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와 설원이 펼쳐진 그린란드에서 발생한 세 건의 살인사건 - 맹수에게 공격 당한 듯 뜯겨나간 머리와 내장이 파헤쳐진 시신들.
흔히 읽어왔던 범죄소설들처럼 대도시가 주무대가 아니라 이누이트들이 살고 있는 북극을 주무대로 펼쳐지는 <카낙>은 시작부터 신선하다.
살인사건을 추리해가는 미스터리 범죄소설이라 오락소설이라 여기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단순한 오락소설적 재미를 넘어서 그린란드의 정치, 경제, 환경, 인종차별의 사회적 문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소설 초입부에 묘사되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이변의 묘사 + 석유개발회사 + 북극곰에게 당한 것만 같은 살해방식의 조합은 너무 뻔하게 예상가는 스토리 아닌가 생각했던 줄거리 조차도 읽을수록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덴마크에서 온 이방인 형사 카낙이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잊혀진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그린란드에서 살인 사건의 수사를 시작하는데, 카낙도 아푸타쿠 없이는 이누이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던 만큼 소설을 읽는 나 역시 너무도 낯선 지명과 이름, 문화에 어리둥절해 수첩을 준비해가며 단어를 정리해가며 읽었다. 짬짬이 펜을 놀려 메모하는 수고를 들일만큼의 가치가 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던 이누이트만의 독특한 문화 양식을 소설을 통해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도 개고기 식용 반대 발언으로 유명했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이누이트에 대해 이해가 전혀 없는 바다표범 사냥 쿼터제 캠페인' 같은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이 얼마나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묘사도 소설 전체에 걸쳐 차곡차곡 깔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천연자원 개발과 도시화가 토착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도 생생하게 그려져 6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