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6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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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한국어>는 올해 들어 읽은 49번째 책이다.

<초급 한국어>는 35번째였고, <중급 한국어>는 43번째였다.

아껴 읽으려 했는데 이 책이 근처에 있으면 참기가 어려웠다.

독백 같은, 강의 같은 조용조용한 작가의 글들은

내가 오며가며 언제 어디서 책을 펴든

순식간에 몰입과 공감이 가능했다.

직업도 환경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삶에서 느껴지는 풍경과 무게가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

앞 선 두 권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토픽션인 <실전 한국어>에서

책 속 문지혁 작가는 구청의 평생교육 프로그램 강의를 맡게 된다.

어마어마한 전문가(내 생각엔 그렇다)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강의에서

실제로 발생했을 법한 수많은 디테일들은 생략됐을 터이다.

작가의 말처럼 "인생이란 미지를 기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라는 사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고 불확실성만 가득한 삶의 여정에서

좋은 학교를 나오고 해외에서 학위도 받았던,

그래서 앞서 그 길을 걸어간 선배들처럼 교수가 되거나 작가가 될 꿈을 꾸었던

젊은 시절의 이상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

하지만 책에 실린 그의 강의는 초급이든, 중급이든, 실전이든

그 강의실에 앉아있고 싶게 만든다. 홀린 듯,

새삼스럽게 깨닫거나 처음 알게 되는 말, 글, 문학의 주제들을 접하면서

그 강의를 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상호작용을 하는

진정성 가득하고 생생한 강의 현장에 앉아 있는 것을 꿈꾸게 된다.

​

"인생이란 누구나 자신만의 하마르티아를 안고 걷는 여정이고, 예기치 못한 페리페테이아 속에 균열과 혼란을 겪다가, 마침내 아나그노리시스를 통해 섬광처럼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마주하는 찬란한 변화의 이야기입니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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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한국어>에서는 서사, 스토리텔링을 다루는데

마침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난 다음이라서

서사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찰떡같이 이해가 된다.

물론, 작가가 예를 들었던 영화들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해피포터>도 이해를 돕는 소재였다.

사실 서사의 구조라는 건 인생의 여정과도 다르지 않다.


"오늘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예요. 이제까지 영웅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혹시 영웅이 나와는 동떨어진 누군가라고 느끼셨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크고 작은 영웅의 여정을 걷고 있으니까요. 때로는 부름을 거절하고, 동굴 앞에서 망설이고,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걸 잃고 절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여정 끝에 얻게 될 우리만의 고유한 영약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p.213)


"이야기란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모아 말이 되게 만드는 일이다. 인생이란 말이 되던 것들도 말이 안 되게 돌변하는 곳이다. 스토리텔링은 우주의 진실이 무의미에 있다는 것을 훔쳐보게 된 인간이 만들어 낸 연약하고도 유일한 방패다. 우리를 저 비정하고 가혹한 무의미로부터 지켜주는 것. 우리의 삶이 실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우연과 임의성이 빚어내는 경우의 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도 안 되는 것들 속에서도 무언가를 믿고 바라고 위로받게 하는 것......"(p.203-204)


"수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으며, 어떤 단어는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사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인생이란 결국 자기 단어장에 적힌 어휘를 늘려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p.233)

어느 덧 나 역시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젊은 시절의 설익은듯 푸릇했던 나보다 훨씬 나 자신을 잘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 그 때보다 많은 것들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무의미함과 불확실성에 지쳐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책 속의 작가처럼, 밥벌이를 하고 때로는 아이가 아프고
나 혹은 배우자가 잠시 아파 주저앉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부부는 마치 동지처럼 삶의 구덩이와 동굴들을 헤쳐나가는데,
문득 이 모든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가도
또 내 앞에 주어진 삶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 묵묵히 걸어갈 수 밖에.
숱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묵묵함이 영웅의 삶 아닐까.

​지난 <중급 한국어>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사라진 대학생 이무영이 <실전 한국어>에도 등장한다.

오토픽션임을 감안할 때,.... 나는 이 부분이 픽션이길 빈다.

작가 앞에 뚝 떨어진 삶의 어떤 부조리한 측면.

설명하기 어렵고 삼키기 어려운 무언가를

그래도 억지로 꿀꺽 삼켜야 하는 삶의 무게.

왜, 우리는 이럴 때 누군가를 위로하고 안아 주고 싶어지는 걸까.

설명이 안 되니까.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이 무거운 짐이

얼마나 고달픈지 우린 다 같이 알고 있으니까..

​

" '왜?'는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지적인 질문이고 우주와 세계의 모든 세부에 적용 가능한 단 하나의 열쇠다. 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떤 일은 일어나고,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에겐 이유를 아는 지혜도, 결과를 바꿀 권능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밀어내거나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두 팔을 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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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한국어>는 이전의 소설들보다 훨씬 깊었다.

처음으로, 작가의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난 유튜브체질이 아니라 조금 보고 말긴 했지만.)

앞으로도 쭉 글로 만나고 싶다.

작가의 여정이 계속 궁금하니까.

​

개인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이전 책에 비해, 표지 안 쪽 작가의 사진이

훨씬 밝아 보인다. 왜인지,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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