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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노트 ㅣ :ook - Architectural Ingredients
피터 윈스턴 페레토 지음 / 지콜론북 / 2014년 3월
평점 :
일단 책을 받았을 때 모두 ‘와아’ 했다. 하드커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동판처럼 넣어진 표지제목이 대단한 무언가를 담고 있을 것 같았다. 편집자님께 여쭤보니 지콜론북의 첫 하드커버 북이라고. 쭉 훑어보니 재미있어 보이는 그림이 많아 소장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디자인하는 과정 뒤의 숨겨진 진실들을 탐구하는 것-” -11쪽
“이 책은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 그보다는 디자인 뒤에 숨어있는 창조적인 과정에 대한 짧고, (대부분이 시각적이며) 매우 주관적인 기록이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싹트고, 성숙되어 최종적인 디자인이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천재적인 디자이너들 뒤의 허구적 신화를 파헤치며, 하나의 생각을 해석하고 변화시켜 프로젝트로 만드는 과정을 때론 지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 건축의 세계를 건물의 관점이 아닌 실제 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 뒤의 숨겨진 진실들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터 윈스턴 페레토”_11쪽
“‘:ook’은 내가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그리고 내가 디자인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관한 책이다. 건물에 관한 책이 아니라 어떻게 건물이 구상되는가 하는, 말하자면 디자인 과정에 관한 책이며, 내가 어떻게 영감을 얻고, 내가 아이디어를 탈바꿈하기 위해 어떤 도구들을 추구하고, 왜 디자인이 팀워크이며 사람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실수와 실패, 그리고 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기까지 막다른 골목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_215쪽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모든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화두는 ‘창조’일 것이다. 혹은 ‘영감’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언제나 ‘그것들을 어떻게 생각해내는가’의 문제인데, 영감을 떠올리게 도와준다는 많은 책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보다는 ‘이런 방법도 있단다’ 하며 무책임하게 독자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꼴 사나운 태도를 보였다.
이 책이라고 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제목처럼 건축가가 자신의 작업을 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을 보면서 나는 어떤 즐거운 힌트를 얻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비밀 노트를 훔쳐보는 것처럼 즐거웠다.
3. 이 책은 많은 얘기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많은 지면을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고, 소제목도 단어를 툭 던져놓았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적어서, 더 궁금해졌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각자 다양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한번에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아주 짧은 단상들이다.
4.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문과 한글 표기가 동시에 되어 있다. 왼쪽이 원문이라면 오른쪽은 한글 번역. 시간이 있다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게다가 꽤나 유려한 문체로 쓰였기 때문에 원문을 읽어봄이 좋다.
5. IMAGE
“만들어진 이미지는 언제나 실망스럽기 마련이며,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평면적이라는 모순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때가 ‘아티스트’가 개입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들의 작업방식은 클릭과 ctrl, shift 키를 통해 명령하며 마우스를 움직인다.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는 분산되고, 부숴지고, 왜곡되고, 변경되고, 조작되어 순간의 포착으로 거듭난다. 여기에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캔버스에 추가되어 이미지가 살아난다. (...) 그들은 건축계 밖에서 좀 더 이치에 맞는 현실세계를 만들기 위해 유사세계를 만든다. 끝없이 긴 시간 동안 이미지를 흐릿하게 하고, 채도를 조절하고, 변형하고, 크기를 조절함을 통해 ‘실제’ 세계가 이미지라는 픽션에 맞게 탄생한다. 훌륭한 회화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이미지는 감정과 공명하고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원초적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_35쪽
이미지를 잘 설명하는 텍스트라고 생각됐다. 이미지는 그것이 실제에 가까운 것처럼 인지되지만 결국 아티스트에 의해(컨트롤, 시프트에 의한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상상력이 더해서 만들어지는 세계다.
6. Inventory
“건축가는 끊임없이 영감을 생성해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잠재적인 아이디어의 기록인 사진을 찍는다. (...) 사진은 현재 거대한 삶의 파노라마를 통제하고 의미와 형태를 부여한다.
(...)편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거르는 작업을 통해서 아이디어의 우선 순위를 정하게 된다. (...) 과거의 관계나 연상이 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과거를 묘사하는 더 좋은 방법은 아이디어를 변형, 즉 이미 존재하는 상태의 변형으로서 논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 복사가 아닌 관찰은 영감을 찾는 것이다. 수많은 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끔씩은 레몬즙이 눈에 분사되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본능을 두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_55쪽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의견에 완전 동의. 내 친구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올해부터 하루에 사진 한 장 찍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조금 웃긴 것은 딱히 기록할만한 일상이 없더라도 꼭 남겨야 한다는 것. 매일 즐겁거나 남기고 싶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그 친구 사진에는 집에서 ‘생얼’로 누워있는 사진이 꽤 많다(그 아이의 주장에 따르면 집에서 ‘잉여’인 채로 있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편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업무를 위해 가치 순위를 매겨야하는 경우에는 편집이 필수적이겠지만, 항상 어떤 기록을 편집하고 나면 꼭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이런 것을 언제 활용할까 싶은 기록이나 사진이 넘쳐나서 조금 걱정이다.
“증기탑/심천, 중국/자연적인 에어컨디셔닝”_66쪽
사진은 평범한데 ‘자연적인 에어컨디셔닝’이라는 해설이 조금 웃기다. 저자는 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을지 궁금하다.
7. Seoul
“서울은 지루하다. 자크 헤르조그, 베니스 비엔날레 2012”
“내가 서울에 이토록 매료된 것은 헤르조그가 서울에서 마음이 멀어진 것과 같은 이유다. 지루함이 영감을 주기도 하는가? 서울은 모순으로 가득 찬 도시다. 그 누구도 서울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안다고 주장할 수 없다. (...) 서울은 유기체로서 성장한 도시이기에, 격자판에 짜인 도시계획이 존재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도시다.”_175쪽
서울의 난잡한 도시계획을 유기체로 설명한 것이 재미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이다. 사실 내가 가진 서울의 이미지는 내가 항상 다니는 곳에 대한 기억일 뿐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항상 다니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지루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