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일기장을 보는 듯, 그 시절을 함께 걷게 하는 조용한 에세이집이다. 책 내내 지난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내 곁에 멈춰두기 위해 책, 사진, 영화가 동원된다. 나 역시 이문동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지라, 그의 글이 더 다정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그리워 질 때 조용히 친구가 되어 줄 책. P110 그러면 그 장소, 그 시간을 가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것들이 언젠가는 모습을 바꾸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하나의 인상이 영화 속에 자리 잡는다면 언제든 다시 되돌아올 수 있으니까. 내가 서 있는 장소와 계절에 애정을 느낀다는 것. 단지 그 작은 이유만으로도 영화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 작은 영화들을 만들며 내가 배운 소중함이다.P 123 흑백의 사각 프레임 안에 그 시절의 골목이 보이고 영화는 사라질 샤미센과 ‘미싱’ 소리를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이나 자취를 중시하는 영화를 보다 문득, 이제 이런 영화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영화의 중요한 시간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