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카르마 폴리스>는 그대로 직역하면 '업보의 도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표현하는데는 작품 속 유리부인의 남편이 출근길에 곁눈으로 흘깃 훔쳐본 제목 모를 소설 서평이 그럴 듯 하게 어울린다. '독자들은 환상적인 사건들의 연쇄에 당황하게 되고,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들에 얼떨떨해진다. 마치 미지의 거대한 포유류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 모습을 목격한 동물학자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 소설 49쪽).
내 독서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기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카르마 폴리스>의 초반부를 읽는 내내 예전에 아주 몰입해서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가 떠올랐다. 오래된 고서가 가득한 책방의 책벌레에서 박쥐로, 송골매와 그를 노리는 고양이로, 약제상과 박제상 그리고 박쥐를 달여먹은 유리부인과 매 박제를 구입한 배불뚝이까지 끊임없이 흘러가는 작은 이야기들이 어느새 하나 둘 끼워맞춰지는 과정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두 소설이 드넓은 세계와 시간대를 종횡무진 거닐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고래>가 늘 원한에 차 있는 죽은 사람들을 보는 금복, 죽거나 떠나간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춘희와 文과 같은 인물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더 중점을 두었다면 <카르마폴리스>에서는 하나하나의 인간개체,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 보다는 전체적인 사회상과 세계 묘사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카르마 폴리스인가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특정한 인물 한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업보에 의해 돌아가는 도시 그 자체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름조차 가진 이가 드물은)여러 인물들은 작가가 그리는 세계의 조그만 태엽 부속품처럼 움직이며 커다란 그림을 그려나간다. 연관이 없어보였던 이야기들은 다른 사건에 조금씩 영향을 주며 업보의 대가로 도시가 어떻게 부서져가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