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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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ㅂ' 표시를 해 놓고 바위 아래 어딘가에 숨겨 둔, 열지 않은 상자.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늦은 결혼으로 딸 하나를 얻은 필릭스.

아내는 출산 직후에 세상을 떠나고 그를 지탱하게 해준 딸 미란다마저 사고로 잃고 만다.

메이크시웨그 연극 축제 총감독이며 유명한 연출자였던 그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리려 야심찬 준비를 하던 차에 자신의 밑에서 대리인으로서 일했던 토니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은둔한다.

 


은둔하면서 그는 토니와 함께 자신을 배신한 샐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가며 인터넷으로 그들을 스토킹하고 자신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상상 속에서 죽은 딸 미란다를 키워내며.

 


9년의 은둔 끝에 그는 듀크라는 가명으로 교도소의 문학 독해 수업 강사 자리를 얻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죄수들에게 연극을 가르친다.

몇 년 간 공들인 그의 수업은 빛을 발하고 이제는 장관이 된 샐과 토니가 그의 연극을 보러 교도소에 오기로 한다.

물론 그들의 방문은 듀크 씨의 연극 활동을 없애버리기 위함 이었다.

 


필릭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리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하려다가 못 하게 된 연극.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 연극.

그것으로 그는 그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마녀의 씨는 템페스트에 나오는 칼리반을 가리킨다.

마녀와 인간 사이에 태어나 외딴섬에 버려진 칼리반은 마녀의 씨로 불린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이야기를 교도소 내에서 멋진 복수극으로 만들어 낸다.

어떻게 그런 상상이 가능한지 정말 읽으면서 감탄을 했다.

그녀가 만든 설정들이 결국에 가서는 복수로 시작해서 용서로 끝나기 때문이다.

교도소를 무대로 벌이는 필릭스 평생의 역작 템페스트.

 


시간은 좀 걸렸지만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그는 새삼 상기한다.




진지하게 배역에 임하는 죄수들은 감옥 안에서 죄수가 아닌 배우가 된다.

그들을 가두고 있는 교도소는 그 자체로 템페스트의 무대인 섬이 된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4번째 읽으면서 가장 재밌는 개작이라고 생각했다.

애트우드 여사의 필력은 지루함이 없다.

 


연극이 끝나고 그들이 벌이는 조촐한 파티에서 자신들이 맞았던 배역에 대한 해석을 하는 부분이 참 신선했다.

그들이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재능을 발견해가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풀이하고, 극으로 꾸미고,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달라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교묘하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회한을 씻어내는 필릭스의 솜씨도 정말 멋들어졌다.

 


앤마리를 통해 이야기 속 미란다를 해석하는 장면에서는 애트우드의 변함없는 여성에 대한 무한한 해석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글을 통해서 보는 여성은 언제나 주도적이고,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는 여러분 모두에게 뭔가를 줄 수 있습니다. 그의 관객들에게 그랬듯이요. 지위 고하와 관계없이,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셰익스피어는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이 문장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가지고 있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거슬러 마녀의 씨가 어떻게 현대에서 다시 잉태되었는지 그녀의 칼리반에 대한 해석이 참으로 매력 있다.

결국 죄수들은 템페스트라는 연극을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들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방시켰다.

우리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갇혀있는 인생의 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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