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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인사이드 ㅣ 메피스토(Mephisto) 15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장호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로버트 실버버그의 '다잉 인사이드'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한 남자의 존재론적인 불안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그려나가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데이빗 셀리그는 그 능력을 감추고 싶어한다. 지나치는 많은 타자들의 끊임없는 생각들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때로 고문에 다름아닐 수도 있겠지만-가령 지하철 안에서 그에게 밀려들어오는 불특정 다수의 생각의 아우성 같은 것- 그가 자신의 능력을 감추려 하는 것은 그저 사람들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이해하기도 전인 어린 시절 그가 부딪힌 것은 말과 생각이 다른 어른들이었다. 겉으로는 그에게 다정하게 미소지어주는 어른들이 '저 자식 저거 괴짜아냐? 속마음도 알 수 없고 ..짜증나는군.' 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낸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에게 나름대로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뿐이었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하는 일이라고는 레포트 대신 써주기-의뢰자가 원하는 수준에 맞추어 써주기 때문에 의뢰자들은 당연,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읽어내어 데이트하기, 상사의 기분을 알아내어 맞춰주는 것 정도이다.
원하지 않아도 타인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그로서는 당연하게 자기 중심적인 유아기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사고에 동화시킴으로써 세상을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성장기 이후에는 쇠퇴기가 따르는 법.
영원할 것 같은 그의 텔레파시 능력도 나이들어감에 따라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고 그제야 그는 그 능력이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한 특징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가진 도식을 이해하고 거기 맞지않는 도식이 새롭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식을 조절함으로써 성장하게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조절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셀리그로서는 갑자기 자신에게 적의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 같은 세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끊임없이 그의 내부로 입력되기만 하던 타인의 정보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더 이상 들어오게 되지 않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의 내부로 들어가는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보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마음을 추론해보는 것 밖에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늘상 해오던 것처럼 말이다.
셀리그는 완전하게 자신의 능력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난 이후에 얼음처럼 차가운 방패처럼 닫혀진 타인의 마음과 그것을 결코 인지할 수 없을 자신에 대해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끊임없는 소음 대신 결코 사라지는 일이 없는 침묵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이제까지의 그는 죽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