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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쏟아져나오는 SNS 글들을 모은 가벼운 에세이를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포장된 글을 뜯어보면 내용물이 부실하다. 일상의 울림을 주는 글을 좋아한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가벼워보이지만, 가볍지 않아 좋았다. 나는 내 일상을 이렇게 소중하게 살아내고 있나, 생각나게 한다. 가족을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좋았고, 보라보라섬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환상적인 그곳에 대해 환상적이게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좋았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이 책 속에서 찬란하게 빛이 났다. 남편의 말 한마디, 엄마가 건내준 신발, 함께 사는 고양이 등 이런 평범한 이야기들을 소중히 보듬는 건 에메랄드 빛 바다가 사방에 있는 보라보라섬이 아니라도 가능하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던 건 반짝이는 휴양지에서 느리게 사는 그녀의 삶이 아니라, 시덥지 않은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저자의 마음이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이 바로 우리 삶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거창한 삶이 아니라 나의 오늘을 소중히 살아가는데 이런 책은 많은 위로가 된다.
섬 전체를 통틀어 ‘소비생활’이 가능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라 불편할 때가 더러 있었다.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어서 소비생활을 안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소비생활을 안하니까 파는 곳이 안 생기는 건지 궁금했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 P34
내가 아는 건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드문 세상에서도, 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면 꽤나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꿈의 바깥에도 삶은 있다. - P45
이 정도의 속도라면 엄마는 곧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건 곧 내가 엄마의 기대를 져버린다는 뜻이고, 엄마가 내게 무척 실망할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진짜로 쌓아가려면 일단은 허물어야 한다. - P189
문득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야 바깥에 있는 희미한 사람들이 그에게는 늘 선명하다. 어쩌면 그쪽은 온기로 가득할 것도 같았는데. - P228
노를 저을 때마다 긴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을 따라 햇빛이 굴절되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처음이었다. 내가 지구를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그것도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보라보라섬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 그러니까 섬, 바다, 만타레이 같은 자연은 그럴 의도가 없다. 아름다울 때 아름다우려는 의도가 없고, 모든 것을 앗아갈 때도 앗아가려는 의도가 없다. 그저 그곳에 늘 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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