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에 앵두가 열리듯
리얼 지음, 김순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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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엔 앵두가 열리 수 없다.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은 사실이 될 수 없는 일이 사실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쿵판화는 관좡 마을의 촌장이다.
그것도 여성 촌장.
곧 있으면 촌장 선거가 시작되고, 판화는 연임이 될 것을 의심치 않고 있다.
그녀가 촌장직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가족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외자유치에 성공하면 재임은 따 놓은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쉐어가 초과 임신을 한 사실이 발견되면서 그녀의 입지가 불안해진다.
덩달아 판화가 그 사실을 알아채자 쉐어는 도망가 버리고 판화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녀를 찾기 위해 애쓴다.

표면적으로 별문제 없어 보이는 관좡 마을
판화를 중심으로 마을은 잘 꾸려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디에나 곪아 터지는 곳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디에나 권력에 대한 노림수 역시 있게 마련이다.
쉐어의 문제와 미국에서 오는 외국인 시찰을 따내기만 하면 재임이 무난하리라는 판화는 예상은 초반부터 삐거덕 거린다.

산아제한.
우리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낯설지 않다.
쉐어는 이미 두 딸의 엄마이지만 아들을 낳기 바라는 남편 때문에 아이를 임신한다.
아들 선호 사상은 산아제한이 있는 중국에서 극심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나라에서 관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에는 중국정부가 각 가정에 아이를 둘만 허용하고, 그 이상이 되지 않게 남자에게 정관수술을 하거나 여자에게 루프를 끼게 한다는 사실이 나와 있다.
그리고 가임기 여성은 따로 관리를 한다는 것도.
그럼에도 쉐어는 임신한 사실을 용케 숨겼다.
누군가의 비리가 연루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젊은 사람이 정말 패기가 있어. 판화는 샤오홍이 일하는 요령이 있고 세세한 것까지 세밀하게 구분해서 '구체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줄 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거대하게 말하자면 그런 게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라고 추켜세웠다.

판화는 선거가 끝나면 샤오홍에게 가족계획 업무를 맡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샤오홍에게 먼저 일부를 맡겨 위신을 세워주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전면적인 업무를 맡겨야겠다. 난 두 번만 더하고 그만두자. 그리고 그때 반드시 자리를 멍샤오홍에게 넘겨줄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멍샤오홍은 내 그림자야. 우리 둘은 어쨌든 똑같잖아. 내가 하는 거나 샤오홍이 하는 거나 같은 것 아닌가?

판화의 비서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예상치 못한 대처로 일이 술술 풀리게 하는 재주가 있는 샤오홍

판화는 선거가 끝나면 샤오홍에게 가족계획 업무를 맡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샤오홍에게 먼저 일부를 맡겨 위신을 세워주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전면적인 업무를 맡겨야겠다. 난 두 번만 더하고 그만두자. 그리고 그때 반드시 자리를 멍샤오홍에게 넘겨줄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멍샤오홍은 내 그림자야. 우리 둘은 어쨌든 똑같잖아. 내가 하는 거나 샤오홍이 하는 거나 같은 것 아닌가?

믿고 있던 샤오홍이 호랑이 새끼였다는 걸 판화는 뒤늦게야 알게 된다.
그녀의 그늘 밑에서 그녀를 추켜세우며 그녀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미리미리 알아서 처신하던 믿음직한 샤오홍
판화가 자신의 후임으로 생각했던 샤오홍은 판화에게 어떻게 뒤통수를 치게 될까?

공산주의 중국이란 나라가 자유 무역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중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석류나무에 앵두가 열리듯은 그 시기의 중국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로 과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준다.
미국인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그들의 투자를 받기 원하고
가족계획을 지켜야 하지만 아들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 없는 사람들
그 틈에서 나랏일과 마을 일을 잘 관장해야 하는 촌장 판화의 술수
그리고 그녀로 인해 알게 모르게 배신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중국문학에 대해서는 삼국지와 무협지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 이 현대 소설은 색다름을 준다.
공산국가이지만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중국의 현대사는 우리의 5~60년대를 닮아 있는 거 같다.
이 책은 작가의 이름처럼 리얼하지만 리얼하지 않다.
뭔가 에둘러 표현한 것들이 그래서 사실처럼 명확해지면서 느껴지는 충격이 크다.
산아제한을 위한 정부의 방침이 그렇다.
단순한 표어와 홍보로 끝나지 않는다.
판화가 쉐어를 찾으려 하는 이유는 낙태를 위해서다.
판화가 낙태를 생각했을 때 샤오홍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판화가 구시대적인 마지막 인물이라면 샤오홍은 신세대의 첫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문제든
그 해결법엔 다양함이 존재한다.
판화는 오직 공적인 해결법만을 생각했고
샤오홍은 공과 사를 적절히 분배해서 해결법을 제시했다.
과도기에 들어서면 과도기적 발상을 하게 되는 법이다.
샤오홍은 그래서 살아남았다.

뭔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문체가 아니어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다름에 대해서 공부한 느낌이 든다.
같은 줄기인 줄 알았는데 확연히 다른 그 무엇.
독일 메르켈 총리가 원자바오 총리에게 독일어판 석류나무에 앵두가 열리듯을 선물한 뜻이 짐작된다.

겉으로 그들은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지만
그 속은 늘 통제되고 있는 공산국가라는 점
우리가 중국을 상대하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석류나무에도 앵두가 열리게 만드는 그들의 솜씨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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