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와 빈센트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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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화집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시도 필사도 관심이 없던 차였다.

시가 마음에서 멀어진지 오래였고, 글은 악필이라서 거의 쓰지 않고 키보드 입력만을 일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필사의 열풍 속에 나도 글씨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은 약간의 강제성이 동반되어야 하기에 <동주와 빈센트> 필사단을 모집했을 때 덜컥 신청을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화집이 내게 닿았다.

 

4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필사한 문장을 인증해야 하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나은 글씨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글씨를 연습을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윤동주의 시는 중학생 때부터 줄곧 외우고 다녔던 시들이 몇 편 있었다.

뇌리에 박힌 시들의 강렬함이 내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기분에 노출되었던 그 시기를 되돌아보며 한층 차분해진 마음으로 짚어보는 윤동주의 시들이 이젠 더 이상 그때의 격렬한 감정은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아픔, 고통, 희망, 절망, 염려로 다가왔다.

 

 

어른이 되어 한때 좋아했던 시들 앞에 다시 서 보게 되니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못 쓰는 글씨를 쓰겠다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노트들을 쌓아두고 이리저리 굴러다니 던 필기구들을 모아 놓고

드럽게 급한 성격을 다스리며 한 자 한 자 천천히 쓰려고 얼마나 나를 다독였는지...

 

글씨가 널을 뛰고, 연필을 쥐어 본 지 삼백만 년은 된듯한 손가락에 다양한 펜들의 감각을 익히는 시간이 지나고

필사의 미션을 완성해 가면서 윤동주의 시 맞은편에 담긴 고흐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딱 맞는 그림을 넣을 수 있었을까?

누가 이런 기획을 했을까?

그 많은 그림과 시들 사이를 얼마큼 다녀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시와 그림을 찾아낼 수 있는 걸까?

 

 

고흐의 다양한 그림들 앞에서 내가 알던 고흐에 대한 감정이 달라짐을 느낀다.

'자화상'과 '해바라기'의 강렬한 모습으로 기억되던 고흐의 모습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윤동주의 시들도 '서시'와 '별 헤는 밤'으로 각인되었던 어린 날의 윤동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정을 그려낸 시들 사이를 거닐며 그가 살다간 시대의 느낌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발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두 사람의 자화상이 서로를 위로해 주는 거 같다.

한 사람은 글로

한 사람은 그림으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거장의 만남이 21세기에 이루어졌다.

윤동주의 시가 고흐에게 위로가 되고, 고흐의 그림이 윤동주에게 힘이 되어 주었을 거 같다.

그들이 동시대를 살아서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면...

 

어쩜 닿을 수 없는 그곳에서 서로의 작품을 통해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저녁달고양이 출판사의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가 궁금하다.

한 달 한 달 사 모아서 마음도 다스리고 내 글씨도 다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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