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 훈 할머니 편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 훈할머니편 -을 읽고

훈할머니-이남이 할머니는 꽃 같은 나이 열여섯에,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갔다. 고향 산천, 부모형제를 두고 떠나던 할머니의 마음엔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던 시골뜨기 소녀의 마음엔 그렇게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영문 모르고 보름에 걸려 끌려간 곳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독방보다 더 무섭고 쓸쓸한, 군인들의 군화발과 서슬퍼런 칼날이 마구 그녀를 능욕하던 곳 위안소.... 달걸이도 시작하지 않은 소녀의 울부짖음도... 전쟁이 만든, 역사가 만든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전쟁은 수 많은 이들을 죽임으로 내몰고, 또 수 많은 이들을 헤어지게 만들고... 그렇게 인륜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이는 곳 탐욕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힘을 가졌다. 그리고 그 힘은 그 보다 약한 수 많은 이들에게 풀어헤쳐지면서, 그렇게 살육의 피를 토해낸다. 지난 일제의 태평양 전쟁 속에서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 그 죽음 속에는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죽어간,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죽어간 이들이 수북히 쌓아놓은 피맺힌 절규와 한이 있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금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사과... 민족적 자손심 문제? 배상의 문제? 아니다. 아니다. 또 다른 훈할머니-이남이 할머니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유는 그거 하나다. 그래서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배상도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책 속에 훈할머니가 고국에 돌아와 동생을 만나는 장면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한 이산가족의 애달픔으로 바라보지 말자. 잠시 흐르는 뜨거운 눈물로 우리 자신을 위로하지 말자. 이 눈물의 현장에 일본 제국주의를 불러다 놓자. 역사를 왜곡하며 여전히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는 일본을 불러다 놓자.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다 끝났다고 재를 뿌리는 정부를 갖다 놓자. ‘다 지나간 일, 좋게 좋게’라고 하는, 역사를 잊은 우리를 불러다 놓자. ”
...

전쟁이 없는 세상은 와야만 하는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평화의 세상은 와야만 하는가? 아님 우리는 스스로 그런 세상에 이미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일제는 지금도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아직도 독도는 자신들의 땅이며, 자신들의 식민지배역사는 식민지들의 근대화를 도와준 역사라고 자부한다. 그들이 잘라낸 수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팔과 다리는 그러한 역사를 만드는 자양분이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구태여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고, 투쟁의 대상으로 내몰 필요도 없다. 당장에 문제는 우리 자신이 훈할머니... 이남이 할머니의 삶을 모른다는데 있다. 알려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

할머니는 고국에 돌아와서도 캄보디아를 다시 그리며,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하셨다. 사람... 인연... 그럼에도 할머니는 조국에 대한 인연을 가장 크게 여겼던 것이었을까?
“고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한국국적을 가져야지요.
외국인으로
캄보디아에 살아도 괜찮아요.

이제는 한국사람이 많으니깐.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사람이지
캄보디아 사람이 아니에요.
.....
내가 만약 캄보디아에 갔다가
한국에 오고 싶다면
다시 오게 해줄 건가요? “

할머니는 비록 삶 속에서 어머니 아버지 이름도 잊고, 조국의 말도 잊고, 자신의 이름까지 잊었어도..., 그렇게 당신의 뿌리에 대한 미련만은 강한 생명력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나. 한국 국적을 드리고, 조그만 쉼터를 제공하고... 또 하나... 쉴새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관심’을 보여드리는 것. 그것이었나? 이미 돌아가신 그분의 삶의 끝엔 그렇게 우리가 채워 드리려 했어도 결코 채울 수 없었던 허전함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정대협을 비롯한 수 많은 여성⋅인권 단체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말하는 데에는 거창한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몸부림은 역사를 바로 잡으려 하는 응당한 외침이다.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기에,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써, 후손들에게 똑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려는 작은 몸부림인 것이다.

이 책을 펴내주신, 그렇게도 가슴 절절히 할머님의 삶을 담아주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할머님들과 아픈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그렇게 삶을 매진하시는 정대협을 비롯한 모든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 관계자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 후손의 밝은 내일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써 나도 함께 하여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훈 할머니, ‘이남이’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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