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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ㅣ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평점 :
[책 먹는 법: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김이경, 유유
읽은시기: (2016.2.11~2016.2.14/2회독)
메모작성: 2016년 2월 29일
나 스스로 자신 있게 책을 많이 읽어 왔다거나, 아는 것이 많다거나, 책을 잘 읽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한다고는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읽는지, 어떻게 독서를 즐기는지 궁금하다. 그래서인지 그냥 책을 읽는 것보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만큼 즐겁게 읽는다. 작년에 한 번 읽고, 올 해 들어 한 번 더 읽었다.
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다. 물론 책 읽기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다른 책들과 비슷하게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얼핏보면 책 읽기의 방법 자체는 다른 독서법 책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떤 자세로 책을 대할 것인가, '독서'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도 하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 읽기는 어떤 면에서는 개인적인 행위일 수 밖에 없다. 책은 왜 읽는가? 라고 질문해 보면, 나 역시 어떤 국면에 부딪혔을 때이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문제 앞에 있거나, 무언가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이유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답답할 때 말이다. 나는 운 좋게도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거기에 맞는 고민과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들과 만나곤 했다. 물론 그 독서가 한 두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독서는 지난하게 지속 되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어떤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를 아는 것, 나의 무지를 깨닫는 것보다 더 큰 앎은 없습니다. 질문하는 독서는 바로 그 앎을 위한 작은 시작입니다. p36
하지만 저자는 이 독서의 의미를 독자의 의무와 사회적 독서에 대한 이야기까지 끌어올린다.
저는 독자에게는 오독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는 자유로운 독서는 지지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독해와 무관한 오독은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더욱이 필자를 비판하고 싶다면 정확한 독해는 전제이자 의무입니다. p41
그러나 아무리 판단하지 않으려 해도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필자에게 몹시 열광하거나 혹은 냉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돌아보세요. 지금의 열정 혹은 냉정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따져 보는 겁니다. 글에 매혹 되었다면 어떤 부분이 그런지, 불만이 생겼다면 무엇 때문인지, 지나온 책장을 되넘기며 숙고하는 거지요. 10분 만이라도 그런 되새김 과정을 거치면 열정과 냉정으로 뜨거워졌던 눈길이 차분해지면서 눈앞의 글을 쓰인 대로 읽을 마음의 여백이 생깁니다. p46
이를테면 독서라는 것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 그 안에 독자의 의무와 몫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강한 시각은 읽는 사람의 마음도 환하게 만든다. 우리는 '제대로 읽을 의무'가 있다. 그것이 독서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즉 독서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 정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쓴 사람의 피땀어린 공력, 만든 사람의 수고로움, 그걸 읽고 살아갈 내 삶의 소중함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생각하면 정성것 정밀히 읽는게 당연하지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독서법도 바로 이 '정성껏 정밀히' 읽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글자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는 꼼꼼함은 그 출발이라 할 수 있지요. p55
책을 통해 나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의외로 쉽다.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정성껏 정밀히 읽는 것이다. 물론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은 어렵다. 과거의 나의 경험만 돌이켜 봐도 그렇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들어보는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을 알게 되고 두꺼운 정치학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들은 매시간마다 교재를 읽고 난 자신의 느낌을 A4 1장짜리의 쪽글로 제출하게 했다. 나도 그 쪽글을 늘 쓰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주시는 점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내가 가진 편견에 기초해 책을 읽었고, 책의 내용을 통한 사고를 하기 보다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것으로 책의 내용을 평가해 버리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쪽글을 쓰고, 또 선생님께 평가를 받고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왠지 나는 아직도 그렇게 책을 읽고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대학 시절의 선생님이 예전 수업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대학에서는 책을 읽는 법과 공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대학에서의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너희들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요지였다. 돌아보면 그 말씀이 참 맞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다독보다는 정독을 추천하고, 혼자 읽기 보다는 함께 읽기를 권한다. 저자 또한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있다고 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고,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는지, 그 순간에 직면하며 무수한 다름을 알게 되는 것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독서 모임의 핵심은 '듣는' 겁니다. 독서 모임에서는 내가 읽은 느낌을 이야기 하자마자 다른 사람이 읽은 느낌을 들어야 합니다. 저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하는 놀라운 독후감만이 아니라 어떻게 저런 식으로 읽을 수 있지 싶은 황당한 소감마저 들어야 하지요. 함께 읽는다는 건 그 무수한 독법을 경험하는 것이며 모든 다름에 내 귀를 열어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럿이 함께 읽는 이유입니다. p62
나 역시 책을 함께 읽는 경험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름에 직면하면 괴롭다는 기분을 먼저 느끼곤 했다. 왜 저렇게 이해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지금도 나는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을 하고 있다. 요즈음의 '다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평가해 보자면 다름-각자의 경험과 독서 습관 그리고 평소의 생각 등으로 확연히 달라지는-역시 받아들이려는 것이 필요하다고 깨다는 중이랄까. 이제는 그 '다름'이 괴롭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때때로 즐겁고 흥미진진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제일 귀여웠던 대목은 어려운 책은 어떻게 읽을까?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 70쪽까지는 읽는다'는 저자의 처방이었다. 정말 적절하게도 70쪽은 너무 적지도, 너무 많은 것도 아닌 분량이다. 50쪽은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100쪽은 많다고 느껴지는데 70쪽은 (왜 그런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적절하다. 앞으로 나도 어려운 책을 읽게 될 때 이 방법을 활용해 보려 한다.
그 외에 저자가 제시하는 책읽기 방법을 시도해 볼만한 부분들이 있었다. <고전 읽는 법>에서 제시한 책 읽기의 방법이 그렇다. 나는 최근에 <자본론>을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이 방법을 따라해보고 있다. 이런 독서법들도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저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쓴 방법들은 모두 제가 삶의 고비마다 안간힘을 쓰며 찾아낸, 제 삶의 고민이 담긴 애틋한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의 삶을 걸고 당신의 독서법을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p13
새삼스럽지만 독서의 경험을 누군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럴 듯한 방법을 안내해 주는 책을 읽더라도 그것을 통해 독서라는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독서법에 대한 책으로 쉽게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짧은 책에 속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꼼꼼하게 읽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부드러운 문체와 잘 읽히는 문장이 좋았고 옮겨 적고 싶은 구절들을 많이 만난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앞으로 읽고 싶은 책에 대한 책, 책 읽기에 대한 책의 목록도 덤으로 얻었다.
책은 닫혀 있지만 한 번 열어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항상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닿게 된다. 새로운 책을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책 먹는 법>은 독서하는 법을 안내하는 책이기도 했지만, 독서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새삼스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준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