강철공장를 포함하여 노동의 전영역이, 오늘날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가리키는 사례들)와 같이 경제의 ‘연성’부문 혹은 ‘제3의’ 부문에서 출현한다. ‘대중 노동자’는 거대한 산업 공장으로 집중됨으로써 ‘대량화’되는 반면, ‘사회화된 노동자’는 가치창출의 훨씬 더 분화되고 확장된 체계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화’된다. 왜냐하면 그의 생산성이 노동의 이런 복잡한 분할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며, 그의 노동에서 하나의 중심적인 요소가 소통적이고 협조적인 작업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추상적이고 디지털화된 작업들이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지적활동이 되는 정보과학적 체계의 정교한테크놀로지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반면, 동시에 새로운 사이버적 프롤레타리아트화의 정보저장소를 형성하면서 전통적으로 정신노동을 육체노동으로부터 구획 지웠던 특권들을 잠식한다(Negri 1989, 89-101).
사회공장으로의 통합은 생산의 직접적인 장소를 넘어 뻗어 나간다. 유통과 재생산 부분에 대한 자본의 식민지화는 여가활동, 교육, 건강관리, 복지가 기업적 이익의 종합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들을 유지하려는 세밀한 감시와 조절에 점차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장을 넘어 경제적 전략으로 활동성을 철저하게 병합하는 것은 착취의 시간적 척도가 노동일이 아닌 삶 전체로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네그리는 말한다(1988, 219). 이런 자본의 계산법의 확장과 정교화에 직면하여 우리는 실제로, 그가 관찰한, ‘맑스를 넘어서게’ 되며,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수행자 혹은 행위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별칭을 유지함으로써 그는 시간과 창조성의 이 포괄적 조직화를 지배하는 원리가 여전히 노동착취임을 강조한다.(1989, 84).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한 네그리의 이론은 매우 논쟁적이다는 점이, 심지어 그가 폭넓게 유사한 정치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조차도 그러하다는 점이 즉각 유념되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공장외부에서 사회체(the body of society)로 맑스의 혁명적 주체의 증가에서 ‘몰의 부족’(1980)으로 사회적 갈등의 확산에 대한 중요한 자율주의적 분석을 제공했던 볼로냐는 노동력의 재구축화로부터 발생하는 복잡성을 단 하나의 장대한 이론적 구축내에 포함시키려는 네그리의 시도를 맹렬하게 비판한다.11)
더욱이, 이런 ‘새로운’ 노동계급 주체에 대한 네그리의 열정적인 발견은 종종 일부 ‘오래된것’(‘대중 노동자’의 투쟁들)의 계속된 회복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기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완고한 자본의 관점에서 매우 불순한 영국과 미국에서의 석탄 광부들의 전투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적 요소들이 인정되는 반면, 우리는 네그리의 테제들이 받아들여져왔던 것 보다 더 폭넓게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함이 없는 구축물이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대체로 실리콘 자본의 옹호자들에 의해 점령되어온 영역속에 전투적이고 혁신적인 탐침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미주
1) 이런 전통을 채택하는데 있어서 나는 클리버(1979)를 따르는데, 그의 저작은 영어권 내에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입장들과 역사적 전개의 중대한 지도 그리기를 구성한다. 그는 여기서(그의 저작 속에서: 역자) 논의된 이딸리아적 조류의 저작들이 어떻게 미국 존슨-포리스트 경향과 프랑스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의 저작에 의해 중첩되고, 이해되는가를 보여준다.
2) 이딸리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이런 개관적인 설명은 필연적으로 그 주제들의 복잡한 역사를 왜곡한다.특히, 그것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공장 투쟁들 주변에 초점을 맞춘 초기 이딸리아 오페라이스모 혹은 ‘노동자 주의’와 아우토노미아라는 폭넓은 사회적 운동 속에서 등장한 후기 흐름들과의 관계를 다루기에 부족하다(#scants). 뜨론띠와 판찌에리는 전자에는 속하나 후자에는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뜨론띠는 그의 저작을 대체로 구축했었던 네그리와 같은 아우토노미아 이론가들과 정치적으로 결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두를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로 분류하는 그들의 사고의 노선 속에서 충분한 연속성을 발견한다. 이딸리아 신좌파에 대한 핵심적인 영어권 분석은 라이트(1988)인데, 그는 오페라이스모와 아우토노미아간의 차이를 강조하며, 운동내의 논쟁들과 투쟁들에 대한 흥미있는 분석을 준다. 또 다른 이론적이며 역사적인 소개들은 Cleaver(1979), Ryan(1989), Moulier(1986; 1989), Negri(1980), Moulier(1986; 1989), Piotte(1986), Bologna(1986), Lotringer and Marazzi(1980), Lumley(1990)를 포함한다. Tahon과 Corten(1986)의 논문은 가치있는 회고적 자산을 제공한다. 중요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저작선은「레드 노트」(1970)와 Negri(1988)이다. Balestrini(1989)의 소설은 아우토노미아의 흥망성쇠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제공한다.
