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혁명사 한길신인문총서 8
백종국 지음 / 한길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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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의 삶을 이토록 팍팍하게 만들어 버린 "신자유주의"라는 녀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된 라틴 아메리카에 관련된 책을 몇 권 구해서 읽고 있다. 그런데 책 속에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관련된 사례가 나올 때마다 이해가 곤란한 부분이 많아 그쪽과 관련된 재미있는 역사책을 먼저 찾아보던 도중 눈에 띄었던 책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20세기초에 진행된 멕시코혁명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를 혁명의 각 주체세력들을 중심으로 각 사건의 원인, 전개과정 및 그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기사본말체'방식을 사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일반인들에게 자칫 생소할 수 있는 주제와 배경 때문에 독자들이 쉬 흥미를 잃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때문에 1910~1940년이라는 긴 시간을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그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었던 듯 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멕시코의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의 그것과 유사한 인물과 사건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십년간 총과 칼로 집권한 냉혈한 독재자가 있고, 권력에서 배제되자 단순한 지배세력간의 교체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우기는 웃지못할 과두 부르주아들이 있으며, 모두를 위한 진정한 정의와 평등을 외치며 피를 흘리다 죽어간 노동자, 농민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란 사람과 관련된 일들이기에, 세상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만 다를 뿐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무협지를 읽듯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들었던 대체적인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3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정동안 사람들이 당했을 죽음과 고통 때문에 가슴이 아팠고, 그러한 희생을 치르고도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버린  그 결과에 절망했다. 특히나 에밀리아노 싸빠따가 혁명의 동지랄 수도 있었을 까란사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에서 그랬다. 멕시코혁명의 전과정동안 혁명의 의미와 그 방향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수줍은 이상주의자' 에밀리아노 싸빠따. 그는 실패했지만 그의 이상은 7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걸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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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7-2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책...
즐거운 리뷰.
그러나 가볍지 않은...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0
장시복 지음 / 책세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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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요즘 들어 내가 하는 일은 중소기업들에게 돈 빌려주는 일이다. 그들은 나한테와 돈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업체의 사업성에 대해 얘기하다가 얘기가 쉬 풀리지 않으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종착지는 여기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수출하는 건 애국하는 것 아니냐? 난 애국자다. 그런데 왜 나한테 대출을 안 해주려고 하느냐..." 이 국가주의, 애국주의의의 광기라니. 도대체 나의 업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내 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내 자신에게 이익이 될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 비인간적인 공장에서 열심히 미싱을 돌리며 착취를 받고 있을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걸까? 미국을 비롯한 1세계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옷을 입을 수 있게끔 해주니까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일인걸까?

김영삼이 세계화를 부르짖은지 10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국내의 저부가가치의 생산시설은 동남아,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국제적인 분업체계(1.5세계인 한국은 1세계시장의 고객들이 편안히 싼값으로 소비할 수 있게끔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국제적인 "마름"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도 공고히 다져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그동안 외환위기가 터졌고 확실히 내 주변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는데, 어째 이들은 자신들이 돌리는 쳇바퀴를 더욱 빨리 밟아대려고만 한다(어렸을 적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7시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시다 잠이 들었지만, 지금 내 주변에서 그런 생활을 하는 아버지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세계화시대의 기업에 포커스를 맞춰 다룬다. 즉 이 책의 주제는 초국적기업의 정체와 폐해, 국민국가와의 관계 설정, 있는 자들의 대변인인 초국적기구, 그 저항과 대안이다. 이 책은 초국적 자본이 활개를 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대안에 대한 부분은 빈약하다. 물론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며, 지금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이 책은 세계화와 초국적기업에 대한 알찬 개론서임에는 틀림없다.초국적기업은 그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사람들 머릿속에 박아놓은 이미지처럼 깨끗하고 정다운 이웃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노동착취를 전세계적으로 행하는 약탈자라는 이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또다른 숙제이다.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고본 같은 이런 책들이 훨씬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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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성형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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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퍼슨웹"과 이성형씨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봤다. 이성형씨는  우리가 남미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포퓰리즘, 군사쿠데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자원부국임에도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린, 피해가야 할 모델로서의 남미가 하나의 시선이라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사과정과 강렬한 문화적 색채의 남미가 또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미를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할 뿐 남미 전체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마치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머릿속의 기억을 왜곡하여 자신들만의 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교  때 "칠레전투"를 보고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서는 남미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남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중남미는 실제의 그곳과는 많이 틀릴 것이다. 그것을 지적해 준 위의 이성형씨의 말은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글을 읽다가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이 책 "배를 타고..."를 읽을 때도 그랬다. 이 책은 중남미 4개국, 그러니까 쿠바, 페루, 칠레, 멕시코를 다루고 있지만, 재미있게 읽혔던 부분은 쿠바, 칠레, 멕시코 부분이었다. 인디오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 페루는 읽는 내내 지루했고 잘 와닿지도 않았다. 마지막 부분인 멕시코도 그랬다. 멕시코 혁명기 벽화운동을 다룬 장을 제외하고 마야문명이니 떼오띠우아깐이니 하는 부분들은 내내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대신 칠레의 쿠데타, 광산지대의 노동운동이 칠레 현실정치에 미친 역사적 영향,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현상황 등은 너무나 재미있게 다가왔다.

