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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엘리자베스 문의 네뷸러 상 수상작 '어둠의 속도'를 읽다.
SF를 제법 읽는 독자에게 이 상은 그야말로 괜찮은 작품을 선별하게 하는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기대가 어긋나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가령 코니 윌리스의 장황한 수다로 인해 읽다 지쳐버리는 '둠즈데이 북'이라던가 하는 작품은 왜 이 작품이 네뷸러 상을 받게 되었을까 의구심이 들게 하며 상의 권위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갖게 하던 작품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받을만 해'라는 평이 나오게끔 괜찮은 작품들이다.
얼마 전에 읽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의 전쟁'만 해도 집에 뒹굴고만 있던 페이퍼 백의 'VOR GAME'을 찾아 읽게 만든 계기를 부여할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나에게 괜찮은 작품이란 읽는 재미를 충실하게 안겨주는 작품이다) .
'어둠의 속도'는 근미래의 사회에서 자폐인으로 살아가는 루 애런데일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태아기에 자폐증을 치료할 수 있는 효소를 주입하여 정상아로 태어나게 만들 수 있게 되기 얼마 전. 그래서 그는 자폐인으로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한 지속적인 개입과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닌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괜찮은 회사의 연구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은 일반인에겐 낯설기만 한 자폐인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어간다.
처음에는 낯설던 그의 사고의 흐름에 어느덧 공감하게 되면서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흠뻑 빠져서 우리가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마저 인식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낯설지만 매력적인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빛과 어둠, 정상과 비정상, 이해와 몰이해.....
무엇이든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가 굳이 루 애런데일의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사회 역시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만이 정상인 것 처럼 여겨지고 소수의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권리나 처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루 애런데일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토록 명료하다고 알고 있었던 세계가 허물어져 내리고 우리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진화된 것이 아니라 아직 제대로 진화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통합적 감각의 잔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사랑마저도 그의 전부가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일부로 매김하는 결단을 보면서 한없이 그에게 매혹당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나의 일부를 이루는 것들에 지나치게 매여서 살아온 것이 아닐까?
지금 이대로의 삶을 누리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기준에 맞춰진 삶일 뿐....
내 안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보면 나도 루 애런데일처럼 어떤 결단의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빛보다 빠른 어둠의 속도를 두려워하지 말 것.
빛을 빛이게 하는 것은 어둠으로 인함이며 때문에 어둠은 결코 無일수가 없다.
-200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