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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는 스스로 일생일대의 작품을 썼다고 했다. 스스로 상당히 만족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과연 지금까지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이후로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는걸 보면 여기서 그만두는 건가 하는 독자로서의 아쉬움도 있지만 권택영이라는 경희대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새> 에서 이어지는 라인업의 완성작이라고 할만 하기는 했다.
이런 저런 해설들이 많이 있고, 해설서가 따로 나올 정도기도 하지만, 몇가지 중요한 것만 (내 수준에서 느낄 수 있는 것만) 쓰자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도서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살 소년' 정도다. 특히 도서관을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그 장소가 반드시 도서관이었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이었더라도 별 차이 없지 않았을까) 도서관을 비롯한 매 장면의 분위기 묘사는 가히 반할만 하다. 하루키 필살기쯤 되는건가;
일주일간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다. 버스에서만 읽기로 정해두고 읽었기 때문에 버스타는 시간을 하루에서 제일 기다릴 정도로 읽는동안 즐겁고 설레었는데 결국 다 읽고나니까 여기서 그만두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을 끝내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세한 설정이나 분위기 묘사, 나카타의 상큼한 대사들은 멋졌지만 하루키에겐 그 모든 것이 어떤 고차원적인 상징, 입구의 돌이라거나 '흰 물체'같은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팬들은 이런걸 좋아하니까 넣어야지'하고 넣는 걸수도)
상징성이 강한 탓도 있겠지만 여러가지로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기가 어려워 보였고(극우적이라고 늘 까이는 전쟁이야기가 어김없이 들어가는 데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일갈하는 부분까지) 다른 고전명작들에 비해 지나치게 통속적이기도 했다. 재미로 따지자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지만 그 사이에 놓인 강한 상징이 문학가들과 독자들 사이를 가로막는 벽같이 느껴졌다.
사에키 상이 카프카의 어머니라는 건 알수 있도록 해 주지만 딱 잘라 말하지는 않고, 사쿠라와 관계하는 것도 실제가 아닌 환상속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태엽감는 새>에서 와타루 노보야가 아버지를 상징한다는 것이 솔직히 해설을 보기 전에 알 수 없는 사실이듯, 하루키류에 익숙하지 않다면 사실관계조차 머릿속에 명확히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나도 한번 보고 <태엽감는 새>를 보고 다시 두번째 봤을때 겨우 이해했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백만부나 팔리는 이유는 도통 모르겠다. <노르웨이의 숲>과 같은 리얼리즘 작품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인가.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축구선수 데코 닮은 이 아저씨의 문학이 '통속소설'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명품'으로 인정받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