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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
이순신의 얘기인지도 모르고... 더구나 노무현이 읽은 책인줄도 모르고... 읽다. 웬 단체 사무실에 갔더니 한 상근자 책상에 놓여있어 읽어야 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샀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이순신에 대해 읽은 책이 "불멸"이었다. 4권짜리 그 책에서 이순신은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도 가장 크게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책에서 성공을 목말라하는 지은이의 조급함을 보았다. 그 책은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하려 하는 80년대 초반 선배들 사이에 꽤 읽히던 책이었다.
이번에 역시 이 책은 이순신의 독백으로 읽히지 않았다. 그건 김훈의 독백이었고, 어느정도는 이순신의 독백이었고, 노무현의 바램이기도 하였다. 21세기에 이순신은 외로운 사람들이 성공의 모델로 해석되기도 한다.
김훈은 글머리에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스스로의 '과'로 인하여,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고. 남탓을 하나도 하고있지 않았으나, 그가 혼자인 이유는 남탓임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어떻게 이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그는 찾고있는듯 싶었다. 그 희망없는 조건에서, 세상과 온전히 단절된 채로, 오로지 자신만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는 것이 김훈의 얘기였다. 그리고 김훈은 1590년대의 싸움터에서 자신과 온전히 비슷했을 사람으로 이순신을 등장시킨다.
나는 김훈의 문체가 좋다.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훈의 글은 할말이 많은데 말을 줄이고 있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안타깝다. 김훈은 할말이 많다. 그런데 자기얘기는 하지 않는다. 남 얘기만을 한다. 이순신은 할말이 많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가 없다. 실제로 1590년대에 이순신은 사람들 앞에서 울 수가 없어 종의 집에가 울었다고 적혀 있다.
김훈이 기자로서 21세기에 대한민국 언론계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사저널(맞나?) 편집장에서 한겨레신문 평기자로 일하게 된 것처럼, 이순신 역시 1590년대의 조선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걷돈다. 이순신은 [불멸]에서처럼 반역을 도모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었어야 했을까? 그러나 이순신은 조선의 문제는 깨달았으나 그걸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 알 지 못하였다. 애초에 그것은 그처럼 철저히 혼자인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현재를 대체할 조직을 구성하는 문제로 될 수 밖에 없다.
김훈은. 이순신은 , 바로 그점에서 허무하다. 그리하여 결국 무너질 운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울먹거렸다. 거기에는 1590년대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어느정도 그려져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으되, 그들이 분명히 그자리에 있었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쪽배를 타고 나와 명량의 앞바다에서 왜군과 싸우다 죽어갔다. 거북선에 탔던 돌격장이 분명히 있었으며, 그가 전쟁의 막판에 죽어간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순신 자신이 12척으로 330척의 배를 맞아 승전하고, 무너졌던 함대를 다시 일으켜, 구경만 하는 명나라 함대를 뒤로 하고 왜놈 한놈이라도 더 죽이겠노라 분전하다 죽었다는 사실이 영상처럼 흘렀다.
나는 그의 후대이다. 그의 실존앞에 눈물을 흘리는.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년간 수요집회끝에 좋은세상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것을 오늘 뉴스로 듣고 살아간다. 이승연은 곧 복귀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