어차피 중남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들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집단적인 경험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 구미에 맞는 이미지와 정보만으로 그들을 재단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억울해 할까. 자신들만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는 멕시코 치아빠스주의 반군을 유럽의 좌파지식인들이 자신들 나름의 (실패한 68혁명에 대한 향수어린)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나도 동일한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성형씨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다. 앞으로도 정치경제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문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박식함이 우리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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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3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일리톨님, 이 책 참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거든요. 저자의 예리한 지적도 맘에 들더군요. 님의 리뷰를 보니,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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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페인내전에 대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오웰은 스페인인들과 세계로부터 온 의용군들의 순수한 혁명적 열기, 스탈린의 배신과 이로 인한 혁명의 좌절을 자신이 의용군이 되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6년 7월 프랑코를 위시한 파시스트들이 인민전선 정부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키자 스페인의 좌익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총을 들고 이들을 막아낸다. 이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은 프랑코를 지원하고, 소련과 각국의 혁명적 좌익세력들은 스페인 인민전선을 지원하게 되면서 스페인 내전은 국제전의 성격으로 발전한다. 전쟁 초반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파시스트를 막아낸 스페인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혁명을 요구한다. 수백년간 내려온 지주와 부르주와세력을 몰아내고,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공장을 접수하여 진정한 사회주의혁명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소련의 안보를 보장받기를 원했던 스탈린은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하되, 사회주의혁명은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른바 ‘일국사회주의노선’으로 알려진 스탈린주의는 혁명을 배반했던 것이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혁명세력들(POUM, CNT)과 스탈린의 조종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의 시가전 이후, POUM과 CNT, 그리고 의용군들은 “파시스트의 간첩”, “트로츠키주의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죄목으로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투옥되거나 총살당한다. 게다가 좌익탄압에 이용됐던 세력은 왕당파의 사설경호대와 다를바 없던 치안대(la guardia)와 비밀경찰이었다.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오웰도 겨우 스페인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국제정세와 스페인내부의 사정에 따라 혁명노선은 달라질 수도 있다. 농업국가에 가까웠던 스페인의 산업적 특성,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면 러시아혁명때와 같이 간섭전쟁을 도발하겠다는 영국과 프랑스 등 자본주의국가들의 위협 등등을 감안했을 때, 스탈린의 선택이 현실적으로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만명의 국제의용군들과 스페인노동계급은 순수한 혁명적 열정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파시스트들과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40년이 넘은 딱총을 들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수류탄 깡통을 들고 죽음의 공포와 추위, 굶주림과 맞서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그들의 등뒤에서 칼을 꽂았다. 이후 스페인은 결국, 파시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 책을 읽고,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을 다시 봤다.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한 한 영국인의 눈을 통해 스페인내전을 그린 역작이다. 전사한 동료들을 땅에 묻은 의용군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리고 스탈린주의자들의 군대가 의용군을 무장해제시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다. 현실 앞에서 그들의 순수한 혁명적 열정은 짓밟혔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는 이후의 세대들에게 희생이란 무엇이고, 숭고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후 시간이 되면 스페인내전이 유럽인들의 사고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다. 96년 겨울, 시간을 때우려고 “세이예스(dis-moi oui)”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나이든 남성 의사와 그 의사를 좋아하는 천방지축 십대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통속적인 프랑스 연애영화였다. 근데 그 여자애의 할아버지로 스페인내전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했고 그 사실을 평생 자랑스러워하는 고집불통의 노인이 나온다. 스페인내전이 “고집불통의 노인”으로 기억되는 건 어째 좀 씁쓸하다.

