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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 그리고 과학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다 읽고 나서 앞표지의 저자 사진을 봤다. 하드커버에 겉표지가 씌워져 있는 책을 볼 때는 항상 겉표지는 다른 곳에 고이 모셔뒀다가 다 읽고나면 다시 씌운다. 책과 일체가 되어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구겨지는 게 싫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대부분 그런 겉표지들은 날카로워서 손을 베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도 저자에 대한 정보를 제일 늦게 접했다.
사진으로 보니 이 여자 굉장히 무섭게 생겼다. 사납다기 보다 예민하고 상처받기 쉽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괜스리 피곤하게 살아가는 유형처럼 보인달까,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형성된 저자에 대한 선입관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이 글을 써내려간 여자의 이미지와 꼭 맞는 사진이다.
(욕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겼다는 거다. ㅋㅋ)
난 통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다. 예민하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 통증이 있을만큼 건강하지 못한 편은 아니다. 에피듀럴 덕분에 진통도 조금밖에 못 느꼈다. 정말 아팠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칼에 깊이 베었을 때의 기억이 다다. 뼈가 부러진 적도 없고 수술을 받은 적도 없다.
아직까지는 건강상 참으로 평탄하고 운 좋은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느끼는 통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나랑 비슷한 건가? 난 석사 졸업 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깨가 굳고 두통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그런 증상이 있긴했지만 심각하지도 않았고 타이레놀 한 알이면 금방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어깨통증-목 뻣뻣함-두통으로 이어지던 패턴이 완전히 공고하게 자리를 잡고 나더니 하루이틀만에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라 손 쓰지 않으면 단순한 두통에서 오른쪽 얼굴, 눈썹 위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타이레놀 한알, 그러다 두 알, 그러다 타이레놀은 너무 많이 먹으면 간에 좋지 않다고 해서 또 다른 진통제를 먹고,. 그 통증의 끝(얼굴이 아픔)까지 가버리면 어지간해선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이젠 어깨가 굳어올때쯤 아예 파스로 도배를 해버린다. 물리치료도 효과가 없는 것 같고 한의원을 찾아가는 건 내키지 않았고 약 먹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프기 시작하려는 초반에 더 나빠지지 않게 잡아버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란 걸 깨달았다. ㅋㅋ 하지만 가끔 그 놈을 잡는 시기를 놓칠 경우가 있어서 그런 날은 잠들 설칠 정도로 어깨위로 욱신거린다. 이 통증을 나는 전적으로 스트레스와 긴장의 지표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저자처럼 '통증'으로 보기보다 그냥 '피곤하니 쉬어야겠군'이라는 경고등 정도로 취급하는지도 모른다.
통증의 의미, 나하고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방어 수단이 별 볼일 없고 번식력도 부실한 우리 인간을 지켜주는 것은 고도의 경계 태세를 갖춘 신경계와, 통증으로부터 부정적인 연상과 정서(공포, 상실감, 고뇌, 불안, 후회, 고통)를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한다. 가끔 나는 인간이 생물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진화와 생존 과정에서 이런 기제가 필요했던 명백한 생물, 그런 차원에서 통증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아야~"이상이라는 점,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통증은 감각일까, 정서일까, 관념일까?" 1979년 국제통증학회에서 제시한 통증의 정의는 "실제적 또는 잠재적 조직 손상에서 연상되거나 이러한 손상으로 묘사되는 불쾌한 감각적, 정서적 경험"이란다. '정서적' 경험이라.. 통증은 한 개인에게 무척이나 강렬한 경험일 수 있지만 그 통증의 와중에도 타인에게는 공감을 일으키기가 상당히 힘들다. 통증이 감각적 경험이란 건 당연하지만 정서적 경험이란 걸 인정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통증이 야기하는 정서들, 통증 자체 뿐만 아니라 특히 만성 통증을 앓는 사람들의 정서적 경험들을, 의사들은 어떻게 다룰까? 궁금해진다.
예전에 후배들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어느 교차로 앞에서 신호대기로 서 있는데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뭔가를 팔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보도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한 후배가 저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담배 필 돈으로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든지, 사든지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뜻이었다. 그 때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지만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겪는다는 끔찍한 통증을 생각했었다.
얼마전 읽은 "듀마키"에서도 주인공이 팔 한쪽이 잘려나간 후 계속 그 팔이 아픈 경험을 한다. 마치 잘려나간 팔이 계속 그 자리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간지럽고 화끈거리고 아프다고 한다. 그 장애인들에겐 담배가 약일지 모른다, 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반복되는 만성통증에 지쳐버린 사람들의 잠깐진통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뇌에 관한 비밀들은 조금씩 밝혀지고는 있지만 아직 알아낸 사실보다는 알아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은 미지의 세계라고 한다. 만성통증을 일으키는 매커니즘도 이제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는 단계라고 한다. 한번도 내 어깨통증을 만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저자의 경험처럼, 낫는 게 아니고 사이좋게 함께 늙어가야 하는 거라면 난 조금 두려워진다. 아직 서른중반일 뿐인데. ㅋㅋ
아마도 내가 환갑쯤 될때에는 어깨통증에 더 시달리지 않아도 될거라 본다. 그게 발달한 의학 때문일지, 스트레스가 없어져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좀 더 전문적이길 기대했었다. 내가 몰랐던 많은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내 수준에선 전문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이 섞여 들어가서 챕터의 제목과 내용이 어떤 관계가 있고 흐름상 어디쯤에 와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길 바랬다. (그런 걸 기대하지 않고 읽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다.)
또한 약간 아쉬운 점은 동양의 침술을 플라시보 효과의 일종으로 치부해버린다는 점이었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고 더군다나 침이나 뜸이라고 하면 달아나기부터 하지만(그만큼 효과에 관해 장담할 순 없지만) 침술은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동양의 의술에 대해 무지하거나 자료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나 싶은 대목이었다. 물론 방대한 양의 자료조사를 하다보면 관심없는 분야는 덜 준비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좀 서운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