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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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 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화와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늦추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멈추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여기는 것은 어딘지 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노화(old age)에 MG2A라는 질병 코드를 부여했다. 시사 매거진에서 이에 대한 논란을 다룬 쪽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노화 방지 치료법을 만들고 유통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노화를 질병으로 진단할 경우 노인 차별을 심화시키거나 의사들의 치료가 부적절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않았다. 결국 2022년 국제질병분류 11번째 개정판에서는 '노화'가 질병임을 암시하는 부분이 삭제된 채로 공개되었다. 당시에 이 이슈가 꽤나 핫한 논란거리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노화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점차 노화를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불멸'이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환상 소설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신의 영역인 '불멸'이 어느새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수명이 긴 종들은 종종 성체의 체세포 조직에서 텔로머레이스를 계속 생성해서, 적어도 장기의 최소 부분을 재생할 수 있게 한다. 성체의 텔로머레이스 생성에도 불구하고, 그 종들의 암 발생률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마도 세포의 통제력을 높이면서 암을 막기 위한 대체 메커니즘을 개발했을 것이다. … 죽음은 생명 그 자체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필수 조건이 아니라 생명의 외적 조건에 대한 양보로서 얻어진 종에게 유리한 사건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생명의 종말인 죽음이 모든 생물의 속성으로 가정되는 일은 결코 없다. 죽음 그 자체, 그리고 수명의 길고 짧음은 전적으로 적응에 달려있다. 죽음은 생명체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생식과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생식의 필연적인 결과도 아니다. - 본문 82쪽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과 전산을 공부했고 생물학자나 의사보다는 엔지니어나 기술자에 더 가까운 비전을 지닌 드 그레이는 노화의 원인을 일곱가지로 정리한다. 1. 세포 내 노폐물 2. 세포 간 노폐물 3. 핵 돌연변이 4.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5. 줄기세포 손실 6. 노화 세포의 증가 7. 세포 간 단백질 연결의 증가 가 그것으로, 이는 모두 세포 내부와 외부의 미세한 변화로 인해 발생한다. 약간의 손상이 생명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속화된 속도로 쌓이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쇠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이유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드 그레이의 이론을 미친 소리라 치부했으나 노화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 수록 점차 그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한 때 질병으로 간주되던 문제들(예를 들어 흑인 노예들의 도망이나 자위행위, 동성애 같은 것들)은 이제 더이상 질병으로 일컬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그저 노화의 과정이라 간주되던 것(골다공증, 노인성 알츠하이머 병 등)은 지금에 와서는 질병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당연하다 여겼던 것이 과학의 발전에 따라 정반대로 뒤바뀐 것이 한 둘이 아닐진데 언젠가 노화가 질병으로 분류되고, 치료 가능하게 될 날이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노화 없이 영생을 사는 삶에 대해 상상해보면 마냥 긍정적으로만 그려지지않고 세기말 아포칼립스 적인 풍경이 떠오른다. 죽음은 어떤식으로든 필요할 것만 같아서인지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출연했던 영화 <인 타임(2011)>에서의 시간이 화폐로 대체되어 부자들만 무한한 영생을 누리는 세계관도 연상된다.

노화 없는 영원한 삶, 듣기에 꿈만 같은 달콤한 이야기인데 왜 우리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게 될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노화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류가 탄생한 뒤로 지금까지 노화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일관된 발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벽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에 사로잡혀 비참한 인생을 보내기 보다는 그것을 수용하고 마음의 평화를 만드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 이 '자기합리화'가 없다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테니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노화를 이기는 가능성이 등장했다면 더 이상 우리가 비합리적인 '노화 찬성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 있을 이유는 없다.

몇 년 전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저서가 밈이 될 때만 해도 그의 책을 몇 권 읽긴 했으나 미친 사람의 미친 소리라고만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화에 대한 연구가 누적되고 많은 과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데 단지 영생이라는 논제에 대해 본능적 거부감이 든다는 이유 만으로 그 모든 주장이 '다 틀렸어 말도 안돼' 라고 고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죽음이란 정말로 정복 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죽음의 죽음 코 앞에 다다라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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