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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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지 비명밖에 기록할 수 없다고 해도, 이야기함으로써 다시 조직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질환자들의 이야기들이 모이고, 우리 사회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의료의 주체인 질환자, 돌봄 당사자, 의료 종사자 간에 더 건강한 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라는 부제가 붙은 <돌봄이 돌보는 세계>

그동안 개선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했던 '돌봄'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은 질병, 장애, 권리, 노동, 의료, 교육, 젠더, 혁명, 이주, 탈성장이라는 열 개의 키워드로 열한 분의 글들이 실려 있다.

그들의 글을 통해서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수많은 돌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적극적으로 의존하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몸을 무능력과 수치로만 여기는 사회에서, 그런 '수치스러운 몸'이 된다는 공포는 죽음보다 삶을 두렵게 만들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질병이나 죽음과 자주 마주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본다.

 

한 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다리 수술을 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동생을 돌보며 난생처음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정말 <<불편한 세상>>이라는 걸 느꼈다.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 버튼을 눌러야만 열리는 자동문,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려운 대중교통.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분들의 경험들이 남에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에게 맞는 의존의 선택지가 적을수록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제한을 겪고 '약자화'된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자연 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다.

불문율처럼 당연한 이야기였다.

처음엔 경제력의 유무에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똑같이 경제활동을 해도 환자는 거의 여성의 몫이었다.

병원 다니기와, 간호와 자잘한 병수발 모두가 여성의 몫이 가장 컸다.

그리고 그 돌봄은 당연시되었을 뿐 그 무엇으로도 환산되지 않았다.

그들의 노고와 그들의 시간은 그저 당연함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게 맞는 것일까?

 

문제는 의존하고 돌봄 받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돌봄을 둘러싼 권력과 통제권이 그 핵심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경우를 이입해 본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내 동생은 혼자 휠체어를 타고서 카페에 갈 수 있었을까?

카페에 갔다고 해도 셀프서비스와 키오스크가 대세인 세상에서 주문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걸어다는 사람들에게 맞춰서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는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키 작은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높다.

셀프서비스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편하게 변해가는 거 같으면서도 점점 더 불편한 거 같은 이유는 뭘까?

그건 '사람'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장애인들을 위한, 그중에서도 가장 최신의 정보나 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집과 동네만 어슬렁거리던 나의 세상에서 잠시 외유를 했던 세상은 모든 게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되었다.

앱 없이는 택시도 잡을 수 없고, 앱 없이는 결제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어있었다.

 

돌봄이라고 하면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돌봄을 우선 생각하겠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돌봄은 필요하다.

급격하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디지털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나 돌봄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돌봄이라는 단어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질병과 노화는 살아가다 보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우리 사회는 급진적 발전으로 인해 그 속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췄다.

그것이 선진국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사회는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법과 사람들의 인식은 미처 못 따라가고 있는 거 같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보강되어야 한다.

 

이 책은 여럿이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좋은 의견들이 나와 정말 사회 곳곳에 빛나는 아이디어로 채택되었으면 좋겠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우리에겐 동네 사람, 이웃사촌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서로의 돌봄이었다. 품앗이라는 의미를 아는 세상이었다.

우리는 불과 30~ 40년 만에 그 모든 걸 잃었다.

다시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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