3) 두가지 사례면 충분할 것이다. 독자들은 서구맑스주의 국가에 대한 Perry Anderson의 주기적인 레포트들(1976; 1983)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Bottomore의 훌륭한『맑스주의 사상사전』이건 간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모든 언급들이 경솔한 것임을(in vain) 볼것이다.
4) 네그리와 그의 동료들의 최근 저작의 주요한 전달수단은 프랑스 저널인「Futur Anterieur」이다.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은 두개의 북아메리카 저널은「Zerowork」(현재 폐간됨)와「Midnight Notes」이다.
5) 테크놀로지적으로 동시대적인 결정 주의적 맑스주의를 위해서는 Cohen(1978)을 보라. 정보화사회이론에 대한 맑스주의의 영향은 Bell(1973)과 Toffler(1983)속에서 분명하다.
6) 아마 틀림없이, 이러한 경향성은『자본』을 저술했던 맑스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였지만 임노동에 관한 그의 기획된 책은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는 자본이 자본주의 내부의 경쟁을 통해 그 자신의 내부적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전개시키면서,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전망이다. 노동자들은 자본의 착취적 기계의 바퀴들 간의 수동적이고 객체적인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 기계는 확실히, 자기 파괴적인 것이다(‘이윤율 하락’의 법칙과 같은 냉혹한 법칙에 의한 재난에 이르게 한다). 결국에, 노동자들의 비참함은 거대한 전환의 계기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반란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 다다른다. 그러나 기계는 그 자신의 파괴를 향하여 치닫는다. 그러한 전망의 정치적인 결과는 다양하다. 한편에서 그것은 혁명의 불가피성 내에서 목적론적인(치명적으로 잘못된)믿음을 생성시킨다. 또 다른 한편에서, 경제 붕괴의 ‘법칙’이 예정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하는 한에서, 그것은 자본의 비젼을 그것의 일차원적 질서내의 모든 대립을 흡수할 수 있는 지난(至難)한 져거너트(juggernaut)로 기른다. 두가지 견해는 맑스로부터 혁명적 불꽃의 모든 스파크를 소멸시켜, 호전성 대신 운명론을 대체한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일면적’ 측면에 관해서는 Negri(1984), Thompson(1978), 특히 Lebowitz(1992)를 보라.
7) 물론, 이런 관점의 자원은 맑스(1977, 563)이다. 즉, ‘자본을 노동계급의 반란에 맞서는 무기로서 대신하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1830년대 이래로 만들어진 발명의 완전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Cleaver(1981)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이론의 중요한 것을 설명해 준다.
8) ‘계급 구성’의 개념을 위해서는 Cleaver(1992; 1979), Moulier(1986, 48-56; 1989, 41), Negri(1988, 209), Ramirez(1986, 136),「Zerowork」(1975, 3-4)를 보라)
9) Wright(1988, 306)의 지적에 따르면, ‘지적 노동의 프롤레타리아트화와 거대화로 묶여진 계급적 표상’을 가리키는 ‘사회화된 노동자’라는 용어는 Romano Alquati의 학생운동에 대한 분석에서 처음으로 주조되었으며, 그 뒤에 Negri에 의해 발전되었다. 사회화된 노동자에 관한 네그리의 주장의 예견은 Beradi에게 있어서 기술-과학적 노동(1978)으로서도 존재한다.
10) 이런 정식화에 대해 필수적인 서문은 가정에서 여성의 비임금 노동의 자본주의적 경제로의 통합으로 분석한 Tronti(1973)의 저작뿐만 아니라 Dalla Costa and James(1972)의 저작이다. 또한 Cleaver(1978)를 보라.
11) Bologna와 다른 그의 이딸리아 동료들에 의한 Negri의 ‘사회화된 노동자’테제에 대한 비판의 흥미있고 유익한 요약을 위해서는 Wright(1988, 287-339)를 보라. 그러나 네그리의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한 설명은 10년의 과정동안 발전해왔음을 유념해야만 한다. 그것의 가장 최근의 판본(1989; 1992)은 그것의 최초의 발표(1978)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