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의 원작의 배경이 한겨울이라면, 이 영화는 초가을에서 초겨울처럼 보인다. 오한이 들정도로 차갑고 눅눅한 아우라를 흠씬 풍기는 책에 비해 영화는 다소 한가롭게보인다. 고유명사를 의도적으로 지우며, 인류문화의 백지화를 동경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실체를 빈곤하게 드러내며 상상력을 앗아간다. 플롯과 미장센의 우유부단함이 여실하여 이야기가 깊이가 없어보이는 와중에 비고 모텐슨 홀로 펼친 분투어린 연기는 영화의 불완성도를 오히려 강조하는 꼴이다.
 

엄마인 샤를리즈 테론을 전형적인 요부로 그림으로써 원작이 숨긴 의도를 천박하게 드러내기까지 한다. 원작의 영향은 일찌감치 예측되었던 바, 테러리스트 집단에서 유색인종을 빼고, 무기력한 도둑으로 흑인을 캐스팅한 것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헐리웃의 영향을 더불어 생각할 때, 내가 갖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유색인종은 '지구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주제에 호기심을 갖을지언정 주체는 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코믹 매카시는 자신의 작품의 진정성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제 3세계의 관객들이 그들(헐리웃 주류)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유혹적인 단어(전세계, 인류, 지구 멸망, 마지막 사랑 기타 등등)들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의 관심과 불안은 지구의 멸망따위에 있는게 아니라 패권의 향방에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바마 집권내내 백인아버지의 활약을 담은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내내 활개치게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