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물오징어 다듬는 법
보름 전 D시에서 플라시보님과 스윗매직님을 만나 나누던 대화 중 한자락은 매너의 뜽금없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냉장고에 뭐 들어있어요?" 플라시보님과 매너의 동일 품목은 오징어 다듬어 놓은 거. 차이가 있다면 매너는 물오징어 사다 다듬고 플라시보님은 다듬어 놓은 걸 사다 넣어놓으신다는 점. 매너는 생 물오징어를 한 번 다듬어 보실 걸 권유했고 플라시보님 역시 그럴까요? 했던 걸로 기억된다. 이 페이퍼는 그때 대화의 에프터서비스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래. 오늘의 타겟. 요놈 먹기좋게 다듬기다. 이천삼백칠십원에 두마리 물좋은 오징어.
일단 다리를 붙잡고 쭈욱 잡아당기면 이렇게 몸통에서 빠진다.
그래... 요놈이다. 오늘 손볼놈.
요놈을 손보기 가장 좋은 도구는 칼이 아닌 가위다. 몸통 중심을 잡고 글자 그대로 '오려'내면 된다. 칼로 하면 저 위 지느러미 부분을 자르는 게 수월치 않다. 가위가 편하다.
지느러미 부분은 좁아서 가위를 끝까지 밀어넣어야 한다.
쪼개서 펼치면 저런 모양이 된다.
이젠 별 거 없다. '먹을 수 있게'생긴 부위 놔두고 '먹을 수 없게'생긴 부위 뜯어내 버리면 된다.
원래 오징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먹는 매너지만 플라시보님께서는 벗기는게 낫다고 하셔서, 또 그게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라 껍질을 찌익 벗긴다. 아까 가위질한 부분을 손톱으로 두어 번 긁어낸 후 손으로 주욱 잡아당기면 깔금하게 벗겨진다.
몸통 다듬기 끝~ 근데 이걸 어떻게 저장하냐고?
매너 경험상 이렇게 비닐팩에 넣어 보관하는게 젤 편하더라. 요리하기 전 꺼내서 잠시 녹인 후 바로 썰어버리면 되고. 대개 볶음밥에 집어넣거나 할 땐 그러기도 귀찮아 가위로 썰어버린다. (그래. 솔직히 매너, 주방에서 칼보다 가위를 더 많이 쓴다.
자, 이젠 다리 정리하기다. 취향에 따라 다소 비위에 거슬리는 사진이 등장할지도 모르니 그런 분들, 이시점에서 알. 아. 서. '뒤로'를 눌러주시길. ^_^o-
저 오징어 눈 위에 자루같이 달린 데에는 오징어 먹물 같은 게 꽉 차있다. 어디 이탈리아에선가는 저걸 가지고 스파게티 소스도 한다고 하지만 매너에겐 백만광년 너머의 이야기고 필요없는 소리다. 여튼 눈 위 적당한 부분을 가위로 썰어버린다. 그리고 남은 부분에 남은 먹물자욱을 물에 씻어버린다.
그다음 오징어를 뒤집어 등장하는 구멍-_-에 가위를 저런 식으로 밀어넣어 썰어 편다.
뭐 대략 이런 모양이 되는데, 여기서도 몸통 다듬을때와 마찬가지로 먹어도 되겠다 싶은 데 남기고 먹기 거시기하다 싶으면 가위로 잘라내거나 손으로 뜯어내 버리면 된다.
역시 완성. 오징어 다리 역시 냉장고에 넣어두다가 라면이나 국 끓일 때 가위로 뚝 뚝 썰어주면 딱이다. -_-v
아. 빼먹을뻔했다. 오징어 다리는 흐르는 물에 대고 손으로 다리를 쭉 쭉 씻어주면 오징어 다리에 붙은 빨판이 떨어져나간다. 빨판 씹는 게 싫으신 분들, 이거 좀 빡세게 해 두시면 된다.
자취경력이 일천할 뿐더러 앵겔지수 100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매너의 친구 말을 빌자면 오징어는 자취생들의 암울한 밥상에 금방 초록색 바다냄세를 펼쳐내는 훌륭한 아이템이라더라. 매너 생각도 그렇다. 양파와 파를 썰어낸 라면에 오징어 반마리를 집어넣으면 짬뽕이 되고, 냉동 스파게티에 집어넣으면 해산물 스파게티가, 적당히 밀가루 풀고 김치랑 파 썰어넣은데 잘라 넣으면 해물김치전이 된다. 정 입맛 없으면 끓는물에 데쳐 초고추장 찍어먹어도 왔다다. 자취하시는 분들, 한 끼 밥값도 안되는 돈으로 싱싱한 생 물오징어 두어 마리 거져 살 수 있으니 한 번쯤 암담한 냉장고를 채워두시는 것도 좋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