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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난 이혁진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다보면 이 간략한 스토리가 무려 678페이지나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변화를 보여주는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이래서 미쳤구나, 혹은 이러다 미쳤구나를 납득하게 된다. 이건 작가의 다듬어진 서술이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서술이라는 점을 여러 번 떠올려야 했다.
주인공의 어설프고 성급하고 때론 유치하기까지 한 대화와 생각과 행동들을 읽으면서 고개를 흔들다가도, 작가=주인공이 아니라는 점, 즉 작가가 세련된 문장과 정연한 생각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면, 초보 소설가가 쓴 듯한 유치한 문장도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했다. 작가는 철저히 숨어있다. 그런 소설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 책은 너무 작가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들만 있을 뿐이다.
준연과 하진, 해원은 모두 40대 초반의 싱글들이다.
음악하는 남자 준연과 회사에서 큰 성과를 내고 승승장구 중인 해원은 플루트 개인강습을 계기로 만나 일정 거리를 두며 서로를 존중하는 남자들 특유의 우정을 키워나가는데, 해원이 준연의 오랜 친구이며 위스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가업을 키우려는 여자 하진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셋 모두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파릇파릇하고 도전적인 사회초년생이 아니라, 인생에서 크고 작은 오르막-내리막을 경험해본 40대, 각자의 세계와 삶을 대하는 철학이 있는 나이이다. 그들은 나름의 고민들(결혼, 가족, 사업,...)을 짊어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면서, 때로는 위스키와 예술을 함께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이들이 예술과 위스키와 사랑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철학적이었다.
"예술은 어떤 것보다 거짓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할 수 있어요. (...)가상이고 허구예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어느 편도 아닐 수 있어요. 어느 시대나 사회일 필요도 없죠. 그리고 진실이란 어느 편, 어느 시대나 사회에 속하지 않을 때 우리가 확인하고 실감할 수 있는, 보편적 규칙이고요. 예술 안에서, 진실은 보호받고 체험될 수 있어요. 위대한 작품들이 위대한 이유도 그거죠. 우리가 누구인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시간과 삶은 어떤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무엇인지, 시대나 국적이 다른데도, 민족도 관습도 다 다른데도 일깨워 주니까요. (...) 우리가 자주 참과 거짓,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는 건 사실과 현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술이, 진실을 실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 가상과 허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요. 예술은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에요."(p.19-20)
진지하고 결연한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준연을, 현실주의자인 해원은 씁쓸하게 바라본다. 순수하고 자신이 사명감을 부여한 예술에 투신한, 40대의 비현실적인 포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준연이 힘들고 고달프면서도 음악을 싫어하지 않는 것을 해원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것 같"(p.39)다고 딱하게 여기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런 게 사랑이라는 것을, 숱한 잘못을 저지른 후 깨닫게 된다.
"우리 둘 다 더는 청춘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동질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나이가 주는 고단함과 외로움 같은. 우리는 한동안 서로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아름답지만 너무 멀고 적막하기도 한 풍경을 바라봤다."(p.245)
"늙는 게 그런 건가 봐.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 다 알고 다 컸다고 생각하는 거. 지금까지만, 이 나이, 이렇게 살았던 만큼만 아는 것뿐인데."(p.265)
"살아 있는 것이라서 아름답다는 건, 사라지는 것이라서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해. 이렇게 생생하고 울창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메마르고 작아지겠지."(p.280)
첫 눈에 반하고, 현실적으로 그 마음을 무시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관계가 시작되는 그 아름답고 조마조마한 과정을 지나,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 균열이 넓어지면서 뒤틀려버리는 사랑과 그 사랑에 미쳐가는 한 인간의 심리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급(물론, 결은 다르다)으로 무시무시하게 묘사된다.
"마흔이 되고 나서부터 나는 뭔가가 꺾였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를테면 정오나 하지가 지났다는 감각. 이제부터는 시간이 줄어들고 점점 더 빨리 줄어들 것이,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 한번은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어쩌면 미친 사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 때가 아니라 우리 나이에나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사랑할 시간이 빠르게 줄어드니까. 또 미치지 않고서야 사랑에 빠지기 어려운 나이이니까."(p.302-303)
한창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주인공이 했던 이 말에 상대방은 한참을 웃었고, 그 소리와 표정을 보고 싶어서, 전화로는 성에 안 차 같이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채우거나 해소할 수 없어 진짜로 달려가 버리는, 그건 어쩌면 그리 미친 사랑은 아닐 것이다.(누구나 연애할 때 그 정도는 미쳐있다.) 정말 미친 사랑은 서서히 깊어지는 사랑과 소유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피해망상적 사고를 심화시켜가던 주인공이 점점 극단으로 치달아가며 관계와, 사람과, 사랑을 망가뜨리면서 시작된다.
광인.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성도 하지만 그의 말대로 "거창한 개소리"(p.592)일 뿐이다. 그의 사랑도, 변명도, 반성도 모두, 극단으로 치달아가며 망가져가는 광인의 자기 중심적인 논리일 뿐이었다. 사랑을 빙자한 그의 욕망의 밑바닥에는 끝도 모를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자기 합리화와 비겁한 자기변명, 회피로 가득차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사랑은 기꺼이 두 번째가 되어 주는 것이고 서로에게 최악이 되지 않는, 다만 최악을 지워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시도와 노력이고 행위였다."(p.660)
그러나, 마침내 그가 도달한 선택과 결정이 정녕 사랑이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편안하게 읽히던 40대의 우정과 사랑이 한순간 광기로 변질되더니 파괴적인 "광염소나타"(책 뒷표지)로 끝나버리는, 편치 않은 소설이었다. (재미없다는 뜻이 아님) 광인에 이르는 그의 열정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간신히나마 그런 사랑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심리를 이해해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현실에는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현실 세계의 뉴스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다보면,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또 다른 광인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