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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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먹고 나서 내내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다 11시가 다 되어 공부하겠다고 책상에 앉았다. 공부한다고 하니 남편이 끓여준 달달한 커피. 후루룩 마시고, 커피의 힘으로 새벽 5시. 지금 이 시간까지 깨있다.

새벽에 읽기 시작해서 날이 밝기 전에 끝을 보았다.

왜 이 ˝집˝이 말 그대로 그 ˝집˝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냥 은유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집˝이었다. 잃어버린 집, 아니 애초에 없었던 집.

소설은 지금 여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의 문체는 다소 오래된 책을 펼쳐드는 느낌을 만든다. 화자인 남자 주인공의 말투를 읽으며. 아니 내 또래 남자애들이(애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종종 들었지만

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어서 좋았고, 가족이 아닌 이들이 만든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 좋았다. 모두 갈무리해 설명할수는 없지만. 한국사회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을수 밖에 없는 역사와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개인의 몫으로 가져야 했던 이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가족이란 것은 무엇일까. 나에겐 여전히 가족이란 가까이 있음에도 먼 존재이다. 항상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대하게 되는 존재들이다. 익숙해지려고 하지만 과연 언제 익숙해지는 것일까? 라고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떠한가. 오히려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나를 키우고 나를 자라게 한 사람들이다.

뭐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소설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그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지금 사회의 한계속에서 대안으로 생각하는 어떤 삶의 모습의 시작이다. 조심스럽고 어색한 순간들.


이름을 듣자마자 고흐의 그림이 떠오르는 `아몬드나무 하우스`, 내게도 익숙한 성북동의 풍경들. 밤을 걷는 느낌들. (성북동에는 아니 그 주변에는 서울에서 밀려나고 있는 중인 내 친구들도 종종 살곤 했다.)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랬는지 더 친근감을 가지고 읽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 세월호 이후 무엇인가를 쓰는데에 애를 먹었다는 작가의 말, 사회적 재난 앞에 무력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읽으며 한켠으로 동감하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계속 윤대녕 작가가 이야기를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대에서 30대를 넘어 오던 시기 읽었던 <제비를 기르다>는 나를 여러 방식으로 지탱해 주었었고, 그 이유로 윤대녕이라는 사람에게 나름의 빚진 기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의 중얼거림처럼 나 역시 이미 `기성`일 수도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 아직 어린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겐 이런 시대에도 계속해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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