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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 약 일주일 동안 사실, 난 엄청 우울했다.
이렇게 강력한 포스를 갖고 있는 책은 만나보기 참 힘든데,
책에 빨려들어서 마음이 움직인다고 할까? 그래서 'move'라는 영어단어에는 '감동시키다'는 뜻도 있나보다.
주인공 모모('모하메드'지만, 이 아이는 자기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한다)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프랑스의 어느 골목, 창녀들과 뚜쟁이들과 프랑스 인이 아닌 가난하고 불법적인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역시 그렇고 그런 사연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로자 아줌마네서 사는 아이다.
로자아줌마는 거의 95kg에 육박하는 거대한 할머니라서 7층의 집까지 오르내리기도 힘들다. 아줌마 역시 젊은 시절에는 엉덩이로 먹고 살았다.(이런 표현들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모모의 말이다.)
모모 주변에는 나이가 들어 눈이 멀어버린 하밀할아버지도 있고, 남자의 몸이지만 여자로 살아가며 볼로뉴 숲에서 몸을 파는 롤라 아줌마도 있다. 다들 마음씨가 곱다.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이고, 아우슈비츠 감옥을 경험했다. 그래서 지하실에 대피소를 만들어놓고는 게슈타포에게 끌려가는 악몽을 꾸면 한달음에 그곳으로 도망간다. 정신적 외상을 그대로 갖고 살아가는 셈이다.
로자아줌마는 늙었다. 치매에 걸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그 대피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열 살인줄 알고 있던 모모는 제가 열 네살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로자아줌마는 그 아이가 떠나는 걸 두려워해서 죽기 직전에 일부러 나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다. 창녀였던 엄마, 그 엄마를 죽인 정신병자 아빠(사실 아빠는 누군지 모르겠지만)보다 늘 구박하고 못생기고 뚱뚱한 로자 아줌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갑자기 먹게 된 네 살의 나이 몫을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로자아줌마를 병원에 옮겨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꾸역꾸역 약물을 투여할까봐, 거구의 아줌마를 지하실로 옮긴다. 로자 아줌마를 위해 촛불을 켜두고 손도 잡아주고, 아줌마가 숨을 거두고도 3주 간을 함께 보낸다.
핏기를 잃은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도 뿌려주면서, 로자 아줌마 곁을 묵묵히 지킨다.
이렇게 줄거리를 회상하고 나니, 또 슬퍼진다. 이 아이의 '자기앞의 생'이 너무 잔인하고 혹독하다.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죽는 연습을 해봤지만, 시멘트 바닥이 너무 차가워 병에 걸릴까봐 겁이 났다.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럴 때면 맛있는 것이 더욱 맛있어졌다.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죽고 싶어질 때는 초콜릿이 다른 때보다 더 맛있다."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칩칠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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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서 좀 더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여러 필명 중 하나다.
로맹 가리는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연수를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공군으로 복무해서 훈장도 받았고,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런 화려한 이력이 있으면서 굳이 필명이 필요했을까 싶은데,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평론가들을 조롱하고 싶었나보다. 사실, 그게 성공하기도 해서 통쾌하긴하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짤막한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사람들이 그에게 만들어 준 얼굴'이라는 것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라는 것이 필명을 쓴 이유 중 하나였고, 그 이후로도 로맹 가리는 한 아가씨가 에밀 아자르와 애정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고 그는 대단한 바람둥이였다고 말하는 걸 '썩소'를 지으면서 들었을 것이다. ㅋㅋㅋㅋㅋ 굉장한 걸..?
예전에 이 사람이 로맹 가리의 이름으로 쓴 '새들은 페루에 와서 죽다'를 읽어봤었는데, 이미지만 기억이 난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은 작가 2순위(1순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만날 수가 없다. 그는 1980년, 66세에 입 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