 

스페인내전을 다룬 영화로 “마리포사”와 “로르카”를 보았다. 마리뽀싸는 나비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어린 아이 몬쵸의 성장영화인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옹호한 선생님을 빨갱이, 무신론자로 몰아야 했던 스페인의 비극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있다. 스페인의 자연과 시적인 대사가 너무나 아름답다. 로르카는 스페인내전 당시 의문사한 천재시인 로르카의 행적을 뒤쫓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영화로 앤디 가르시아의 오버가 약간 느끼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의 상황을 무리없이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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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지음 / 산처럼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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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근대성이라는 것이 내면화되었는지에 관한 연구서다. 이 책은 근대문명 그 자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철도가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당시의 공문서, 신문기사, 문학작품 등의 사료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근대민족의식, 제국주의, 공간, 시간, 풍속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저자인 박천홍이 제시하는 자료는 책 말미의 참고문헌목록만 보더라도 방대하며, 곳곳의 글의 문맥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인용된 사료는 명쾌하고도 적확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할 정도로, 우리는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고민과 고된 작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상당히 왜곡된 우리 근대화 과정의 문제다. 저자는 근대화과정에서 “서구의 근대화가 자신들의 패권을 지구적으로 관철시키는 과정이었다면, 비서구권에서는 타율적으로 자본주의 세계로 편입되는 고난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당시의 조선은 서구의 패권주의와 일본제국주의라는 이중적인 억압을 겪어야만 했기에 더욱 고난에 찬 근대화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근대화는 전근대사회의 잔재를 쓸어버리고 근대적 합리성(자본의 증식이라는 절대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성)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정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자신들의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과거와의 끈을 통해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조선의 경우는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전근대사회와의 완전한 단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원인이 되었다.

증기기관이라는 동력은 대량생산을 위한 생산력의 집적(대공장제도)을 가능하게 했으며, 철도는 상품과 원료, 기술을 놀라운 속도로 실어나르며, 전지구를 단일한 시장으로 만들었고 세계를 자본주의적인 분업체계로 재편했다.  이는 구래의 농촌공동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농촌에서 밀려난 대규모의 인구는 도시빈민으로서 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는 부르주와지의 주도세력으로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은 가상적 실체인 민족과 근대국민국가의 성립, 국민교육제도와 징병제, 신문, 소설과 같은 서사문학의 유행, 표준시(mean time)제도의 확립, 봉건적 신분제의 철폐, 근대도시의 성립, 박람회 등을 통해 새로운 착취구조를 은폐하고 그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조선의 근대화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다시 한번 왜곡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철도노선의 건설을 위해 민중은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고, 민중의 생산물은 철저히 싼 값으로 수탈당해야 했고, 철도건설에서 구도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일본인 주도의 새로운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전통사회와의 단절을 의도하였으며, 빈부에 따른 도시공간의 분할이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국적 구분에 의해 다시 한번 분할되는 차별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근대성에 관한 수많은 문헌을 통해 우리의 근대화 과정의 문제를 치밀하게 논증한다. 근대적 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등장하기도 하고, 철도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적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이인직의 ‘은세계’가 나오기도 하며, 근대의 성격을 논하기 위해 베네딕트 앤더슨, 칼 맑스,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라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근대와 관련한 새로운 저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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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8-2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자일리톨님..
이제사 발견하다니...

자일리톨 2004-08-2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감사합니다. 바람구두님이 그러시니 챙피하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